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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장편연재⑧/김현숙/흐린 강 저편/제8회 (최종)/만경강은 흐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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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496회 작성일 20-01-2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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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장편연재⑧/김현숙/흐린 강 저편/제8회 (최종)/만경강은 흐르고


김현숙


만경강은 흐르고



망해사에서 시모와 며느리들이 단합대회를 한 그해 늦가을, 느닷없이 계순이 상경하여 희연에게 연락을 해 왔다. 결혼생활 근 20연차. 그 기간을 통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경석과 한석이 불과 1년의 차이를 두고 결혼했으니 동서간 결혼 연조는 거의 비슷한 편인데 그간 단 한번도 그런 일이 없었기에 희연의 놀라움은 컸다.
형님, 저 서울 왔어요. 근디 막상 오고 본께 갈 디도 없고, 형님 밖엔 생각 안 나연락 드리네여. 전화선을 통해 들려오는 계순의 음성은 매우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희연은 놀라움을 누르곤 우선 계순의 소재를 알아내 그녀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용산역 부근의 작은 찻집이었다.
되도록 형님께도 안 알리곤 애들 아빠랑 둘이 해결하고 잪었는디 그 화상 성격이 원캉 징혀갖곤 도통 뭔 대화가 되질 않는단께요. 그간의 경위를 들려주는 계순의 모습엔 터질 듯 응축된 울분이 느껴졌다. 내막인 즉, 한석이 만학으로 입학한 신학대 동기생 모임이 화근이었다. 물론 계순 또한 함께 입학한 동기였으나 방앗간일이며 집안 일 등으로 번번이 그녀는 모임에 빠지기 십상이었고, 반면 쾌활하고 재담이 뛰어난 한석은 날로 동기생들 사이에 인기가 더해갔다. 마침 일박이일 일정 가을 세미나 참석 문제로 여자 동기생이 한석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방앗간에서 급히 주문 받은 찹쌀 인절미에 하얀 팥고물을 묻히고 있던 늦은 오후였다.
한석의 핸드폰을 통해 울려오는 여자 동기생의 음성은 봄철 버드나무 순처럼 연하고 부드러워 곁에서 듣는 계순마저 몸이 오그라들 정도였다.
한석씨이, 저 과 대표, 차명자여요. 잘 지내셨지요오. 호의가 뚝뚝 흐르는 여자의 나긋한 음성에 한석의 낯빛이 확 밝아짐을 계순은 놓치지 않았다. 차명자, 그녀는 사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때부터 뭔가 좀 남다른 느낌으로 눈에 띄는 존재였다. 대다수 나이 든 중년의 극히 평범하고 너주레한 만학도들 사이에서 뭔가 좀 단아하고 깔끔한 자태가 단연 눈길을 잡아끄는 여자였다. 그리 튀는 미모는 아니었으나, 퍼머기 없이 짧게 묶은 생머리에 야무진 눈빛, 더없이 수수하면서도 어딘가 엣지있는 옷차림이 은근히 주위의 시선을 끄는 그런 타입이었다. 신학이나 성서에 관해서도 상당한 내공이 느껴지는 모범 학생이라 클래스 전원의 추천에 의해 과대표로 선출되었다.
그러기에 세미나 관계로 그녀가 전화를 한 것까진 이해하고도 남았으나,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대화의 분위기가 실로 심상찮아 계순은 기분이 상했다. 흥건한 웃음 속에 깃든 짙은 친화감. 직감으로 계순은 한석이 차명자에게 매우 호감을 품고 있음을 알았다. 더구나 본인은 기꺼이 세미나의 참석을 알리며 계순은 전혀 염두에 두질 않는 한석의 무심한 태도라니! 계순은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 그만 냅다 소릴 질렀다. 전화질 좀 작작 혀. 떡은 대체 언지나 만들 것이여. 세미난가 재미난가 고것이 뭐시 그리 중헌디. 참말로 백여시 같은 것이 사람 잡겄구먼. 계순의 악다구니에 황급히 전화를 끊는 한석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는가 싶더니 순간 꽈당, 팥고물 담긴 함지박을 뒤엎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시 워쩌. 이 여자가 보자보자 혔더니만 참말로 가관이란께. 아, 걸려오는 전화도 못받고 살아야 혀. 하아, 완전히 미쳤구먼, 미쳐부렀어. 
분노에 찬 한석의 음성이 방앗간을 울려왔고, 계순은 허겁지겁 엎어진 함지박의 팥고물을 쓸어담았다. 팥고물이 작업대에 새로 깐 비닐 깔개 위로 쏟아진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놈의 불같은 성질은 정말이지 아무도 말릴 수 없음을 알면서도 번번이 또 부딪치곤 하는 상황이 끔찍하여 계순은 턱, 숨이 막혔다. 더 이상은 그와 잠시도 한 자리에 있기가 힘들어 계순은 서둘러 떡을 마무리 한 후 훌훌이 방앗간을 벗어났다. 어디라도 가서 좀 안정을 취해야만 될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오니 갈 데가 막막했다. 딸들 집에 가기도 심히 민망하고, 아들네는 더더욱 아니었다. 마음에 금방 떠오르는 친구도 없어 계순은 너무도 쓸쓸하고 망연한 기분에 휩싸였다. 어쩌다 허허로이 발길 닿은 곳이 J시 중심가의 성산 전망대였으나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나이 든 노인들의 불온한 눈길이 두려워 계순은 그대로 곧장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가까운 친구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한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 눈물이 질금거렸다.
다음 차례로 그녀의 발길이 닿은 곳은 어처구니 없게도 시집의 선산이었다. 그토록 매운 시집살이로 적잖이 힘든 삶을 살아왔거늘 발길 닿은 곳이 고작 시어른들의 묘소라니! 그녀는 스스로 생각해도 기막히고 놀라워 절로 쓴웃음이 배어났다. 보기 좋게 떼가 자란 시부의 묘소 앞에 앉으니 만감이 교차하여 울컥 눈물이 솟구쳤다. 미운 정, 고운 정. 맞는 말이다.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살아 생전 어렵기만 하던 시부였으나 마치 투정을 하듯 한바탕 눈물을 쏟으며 하소를 쏟아내니 조금은 속이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무덤가 누렇게 말라가는 잡초를 잡아채는 그녀의 귀에 먼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계순은 불현 듯 서울의 큰 동서, 희연을 떠올렸다. 형님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기분을 이해 해주고 편안히 받아 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근거는 알 수 없었으나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음은 자신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예상대로 희연은 계순의 전화를 받자마자 차를 몰고 역사 부근으로 달려나왔다. 한적한 곳으로 차를 몰며 희연은 차분히 계순의 상경 연유를 물었고, 계순은 여전히 격앙된 모습으로 한석과의 충돌, 그것의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계순의 토로에 때론 실소로 때론 긴 한숨으로 반응하던 희연이 문득 제안했다. 동서 우리 어딘가로 여행이나 떠날까. 집안 일 같은 건 깨끗이 잊고 한동안 푹 쉬었다 오는 거야. 동의하는 거지? 희연은 힘껏 엑셀을 밟으며 말했다.
가을색 짙은 만추의 강변 길을 따라 희연이 달려가는 목적지는 바로 수현이 사는 C시였다. 계순을 태워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했으나 막상 딱히 떠오르는 곳 없이 무작정 달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C시로 향하고 있었다. 직업 군인인 병석의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남녘 G시에서 강원도의 C시로 이사온 지 불과 몇 개월이 안되는 시점이라 희연은 몇 번인가 다녀왔으나 계순은 C시가 처음이었다. 오매나 여그 이 동넨 참말로 호수가 많네요오. 차창을 통해 확 펼쳐지는 호수를 바라보며 계순은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계순을 차에 태워 C시를 향해 달려가며 희연은 한 편의 영상처럼 생생히 떠오르는 수현과의 옛일들을 떠올렸다. 병석과의 긴 불화로 잠시 서울 희연의 집에 와 동거를 하면서도, 수현은 별거 내내 자신의 오른 손 약지, 그곳의 금반지만은 결코 손에서 빼질 않았다. 한데 핸들을 잡고 C시를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오른손 약지에도 여일히 뫼비우스 띠 모양의 금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발견하고 희연은 혼자 웃었다. 순간 희연의 눈길은 절로 운전석 옆 계순의 손을 향해 미끄러졌다. 아니나 다를까. 계순의 오른손 약지에도 어김없이 이혼금지링이 반짝이고 있음을 확인하는 희연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져갔다. 동서, 걱정 마. 삼촌이랑 곧 화해할거야. 일테면 두 사람은 늘 사랑싸움이니까. 아녀요, 형님. 이번엔 참말로 오만정 다 떨어졌단께요. 계순이 부르르 몸서리를 치며 그렇게 말했으나 이상하게도 희연은 내심 그 어떤 마법의 패를 지닌 듯 마음 한 구석이 평온해 옴을 느꼈다.
마법의 패. 그러했다. 시모가 해 준 뫼비우스의 반지를 손에 낀 순간부터 웬지 그것이 늘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길을 밝혀줄 듯한 근거없는 믿음 같은 것. 그런 믿음을 지니게 되었음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딸 유리의 대입시 실패에서 비롯된 경석과의 거리감, 소원함도 언젠가는 점차 희석되어 갈 듯한 예감. 그건 어쩜 자신의 내적 의지나 지향이랄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희연은 은연중 그것이 주는 느낌을 마치 자기암시와도 같이 내밀히 마음에 품게 되었음은 스스로도 설명이 잘 안되는 일이었다.


수현과 병석이 남녘 군부대 주둔지에서 살던 시절, 그들은 어느날 심한 부부싸움으로 경석과 희연을 급히 호출했다. 맏이인 형 내외가 와서 자신들의 불화를 중재해주길 바라는 SOS였다. 연유인 즉, 수현이 모처럼 친구들 모임에 나가 밥 먹고 쇼핑하고 영화 보느라 병석이 걸어 온 수차례의 전화를 내내 받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그날 수현의 외출을 사전에 알고 있었기에 아예 부대에서 저녁까지 먹고 퇴근한 병석은 혼자 느긋이 TV를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수현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수현이 귀가하질 않자, 그는 내심 점차 불안한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는 수현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러나 번번이 신호는 가는데 수현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병석의 기분은 점차 엉망이 되어갔고 마침내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밤늦게 영화관에서 나온 수현은 핸드폰을 켜며 비로소 병석이 수없이 전화를 해댄 사실을 알았고, 친구의 차에 편승해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왔으나 화난 병석의 마음을 돌이키기엔 이미 한참이나 늦은 때임을 알았다. 여자가 밤 늦도록 왜 전화도 안받느냐. 영화관에 있는데 어떻게 전활 받느냐. 급기야 언쟁이 시작된 두 사람의 이견은 좀체 좁혀지질 않고 점점 더 극을 향해 치달았고 결국엔 더없이 격한 감정이 되어 서로 헤어지자는 말까지 오가기에 이르렀다. 병석의 급요청을 받고 그들에게로 달려 간 경석과 희연은 너무도 험악하고 격렬한 기세로 서로 자신의 행위만이 옳다고 우기는 언쟁에 그저 속수무책일 따름이었다.
밤늦도록 전화도 안 받고 연락이 안돼 좀 뭐라 했더니 자신을 의심한다고 핸드폰을 던지며 악을 쓰는 그런 여잡니다.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어요. 평소 협심증이 있는 병석이 숨을 몰아쉬며 분을 못 삭혀 씩씩대었다. 아니 친구들이랑 시내 나간 걸 알면 좀 늦어도 가만히 기다려 줄 일이지 전화를 무려 5분 간격으로 18번이나 했더라고요. 정상이라 할 수 있나요. 너무도 화가 나 이놈의 핸드폰 꼴도 보기 싫다며 던져버렸죠. 수현도 한 마디 지지 않고 대차게 맞서는 모습이 도저히 어찌해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말 저런 말로 일단 둘을 안정시킨 후 뭐라도 좀 먹으러 가자고 권했으나 소용 없었다. 회사에서 급히 연락 받고 일찍 나온 경석이 차를 몰고 근 3시간을 달려가느라 저녁도 거른 만추의 밤 9시경. 집안은 온통 어두컴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고 저녁도 굶고 싸우는 둘의 모습이 너무도 썰렁하고 살벌해만 보여 가슴이 옭죄어 왔다.
일단 두 사람을 격리시키는 게 급선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 수현이라도 데리고 나가 뭐라도 좀 먹여야 한다는 게 희연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경석의 판단은 또 달랐다. 제수씨, 서울 갑시다. 일단 우리집에 머물며 마음 좀 가라앉히고 쉬면서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아요. 경석의 단호한 음성에 희연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그러나 경석의 음성엔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진심, 그리고 힘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아내인 자신의 의사완 전혀 상관 없이 수현을 무작정 서울로 데려가려 하다니!! 평소 그리 가까운 동서지간도 아니거늘 수현과 한 집에 머물며 뭘 어쩌자는 것인가. 희연은 너무도 기가 막혀 아무런 말도 나오질 않았다. 
길고 노란 머리털, 직업이 미용사인 시스룩 차림 태권도 9단의 당찬 여자. 처음 시댁에 인사 왔을 때의 그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 그대로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담. 희연은 가슴이 답답해 와 말을 잃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수현의 반응이었다. 그녀는 가타부타 말없이 시숙인 경석의 지시에 따라 자신의 짐을 여행용 캐리어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심지어 헤어 커트용 가위, 퍼머용 롤, 고데기, 염색약, 네일 아트 제품 등등 온갖 미용 재료를 빠짐없이 챙겨 넣어 가방이 곧 터질 지경이었으나 개의칠 않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어이 없고 한편은 또 마음 한 구석을 짠하게 하여 희연은 실소했다.
 
그런 곡절을 거쳐 수현과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마침 대학원생인 희연의 아들 윤이 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나가 있기에 아파트에 빈 방이 하나 있어 다행이었다. 수현은 바로 그 방에 짐을 풀었다. 형님, 죄송해요. 친정에 가 있으려도 나이 든 엄마에게 걱정만 안기고, 그러다간 영영 그이와 이별할까도 두려워, 그래도 형님댁에 있는 게 둘이 화합하기엔 훨씬 좋을 듯 해서요. 대신 제가 청소며 요리도 하고 형님 머리도 해드리고 할게요. 그렇게 말하는 수현의 태도에 희연은 내심 감동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마음 가짐이 어디 쉬운 일인가. 결과야 어찌 될망정, 그런 상황에선 누구나 일단 친정으로 달려가는 게 상례인데 심신 불편하고 껄끄럽기 십상인 시집 동서네로 거처를 정하다니!! 터프하고 야해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심지 깊고 사려성 있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수현은 아침이면 따끈한 토스트에 베이컨과 계란 후라이, 온갖 야채를 곁들인 풍성한 식탁을 마련하였고, 때로 낮에 혼자 마트에 가 신선한 재료를 사와 맛깔스런 요리를 만들곤 하여 희연을 놀라게 했다. 그뿐인가. 하루 종일 서재에서 원고지와 씨름하는 희연의 초췌한 모습을 딱히 여겨 종종 자신의 차에 희연을 태워 먼곳으로 드라이브를 가기도 했다. 애초 잔뜩 우려했던 수현과의 동거는 기우였음을 깨닫게 하는 나날이었다. 형님 머리 예쁘게 해주려고 그 와중에 눈치없이 퍼머 기구까지 다 싸온거에요. 수현이 황망 중 집을 나오며 왜 그리 짐을 꾸역꾸역 쌌는지, 그걸 비로소 알게 하는 말이었다. 희연이 좀 한갓진 날엔 커트와 퍼머에 이어 네일 아트며 패디큐어까지 해주었고, 이따끔씩은 둘이 백화점을 나가 아이 쇼핑을 하며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그러나 밤이면 수현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울었다. 깊은 밤 희연이 잠을 깨어 거실을 서성일 때면 입을 꼭 막고 오열하는 수현의 울음 소리가 새어나옴을 희연은 모르지 않았다. 날은 겨울을 향해 치달았고 어언 찬바람 부는 계절이 다가오자 수현의 얼굴에도 점차 수심의 그늘이 깊어만 갔다. 그녀로선 그간 병석과의 화해와 소통을 위해 수시로 문자와 편지를 보내며 그의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썼으나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이었다. 남녘 P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큰아들 환과 군복무 중인 둘째 진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완전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와 수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지는 별거에 그녀 또한 점차 절망감에 빠져듦을 어쩔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해 희연이 나서 병석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용산 군부대에 출장 오는 날을 기다려 조용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삼촌, 아직도 화가 안 풀렸나요. 동서는 삼촌을 무척 그리워하던데……. 그렇게 운을 떼며 병석의 마음을 떠보았으나 막무가내였다. 얼마 전 군에 간 둘째, 진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이따금 권총 자살을 하고픈 충동에 시달린다는 것. 또한 엄마 아빠의 불화, 별거로 때론 탈영을 해버릴까 하는 충동에 빠져들기도 한다는 상황 등. 실로 전하기 쉽지 않은 그런 심각한 얘기까지 내비쳤으나 병석은 약간의 동요만 보였을 뿐, 큰 흔들림은 없어 희연을 좌절케 했다. 헤어지며 지난 밤 수현이 밤새워 쓴 손편지를 병석의 손에 꼭 쥐어 주며 희연이 말했다. 사람의 진심을 몰라주면 그것도 큰 죄에요. 동서는 삼촌을 깊이 사랑하고 있어요. 그걸 잊어선 안됩니다. 그 말을 하는 희연의 눈가에 돌연 이슬이 맺힘을 병석도 보았던 것일까. 형수님, 죄송합니다. 순간 덥석 희연의 손을 잡았다 놓으며 낮은 음성으로 그가 말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어서도 병석으로부턴 이렇다 할 아무런 소식이 없는 막막한 날이 계속되자, 수현은 마침내 큰아들 환의 대학이 있는 남녘의 P시로 거처를 옮길까 고심했다. 언제까지 서울 형님 집에만 얹혀 있을 수도 없는 입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때를 맞춘 듯 K시로부터 시모의 병환을 알리는 소식이 날아왔다. 최근 부쩍 건강이 악화된 시모가 결국 입원을 했다는 전갈이었다. 모두 걱정만 하고 있던 차 수현이 선뜻 나서 간병을 자처했다. 희연은 내심 엄청난 놀라움을 느꼈다. 병석을 진정 좋아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불화 후 곧장 친정으로 내려가지 않고 시댁 동서네로 와 힘든 나날을 견디어 간 점, 그 지난한 기다림 속 인고의 과정 등등 겪어볼수록 보통 여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 보단 훨씬 더 속이 깊은 여자. 수현과 근 한 달여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희연은 손아랫 동서인 그녀로부터 많을 걸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희연의 집을 떠나 병석에게로 가던 날 수현이 제 오른손을 내려다 보며 말했다. 형님, 끝내 저를 지켜준 게 뭔지 아세요. 반지, 이 반지에요. 어머님이 해주신 이혼금지링. 이걸 끼고 있음 웬지 절대 이혼만은 안 할 듯한 야릇한 믿음 같은 거, 뭐 그런 게 있었어요. 반지를 내려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수현의 음성이 젖어 있어 희연은 말없이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동서. 정말 잘 참았고 참 대단했어. 앞으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야!!
결국 한 달여 시모의 간병 후 수현은 다시 자신의 집으로 복귀할 수가 있었다. 단지 말로서만의 사과가 아니라 직접 몸과 행동으로 보여준 진심. 말하자면 진정성의 승리였다. 시모가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을 드나들며 수현과 맞닥뜨린 병석은 지극정성으로 노모를 간병하는 수현의 모습에 꽝꽝 얼어붙었던 자신의 내면이 시나브로 무너져내림을 느꼈다. 그는 다시 수현을 용서하고 받아들였다. 마침 병석이 남녘 군부대에서 전출되어 서울에서 두 시간 거리의 C시로 가게 되었음은 그들 일상의 환기를 위해서도 썩 잘된 일이었다. 두 사람의 화해를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맏형인 경석과 희연 부부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도착 전 미리 연락을 해두긴 했으나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수현은 펄쩍 뛰며 더없이 반갑게 두 동서의 방문을 맞았다. 형님들 진짜진짜 잘 오셨어요. 안그래도 여긴 좋은 데가 너무 많아 형님들 한번 초대하려 했었어요. 아이처럼 좋아하는 수현의 모습에 희연은 C시로 오길 정말 잘했다고 안도했다. 수현은 그런 여자였다.
마침 병석이 군 본부 연수로 부재 중이라 세 동서는 수현의 아담하고 예쁜 아파트를 펜션 삼아 밤새 떠들고 얘기하며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손이 빠르고 요리에 소질 있는 수현은 즉석에서 파, 부추, 생굴, 해물 등을 넣어 전을 부치고, 멍게 두부 등, 온갖 야채와 된장을 풀어 매우 독특한 맛의 찌개를 만들어 입맛을 돋우었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C시에서 출발, 2박3일의 일정으로 강원도 명소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아무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남편 흉들을 실컷 보고 서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름의 삶의 애환들을 허물없이 털어놓음으로써 맘껏 웃고 탄식하며 마치 선루프인양 잠시나마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젖힌 시간이었던 것이다. 여행 중 희연의 중재에 의해 한석과 다시 화해하게 된 계순은 상경 때완 달리 비교적 가벼운 걸음으로 귀향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계순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희연의 마음은 까닭없이 짠해왔다.   


얼마 후 신학대학 과정을 무사히 마친 한석은 마침내 안수식을 거쳐 목사가 되었다. 부목의 경력도 거치질 않고 곧바로 개척교회를 세운 것이었다. 방앗간을 하던 상가 건물을 개조하며 교회를 차렸고, 주임 목사가 되었다. 그에 따라 계순은 당연히 사모가 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교회 축성식에 이어 본격적인 예배와 목회가 시작되었으나, 어쩐 일로 좀처럼 신자 수는 늘질 않았다. 그래도 주말이면 슬하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의 배우자와 손주들이 모여 들어 어김없이 예배하고 찬송하는 모습은 꽤나 대단한 규모의 가족 예배라 매번 보는 이를 뭉클하게 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열심히 찬송하고 예배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자면 개과천선이란 말이 따로 없었다. 젊은 시절, 시부모 모시고 농사일 하며 혼자 교회 다니던 계순을 맹비난하던 그때의 한석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간극을 느끼기 하는 현상이었다.
 
한석과 계순은 목회자 가족이 되었고, 수현과 병석은 다시 예전의 평온한 시절로 돌아갔다. 경석과 희연의 갈등 양상도 점차 그 농도가 희석되어 갔고, 별거가 꽤 길었던 막내 진석과 미영 커플까지 다시 합해 모든 것이 다 제 궤도를 찾아가는 듯 하던 그해 겨울. 시모는 다신 영영 깨어나지 못할 만큼 위중한 상태가 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 모든 검사와 진료 결과 담도암 말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지난 번 입원 시엔 전혀 발견되질 않았던 증상이라 가족들의 충격은 컸고 모두 실의에 빠져 말을 잃었다. 한석은 어디서든 눈물 바람을 하며 애통해 했고 막내 진석은 마냥 흐느껴 울어 가족들의 마음을 아리게 했다.


시모의 문병을 위해 J시 대학병원, 정문을 들어서는 희연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 더없이 무겁기만 했다. 시모의 위중을 대면해야만 하는 고통, 자책, 슬픔 등등 표현키 어려운 여러 감정들로 금방이라도 그런 상황이 그저 현실이 아닌 꿈으로 바뀌길 바라는 터무니없는 마음. 그런 마음을 품은 채 희연은 소리없이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시모의 병상을 지키던 막내 시누이 혜옥이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희연을 맞이했다. 남편의 이직으로 포항에서 K시로 이사 온 혜옥은 누구보다 자주 친정을 드나들며 시모를 극진히 돌보곤 하여 주위를 감동케 하는 존재였다. 결혼 전 희연과 함께 한 세월 덕에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며 희연에게 늘 고마움을 표하는 다감한 성정이라 언제 봐도 혈육 같은 반가움이 자리하는 시누이였다. 실은 그런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사람은 바로 자신임을 알고 있기에 희연은 그저 단지 실소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딱하게만 느껴졌다. 
두 여자는 그저 손을 꼭 잡은 채 물기 어린 눈길을 마주쳤을 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시모는 잠들어 있었다. 희연은 조심스레 병상으로 다가가 시모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깊이 잠이 든 모습이었다. 황달기로 낯빛이 노랗게 변해가는 초췌한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어머님, 많이 힘들어하시나요. 얼마 후 희연은 혜옥을 향해 겨우 그렇게 물었을 뿐이었다. 계속 진통제 맞으니까 아직 아프단 소린 안혀요. 근디 암 것도 드시질 못허네요. 찰밥이랑 나물 좀 해왔는디……. 목이 메이는지 혜옥이 미처 말을 잇질 못했다. 언니, 이따 저녁으로 찰밥 좀 드셔요. 아녜요 아가씨, 괜히 그런 데 맘 쓰지 말아요 와중에도 여전히 살갑기만 한 혜옥의 말에 희연은 가슴이 찡해 왔다. 그들의 얘기 소리에 잠들었던 시모가 힘겹게 눈을 뜨며 무어라 소리를 내었다. 시방 누가 온겨. 서울 큰메누리 소리도 난 것 같은디……. 엄니, 서울 언니 맞아여. 방금 왔단께요. 혜옥이 희연의 팔을 잡곤 시모의 침상 곁으로 데려가며 말했다. 
에미 왔냐. 먼 디서 오니라 욕 봤다. 힘없고 가는 음성이었으나 정신이나 발음만은 아직 또렷하고 정겹기만 하여 희연은 순간 눈시울이 후끈해 왔다. 먼 디서 밥이나 지대로 먹고 왔겄냐. 에미, 뭐 좀 믹어야 헌다. 아까 본께 혜옥이 쟈가 찰밥 싸왔던디……. 병상에 누워서조차 알량한 큰며느릴 챙기는 시모의 마음에 희연은 가슴이 먹먹해 와 말을 잃었다. 자신이 과연 끼니도 굶은 채 달려 온 살뜰한 며느리던가. 서울에서 기차를 타기 전 햄버거에 커피를 먹고 하차 후엔 역전 편의점에서 간단히 김밥 한 줄을 사먹고 온 터라 희연은 더더욱 시모의 자상한 염려가 마음에 찔려 왔다. 역에서 간단히 먹고 왔어요, 어머님. 희연의 음성이 안으로 자꾸 말려들었다.
어머님, 음료수라도 좀 드실래요. 두유 좋아하셨는데…자신이 사들고 온 박스에서 두유 하나를 꺼내 시모에게 건네며 희연이 말했다. 그냐. 에미가 사온 거라니 하나 먹어볼까이. 시모는 침대 윗부분을 위로 올려달라 주문한 뒤 상체를 비스듬히 하곤 희연의 손에 들린 빨대 꽂힌 두유 몇 모금을 빨아 마셨다. 맛나다야. 고맙다, 에미야. 시모가 희연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따스하고 자애로운, 신혼 초부터 늘 보아 온 변함없는 미소였다. 오매, 언니가 사왔다니께 역부로 요로큼 앉아서 드시네잉. 혜옥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목소릴 높였다.
아서, 인자 그만 먹을란다. 겨우 몇 모금이나 마셨을까. 시모는 이내 얼굴을 찌푸리며 두유곽을 치우라고 손짓했다. 식욕이 거의 없는 상태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시모는 다시 침대를 내리란 소리 없이 한참을 그대로 망연히 앉아 있었다. 초점 없는 잿빛 눈이 희연을 향해 날아왔다. 애미야, 뭐시냐. 반지는 잘 찌고 다니냐. 지난 가실보다 에미 낯빛은 좀 낫아진 것도 같은디……. 얼굴이 확 피덜 않는 것이 워쩐 일이다냐. 시모의 얼굴엔 까닭모를 근심이 어른거렸다. 당신 몸이 그리 아픈데 며느리 걱정을 하다니!! 희연은 너무도 마음이 아려 얼른 시모에게로 다가가 자신의 약지에 끼워 진 반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어머님. 이 반지, 넘 맘에 들어 늘 끼고 다녀요. 저를 굳게 지켜주는 마법의 반지 같아요. 희연의 반응에 시모는 다시 또 희미하게 웃어보였다. 그냐. 에미 맘에 든다니 되얏다. 근디 네게 부탁이 하나 있다. 쪼깐 내 젙에 가차이 와 볼쳐. 시모는 침상에 앉은 채 상체를 돌려 자신의 베갯잇 속에서 곱게 수놓인 조그만 쌈지 하나를 꺼내어 그것을 희연에게 보이며 말했다. 요것이 바로 에미 니가 시집 올 때 해 온 내 은비년디……후제 나 죽고 나믄 뭐시냐, 지난 가실 우리가 놀러 갔던 강에 나가 요것을 물속에다 쪼깐 쫌 던져줬음 쓰겄다. 고렇큼 혀줄 수 있겄지. 에미야, 꼭 부탁헌다아. 차오르는 숨을 가누며 간신히 그렇게 말한 시모는 그만 기진한 듯 다시 침상에 몸을 뉘였다. 혜옥이 훌쩍이며 울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희연은 비어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며 시모의 손을 꼭 부여잡았다. 앞으로 울 날은 얼마든지 있다. 두고두고……!! 그러나 쇠약한 시모 앞에서 섣불리 눈물을 보여선 안되리. 희연은 몸을 굽혀 시모의 귀에 대고 속삭이듯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어머님, 염려마셔요. 꼬옥 그렇게 할게요. 따뜻한 봄날 어머님 모시고 강에 나가 함께 던지길 빕니다. 어머님. 언릉 자리 털고 일어나셔요. 희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모의 눈가에 한 줄기 눈물이 배어나왔다.
고맙다, 에미야. 근디 더 오래 살아 뭐덜 것이냐. 나사 인자 고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단께. 다믄 살아 생전 훌훌 쏘다니지 못헌 것이 포한이 되얏응께 죽어서락두 쪼깐 넓은 세상 귀경 다니믄 안 좋겄냐. 흐릿헌 만경강 바라보믄 한시반시도 맑은 날 읎이 살아 온 내 속 같아갖곤 기냥 한량읎이 물길 따라 흐르고 싶었단께.
 꿈속에서나마 훨훨 강가를 거닐 듯 시모는 혼자 무어라 한참을 더 웅얼거린 후 다시 눈을 감았다. 한참을 얘기한 끝에 기력이 다 한 모습이었다.
 
근 한 달여의 입원 기간 동안 시모는 거의 식음을 전폐하곤 음식을 마다하였다.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본인이 더 이상 삶을 이어가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느낌이었다. 나 땜시 니들이 고상 많다. 징그랍게 오래 살았은께 인자 후딱 죽어야 쓰는디……. 뭐더러 새끼덜 고상시키고 요렇큼 오래 산다냐. 그런 푸념 같은 말에서도 시모의 내심은 그대로 드러났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명을 재촉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심지어는 식사 대용 영양제인 링거액조차 맞기를 거부하여 자식들의 마음을 애타게 했던 것이다. 7남매 중 거의 매일 병원에 들려 정성껏 간병하는 자식은 역시나 가까이 사는 한석 내외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거리상 가깝고 멀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아들 중에도 시모와 한석과는 그만큼 서로 밀접한 관계였음을 입증하는 것임이 드러났다. 미상불 계순에게 조차 그러한 자신의 효심을 투사, 완전 동일시 하려는 한석의 강압적 태도는 다시 또 계순과의 사이에 심한 마찰을 낳아, 때론 병실이 떠나갈 듯 서로 싸움을 하기 십상이었다. 한석의 그러한 심리는 모든 형제들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되어 7남매 모두가 나름 최선을 다해 시모에게 마지막 효를 다할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라 희연은 내심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병인을 두지 않고 일곱 자식들이 서로 당번을 정해 며칠씩 병실을 지키며 노모를 돌보는 것이 마지막 효라고 여기는 한석과 달리, 희연은 별도의 전담 간병인을 두고 자식들은 형편에 따라 각자 자유로이 문병을 오가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희연의 그러한 태도는 한석에게 더없는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급기야 두 사람 사이엔 싸늘한 냉기류가 흐르고 서로 소통이 단절되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다. 적어도 당번을 맡은 날만이라도 시모의 병상을 지키며 성실히 간병에 임하는 것이 맏며느리의 역할이라 생각하는 한석과, 상황과 처지에 따라 보다 유동성 있게 임하자는 희연의 의견이 완전히 상충되어 나타난 충돌이었다. 예컨대 간병과 문병의 인식 차이가 낳은 대립. 희연은 간병이란 말 자체에서 우선 극심한 심적 부담을 느껴 미리 힘들어 하는 유형이었고, 한석은 자식으로서 그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란 생각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고정 관념을 지닌 남자임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희연 또한 자신에게 베푼 시모의 사랑을 돌이켜볼 때 적어도 평소 지독히도 편의주의적이고 인내심 없는 자신의 성향을 벗어나지 않을 순 없다는 결론을 내리긴 했다. 한석의 완고한 사고엔 결코 동의할 수 없었으나 시모를 생각하면 도저히 적당히는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나름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진 최선을 다하기로 어렵게 작심했다. 그러나 그들 형제의 대다수는 희연의 간병시 늘 함께 머물며 그녀 혼자만의 담당을 결코 그대로 일임하려 하질 않았다. 모든 형제들이 자신이 당번을 맡았건 아니건 거의 매일 병실을 오가며 시모의 상태를 살피고 뭔가 도우려 들고 마음을 다함이 전해져 와 희연은 감동했다. 자신과는 뼛속 깊이 DNA부터 다른 사람들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수현은 으레 희연의 당번일이면 자신이 직접 만들어 온 음식, 과일 등을 잔뜩 싸들고 와 한참을 머물다 돌아가곤 했다. 때론 희연의 당번 일에 자신이 대신 간병을 맡아주기도 하여 희연으로 하여금 일면 자책을 느끼게 할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희연은 정작 서울에서 K시로 오가는 날을 빼고 나면 시모의 병상에서 단 하루도 제대로 온전히 머물다 온 날이 없었다. 그런 희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경석의 표정은 착잡하기만 했고 급기야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당신이란 여잔 참 안 변해. 무섭도록 자신의 원형질을 그대로 지닌 채 결코 바뀌려 하질 않는 여자. 사람이 한평생 그렇게만 살기도 참 힘든데……. 그 말을 끝으로 경석도 더 이상은 희연을 추궁하려 들질 않았다. 유리의 대입시 실패로 야기된 그간의 냉전 상태가 이제 마악 해빙 단계로 접어든 즈음, 다시금 또 시모의 간병 문제로 불거져 나온 마찰이라 그도 어느만큼은 지쳐버린 상태인지도 몰랐다. 경석의 그러한 태도는 희연을 더욱 지치고 힘들게 하여 서울에 있는 것보단 외려 K시에 내려가는 게 훨씬 더 편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으나, 어쨌든 시모가 돌아가시기까지 형제들 중 아마 간병 기간이 가장 짧았던 사람은 희연이었음은 부인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겨울이 다 끝나갈 무렵, 시모는 근 한 달여의 입원 생활을 마치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더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임종이었다. 시모의 병상을 지키다 마악 상경한 희연은 다시금 황황히 K시로 되돌아 갔으나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한 존재로 남겨졌다. 임종 자식은 따로 있다는 옛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절감했다. 사흘간의 연이은 폭설로 전국 교통망이 거의 마비 상태라 신속한 하향이 결코 쉽질 않은 상황이었고, 때는 마침 월말이라 아파트 관리비, 세금 납부 등 제반 은행 볼 일을 다 본 후 내려간 것이 문제였다. 시모는 맏이인 경석과 희연을 빼곤 모든 자식, 사위, 며느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세상을 하직했다.
 
희연이 마악 병실을 들어서자, 시모를 둘러싼 형제, 가족들의 애절한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시모는 희연이 마악 병원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숨을 거두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앞당겨 왔더람! 가슴 저미는 회한에 희연은 단지 망연할 뿐이었다. 경석 조차 회사의 중차대한 임원 회의로 희연의 뒤를 이어 좀 늦게 도착했기에 맏아들, 맏며느리 그들 두 사람은 모두 노모의 임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이다. 그로인해 장례 기간  내내 그들은 마치 죄인처럼 짙은 죄책감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형제 중 가장 슬퍼하는 사람은 막내 아들 진석과 한석, 그리고 시모가 애면글면 온갖 정성을 다해 손수 키운 손자, 훈이였다. 일곱 남매 밑 무려 18명이나 되는 손주들이 어언 늠름한 모습의 성인으로 자라나 검은 상복을 입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저마다의 역할로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모습이란 더없는 감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극히 소소하고 평범하나 실로 비범하고 위대한 모성, 그 희생과 사랑이 가히 작은 거인과도 같은 대단한 존재였음을 느끼게 하는, 마치 축제와도 같은 장례식이었다. 
입관 절차 내내 훈이는 떠나는 조모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며 오열했다. 진석은 비통한 낯빛으로 영구차로 옮겨가는 노모의 관 위에 손을 얹곤 한참을 흐느껴 울어 온 가족의 가슴을 에이게 했다. 시모의 장례식은 겨울 답지 않게 너무도 포근하고 화창한 날씨라 그간 내린 폭설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그러한 날씨는 삼우제까지 그대로 계속되어 하늘이 크게 도왔다며 주위의 모든 이들이 살아 생전 시모의 부덕과 인품을 칭송했다. 
 
시모의 장례는 한석이 목사가 된 후 처음으로 집전한 기독교식 절차로 이행되었다. 훈이의 실종 사건 이후 자신과의 굳은 약속으로 스스로 교회에 나가게 된 시모였기에 대대로 유교적 환경에 젖어 온 가족이긴 했으나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만 병석과 진석만이 선산 시모의 묘소에 놓인, 제사 음식을 대신한 하얀 국화 송이를 바라보며 못내 서운한 눈길을 거두지 못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시모의 발인 다음 날, 삼우제를 위해 아직 고향집에 남아 있던 희연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만경강 하구로 차를 몰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시모와의 약속만은 꼭 지켜야만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긴 겨울을 이겨낸 후 살풋 봄기운을 안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자니, 늘 흐린 강물, 그 희뿌연 물빛이 꼭 당신 속내만 같다던 시모의 말이 떠올라 희연은 울컥 슬픔 같은 것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슬픔 같은 것. 그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장례 내내 희연은 전혀 울질 않았고 그렇듯 도시 울음이 나오질 않는 자신이 적이 놀랍고 당혹스럽기만 했다. 시모로부터 그토록 아낌없고 살뜰한 사랑을 받은 존재이건만 어찌 그럴 수 있는 것인지 스스로 생각해도 참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일 뿐이었다. 차마 울 염치도 없었던 것일까, 아님 시모의 떠남이 전혀 실감 안 나고 망연하기만 했기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석이 잘 안되는 부분이었다.
한데 강가에 나오니 비로소 눈물이 비어져 나오고 가슴이 아파옴은 어인 까닭인지. 여전히 흐릿한 물빛으로 느른히 흐르는 만경강. 그 비옥한 땅, 광활한 곡창지대의 넓디 넒은 평원을 가르며 쉼없이 흘러가는 생명의 젖줄. 그건 바로 가없이 넓고 깊은 시모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희연은 비로소 울음이 솟구쳐 오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시모가 선물로 남긴 오른 손 약지, 그곳에 끼워진 이혼금지링을 내려다 보는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시모가 자신에게 남겨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건 단지 반짝이는 금속성 반지의 의미만이 아닌, 보다 더 깊고 오묘한 그 무엇이 깃들어 있음을 비로소 희연은 자각했다. 여성으로서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으로 층층시하의 억압과 불평등, 노역, 극빈, 다산 등 평생 감옥과도 같은 피나는 삶을 견뎌 온 시모의 척박한 삶. 그로 인해 생전 당신이 못다한 사랑의 실천, 계승, 보존 같은, 적어도 그런 것을 지향하는 애타는 소망이 담겨 있음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전후의 빈곤과 결핍 속에서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가르치지도 못하고 키워 온 일곱 자식 걱정에 한시도 맘 편할 날 없이 살아 온 당신의 한 맺힌 삶. 그것에 종지부를 찍고 후손에겐 보다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물려주고 싶은 갈망 하나로 평생을 힘겹게 지탱해 온 애달픈 모성……. 게우 열다섯 살에 시집이라고 와 본께 한량 없이 너른 들판이 나헌티는 영락읎는 감옥이더란께. 동서남북도 모르는 에린 것이 워디로 담박질 쳐 도망을 갈 수 있었겄냐, 뭣을 어찌 혔겄냐. 참말로 폭폭허고 깝깝혀서 허구헌날을 기냥 죽는드키 살았응께. 대저 나헌티 좋은 날이 몇 날이나 있었겄냐. 설움과 회한에 가득 찬 시모의 음성이 희연의 가슴을 때려왔다.  
 
쉼없이 흐르는 눈물과 함께 그녀는 이윽고 소중히 가슴에 품고 온 시모의 은비녀를 꺼내어 강물 위에 띄웠다. 갓 시집 와 심한 열병으로 머리채가 온통 통째 빠지는 상흔을 겪은 까닭에 평생 쪽머리를 고수하며 애지중지 몸에서 떼어내질 못하던 비녀. 더구나 희연이 혼수품으로 해 온 은비녀는 어딜 가든 늘 시모의 머리를 장식하던 애장품이었다. 어머님, 이제 부디 천상에 오르시어 넓은 세상 훨훨 다니며 평안과 안식 누리소서……. 물살의 출렁거림을 따라 마치 춤사위를 하듯 한들한들 떠내려 가는 은비녀를 바라보며 그녀는 간절히 기도했다. 은비녀가 좁은 강하구를 벗어나 보다 더 넓고 큰 바다에 이를 수 있기를. 그리하여 생의 모든 고통, 애환 훌훌 다 벗어버리고 비로소 흐린 강, 저편 피안에 이를 수 있기를 그녀는 마음을 다해 간구했다.<끝>


* 장편 『흐린 강 저 편』이 이번 8회로 종료됩니다. 그 동안 소중한 원고 집필해 주신 김현숙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편집부                             





*김현숙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단편: 골고다의 길). 1989년 《현대문학》 신인상 추천완료(단편: 어둠, 그 통로). 작품 「출모」, 「삼베 팬티」, 「어두워지지 않는 밤」, 「가지 않은 길」 ,「꽃비 내리다」, 「홋카이도 3월의 눈」, 「와디」, 「히스의 언덕」등 다수.  2002년 소설집 『하얀시계』 출간 (휴먼 앤 북스), 2010년 소설집 『노을 진 카페에는 그가 산다』 출간 (도서 출판, 개미), 2013년 장편 『먼 산이 운다』출간 (문학나무). 2010년 제 14회 이화문학상 수상, 2012년 제 1회 아시아황금사자 문학상 (우수상) 수상, 2013년 제 10회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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