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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 시인의 세계

九月 九日/강성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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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종권
댓글 0건 조회 4,268회 작성일 10-03-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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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月 九日

김구용

「관세음보살, 별로 소원은 없습니다. 관세음보살 하고 입속으로 부르면, 관세음보살 정도로 심심하지 않다.
비극에 몽그라진 연필만한 승리를 세우지 마십시오. 때가 오거든, 이 몸도 가을 잎처럼 별〔星〕이게 하십시오」

毫生館의 애꾸눈과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귀를 가진 나무가 서 있었다. 그는 都市의 階段을 밟고 산으로 올라가, 그 나무와 함께 定處없이 바라본다. 聖地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慧超가 갔던 곳에서, 구름은 돌아온다.
저녁노을에 鄕愁의 항아리가 놓인다. 항아리 밑에서 번져나간 그림자의 깊이가, 저 白月의 언덕을 開港하고 있었다.

♤ 세상과 불화하면서 한 점 빛을 남긴 시인. 세속과 떨어져 자신만의 세계에 칩거하다 이승을 등진 시인. 시력(詩歷) 50여 년 동안 단 세권의 시집만을 펴낸 시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무척 난해하다는 시를 써온 시인 김구용. 그 난해성과 은둔적인 자세로 인해 숱한 담론의 한 복판에서 벗어나게 된 김구용. 그런 그의 불교시중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구월 구일>을 읽어본다. 일제징용을 피하여 계룡산 동학사로 피신하여 지내면서 동서양의 고전과 불경 등을 두루 섭렵하고 한학에도 상당히 경지에 오른 그의 이 불교시는 두 번째 시집 <시>에 실려 있는 시다.

우선 이 시의 제목에서 의미하는 아홉 구(九)에 대해 생각해보자. 불가에서 아홉은 매우 의미있는 숫자다. 서방정토(淨土)에 왕생하는 인간의 존재방식을 9품으로 구분하였고, 이를 그림이나 탑 등으로 나타낸 구품왕생관, 구품만다라 등이 그러하다. 그의 구도자적의 자세와 맞물려 이런 제목을 썼을 것이리라.

짤막한 산문시인 이 시는 그의 여타 산문시와는 다르게 확연히 연이 구분되어있다. 1연은 독백형식이고 2연은 아름다운 정경묘사다. 1연에서 시인은 ‘관세음보살’을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무료함을 달래는 동시에 반복음으로 인한 청각적인 효과까지 나타낸다. 그런데 다음 행에서 황당한 독백을 만나게 된다. “비극에 몽그라진 연필만한 승리를 세우지 마십시오. 때가 오거든, 이 몸도 가을 잎처럼 별〔星〕이게 하십시오”라고 하니, 정말 난해하다. 일찍이 그의 시가 프랑스 상징주의 대가, 뽈 발레리의 시에 맥이 닮아 있다는 평론가 김현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고도의 상징이다. 비극에 몽그라진 몽당연필같이 사소한 승리에 연연하지 말고(즉 사소한 세속적인 승리에 도취하지 말고), 자신도 오랜 세월을 견뎌온 가을 잎처럼 늙은 몸이지만 반짝이게(별이게) 하여달라고 관세음보살을 반복한다.

2연에 이르러서는 정말 아름다운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18세기 불우한 천재화가인 ‘최북’의 호인 ‘붓으로 먹고산다는 뜻’의 ‘호생관’과 악성(樂聖) ‘베토벤’ 등 동서양의 불우한 예술인을 대비시키면서, 그들의 특징인 ‘애꾸눈’(제대로 못 보는 것)과 ‘베토벤’(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을 통하여 ‘안 보이는 것 가운데서 보는 것’과 ‘침묵 속에서 듣는 것’ 등 구도자적인 자세를 드러내기도 한다. 시인은 이러한 이국적이고도 구도자적인 ‘나무’를 찾아서 “도시의 계단을 밟고”(속세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출가하여), 그 나무의 자세로 “정처없이”(무욕의 상태로) 세상을 관조하는데도, 시인이 그렇게나 갈망하였던 성지는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신라의 혜초가 구도의 목적으로 향했던 서역에선 허망한 구름만이 돌아온다고 한다.
그 구름에 번진 노을 속에서 시인은 “향수의 항아리”이란 생경한 어휘로 우리를 또 다시 당혹케 만든다. 이 ‘노스탤지어의 항아리’는 보다 더 순수한 어린시절로의 환기를 통해, 보다 깊이 새롭게 구도에 정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상당한 무리일까? 그리면서 “저 白月의 언덕을 개항하고 있다”(하얀 달이 ‘룸비니동산’을 열고 있다)라며 서방정토에 대한 구도자로서 시인의 갈망을 드러내면서 한편의 시를 완성한다.

김구용 시인이 돌아기시기 얼마 전, 현대시 커버스토리 대담에서 “나는 내 시 얘기 하지 않습니다.”라는 그의 마지막 말이 생생하게 떠오르게 하는 시이다.(강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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