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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흔적도 남기지 말아라" [서평] 김씨돌의 산중일기 '청숫잔 맑은 물에' 읽고 - 오마이뉴스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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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치산
댓글 0건 조회 250회 작성일 21-03-0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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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동네


"아름다운 흔적도 남기지 말아라"

[서평] 김씨돌의 산중일기 '청숫잔 맑은 물에' 읽고
20.12.24 15:50l최종 업데이트 20.12.24 16:54l


                
우리는 사람의 한 면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는 습성이 있다. 오랫동안의 만남 없이 어떤 매체나 들리는 소문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익숙하다. 풍문들을 사실인양 믿기도 한다. 요즘 같은 다양한 매체들의 우거진 숲 속에선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믿고 싶은 것만을 사실인양 믿으려 한다. 과거에 어떤 흠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숨기고 흠 아닌 것만 드러내면 그것이 그 사람의 본 모습이라 쉽게 판단하기도 한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어떤 이의 책을 읽었다 하자. 그것도 자신의 삶의 모습을 쓴 책을. 그때 우리는 그 책만 보고 '아, 이 사람이 이런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판단한다. <청숫잔 맑은 물에>를 처음 접하고 몇 페이지를 보곤 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었다.

보통 책을 고르고 선택할 때 다양한 기준들을 이용한다. 책의 제목이 좋아서, 책 표지의 인물사진이 정감이 가서, 평상시 원하는 세계를 드러내는 뭔가 있어서, 그 작가가 좋아서. 아니면 출판사나 독자들이 남긴 글을 보고 선택하곤 한다.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사지 않은 이상 그렇게 한다.

김씨돌 산중일기인 <청숫잔 맑은 물에>을 선택한 이유는 순전히 책의 표지 때문이다. 책의 제목과 밀짚모자에 사각의 뿔테 안경 속에서 뭔가 바라보는 조금은 쓸쓸한 눈매, 그리고 다듬지 않은 수염, 그리고 무엇보다 '청숫잔 맑은 물'이란 맑은 문구. 그것이 좋아 책을 선택했다. 또,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다 보니 자연인의 삶을 가끔 꿈꾸는 개인적인 취향도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연유의 하나다. 그러나 난 책을 받고 몇 페이지를 펼쳐 읽다 책장을 덮어버렸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 김씨돌 산중일기는 책장 속에 들어가 한참 동안 잠들어 있었다. 가끔 책장 산책을 할 때 눈에 띄었지만 쉽게 손이 가진 않았다. 그러다 볕이 가득한 하루의 오후, 다시 책 산책을 하다 손에 들려 소파에서 뒹굴다 다시 읽게 되었다. 대신 이번엔 책을 먼저 읽기 전에 책 표지에 걸려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래야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다큐의 내용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속에는 누구나 살 수 없는 삶을 살았고, 살고 있는 한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다큐가 아닌 다른 영상 속에는 그는 완전 그대로의 자연인이다. 비료 포대로 눈썰매를 타고 뒹굴며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는다. 사람이 있든 없든 홀딱 벗은 몸으로 작은 웅덩이에 들어가 몸을 씻는다.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는다.

때론 눈 속에 맨 몸을 눕히고 모이를 가슴에 놓아둔다. 그러면 새들이 와서 모이를 먹는다.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새들은 그를 하나의 자연물로 인식했다. 그가 자연이었고 자연이 그였다. 영상을 보고 나서야 그의 책에 쓰인 말들이, 형식들이 그리고 내용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의 사상들이 아니 그의 생각의 파고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나 없었던 요한, 씨돌, 용현
  
큰사진보기 김씨돌의 산중일기.2 <청숫잔 맑은 물에/>
 김씨돌의 산중일기.2 <청숫잔 맑은 물에>
ⓒ 리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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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이 지어주고 평범한 삶을 살던 날의 이름 용현, 민주화 운동을 하며 의롭고 용기 있게 불의와 맞선 청년으로 살았던 요한, 그리고 홀연히 강원도 산골로 들어가 자연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씨돌. 서로 다른 이름이지만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하나다.

그의 본명은 용현이고 세례명은 요한이다.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세례명인 요한으로 살았다. 자신의 역할이 끝나자 그는 홀연히 강원도 정산의 첩첩산중으로 돌아가 자연인 씨돌이 되었다.

그의 이력을 보면 평범한 삶의 모습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삶보다는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 땅에서 제대로 된 졸업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서울대와 경찰대 등의 폐지론을 처음으로 대자보화 했다. 제주에서 심신장애인들의 재활마을인 '사랑과 나비의 집' 운동을 펼치다 조사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국회 군의문사사건의 중심에 서서 활동을 한다. 이때 그의 이름은 용현이 아닌 요한이었다.

군의문사사건의 중심에는 시대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난다. 1987년 정연관 상병이 대통령 부재자 투표에서 당시 여당 후보인 노태우를 찍지 않고 야당 후보를 찍었다는 이유로 구타당해 숨졌다는 의혹을 파헤치면서 그의 삶에서 의문사는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는 '천주교 공정선거 감시단'으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하다 의문사한 유가족들과 어울렸다.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서서 투쟁을 하다 구타를 당하여 죽음 직전에 이르기도 했다.

또 간첩으로 오인받아 고문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며 끝까지 싸웠다. 그러다 어느 날 요한은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2004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정연관 상병의 의문사가 인정된 후다. 자신의 할 일을 마친 후 그가 선택한 곳은 강원도의 한 깊은 산골이다.

그는 여러 일을 하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곳엔 어김없이 나타났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었을 때 자원봉사 팀장을 맡아 매몰돼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자연을 지키는 일이나 사람을 지키는 일이 있으면 그는 늘 앞장섰다. 이러한 삶의 모습들을 생각하며 그의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그가 왜 그러한 삶을 선택했는지, 그의 영혼이 얼마나 맑은지 알 수 있다.

사설조의 문장에 들어있는 풍자와 해학

<청숫잔 맑은 물에> 나타난 씨돌의 글은 시 또는 동시이기도 하고 사설이기도 하다. 넋두리 타령이기도 하고 맑은 내면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 속에 풍자와 해학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그래서 처음 책장을 편 독자는 낯섦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처음 책을 펼쳤다가 책장 속에 한참 동안 가두어 놓은 것도 어쩌면 그 낯섦 때문인지 모른다.
 
산이 있어? 있다면? 잘못된 거야! 죄진 놈 명도 길어요. 먹을 것도 많아요. 이제 이스라엘은 성노예 반성조차 안 해요. 팔레스타인 학살에 믿음 보장법도 다 있어요. (……)

말씀으로, 학벌로, 뇌물로, 말아먹는 세상에,
집을 잃고 고향 떠나 설움 많은 세상에
부모형제 가족 떠나 눈물로 지세우시고,
같은 종족이 아니고,
같은 피부가 아니라고,
같은 종교가 아니라고, 버림받으시고
특별히 선택된 민족이 아니라고,
특별히 선택된 직업이 아니라고 밟히시고,
 
깊은 산골에 홀로 살면서, 새들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꽃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세상의 온갖 잘못들을 토설한다. 자연의 이치와 어긋나는 인간 세상의 모습들을 타령하며 애원을 하기도 한다. 측은지심 가득한 마음으로. 그래서 힘들고 지치고 짓밟힌 것들에게 '한 번쯤 우리 어머님의 아픔으로 껴안아 주고, 서로서로 슬픈 사연들 어루만져주시라'고 말한다.

< 청숫잔 맑은 물에>는 씨돌, 요한의 외침의 소리다. 정제되지 않은 듯하면서 정제된 둔탁한 영혼의 소리들로 가득하다. 그는 자유로운 토끼이고 새이고 나무이고 나물 캐는 아줌마이고 지게에 나무를 지고 가는 나무꾼이기도 하다. 80년대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글귀 중에는 지금의 모습을 역으로 볼 수 있는 구절들도 있다.
 
"아, 진정 용기 있고 가슴 시린 진실을 그대로 담아냈던 그 시절 기자분들은 다 어디에 계시온지."
 
씨돌씨는 이제 산중에 없다. 새들에게 모이를 주고, 토끼들하고 이야기를 하고, 산에 있는 나무와 꽃들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호탕하게 웃던 씨돌씨는 용현씨가 되어 강원도 정선의 한 요양병원에 누워있다.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영상을 보면서 그가 없는 산중에 새들은 토끼는 무엇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가 낙서처럼 툭 던진 이 한 마디가 그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
 
"아름다운 흔적도 남기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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