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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박혜정/코끼리의 여백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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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284회 작성일 20-01-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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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시/박혜정/코끼리의 여백 외 1편


박혜정


코끼리의 여백



손상이 된 피부로 서 있다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다
베트남에서 왔다 아름다운 코끼리, 끼리, 리의 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발걸음이다
 
코가 얼굴이다 코가 몸이다 코가 코끼리다 모두가 코끼리다


나는 코끼리가 좋다
코끼리도 나를 좋다고 한다
서로에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코끼리는 좋기도 하지만 좋지가 않을 때도 있다 


울퉁불퉁한 좁은 거리를 달렸다
너와 나는 코끼리 바람의 피부를 상하게 했다
천천히 밀고 바람을 뚫어버렸다
쓰러진 바람들이 우리를 따라왔다
코끼리의 등에 업고 왔다
자세히 보면 그 거리를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너는 코끼리가 무섭다고 했다
코끼리를 말하면 코끼리가 따라오고
무섭다고 말하면
무섭다는 코끼리가 따라오니
겨울의 밤을 베트남으로 돌려보내자고 했다


마법 같은 언어의 공책을 쓰는 나에게
코끼리 여자라고 썼다
나는 나쁠 것도 없이 없었다
사실은 진술을 낳는다고 적는 것도
이제는 진부하게 다가왔다
너는 빽빽한 노트보다는
여백이 있는 노트가 좋다고 말을 했다
진술인지 진실인지 분별하는
시간도 코끼리 한 마리의 무게 같았다
우리에게는 그저 코끼리의 시간만이 있었다는
저녁의 여백들만 길거리에 굴러다녔다





거미에게 들려주는 만두



거미는 공부하는 방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중인가 봐
가로와 세로의 연결점은 항상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아무도 거미의 속마음을 읽을 수가 없네
착각은 하지 마, 이게 거미의 전부는 아니니까


거미가 읽다가 잠든 책장을 한 장 씩 넘겨보고
나도 한 번 거미가 만든 집에서 살아보고 싶어


내가 만든 만두를 옷핀으로 꽂아
거미줄에 걸어두고 싶단 말이야


그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내 만두를
왠지 거미는 이해할지도 모른다고 믿어


만두를 빚는 내가 참 안심이 돼
만두 속의 끝은 온점으로 가득하겠지


만약에 거미가 만두를 먹고 똥을 싼다고
놀라진 않을 거야
그건 백白으로 늘어진 점이니까


만두피를 해독하는 기특한 거미


누군가 거미의 능력을 나누자고 한다면
거미줄을 한꺼번에 잘라낼지도 몰라





*박혜정 201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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