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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단편/김영범/서부영화를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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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874회 작성일 20-01-2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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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신작단편/김영범/서부영화를 보는 시간


김영범


서부영화를 보는 시간



캐노피 차양 아래 간이 탁자, 젊은 녀석들이 진을 치고 술을 마신다. 이 시간이면 술자리가 3차는 될 거다. 그러나 취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저들은 조간신문을 돌리는 놈들일지도 모른다. 이미 아침 신문을 뿌려놓고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다. 등산복 조끼에 덩치가 남산만 한 놈, 카키색 점퍼 차림의 곱슬머리,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안경잡이까지 모두 셋이다. 놈들이 부럽다. 이 밤에 저리 뭉칠 수 있다는 게. 벌써 새벽 두 시.
두 시. 드디어 나만의 호젓한 시간이 왔다. 이 시간부터는 손님이 뜸하다. 졸음을 버티기 어려운 시간대이기도 하다. 휴대폰을 꺼내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다.
진열대에서 유통기한이 다가오는 우유와 삼각김밥을 골라냈다. 한두 시간 후면 폐기해야 할 것들이다. 기한이 지나자마자 먹어 치워야 한다. 때를 놓치면 상할 수 있다. 다가오는 시간은 사람을 긴장시키지만, 지나가는 시간은 사람을 방심하게 한다.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다.
‘젊음도, 사랑도, 정의도 유통기한이 있듯 빵과 음료와 맥주도 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훈계는 그놈의 말이다. 그놈, 그놈은 이 편의점 점주이자 나의 고용주다. 그놈은 내게 훈계를 하고 너그러운 인심까지 쓴다.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다. 컵라면과 닭볶음과 잡채, 가락국수, 순대, 곱창은 물론 최신 즉석요리까지 맛볼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 매운 오징어 볶음, 그래, 우선 그걸 찾아야겠다. 아까 창고에서 본 것 같다. 매운 건 유통기한이 하루 이틀 지나도 탈이 안 난다. 찜찜하기는 해도 배탈 난 적은 없다.


영화가 시작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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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야 한가운데 시가를 물고 있는 잭 콜비(리 반 클리프)가 클로즈업된다. 이어 컨트리풍의 테마곡 ‘Do Not Forsake Me, Oh My Darling’이 들려오고 크레디트 타이틀이 떠오른다. ‘High Noon’
영화 “하이 눈”의 오프닝 신이다. 역시, 시가는 저처럼 고요한 곳에서 은근하게 씹어 빠는 맛이 제격이다. 내가 담배를 피우게 된 결정적 동기는 서부영화 총잡이들의 끽연을 흉내 내면서였다. 파이프를 물고 있는 화가 고흐나 시인 이상도, 담배를 꼬나문 작가 카뮈의 책 표지도 나를 유혹하지는 못했다. 시가를 물고 있는 총잡이들의 폼만큼 나를 매료시킨 게 없었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죽어가는 어린 병사 입에 물려 준 담배 한 대, 남북전쟁에 동원된 젊은이의 비참했던 최후를 그토록 담담하게 그려낸 장면이 또 있었던가. 온 세상 근심 걱정을 말끔하게 뱉어내던 그 장면. 담배를 그처럼 맛있게 빠는 걸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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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콜비가 있는 곳으로 총잡이들이 모여든다. 악당 셋이 뭉쳐 마을로 들어가고, 마을은 삽시간에 공포 분위기로 바뀐다.

이 시각, 치안 판사 사무실에서는 보안관 윌 케인(게리 쿠퍼)과 신부 에이미 파울러(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식이 열린다. 시계는 10시 35분을 가리키고 있다. 악당들은 역사로 몰려가 기차 도착 시각을 확인한다.
기차가 도착하는 시각은 정확히 정오 열두 시. ‘하이 눈’은 정오 열두 시를 뜻하는 말이다.  이 시각에 악당들의 보스, 프랭크 밀러가 탄 기차가 마을에 도착한다. 이 시각이 곧 영화의 제목 “High Noon”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재미없다. 서부영화치고 싱겁기 그지없다.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이는 카우보이들의 거칠고 투박한 몸싸움도 없다. 결투 장면조차 보잘것없다. 그런데 흥미롭다. 이 흥미에 끌린 나머지 보기 시작한 게 어림잡아 열 번은 될 거다. 흑백텔레비전 때부터 보기 시작했다. 변두리 삼류극장에서 동시 상영작이었던 이 영화를 앉은자리에서 두세 번 본 적도 있다. 군 제대 후에는 대여점에서 테이프를 빌려다 보았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나를 설레게 한다. 파일을 다운받아 보는 이 시대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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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나고 윌 케인이 보안관 배지를 반납하는 순간 날아든 전보. 5년 전에 윌 케인이 잡아넣은 살인범 프랭크 밀러가 출옥하여 부하 3명과 함께 복수하러 온다는 소식이다.
프랭크 밀러는 기차와 함께 12시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다. 현재 시각은 10시 40분. 윌 케인의 얼굴에 근심이 어린다.
우수에 잠긴 저 표정, 게리 쿠퍼의 매력은 압도적인 저 표정에 있다. 그가 출연하는 모든 영화는 게리 쿠퍼의 저 얼굴로 대표된다. “교수목”, “서부의 사나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도 그의 표정은 늘 변함이 없었다.
모름지기 배우라면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며 천의 얼굴을 지녀야 하겠지만, 게리 쿠퍼에게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가 모두 근심 가득한 표정이더라도 관객들은 열광한다. 늘 똑같은 연기를 하느냐고 반박할 이유도 없다. 큰 산이 움직이는 걸 본 적 있던가. 큰물이 그 흐름을 바꾼 적 있던가. 큰 산, 큰물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변함없이 그 물길로 흐른다. 게리 쿠퍼 또한 늘 그 모습으로 영화만 바꿀 뿐이다. 할리우드의 명배우란 그런 것이다.
게리 쿠퍼를 처음 안 것은 중학교 때다. 서부영화를 무척 좋아하는 영어 선생님이 있었다. 그는 수업 시간에 틈만 나면 서부영화를 소개했다. 존 웨인, 헨리 폰다, 알란 래드, 버트 랭커스터, 커크 더글러스 등 쟁쟁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자신의 분신이기라도 하듯, 총잡이들의 활약상을 늘어놓았다. 특히 그는 게리 쿠퍼의 열렬한 팬이었다.
게리 쿠퍼. 엑스트라 시절, 남몰래 말타기를 배우고 권총을 돌리며 주연 배우를 꿈꿨다던 그. 달리는 말에서 표적을 맞히고 올가미 밧줄을 던지며 실력을 닦았다던 그. 감독 눈에 들기 위해, 멋진 총잡이가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 끝에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가 되었다는 그, 게리 쿠퍼. 그때부터 나는 당시 유행하던 이소룡의 쌍절곤을 내려놓고 권총을 돌리기 시작했다.
영어 선생님이 들려준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후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게리 쿠퍼의 일화를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선생님의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기로 했다. 진정한 게리 쿠퍼 팬이라면, 설사 그 일화가 거짓이더라도 그를 흠모하는 이들에게 고귀한 전설로 긴긴 세월 회자되길 바라면서.
서부영화를 말하는 자리가 있으면, 나만 알고 있는 고급 정보인 것처럼 게리 쿠퍼의 일화를 꺼내 들었다. 열렬했던 영어 선생님의 상찬을 떠올리며, 선생님 당신 맘대로 꾸민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였거나 읽은 이야기였을 거라고. 어딘가에 근거를 두고 있는, 족보 있는 이야기일 거라고.
게리 쿠퍼가 총만 들고나오면 오금이 저렸다. 게리 쿠퍼는 나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다. 게리 쿠퍼가 누리는 광활한 서부는 거친 사나이들의 욕망과 열정이 분출하는 동경의 세상이었다.


밖에 있던 검은 모자가 들어왔다. 새우깡에 오징어 한 마리, 그리고 맥주를 빼 들었다. 맥주는 딱 3캔뿐.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기 위한 그들만의 전략일 거였다.
나는 바코드 리더기를 빼 들었다. 탕 타당 탕, 게리 쿠퍼의 총 솜씨를 떠올리며 레이저를 쏜다. 삑 삐빅 삑, 레이저 불빛이 발사된다. 어느 위치에 물품이 있어도 바코드를 정확하게 찍어 댄다. 삑사리 하나 없이 모두 백발백중이다.
“와, 진짜 빠르네요.”
“뭐가요?”
“찍는 거.”
빠른지 느린지를 아는 거 보니까, 녀석도 편의점 알바를 좀 했었나 보다.
“아, 그렇습니까.”
한껏 으쓱해진 나는 녀석에게 하나 더 보여주기로 한다. 리더기 돌리기. ‘슝슝슝-’, 마치 게리 쿠퍼가 총을 돌리듯 리더기를 빙빙 돌린다. ‘투둑 툭’, 권총집에 총을 찔러 넣듯 리더기를 거치대에 올려놓기까지. 리더기를 돌리기는 쉽지 않다. 권총처럼 손가락을 끼울 수 있는 방아쇠가 달린 것도 아니니, 리더기 돌리기에 관한 한 내가 게리 쿠퍼였다.
녀석이 움찔한다. 분명 눈빛이 황홀했을 거다. 여전히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녀석이 현금을 내민다. 이번에도 놈은 카드를 쓰지 않았다. 처음 자리를 잡을 때도 카드를 쓰지 않았다. 나는 금고를 열어 거스름돈을 꺼냈다. 녀석의 모자챙이 카운터 주변을 힐끔거렸다.
“여기, 잔돈이요.”
녀석이 거스름돈을 움켜쥐고 나간다. 검은 모자가 놈들에게 무어라 무어라 쑤군대는 바깥 풍경. 맥주를 받아든 녀석 두 놈이 동그란 눈으로 내 쪽을 바라본다. 나는 그들을 향해 씩 웃어주었다. 이제 막 결투를 끝낸 총잡이의 위엄처럼.
아마도 나의 리더기 다루는 실력이나 그걸 돌리는 솜씨를 말했을 거다. 검은 모자가 카운터에 좀 더 머물렀다면, 내 학창 시절 신화를 말했을지도 모른다. 왕년에 사격 선수로 전국체전을 휩쓸고 다녔던 이야기를. 그랬다면 녀석들의 눈빛이 더 커졌을 텐데, 아쉽다.
삼각김밥 바코드에 리더기를 댄다. 찍히지 않는다. 드디어 폐기 처분할 시간을 넘긴 것이다, 폐기처분으로 등록한 김밥을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영화를 플레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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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윌 케인과 신부를 마차에 태워 마을을 떠나보낸다. 윌 케인의 표정이 불만스럽다. 마치 떠밀려 쫓겨나는 것 같아서다. 한 번도 비겁하게 도망친 적 없는 윌 케인, 신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머리를 돌려 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프랭크 밀러가 돌아와 말썽을 부릴 거라며 신부를 설득하지만, 신부 또한 지금 당장 떠나자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윌 케인은 다시 보안관 배지를 달고 대원을 모집하기로 한다. 그러나 프랭크 밀러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판사조차 그의 복수가 겁나는지 마을을 떠난다.
어느덧 시간은 11시,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프랭크 밀러가 도착한다. 혼자서라도 마을을 떠나기로 작정한 신부는 기차역 가까운 호텔에서 12시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윌 케인이 떠나기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속셈은 제각각이다. 윌 케인의 후임으로 보안관이 되고 싶었던 애송이 치안 대원 하비, 그가 마침내 숨겨두었던 야망을 드러내며 케인이 떠나기를 바란다.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위기는 기회다. 나의 위기는 너에게 기회다.
팀장의 위기는 팀원에게 기회다. 명예로운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나는 옷을 벗었다. 차기 팀장을 노리던 박 차장이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내가 근신으로 경리과 팀장 자리를 비운 한 달 사이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사건의 발단은 연말정산 환급금액이었다. 임직원들의 연말정산 서류를 정리하면서, 새로 바뀐 인사 계정 정산에 계산상의 착오가 있었다. 인정한다. 그런데 그 착오로 인한 금액을 내가 착복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옷을 벗어야만 했다. 쫓겨나야만 했다. 뜻하지 않은 사기횡령 죄로 형사고발을 당할 참이었다. 다행히 사측에서 고소장을 취하하는 바람에 험한 꼴은 면했다. 아마 끝까지 갔더라면 그들이 더 골치 아팠을 일이다.
나는 거부했었다. 대표이사는 매년 연말만 되면 매출을 부풀려서라도 성과를 올리라고 했지만, 나는 줄기차게 거부했다. 언젠가는 들통날 것이라며 장부 조작은 범죄라고 맞섰다. 투명한 척, 깨끗한 척한 것이 탈이었을까. 불의에는 적당히 타협하고, 비리는 못 본 척 눈감고, 그랬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정의는 쓰지만 의리는 달콤하다’는 박 차장, 평소 팀원들에게 늘 강조하던 ‘정의가 있는 곳에 의리가 있다.’는 내 말을 정면으로 되씹으며 반격해 들어왔다. 그렇게 그는 팀원들을 포섭하더니, 내가 빠진 사이 팀원들을 꾀어 자기 수하에 꽁꽁 묶어놓았다. 후후, 방심은 금물이었건만.
같잖은 의리 하나로. 것도 잘나갈 때나 의리지, 불의가 밝혀지는 날은 쓴맛을 보리라며 나는 옷을 벗었다. 하지만 박 차장 일당은 그 후로도 달콤하게 지냈다. 알바로 전전하는 나만 쓰디쓸 뿐.
그보다 훨씬 전, 박 차장은 강남에 집을 샀다. 국제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였다. 남들은 빠득빠득 전세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와중에 집을 샀으니 수완이 남달랐다. 금수저도 아니었고, 로또를 맞은 것도 아니었다. 혼란한 부동산 시장을 틈타 몇 차례 시세 차익을 내더니, 어느 날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 한 채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소위 말하는 갭투자의 귀재였다. 세상은 성실하고 정직한 놈을 비웃고 있었다.
돈을 쉽게 버는 법은 틈을 보는 것이다. 틈을 노려 한 방을 터트리는 것이다. 정의롭든 불의하든 돈은 그런 것을 가리는 법이 없다. 윌 케인이 떠나기를 고대하는 호텔 지배인처럼. 호텔 지배인 또한 케인이 제발 이 마을을 떠났으면 한다. 아니 밀러와의 결투에서 죽기를 바란다. 프랭크 밀러가 마을을 장악하고 있을 때는 장사가 잘 됐지만, 윌 케인이 마을을 다스리면서 별 재미를 못 보았다며, 다시 한번 그 혼란한 틈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악당이 돌아와 무법천지를 만들어 호텔도 술집도 손님으로 넘쳐나길 바라는 것이다. 마을에 질서가 잡히지 않아야 장사가 잘된다는 건 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렇다. 돈을 벌려면 혼란한 틈을 타야 한다. 박 차장처럼 한 방을 노리며 세상을 염탐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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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밀러가 도착할 시간은 이제 40여 분 남짓. 윌 케인은 술집에 들러 대원들을 모으고자 하나 지원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 옛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지만 거절당한다.
어느 누구도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의 편에 서서 도와줄 생각이 없다. 모두 케인의 형세가 불리하다고 보았다. 누가 죽음을 무릅쓰고 승산 없는 싸움에 말려들려고 하겠는가. 이 상황에 발 벗고 나서려는 자, 그 누구란 말인가.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생사가 달린 문제이다. 게다가 내일이면 새로운 보안관이 오기로 되어 있는데, 오늘로 임기가 끝나는 케인에게 붙어 목숨을 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케인 편에 섰다가, 정말이지 그가 덜컥 죽기라도 하면 낭패가 아니던가. 한 시간만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으면 결판날 일을 굳이 목숨까지 걸고 나설 이유가 있겠는가. 근신 후, 대기발령을 받은 내게 찾아오는 놈이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유통기한이 다 된 삼각김밥은 폐기해야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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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교회를 찾아가 지원을 호소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밀러와 케인의 개인사로 몰아붙인다. 아니, 악당 밀러를 풀어준 북부 정치인들을 탓한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는데 나서는 사람은 없고 변죽을 치는 토론만 무성하다.
지금이라도 이곳을 떠나는 것이 지역 발전에 좋을 거라는 지역 유지 헨더슨의 정치적 발언, 언변 좋은 헨더슨에게 설득당한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다. 케인은 빈손으로 교회를 나온다. 모든 이들이 케인의 죽음을 예고한다. 옛 보안관조차 어서 떠나라고 한다.
이 상황이 어찌 케인과 밀러의 개인적인 문제일까. 사건의 본질을 떠난 난상 토론, 무성한 탁상공론만 일삼고 있다. 누군가 나서야 할 상황, 케인의 친구이자 지역 유지인 헨더슨이 나섰다. 그러나 그의 일장 연설은 케인의 기대를 무참하게 저버렸다.
정치 논리는 집단의 정의보다 집단의 발전을 공략한다. 한낮에 총질해대는 그런 마을에 누가 투자를 하겠느냐는 헨더슨. 정치적 발언은 역시 큰 힘을 발휘한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들먹이며 사람들의 생각을 틀어놓는 그의 목소리는 우렁차다. 아니 구리다. 지역사회를 위한답시고, 지역민을 위한답시고 오늘 자로 임기 만료된 보안관 케인이 자진해서 떠나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케인은 이제 골치 아픈 존재가 되었다. 그의 얼굴이 더 쓸쓸해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케인이 살아남을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고 보지도 않는다. 자칫 정의는 이 마을의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인지도 알 수 없다. 옳고 그른 것을 아는 것은, 그걸 가늠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옳고 그른 걸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다만 선택의 문제이고 가치 유무의 명제일 뿐이다. 정의가 이긴다고 보는 것은 교과서적이지 않은가.
비폭력주의자인 케인의 아내 또한 옳고 그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정의를 지키는 것보다는 살아남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는 뼈아픈 과거가 있었다. 열아홉 살에 죽은 오빠. 그녀의 오빠는 정당했지만, 총에 맞아 죽었다. 그녀에게는 옳고 그름에 대한 고민보다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게 더 급선무였다.
그들이 케인을 쫓아 보내는 것은 이 마을에서 정의를 쫓아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게 된다면 마을은 다시 5년 전의 혼란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케인은 이 상태로 마을을 떠날 수가 없다. 또한, 자신이 벌인 일이니 스스로 매듭지어야 한다. 마을의 정의와 질서를 지켜내야만 한다. 보안관으로서 주어진 책무를 다해야 한다. 내일 새로운 보안관이 온다고 하더라도.
서부영화치고 주저리주저리 말도 많고 고민도 참 많다. 주인공 케인의 모습은 당당하지도 영웅적이지도 않다. 쓸쓸하고 처량하고 측은해 보인다. 악당을 물리치자고 마을 사람들에게 애원하는 케인의 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자고로 민심은 갈대처럼 흔들린다. 표심이 바람이라면 민심은 갈대라 할까.
그런데도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마도 정의의 편에 서서 정치적 행보를 어필하고, 자기 업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은 아닐까.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의지, 레임덕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피력은 아닐까. 어쩌면 미국인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 게리 쿠퍼를 소환하여 표심을 얻으려 했던 수작은 아닐까.
그게 전략이든 수작이든, 회사라는 곳도 표심을 얻어야 앞가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위로는 임원들의 깊은 뜻을 받들어 총애를 받아야 하고, 아래로는 팀원들의 손과 발을 묶어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위엄을 갖춰야 한다. 표심에 관한 한 박 차장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검은 모자가 또 들어왔다. 담배 한 갑에 양주 한 병, 그리고 육포를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이 깊은 밤에 굳이 양주까지 마셔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혹시 자리를 옮기려고 그러는지, 그만 일어서려고 그러는지도 알 수 없다. 편의점은 양주를 마시기엔 옹색한 곳이다.


검은 모자가 거스름돈 받을 생각도 없이 밖으로 나간다. 녀석을 따라 나가 탁자 위에 잔돈을 올려놓았다. 잔돈을 바라보는 덩치 조끼가 누런 이를 드러내고 내 얼굴을 훑어본다. 좀 께름칙하다. 소름이 돋을 만큼 오싹하다.
“한잔하셔요.”
덩치가 내 앞에 빈 잔을 디밀었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총잡이들이 바에 잔을 밀듯이 디밀었다.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근무 중이라며 사양했다.
“어흐, 아즈씨, 딱 한 잔만.”
덩치가 잔에 가득 양주를 따른다. 이런 놈은 적당히 얼러서 보내는 게 수인데.
“딱 한 잔만 헙시다.”
마지못해 한 잔을 받아 마셨다.
“원더풀 원더풀, 베리베리 굿.”
이번에는 옆에 있던 곱슬머리가 또 한 잔을 디민다. 보아하니 이것들이 내게 시비를 거는 짓거리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방을 거스르는 말투나 행동은 삼가야 한다. 심보가 고약한 놈들이다. 꼭 악당들 같다. 총 솜씨를 뽐내고 싶어 안달하는 악당 놈들. 어쩔까 머뭇거리는 사이, 놈들 또래의 한 청년이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이때다 싶었다.
“손님 받아야 헙니다. 맛나게 드시오.”
“손님, 손님 받는댄다, 손님. 큭큭큭.”
저 기분 나쁜 웃음소리, 큭큭거리는 저 소리는 내 손님을 홍등가 ‘손님’으로 비꼬아 지랄을 떠는 소리다. 앉아 있던 곱슬머리와 검은 모자 또한 킥킥댄다.
참는다. 피한다. 붙어봐야 상처뿐이다. 한창 젊었을 때는 저런 시비에 그냥 넘어간 적이 없었다. 불량한 것들은 다 불의였다. ‘정의가 있는 곳에 의리가 있다’는 말은 우리 사격부 선수들의 모토였다. 돌을 던지며 정의사회 구현에 동참은 못 했어도, 의리 하나로 뭉친 우리는 대학가 뒷골목의 정의를 확실하게 평정했었다. 그런 흐뭇한 날들이 있었다.
참는다. 피한다. 붙어봐야 상처뿐이다. 한창 젊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다리가 부러져도 한 달이면 멀쩡하게 돌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조그만 상처에도 한 달이 간다. 그만큼 회복력이 더디다. 어차피 붙어봐야 이기거나 지거나 둘 중 하나다. 그것도 자주 하다 보면 흥미가 떨어진다. 지금은 그저 참거나 피하는 길을 찾는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라.
영화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플레이 버튼을 앞으로 되돌린다. 어디까지 봤더라. 케인이 지원자를 찾지 못하고 고투하는 장면. 그래, 바로 여기다. 다시 버튼을 누른다.


# & #.
보안관 사무실로 돌아온 케인. 오랜 친구 허브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유일한 지원자다. 하지만 그 또한 빠지겠다고 한다. 다른 지원자 없이 둘이서 밀러 일당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며 돌아선다. 허브를 돌려보내는 케인의 말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다.
이제 케인을 도울만한 이는 아무도 없다. 혼자다. 혼자 싸워야 한다. 결혼식을 올린 날에 이게 무슨 꼴이람. 아내는 혼자서라도 떠나겠다고 하고, 친구들은 다 돌아서고. 어쩌면 밀러의 총에 맞아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낭패감.
게리 쿠퍼가 이토록 비굴한 꼴을 연기한 적은 없었다. 전혀 서부영화 주인공답지 않은 케인. 책상을 치고 엎드려 배신한 놈들을 원망해 보지만, 곧 결투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렇게 정의도 사랑도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가. 그럴 수는 없다.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윌 케인을 응원하기로 한다. 게리 쿠퍼의 저력을 믿기로 한다. 그는 나의 우상이니까. ‘젊음도, 사랑도, 정의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점주의 말은 틀렸다. 편의점 점주에게는 유통기한이 있을지 몰라도 편의점 알바에게는 유통기한이 없다. 윌 케인의 가슴에 달린 별이 반짝인다.

 

# & #.
이제 남은 시간은 딱 5분. 케인이 총 띠를 허리에 찬다.
마을은 적막하고 긴박한 음악이 들려온다. 1분이 남았다. 30초가 남았다. 멀리서 경적이 울리고 연기가 피어오르며 달려오는 기차.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케인, ‘내가 죽으면 개봉하시오(To be opened in the event of my death).’라는 유서를 남긴다.
결국 유서를 쓰다니. 비장하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 장면은 공통적이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마지막 행위. 죽음과 맞바꾸는 것이니 거짓을 말할 리 없다. 유서는 죽음 앞에 선언하는 진실의 마지막 보루다.
유서에 담긴 내용을 추측해 본다. 보안관으로서 마지막 날까지 주어진 책무를 다했노라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고. 그리고 맨 마지막 추신에는 아내 에이미에게 함께 떠나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써넣었을 것이다.
아니다.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책무를 다하지 않는 시대에. 그런 정직한 유서는 쓸모가 없다. 나 아닌 너에게로 잘못을 돌려야 한다. 남의 탓으로 돌려야 한다. 죽는 마당에 못 할 말이 뭐가 있겠나. 배신한 친구들을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비겁한 주민들을 힐난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죽음은 당신들의 책임이라고. 그게 더 솔직하지 않은가. 그게 더 인간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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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없는 거리에 신부의 마차가 역사로 향한다. 밀러가 타고 온 12시 기차, 그 기차를 타고 떠나기 위해서다. 케인은 떠나는 신부의 뒷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텅 빈 거리에 홀로 남은 윌 케인.


‘쿵’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린이 밝아졌다. 덩치 조끼가 강화유리 벽에 부딪는 소리와 동시였다. 간이 탁자는 저쯤에 나자빠졌다. 200인치의 대형 스크린에 떠오르는 총천연색 결투. 음악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한 대결이다. 결국 일을 벌였다. 놈들이.
덩치 조끼와 곱슬머리가 눈을 부라리며 대치해 있다. 널브러진 간이 탁자는 덩치가 기웃할 때 채인 것 같다. 검은 모자가 그 둘 사이를 갈라 막고 있는 형국. 하지만 싸움은 말릴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검은 모자가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다.
스크린을 지배하고 있는 두 녀석의 험상궂은 얼굴. 곱슬머리가 덩치의 조끼를 거머쥔다. 그러나 워낙 우람한 몸짓이라 덩치의 조끼만 볼품없이 구겨져 있다. 덩치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곱슬머리의 아귀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대체 여태까지 잘 마시다 왜 저러는 것일까. 저 장면은 필시 돈 문제다. 덩치가 곱슬머리 돈을 떼어먹은 것 같다. 틀림없다. 저렇게 옷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은 ‘내 돈’ 내놓으라는, ‘내 돈’ 갚으라는 곱슬머리의 항변이다. 유치하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방법이다.
고명하신 우리 영어 선생님 왈, 서부의 사나이들이 싸움을 벌이는 이유 3가지를 설명해 준 적이 있다. 첫째, 황금을 두고 다투는 싸움이다. 둘째, 서열 다툼. 누구 실력이 더 나은지를 두고 겨룬다. 마지막으로 여자 문제다. 누가 미인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대결을 펼친다.
돈을 두고 다투는 싸움은 대체로 그 장면이 더티하게 전개된다. 상대방의 옷을 잡고 늘어지거나 상대방에게 욕을 퍼붓는다. 간혹 상대방을 물어뜯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서열을 세우기 위해 겨룰 때는 주먹을 쓴다. 힘의 대결이자 승패이기 때문이다. 물론 총을 들기도 하지만, 주먹으로 하는 결투가 폼 난다. 주먹으로 상대방을 넘어뜨려야 승패의 기록이 또렷하게 남는다. 그래야 영원히 바뀌지 않는 서열이 매겨지는 법이다. 미인을 차지하기 위한 대결은 폼이 좀 더 난다. 왜냐하면, 여자를 두고 하는 결투라서 싸우는 폼이 멋져야 한다. 여자가 자기들의 결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싸움이 끝나도 여자가 여전히 지켜보고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 때문에 싸움이 끝날 때까지 절대로 폼을 흩트리지 않는다. 결투에서 비록 패배하더라도 그 폼을 유지하고자 한다. 존경하는 우리 영어 선생님께서 요약한 서부 사나이들의 결투 유형이다. 
지금 저 녀석들의 결투는 여자 때문에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여자가 보이지 않으니 그 문제로 싸울 리 없다. 뿐만 아니라, 여자 문제라면 당사자 둘이서 겨룰 일이지 세 놈이 모여 다툴 리 없다. 제삼자를 끼워 여자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쪽팔리는 일이다. 서열, 서열 문제도 아니다. 이미 서열은 덩치가 첫째, 곱슬머리가 둘째, 검은 모자가 막내다. 아까 양주잔을 받아 마실 때 알아봤다. 술을 권하는 건 보스의 몫이다. 인디언 추장의 권주가 그렇고, 정치인의 건배가 또한 그렇다. 어느 집단이나 외부인을 접대할 때는 넘버원이 나선다. 잔심부름은 검은 모자가 도맡고 있으니 곱슬머리는 틀림없이 넘버 투다.
덩치가 곱슬머리의 손을 움켜쥐고, ‘놔, 놔’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곱슬머리는 덩치의 조끼를 놓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덩치가 곱슬머리의 한쪽 어깨를 민다. 힘에 밀린 곱슬머리가 손을 놓고 머리를 들이밀며, ‘쳐, 쳐’ 하는 것 같다. 덩치가 손을 올려 내려치는 모션을 취하지만 가격하지는 않는다. 잠시 방심했던가. 곱슬머리가 두 손을 모아 덩치의 가슴팍을 친다. 하지만 덩치의 몸집은 약간만 흔들릴 뿐 다시 온전한 자세를 잡는다. 여의치 않았을까. 이번에는 곱슬머리가 덩치의 다리를 걸고 들어온다. 곱슬머리가 자꾸 덤벼드는 터에 덩치도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이다. 곱슬머리의 멱살을 잡고 민다. 그 바람에 두 놈의 다리가 엉키며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두 놈의 몸이 뒤엉킨다. 검은 모자가 둘을 떼어 놓으려 애를 쓴다.
말려야 할 것 같다. 싸움은 말릴수록 커진다는 말은 공이 울렸을 때나 유효한 말이다. 싸움이 격해지면 말리는 게 상책이다. 누군가 말려야 한다. 나는 더 이상 스크린을 들여다볼 수가 없었다.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엉켜 있는 놈들을 떼어 말리기 시작한다.
“왜들 이러십니까.”
검은 모자와 힘을 합쳐 덩치를 떼어본다. 덩치 힘이 너무 세다. 꿈쩍도 안 한다.
“에이 씨팔, 뭐얏.”
덩치의 팔에 더 큰 힘이 실린다. 곱슬머리의 몸통을 꽉 움켜 안고 조르기에 들어갔다. 저 기운으로 주먹질 안 하길 다행이다. 곱슬머리가 캑캑대며 용쓴다. 힘으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곱슬머리가 몸을 뒤틀며 덩치의 팔을 물어뜯으려 하는 순간, 덩치의 팔꿈치가 뒤로 휙 돌았다. ‘퍽’, ‘악’, 여명의 새벽하늘이 노랗다.
새벽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덩치의 팔꿈치에 맞은 것 같다. 하필이면 그 억센 팔꿈치에 내 콧잔등이 맞다니. 입술도 같이 빗맞은 것 같다. 얼얼한 채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외친 ‘악’ 소리에 덩치는 곱슬머리를 풀어주었다. 곱슬머리가 몸을 일으켜 바지를 턴다.
“에이 씨. 까불고 있어.”
곱슬머리를 제압한 덩치의 위엄에 한껏 여유가 배어난다. 아니면 내 콧잔등을 친 게 미안해서였을 거다. 널브러진 간이 탁자를 세워놓고는 나를 끌어올려 의자에 주저앉힌다.
입술을 만져 보았다. 알싸하다. 피, 피가 묻었다. 코끝이 멍멍하다. 맹탕 맛이다. 코피가 흐른다. 왜 이 싸움에 끼어들어 내가 코피를 흘려야 하는지, 참 우습지도 않다. 덩치와 곱슬머리는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나를 남겨두고 티격태격 저쪽 골목으로 사라진다. 결투는 누군가 피를 봐야 끝이 난다. 이 싸움에는 아무 관련도 없는 내가 피를 봤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더니, 참 재수도 밥맛이다.
‘딸랑딸랑’ 출입문 종소리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검은 모자가 편의점에서 나오고 있었다. 녀석이 두루마리 휴지를 던져주었다. 놈의 눈빛이 짧고 강렬했다. 마치 굼벵이를 바라보듯 나를 쏘아보았다. 모자챙에 가려 여태껏 보지 못한 눈빛이었다. 그리고는 놈도 말없이 골목을 빠져나간다. 
나는 코를 막고 카운터로 돌아왔다. 참았어야 했다. 끼어들지 말았어야 했다. 이게 무슨 꼴이람.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람.
아, 이게 무슨 꼴이람.
털렸다.
완전히 털렸다.
금고가 쩍 벌어져 있었다.
검은 모자, 이 자식. 나는 급히 밖으로 좇아나갔다. 골목 끄트머리쯤에 검은 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야, 야, 야 인마. 거기 서."
검은 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저 도둑고양이 같은 눈빛. 검은 모자의 자취가 골목에서 사라졌다. 후후, 그랬다. 돈이란 건 혼란한 틈을 타고 움직인다. 후후, 방심은 금물인 것을.
영화는 이미 끝이 나 있었다. 남아 있는 삼각김밥을 하나 뜯어 물었다. 이크, 입술을 깨물었나. 맛이 밍밍하다. 빗맞은 입술이 부풀어 올랐다. 눈앞이 침침해졌다. 휴대폰 액정이 어른거린다. 플레이 버튼을 앞으로 되돌렸다. 하이 눈의 결투 장면이 흘러가고 있다.





*김영범 2014년 《월간문학》에 「리리의 꽃밭」으로 소설 신인상 수상. 같은 해, 계간 《시에》를 통해 수필 신인상 수상. 한국소설가협회 『2017 신예작가』에 「엄마의 뜨락」 선정 수록. 그동안 발표한 작품으로 「로타네브와 베나토르」,「우물가의 삽화」,「위대한 노보 씨」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회원, 한국소설가협회회원, 계간 『아라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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