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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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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246회 작성일 15-08-19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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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풍경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 집 처마에는 작은 풍경이 하나 달려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딸랑 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면 바람이 왔다간 흔적만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도 풍경 소리처럼 갑자기 찾아왔다. 할머니는 울지 않았다. 인연이 다해서 먼저 가버린 걸 어떻하겄어. 붙잡지 말어야지. 사람이 죽으면 바람이 되는 거란다. 그날 밤 할머니는 내게 팔베게를 해주면서 그런 말을 했다.

할머니는 청소를 하다가도 처마에 걸린 풍경을 가끔 바라보았다. 풍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람이 되어 버린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는 풍경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할머니, 오세암 이야기 알고 있지? 할머니가 내가 잠 안온다고 투정 부릴 때마다 해 준 이야기 있잖아. 아이는 관세음보살님을 불렀는데 진짜 관세음 보살님이 나타나 아이랑 놀아주었잖아.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걸까. 할아버지를 돌려보내는게 아이랑 놀아주는 것 보다 더 쉬운 거잖아. 할머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바람은 머무르지 않지? 할아버지는 여행을 떠난거야. 아주 긴 여행을.

가끔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풍경을 한 번 울리는 거란다. 임아, 나왔다 가오. 그렇게 말하면서. 풍경이 자꾸 울리면 우리가 잠 못잘 까봐 할아버지가 아주 가끔 오는 건가보다.

자주 오지 않는 할아버지가 야속하다. 할머니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는 동안 할머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산 꼭대기에 바람이 머무는 것 같지? 사실은 바람은 산꼭대기에 머무는게 아니란다. 할머니가 말했지, 바람은 머물지 않는다고. 할아버지가 키우던 잉어들은 할아버지의 발자국 소리를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머리를 빠꼼히 내민다던데 할머니는 기가막히게 바람이 머물렀던 자리를 찾아낸다. 할머니는 먼저 간 할아버지가 밉지 않아? 나라면 정말 미울 것 같은데. 인연이 다해서 떠난 사람을 어떻게 붙잡겠니. 사람 가는데 순서가 없는 거야. 우리 머리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할머니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로 손을 뻗었다. 할머니의 손에 주름이 그렇게 많이 있었나.

할아버지, 바람이 돼서 어떤 곳을 가보셨나요? 혹시 할머니의 마음속 엔 가보셨나요? 할머니는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금방 찾아내요. 인연이 다해 할아버지가 떠났다고 할머니는 말하지만 아직 인연이 다 한 것 같지는 않아요. 할아버지는 계속 할머니 곁을 맴돌고 있나봐요. 풍경소리가 들려요. 산에 내려다보는 할머니 집은 제 손바닥만해요. 할아버지는 얼마나 작은 것들을 보고 있나요. 할머니 꿈속에도 좀 나와주세요. 할머니가 할아버지 얼굴을 잊어버릴까봐 늘 사진을 보는데 사진도 이젠 바래져서 얼굴이 보이지 않네요.

풍경소리가 들릴 때마다 할머니는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본다.

하늘은 노란빛을 띄고 있다. 할아버지가 즐겨마시던 국화차를 닮은 하늘을 할머니는 오랫동안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딸랑 딸랑. 할아버지가 왔다.

임아 나왔소. 풍경은 그렇게 말했다.

 

 

 

 

다시 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4월 15일. 나는 광화문 광장에 갔다. 온통 노란색. 바람이 불 때 마다 노란 천은 흔들리며 물결을 만들었다. 벌써 1년이다. 사람들의 가슴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속에 굉장히 어색하게 서 있었다. 큰 사건이었는데도 세상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세월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런 내가 눈물을 흘리며 안타깝게 고개를 숙인 사람들 속에 있기에는 너무 미안하고 그 자리에 내가 있어도 되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노란종이와 펜을 내게 주면서 한 줄 소원문을 써 달라는 어떤 언니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도망가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펜을 들었는데 머릿속이 노랗게 변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함께 갔던 친구는 다시는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 규명을 바란다고 썼다. 나는 그 친구와 똑같이 써서 언니에게 주었다.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 모습을 촬영하는 카메라들도 보이고. 광화문 광장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사람이 모여 있으니 호기심에 들렸다 가는 모양이었다. 1부는 세월호 참사 미공개 영상으로 시작했다.

배가 이만큼 기울어 졌어요. 살고 싶어요.

내 새끼 살려 내란 말이야.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는 투박한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옆에 있던 아줌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는 고개를 떨궜다. 살고 싶어요. 라는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상상되지 않았다. 배가 가라앉고,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가슴이 답답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죄책감인가. 눈물이 마르면 그 위에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엄마 딸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난, 다음 생엔 내가 엄마가 돼서 꼭 더 사랑해 줄거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라는 고 정지아 학생의 편지와 사랑해. 딸내미. 보고 싶은 내 딸 지아야. 유난히도 엄마를 챙기고 생각해주던 속 깊은 내 딸 지아야. 엄마 꿈속에 친구와 손잡고 분홍색 가방을 메고 가던 너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구나. 사랑해 딸내미, 꿈속에서 만나자. 엄마의 답글을 들을 때에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가족을 잃고 세상을 잃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차라리 사는 것 보다 죽는 게 더 낫겠다. 고 생각을 했던 것을 후회했다.

자식 잃은 게 계산이 돼? 정신이 없이 쫓아다니며 건강 잃으면서 하는 우리들 이 일을 어떻게 계산 할 수 있겠냐고. 우리가 지금 만들려고 하는 안전법과 그것 위해 하는 우리들의 모든 행동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라는 유가족의 말, 진실 규명에 애쓰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비난을 하기도 하고. 나 살기도 버거워죽겠는데 무슨. 이라며 무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그런 걸 볼 시간에 연예인 스캔들 기사나 한 번 더 클릭해서 보기도 한다.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내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는 것. 뿐이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서 그저 울었다. 1년 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1년 후 지금 빨리 이 일이 마무리되길 바라는 사람들부터. 1년이란 시간이 이렇게 만들어버린 건지 다수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이 일은 잊혀져 갔다. 유가족들은 잊혀지는게 가장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기억의 문을 지나면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의 사진이 붙여 있다. 그 아래엔 흰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나와 같이 교복을 입고 꿈을 꾸던 아직 젊은 영혼들이 사진이 되어 벽에 걸려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국화를 놓았다.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다시 봄.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아직 깊고 어두운 물속에 잠겨 있다. 이곳은 봄이 찾아 왔는데도 춥고 외롭고 슬프고 그립다. 매일 밤 사진을 붙잡고 집에 돌아오라고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 진실을 규명해 달라 외치지만 들어주지 않는 매정한 세상.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노란 리본을 달고 엄마 손 잡고 돌아가는 5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를 보았다. 몇 명의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해 주는 한 그들은 살아있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 침몰에 억울한 죽음이 어떤 진실이 있는지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 실종자의 목숨과 유가족들의 슬픔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고,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 다시 봄. 그들이 돌아왔을 때 억울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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