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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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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1,966회 작성일 15-08-1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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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

 

 

태양이 떠있다. 불길을 훅훅 뿜어내는 이글거림의 구체. 그 강한 홀림은 홍염을 온 사방에 흩뿌리며 점점 더 높이 떠오르고 있었다. 태양의 맞은편에는 달이 떠있다. 다정하게 서글픈 빛을 흘려보내는 달. 하늘이 반쪽 난 듯, 한 쪽은 어둡고 한 쪽은 휘황한 가운데 서로의 구체가 가만히 떠오르고 있었다.

우리는, 동생과 나는, 그 낮밤의 경계, 깊은 골짜기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오직 둘 뿐. 무거운 공기 속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서있었다. 동생이 먼저 뛰었다. 불꽃을 향해 달리는 길이었다. 나는 발을 떼지 않았다. 불꽃은 싫다. 눈부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밤을 향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지금 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이 검은 대지와 함께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나는 어찌 할 줄 몰랐다. 그래서 섰다. 그림자에 숨어, 달리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줄줄 내리는 땀. 긴장된 팔다리. 이글이글 타오르는 염화 속으로 동생이 사라져간다. 이윽고 동생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눈을 감았다. 뜨거움이 한결 가시는 듯하다. 달빛은 나의 눈꺼풀 안에서 어른거린다. 주위가 적이 고요해짐을 느꼈을 때, 나는 눈을 떴다. 어느새 태양도 불꽃도 사라지고 검은 형체의 누군가가 나의 옆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관심

고개가 떨어진다. 잠들었구나, 생각과 동시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다 들키면 또 깎겠지. 이제 슬슬 짜낼게 없다는 걸 알아야할 텐데. 내가 현재 일하고 있는 노래방 사장의 이야기였다. 주 6일에 9시간, 백. 이미 적은 월급이지만 그녀는 아직 더 깎을 껀덕지가 있는 것처럼, 언제나 나를 뱀처럼 핥아 내리곤 했다. 나를 보면 대강이를 툭툭 쪼며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려 야단이었다. 허나 그런 신경질 속의 상황에도 난 별말 할 수 없었다. 첫째는, 이미 그에게 꿈틀도 못하는 등신이며 어지간히 일도 하는 노예라고 생각되었기에. 둘째는, 그 말이 맞기에.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일곱 시가 넘었다. 이미 교대가 이루어져야 했지만 아직 알바생은 오지 않았다. 나보다 두어 살 많은 그도 이미 내가 만만하다는 걸, 정신마저 놔버린 호구라는 것을 진즉에 눈치 챈 것이다. 허나 그래, 정신을 놨으면 주의도 했어야지.

교대 따위는 하지 않고 그냥 노래방을 나왔다. 문은 열려있고 안에 손님도 있다. 뭐, 신경 쓰이지 않는다만.

다음 주면 월급날이었지만, 상관없다. 이제, 그리 돈 나갈 일도 없다. 이제, 그렇게 일할 필요도 없었다.

바람이 써늘하다. 뺨이 쩍 벌어져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추위. 사방은 적막하고 해는 이미 저버린 지 오래다. 겨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음에도 아직 세상의 어둠은 부지런히 움직일 시기였다.

춥다. 아니, 추운 걸까? 분명 추운 날씨지만 추운 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살갗을 짓궂게 부딪쳐오는 냉풍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몽롱한 정신. 어디로 가야할지 조차 알 수 없는 무지와 혼란이다. 어디로. 어디로 가야할까. 집으로 가야할까. 아니면 다시 노래방으로 돌아가야 할까. 발걸음은 멈추었다. 갈 곳이 없구나. 사람들은 숙숙 나를 지나친다. 조금의 관심도 없는 채. 순간 눈이 마주치면 그 눈은 곧 피해버린다. 나 또한 마찬가지임에 틀림없는 걸.

우리는.... 아니, 되었다. 그저 뻔한 이야기. 가난이나, 고아, 병든 할머니, 기운 집, 뭐 그런 것들. 굳이 말할 필요는 없겠다. 대충 상상하면 그 비슷하게 나올 이야기들. 그 이야기 속에 우리가 살았다.

할머니가 쓰러진 것은 2년 전, 내가 열일곱 살이고 동생이 열다섯 살이던 시절. 대충 원인이야 과로로 인한 육체의 고장. 거창한 병도 아닌 것에 할머니는 자리에 누우셨다.

일을 시작한 것은 그때쯤이다. 학교는 그만두지 않았지만 쉬는 날이 많았다. 할머니는 이제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힘겨워지기 시작했고 동생과 나는 그러한 할머니를 간호해야 했다.

힘들지 않았다. 나 같은 사정이 많이 있음을 알았고, 불평을 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동생은 달랐다. 어린 눈으로 언제나 이 기울어진 집을 의미 있게 바라보았다. 언젠간 이 모든 것을 바꾸겠다, 하는 얼굴이었다. 헌집과 웅장한 저택, 그 너머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뛰어난 동생. 너머를 향한 집착. 이곳에 머무르지 않는 시선에, 그래, 그대로 가면 정말 다 바꿀 수도, 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스로를 구렁텅이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너머에,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 착각이었다.

동생에겐 늘 사람이 따랐다. 욕심도 자신감도 있었기에 언제나 관심이 끊이질 않았다. 허나 그 때문에 자신의 이러한 환경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했다. 언제나 환경과는 동떨어진 능력에 있어, 자질에 있어, 다른 이들보다 앞서고 싶어 했다. 차이를 보이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허영이 한 귀퉁이의 재앙을 야기할 것임을 알아야했다.

어느 날, 학교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언덕을 오르려니 하늘에서 검은 연기가 허공을 흐리고 있었다. 노을을 물들이는 더러운 구름. 매캐한 연소의 냄새가 따가운 재와 함께 바람에 흘러왔다. 거리를 따라 깊어가는 그을음과 콧속을 헤집는 검음. 골목이 끝나는 어귀의 소란과 열기. 폐허. 불꽃과 더미. 소음과 이명. 푸른 하늘과 집. 집은 전소해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동생은 눈을 잃었다. 추정되는 화재의 원인은 담뱃재라고 했다. 담배. 눈이 절로 감긴다. 담배. 할머니는 피우지 않는 담배. 서랍 속 라이터. 눈을 감아주었던 동생의 가방 속.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또한 그랬다. 플라스틱 안대에 붕대를 두른 동생은 꼿꼿이 앉아 있음에도 한없이 널브러진 모습이었다. 바람을 맞는 것인지, 무언갈 보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 눈은 항상 나를 피해있었다.

우리는 한 주택의 판자를 댄 옥탑방에 들어갔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고아원에는 가지 않았다. 친척들에게 맡겨지지도 않았다. 애초에 친척이 있었는지 조차 의문이었다. 우리의 처리를 담당하는 사람은 몇 번 찾아오고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애매한 위치의 우리가 그쪽에서도 귀찮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우리는 사회에서 외따로 떨어져, 보이지 않는 한구석에 웅크려지게 되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스다. 집으로 가는 버스. 나는 어느새 출구 쪽의 봉을 잡고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도 날 바라보지 않는다. 아니,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보는 것은 온통 네모난 화면, 창문, 활자. 아님 어둠.

나의 바로 정면에 보이는 것은 손잡이이다. 동그란 손잡이. 오래된 버스 손잡이. 서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손잡이에 기대어 있다, 나만 빼고. 나를 빼고 모두 손잡이에 기대어 서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나에게 만큼은, 그 동그란 손잡이가 목을 매는 밧줄처럼 보였다. 내 눈높이의 손잡이가, 이제 그만 놓아버리라는 손짓처럼 보였다.

이제 내려야할 역이다. 하지만 내리지 않았다. 자리가 나서, 앉았다. 가물거리는 시야에 창밖을 건너다보니 빠르게 스치는 풍경이 있다. 바쁘게 걷는 사람들. 앞만 보는 헤드라이트. 무심하게 지나치는 건물의 그림자와 귀찮다는 듯 겨우 한 두 개가 떠 있는 조그만 별. 헛헛 웃음이 난다. 좋은 풍경이다. 좋은, 풍경이었다.

동생은 움직이지 않았다. 말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생리적인 것만을 해결하며 찬 방 구석에 웅크려 누울 뿐이었다. 울퉁불퉁한 바닥에는 유달리 언덕처럼 튀어나온 곳이 있었는데, 동생은 그곳을 쓰다듬기 좋아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동생이 평소처럼 방구석에 웅크려있었다. 허나 상태는 평소 같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마치 벽을 보듯이, 자기 눈꺼풀의 어둠을 보듯 하는 것이 아니라, 양 팔로 배를 감싸 안고 벽에 머리를 찧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드문드문 새 나오는 것은 신음.

뭘 먹었어요? 의사의 말이다. 뭘 먹었냐고. 동생은 밥을 먹지 않았다. 눈이 보이지 않았고 그럼에 식탁에 밥을 차리면 먹기가 어려웠다. 또 내가 있으면 무엇이든 먹지 않았다. 애초에 매일 밥과 반찬을 내놓을 만큼, 시간도 돈도 여유롭지 않았다. 그래서 보통은 빵이나 과자를 사 동생의 주위에 놔두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해가 다 져 돌아왔을 때, 동생의 주위에는 빵과 과자의 봉지뿐이었다.

그 사라져있던 내용물이 문제였다. 거의 1년은 다 되어가는 자극적인 식사가 위에 부담을 일으킨 것이라, 이미 위가 많이 상했다고 했다. 지금껏 어떻게 참고 있었냐고. 꽤 오래 아팠을 것일 텐데. 동생은 한 번도 아픈 티를 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난 알아챈 적이 없었다.

그렇게 응급실 침대에서 링거를 맞는 동생을 보며 어찌 해야 할지를 듣고 있으려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의사도 간호사도, 주위를 지나는 환자와 보호자들 모두 인상을 찌푸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언제나 웅크려있는 동생. 움직이지 않는 동생. 동생은 씻지 않았다. 내가 닿는 것 또한 무서워했다. 그래서 가만 놔두었던 것이, 이미 그 찌듦 속에 익숙해져버린 나와 달리, 사람들은 그 코를 간질이는 이질적인 그 무엇을 참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의사는 바쁜 듯했다. 뭘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사라졌다. 그 빠른 걸음 속, 채 사라지기도 전에 손을 휘저으며 고개를 내저은 것이, 그땐 나도 좀 부끄러웠을까.

그 뒤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입원을 해야 한다 하기에 무슨 말을 횡설수설 했는데, 달아오른 얼굴에 기억도 뒤죽박죽이다. 기억이 나는 것은 병원 로비에서부터다. 동생과 나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와 닿기를 꺼려하는 동생도 그때만큼은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기대야했다.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로비 전체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며 우리는 어떠한 수속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커다란 원을 그리며 말없는 관심을 사고 있던 우리, 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동생의 친구. 나는 그 친구를 알았다. 그 친구 또한 날 알고 있었다. 사고 당시, 몇 번 병문안을 오기도 했던 친구. 동생의 무반응에 입을 다물고 돌아갔던 친구. 그렇게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친구. 그 친구가 이 병원에서 우릴 보고 있었다. 물론 말을 걸진 않았다. 다만, 처지를 잊은 묘한 반가움에 눈을 떼지 않았을 뿐이다.

눈이 돌아갔다. 천천히 걷던 친구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여전히 느린 걸음. 하지만 돌아간 눈동자는 부자연스레 우리의 바깥쪽이었고, 친구는 계단 위로 사라질 때까지 우릴 보지 않았다.

삐, 정차신호가 들린다. 버스의 차창을 통해 눈에 익은 건물들이 보였다. 속된 말로 부자동네.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고층 건물들이 위용을 뽐내며 배를 디밀고 있다. 참 알기 쉬운 동네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도로를 걸었다. 단정한 보도블록, 줄지은 가로등은 다시 봐도 신경 쓴 티가 난다. 저 하늘 위의 동네와 맞아떨어지려한 무던한 노력의 결과일까.

이곳 건물에는 청소를 하러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도구를 한 아름 들고 들어온 거실의 창밖은, 너무도 높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광경에 그 당시에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다시와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니, 역시 아무렇지 않았다.

거리는 밝다. 해가 다 졌음에도 낮게 내린 거리는 마치 높다란 탑의 비위를 맞추듯 소란했다. 희고 붉은 여러 색의 빛들이 눈을 찌른다. 어지러움에 눈을 감으니 눈이 꽉 차오르는 것만 같다. 그 어지러움에서 주변의 풍경이 피어오르고 있다. 거만히 솟은 고층 건물과 그 발밑에 엎드린 가게. 다족류의 다리처럼 나열된 가로등. 질서 잃은 개미떼와 그들이 흩뿌리는 해로움, 빛. 불쾌하게 찔러오는 빛. 그 속의 빛들. 그 속의 빛.

옥탑방은 언제나 어두웠다. 불을 켜도 짓쳐드는 어두움. 불을 켜던, 끄던 미동조차 하지 않는 동생에, 켜보았자 의미 없을 뿐이었다.

나또한 불이 싫었다. 선연한 달빛이 더러운 형광등에 오염되는 듯하여 몹시 싫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불을 끄고 다녔다.

달. 나는 달이 좋았다. 흐붓이 부드러운 빛을 흘리며 저 하늘에 안착하는 달. 태양이 하늘 위로 군림하는 빛이라면, 달은 조용히 떠올라 지상을 내리 감싸는 빛이다. 모든 것을 아울러 감싸 안는 빛. 나는 그런 달이 좋았다.

얼마 전, 그렇게 달을 구경하고 있는 차였다. 늦은 밤, 새소리 하나 없이 적막한 가운데, 동생이 말을 걸어왔다.

“형, 달이 떠있어?”

탁한 목소리. 대체 얼마만인지도 모를 그런 목소리였다. 달. 동생은 여전히 웅크려 있었다. 여전히 벽 쪽으로 돌아누워 미동도 않고 쓰러져있었다.

달을 올려다보았다. 달은 여전히 아름다운 빛을 흘리고 있다. 아름다운 달. 날 포근히 감싸 안아주는 달. 달이, 달이, 떠..... 있나?

가만히 대답을 생각하자니, 갑자기 내가 환청을 들은 것이 아닌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러한 적막과 내 정신이 혼탁이 섞여버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닌가, 저 달빛에 내 기억이 어찌 흘러버린 것은 아닌가, 의문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다, 나는,

“아니.”

동생은 답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음날 아침, 동생이 사라졌다. 잠에서 깨 방을 둘러보니, 이미 동생이 짐 마냥 놓여있어야 할 그 공간은 휑하니 버려진 후였다.

건물을 다 뒤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옥상에서 떨어질 만한 곳 또한 살폈다. 주변의 거리, 건물, 맨홀, 좁은 틈새까지, 동생을 찾았다. 모든 주어진 임무를 내팽개치고 동생을 찾았다. 찾았다. 찾았다. 찾고 찾았다. 허나 없었다. 동생은 찾을 수 없었다.

동생을 찾은 것은 저녁 무렵이다. 경찰이 찾아왔다. 동생은 걸어서 두 시간은 가야하는 어느 골목의 쓰레기 더미 속에 동사해있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골목의 깊은 쓰레기 더미 속, 밤새 어둠만 가득할 조용한 골목의 조용한 쓰레기 더미 속에, 동생은 가득 부푼 쓰레기봉투를 끌어안고 만족스럽게 죽어있었다.

눈이 번뜩 뜨인다. 나는 눈을 감고 걷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는 집 주변이다. 어느새 여기로 왔나. 하얗게 솟은 어울리지 않는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온다. 곧 이 주변도 전부 저런 하얀 아파트와 공원으로 바뀔 것이다. 재개발 지역. 약 1년 6개월 전, 이곳에 들어올 땐, 이곳이 재개발을 하는지 몰랐다. 집주인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문득 아파트 벽면에 문이 보인다. 높아지는 층에도 하나하나 꼭 달린 문. 저게 뭘까. 저게 뭘까, 생각한다. 계단도 없이, 내딛으면 허공인 저 문은 뭘까. 그렇다가, 그렇다가, 그렇게 생각하다가, 혹시..... 혹시 자살용인가 생각한다. 일상에 지친 그대가, 더 이상 내몰릴 곳이 없는 그대가, 자유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낙하하는.......

펜을 놓았다. 아니, 손을 떼었다. 하얀 화면의 커서는, ‘자유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낙하하는.......’의 옆에서 깜빡인다.

못쓰겠다. 더 이상 못쓰겠다. 이 소설, 가난하지 않아서 못쓰겠다. 아니, 말이 안 되나? 그럼, 가난을 몰라서 못쓰겠다.

나는 소설가가 되려한다. 그렇기에, 글을 써야겠기에, 가난과 무관심, 대충 뭐 이런 것으로 섞어서 써보려 했는데, 안 되겠다. 뭐, 어느 정도 조사하고 겪은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상황은 상상이다. 저런 상황이 일어날 수 있나, 싶은 정도의 흐지부지, 어정쩡한 것도 있다.

이대로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면, 그것이 극복이던, 비극이던, 아님 열린 결말이던, 어떤 것도 뻔한 상황 밖에 예상되지 않는다. 나의 역량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만족스러운 결말은 아니다, 어느 것이던.

기지개를 편다. 아아, 쓰는데 몇 시간이었나. 아침 일찍부터 썼던 것이 벌써 기울어진 오후다. 봄날의 날씨는 따뜻하다. 새들도 울어대고 햇볕은 나의 손등을 간질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좀 쉬어야겠다. 바람도 쐬고 밥도 먹고. 상쾌한 기분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때까지 이 아이들.... 아니, ‘아이’인가. 어쨌든 이 비극은, 가난은, 잠시 생각의 저편으로 밀어둬야겠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왼쪽 위의 저장 버튼을 누르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방문을 나가려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속았을까. 혹시 누군가 나의 글을 읽는다면, 전혀 슬프지 않은 내 감정이 흐른 이 이야기에, 관심조차 줄어든 나의 무미건조함에, 당신은 속았는가, 혹시 안쓰러워했는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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