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6호/신작시/홍계숙/마지막 종지기 외 1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685회 작성일 20-01-29 21:14

본문

26호/신작시/홍계숙/마지막 종지기 외 1편


홍계숙


마지막 종지기



마지막은 고요히 처음에 닿았네


대전 대흥동 백년 성당, 허름한 걸음이 120칸 가파른 계단을 오르네
종탑에 이르는 좁다란 하늘 길을 


라디오 속에 넣어둔 정각을 꺼내어 수많은 정오와 저녁을 타종했던 50년,


세 가닥 밧줄을 번갈아 움켜쥐고 온몸을 실어 지상 깊숙이 가라앉으면 하늘의 입술이 열리던
소리의 표면장력이 부풀어 쏟아지던 은총


풀밭 가득한 초록의 세간으로
제비꽃 귓속으로
삶을 타종하던 가난한 성자의 빌뱅이 언덕*으로


하늘은 그에게 소리새를 날리는 밧줄을 쥐어주었네
고요한 깃으로 도시를 품고
껍데기를 두드려 단단한 것들이 가슴을 열던


허공은 종지기의 고독한 성소
타종은 구슬이 되어
어디론가 굴러간 은총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네


정각의 라디오 속에서 성자가 걸어 나오네 디지털에게 밧줄을 건네고 종탑을 내려올 때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鐘아


가을 햇살 따사롭게 쏟아지고
그가 간절히 매달렸던 허공이 높고 파랗게 멍이 들어 있었네


* 종지기이며 동화작가였던 고 권정생 선생이 살던 탑마을 뒤의 언덕. 그의 산문집 제목이기도 하다.





이산포 노을에 입주하다



어머니 단풍 구경 가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단풍 구경 가요
이렇게 맑은 날엔 하늘 서쪽으로
단풍 구경 가요


산 너머 호수 건너 강을 따라
구름 없는 날 뭉게구름 피는 날 마음 시끄러운 날에도
어머니 우리 단풍 구경 가요
강물도 들판도 집들도 서로 어깨를 비비며 도란도란 붉어지는,
나지막한 산 위로 강물 위로
단풍나무 한 그루 활활 타올라요
한평생 기다림과 그리움의 기온차를 견뎌온 나무들이
저녁의 둘레로 붉은 새떼를 날리는
이산포,
이산離散의 녹슨 발자국들이 먼 산언저리를 서성거려요
저마다 가슴속 뜨거운 단풍잎 하나
서쪽하늘에 매달아 놓고
자유로를 달려 산 아래 내일로 돌아가요


어머니, 서쪽 창으로 오세요
오늘은 어머니 가슴 마른 꽃 부서지는 단풍 들으러
노을이 먼저 창가에 도착해 있어요





*홍계숙 2017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모과의 건축학』.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