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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현/흑곰의 겨울잠/2013년 미네르바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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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부
댓글 0건 조회 4,966회 작성일 13-03-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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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곰의 겨울잠

 

 

작년에 왔던 길, 잡풀이 눈썹까지 자라 꼬리가 사라졌다. 눈을 감고 피가 당기는 실핏줄의 기억을 더듬는 곰 한 마리, 놀이공원 나뭇가지에 곰돌이 푸 풍선으로 대롱대롱 매달렸다.

자판 홈으로 기어드는 개미를 무심코 검지가 누른다. 개미의 부러진 허리에서 잡풀 속에 가려진 길이 보인다. 바람에 떠밀려서 겨우 막차에 올라타 몇 개의 잠의 언덕을 넘는 동안 속눈썹은 껑충껑충 자란다.

컴퓨터로 위장한 동굴에 내시경을 넣고 내부를 탁본한다. 방금, 노트 위에서 상고대라는 글자를 밟고 지나가는 개미를 엄지와 검지가 합세하여 콱 응징하려다 그냥 두었더니 잣나무 서리꽃을 지나는 길목에 발이 얼었다.

현미경이 배꼽에서 마모된 기억의 흔적을 찾아 탐색한다. 배꼽 때가 된 태초의 탯줄 속에서 까만 속눈썹이 자란다. 배꼽에 그늘이 드리워진다. 배꼽은 곰의 퇴화된 눈이다. 겨울잠을 자는 동안, 기다란 속눈썹은 진피층에 뿌리를 내리고 몸을 털로 감싼다. 겨울잠을 푸우 푸우 자면서, 결 고은 모피 한 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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