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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산문/정경해/카프카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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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193회 작성일 20-01-2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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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산문/정경해/카프카의 변신


정경해


카프카의 변신



그는 나의 애를 끓인다. 생각만으로도 저릿하다. 유난히 짙은 눈썹에 우수 어린 동그란 눈은 애처롭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내 안 저 밑바닥에서부터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그를 마주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도 가슴이 아리다. 문득 그의 얼굴로 눈길이 간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커피잔에는 그의 얼굴 윤곽만 그려져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눈, 코, 입이 없다. 쫑긋 세운 양쪽 귓바퀴만 도드라졌다. 귀마저 보이지 않았다면 그것이 사람의 얼굴인지 아닌지 분간하기가 어려운 실루엣이다. 그런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의 짙은 눈썹은 어디로 갔을까. 반듯한 입술은 어디에 넣어 둔 것일까. 보는 이로 하여금 애틋한 마음이 들게 만드는 눈은 또 어디에 숨긴 것일까. 우수에 젖은 눈이지만 그의 반듯한 얼굴에 제법 어울리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그대로 드러내지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눈, 코, 입을 꽁꽁 숨기고 실루엣만 드러내다니. 왜 그랬을까. 그것도 온통 샛노랗게 물든 채로 말이다.
 커피잔을 들어 유심히 살펴본다. 왜 그의 얼굴을 굳이 노란 빛깔로 표현한 것일까. 궁금한 마음에 노란색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노란색은 ‘희망과 활기’를 뜻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는 생전에 이루지 못한 어떤 희망을 갈구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후에라도 활기를 띠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창 시절, 그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느 날 불안한 꿈에서 깨어 보니 자신의 몸이 벌레로 변해 있었고, 가녀린 팔다리를 파르르 떨며 자신에게 돋아난 등껍질을 베고 누워 있었다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도 일이려니와 가족은 물론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을 때 그의 마음은 어땠을까. 얼마나 황망했을까. 나는 그의 소설 「변신」을 읽으면서 정신이 아득했다.
그는 벌레로 변했지만 사람들이 하는 행동을 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손짓발짓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 해도 그것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사람들이 하는 말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려고 애절하게 ‘말’을 했지만 사람들에게는 한낱 동물의 울음소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그가 느낀 좌절감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이 그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그때 느낀 안도감은 잠시였다. 그의 흉측한 모습 때문이다.
어머니는 그를 볼 때마다 까무러쳤고, 아버지는 툭하면 사과나 지팡이로 그를 툭툭 쳐서 괴롭혔다. 급기야 그가 끔찍이 아꼈던 여동생마저 처음과는 달라졌다. 그의 방을 깨끗이 치워 주고, 먹을 것을 갖다 주는 일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너무나 슬펐다. 서서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 노동보험국 직원으로 취직하여 평생을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생활했다. 그런 그가 어떻게 그리도 처참한 모습을 착상해 내서 작품으로 탄생시켰을까. 나는 작가와 작품의 주인공을 동일시하며 그가 겪어야 할 일들에 전율했다. 눈물이 날 만큼 그가 가여웠다. 그가 처절하게 절규하는 모습은 잊으려 애를 써도 잊히지 않았다. 그렇게 죽어간 그는 세월이 사십 년이나 흐르도록 나를 아프게 했다.
카프카의 얼굴이 그려진 커피잔을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올해 유월 ‘해외문학심포지움’ 차 떠난 동유럽 여행에서 프라하를 둘러볼 때였다. 내 마음은 온통 카프카뿐이었다. 카를교를 거닐면서도 나는 그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설렛다. 그가 생전에 2년 동안 집필실로 사용했던 ‘황금소로 22번지’를 찾아가면서도 참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잠시 살았던 그 집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발을 멈췄다. 마음을 다잡으며 골목길을 다시 한 번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가 집을 나서거나 들어설 때, 이 지점쯤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마음을 흠씬 느껴보고 싶었다.
22번지로 향하는 골목길은 비좁았다. 길 양쪽으로는 기념품점으로 변한 집들이 촘촘히 붙어 있었다. 그 시절 그가 걸었을 흙길은 사라졌다. 돌멩이를 정교하게 깔아 말끔하게 포장이 되어 있었다. 이미 그가 살 때의 골목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의 심정도 이미 소설을 처음 대했을 때의 마음은 아니었다.
그에 관한 기념품으로 빼곡한 22번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품화 된 그와 소설 「변신」을 찾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원어로 된 소설책 「변신Die Verwandlung」과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라고 멋지게 쓰인 볼펜을 샀다. 그런 후에야 평소의 습관대로 두고두고 기념할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그만큼 카프카와 그의 소설 「변신」은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커피잔을 기울이며 샛노란 그의 얼굴을 본다. 그를 상징하고 있는 노란 빛깔, 그 희망과 활기 덕분일까. 오늘도 어김없이 그로부터 위로를 받고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기분이 한결 살아나는 걸 느낀다. 이 느낌이 참 좋다. 그래서 나는 우울할 때마다 그를 찾았나 보다.
커피잔에 남아 있는 커피를 마시며 오래도록 그와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샛노란 그의 모습 뒤쪽에 쓰인 글귀를 읽는다.
“I am nothing but LITERATURE and can and want to be nothing else.”-Franz Kafka
카프카는 강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한낱 문학에 지나지 않으며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그래.
카프카, 나는 그의 변신을 그윽하게 응시할 뿐이다.





*정경해 2006년 《순수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같은 빛깔로 물들어 간다는 것은』, 『까치발 딛고』, 『내 마음의 덧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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