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산문부

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주광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580회 작성일 15-08-19 12:19

본문

검은 방충망엔 온기가 가시길

 

 

나는 ‘베티와 딥스’라는 제목의 책을 덮는다. 그리곤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아마도 그는 이 아이가 그린 그림이 얼마나 슬프고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는지 모를 것이다.’라는 부분을 다시 읽으며 3년 전을 떠올린다.

그때는 내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삶이 시작된 날이었다. 그리고 세연이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어리숙하고 부족했던 당시에도 눈에 띄게 특이하게 보였던 여자 아이, 그 아이가 바로 세연이였다. 피부는 유난히도 까무잡잡해 누구나 세연이가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었고 눈은 힘이 다 풀린 채 멍하니 창문 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쉬는 시간이나 체육시간에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으며 아무리 말을 걸어도 대답 한마디 하지 않았다. 또 초등학교 2학년 임에도 불구하고 세연이는 영구치 하나 없었고 유치는 앞니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썩어 있었다. 말괄량이에 떼쓰기 좋아하는 여느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숙제는 해오는 날이 없었고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는 것 또한 당연시 했으며, 대답 한마디 하지 않는 세연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어느 날 국어시간이었다. 나는 차례로 아이들에게 국어책을 읽혔다. 그러던 중 세연이의 차례가 되었다.

“자 세연아 읽어보자”

“......”

“세연아? 읽어봐”

“......” 세연이는 대답이 없다.

“어서!”

나의 책을 읽으라는 말에도 세연이는 책을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듯 했다. 나는 세연이를 재촉했고, 세연이는 힘없이 눈동자를 왼쪽 아래로 떨어뜨릴 뿐이었다. 계속해서 아이가 나를 무시하자 나는 화가 났다.

“너 지금 이게 선생님께 뭐하는 태도야”, “빨리 대답 안해?”, “야 너 벙어리야? 말 못해?”나는 모진 말들을 쏘아 내었다. 그러나 역시 세연이는 표정변화 하나 없었다.

그때 나는 화가 나는 것과 동시에 일종의 오싹함에 소름이 돋아났다.

이 사건이 있던 날 저녁, 나는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서서 무심코 고개를 드는데, 아파트 3층에 웬 아이가 베란다 방충망에 딱 달라붙어 나를 보고 있었다. 저녁 8시 30분,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베란다에 붙어있을 시간은 아니었다. 깜짝 놀란 나는 얼른 집으로 들어가 강박적으로 문을 잠갔다.

다음날 나는 국어시간에 아이들과 자유시 적기를 했다. 다행히 세연이도 시를 쓰는 것 같아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그날 오후, 아이들의 시를 읽으려고 찾아보니 세연이의 시가 없는 것이 아닌가. 세연이의 시는 온데간데없고 백지 한 장이 시 속에 끼여 있을 뿐이었다. 세연이가 시를 쓰는 모습을 본 나는 백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2학년 4반 28번 주세연’희미하게 지우개로 지운 글자들이 보였다. 나는 연필을 눕힌 후 종이에 살살 문질러 지워진 글자들을 되살려 냈다. 새까만 종이에 새하얗고 여린 글자들이 나타났다.

 

2학년 4반 28번 주세연

안온다 안온다 안온다 안온다 안온다 안온다

오늘도 업다

하나 둘 셋 넷 칠십둘까지 하면 온다는대

없다 많이 샛다

온다 아니다 또 아니다 또또또 또아니다 아니다

무섭다 안오나 계속 안오나

나 여기 있다 햇님 있을때도 반달 있을때도

잠와도 있는데 근데 또 안온다

 

꾹꾹 눌러쓴 글씨는 종이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시를 읽은 나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세연이의 시는 다른 아이의 글과 달랐다. 도대체 세연이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또 이 아이가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세연이의 전 담임 선생님이신 ‘이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혹시 세연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주세연이요?”

“네”

“어... 답이 없죠.”

“네? 애한테 답이 없다니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게... 아무리 말을 하라고 해도 제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아주 보기보다 고집이 쎄요. 아마 엄마가 필리핀 여잔가? 그리고 꽤 오래전부터 아파서 병원에 있나? 그럴걸요. 그리고 집엔 아무리 전화해도 안받더라고요. 아빠 폰으로 하면 가끔씩 받긴 하는데, 별 이야기도 안하고 애한텐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저도 1년간 담임했는데 세연이는 잘 모르겠네요.”

나는 이 선생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에게 답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문을 닫는 순간 그날이 떠올랐다. “말 못해? 너 벙어리야?” 이 말은 다름 아닌 내가 세연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문을 나오는 뒷맛이 씁쓸하다.

저녁 9시, 바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나는 또다시 3층에 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섬뜩한 느낌이 들어 집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순간, 세연이의 글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연아!”하고 불러보았다. 이름을 부르자 아이가 돌아본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분명 세연이다. 8시 반, 9시, 이 늦은 시간까지 세연이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세연이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으나 역시 받지 않았다.

‘세연이 담임선생님입니다. 안녕하세요? 세연이가 혼자 있는 것 같아서 제가 잠깐 실례 좀 하겠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 문자를 보면 연락을 하게 일부러 모호한 단어들을 사용한다.

그리고는 3층으로 올라가 문을 두드린다.

“안녕 세연아? 선생님이야 안녕?” 나는 밝게 말했다.

세연이는 역시 본체만체다. 또 아무 표정 없이 베란다 방충망에 코를 박곤 아파트 입구를 바라본다. 나는 세연이 옆에 눈높이를 맞추고 앉는다.

“누구 기다리는 거야?” 조심스레 물어본다.

역시 대답은 없다. 한숨을 쉬며 베란다 밖을 바라본다. 세연이를 따라 방충망에 코를 박는다. 비릿한 쇠 냄새에 온기가 아이러니하게 담겨온다. 그리고 나는 일흔 두 개의 의미를 알아냈다. 아파트를 칠하는 페인트가 방충망 위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페인트가 정확히 방충망 일흔 두 칸이었다. 얼마나 많은 손길이 지나갔는지 흰색페인트는 손때가 묻어 검은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5시정도에 일찍 퇴근한 나는 3층 베란다를 바라본다. 세연이는 또 그 장소에서 그 모습이다. 나는 그날도 세연이 옆에 앉아 같이 밖을 바라보았다. 5시 30분, 세연이가 갑자기 분주했다. 밥솥에서 내 몫까지 밥을 떠 밥상 위에 올린다. 그리고 언제 했는지도 모를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장조림이 든 냄비를 데우지도 않은 채 꺼낸다. 그리고 내 밥그릇 위에 고기 한 덩이를 올린다. “잘 먹을게”하고 숟가락을 드니 세연이는 이미 먹고 있다. 그런데 조심스레 장조림의 고기 섬유를 한 가닥씩 한 가닥씩 뜯어 먹는 것이 아닌가. 다 썩어버린 이로 힘겹게 고기를 뜯어낸다. 고기 반 덩어리로 밥 한 끼를 다 먹을 기세였다.

“세연아 아직 장조림 많이 남아 있잖아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돼! 나중에 선생님이 맛있는 거 더 사줄게 응?”

“아, 아빠가...” 우물쭈물 하던 세연이는 나에게 첫 대답을 해 주었다. “아빠가... 이렇게...” 그 뒷말은 없었다. 그러나 누구나 그 뒷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도대체 세연이의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 초등학교 2학년의 딸아이를 하루 종일 집에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가? 또 왜 세연이에게 장조림 한 덩이로 밥을 먹게 시킨 것일까. 아이가 먹는 것이 아까워서? 아니면 요리하기가 귀찮아서? 아무리 그럴 듯한 이유를 대도 나는 아버지를 이해 할 수 없다. 과연 언제부터 이런 세연이의 삶이 시작된 것일까? 3시부터 10시 남짓 까지 매일 7시간 이상을 똑같은 자리, 똑같은 얼굴을 하곤 누군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세연이의 마음은 얼마나 썩어가고 있는가. 아무리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는 세연이 아버지에게 문자 하나를 남긴다.

“세연이 담임선생님입니다. 시간 되실 때 꼭 연락 주세요.”

그 후로 나는 세연이에 대해 더 알고자 했으나 시를 적은 종이는 언제나 완전한 백지였고, 세연이의 아버지의 연락은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검은 종이에 여린 글자들이 또다시 나타났다.

 

2학년 4반 주세연

다 나 때문이래

잠 안자고 있엇다

나 때문이래 엄마가 안오는 거도

아픈거도 가고 싶은데 못가는 거도래

아빠가 힘든 거도래

업었으면 쉬울탠대

나쁜년 딸을 이용하냐

 

처음의 시와는 달리 필압이 매우 강했고 종이에는 여기 저기 파인 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글을 읽어 나갈 때 마다 충격은 나를 휘감았고 눈은 초점을 잡지 못한 채 허공을 허우적댔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꺼내 다시 읽었다. ‘나쁜년 딸을 이용하냐’ 이 부분은 분명 아버지의 말일 것이다. 어떤 이유로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시간이 갈수록 세연이의 힘없고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무리 연락을 해도 묵묵부답인 아버지를 대신해 나는 무작정 어머니를 찾아가기로 했다.

청소시간, 나는 세연이를 찾아갔다,

“세연아 저기... 오늘 엄마 보러가자! 선생님이랑 같이.” 나의 갑작스런 제안에 세연이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가면 안...될까? 가기 싫어?” 그러자 세연이는 다급히 고개를 젓는다.

“그럼 가자! 그런데 지금 어머니가 어느 병원에 계셔?”“한, 한빛 병원”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보며 대답한다.

“알겠어. 나중에 그럼 선생님 차타고 가자! 아버지껜 내가 연락드릴게”

한빛병원으로 가는 길, 세연이는 처음 보는 밝은 얼굴이다. 창밖을 바라보며 그전 까진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미소까지 띄운다.

“칠십 둘, 칠십 둘” 세연이는 들뜬 표정으로 중얼 거린다.

“세연이 기분 좋아?”

“응”“세연이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예뻐? 엄마 닮아서 그래?”

“응”처음으로 세연이와 대화를 이어 갈 수 있었다. 미소 짓는 세연이의 얼굴에 하나를 제외하곤 모두 썩어버린 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본다.

그리고 도착한 한빛병원, 이리저리 물어 우리는 세연이의 어머니가 계시는 403호의 문을 열었다. 아이를 발견한 어머니는 놀라 들썩인다. 그러나 겨우 고개와 한 손만을 들 뿐이다.

“으아아아! 엄마! 엄마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칼칼한 울음소리를 내는 아이는 엄마의 품에 안긴다. 아이들에게 놀림 받을 때도, 길을 가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가 나도, 선생님께 혼이 날 때도, 매일 같이 홀로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표정하나 바뀌지 않던 아이가 운다. 아니 혼자였기에 울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온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문 너머에서 힘겹게 쥐어 짠 말들이 문 밖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간호사 실로 향한다.

“안녕하세요. 죄송한데 혹시 403호에 계시는 분 언제쯤 퇴원 할 수 있을까요?”“퇴원은 정확하게 말씀드리기가 조금 힘든 부분이 있고요, 혹시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제가 요즘 아이를 맡고 있는데 아버지랑은 연락도 안돼서요. 혹시 어머니가 어떤 병인지 알 수 있을 까요?”

“어 그게 아마 근육이 힘을 잃어가는 병 일거에요. 조금만 무리를 한다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근육이 하나씩 파괴되는데 잘 회복되질 않아요. 403호 환자분 경우에는 병이 진행 된지 15년 정도 되셔서 많이 위험하죠.”

“15년이요?” 세연이가 9살이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네. 환자분은 병이 어느 정도 진행 된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하시면서 몸이 급속도로 나빠진 경우세요.”

“저기,,,” 나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혹시 병이 진행 된지 5년 정도 되면 병에 걸렸다는 걸 느끼나요?”

“어, 대부분 느끼시죠. 일상생활 하시면서 5년 정도 보내시면 뛰는 것도 힘드실 거고 손가락도 잘 못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거든요.”

“그럼 딸아이가 9살인데 결혼하기 전부터 알았다는 거죠?”

“장담할 순 없지만 아마도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또 다시 내 눈은 초점을 잃어갔다. 손을 더듬거리며 한숨을 쉰 뒤 의자에 앉는다.

‘나쁜년 딸을 이용해 먹어?’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설마 아픈 몸을 치유하기 위해 세연이의 어머니는 국제결혼을 택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세연이의 삶은 어머니의 선택의 결과란 말인가.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내 미쳐버린 생각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될까? 과연 세연이는 미래에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리고 세연이의 아버지는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생각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나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세연이에게 다가가 옆에 앉는다.

“아! 아! 앞에 이빨 아파” 세연이가 자신의 앞니를 가리킨다. 흰색을 힘겹게 유지하고 있던 마지막 남은 그것이다.

“이빨 아파”

자세히 보니 이가 안쪽부터 썩고 있다.

“아야야...”

문병가능 시간이 끝나간다. 나는 서둘러 못했던 소개를 하고 세연이와 자주 오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리고 세연이의 손을 잡고 삼계탕 집으로 향한다.

하얀 삼계탕 한 그릇이 세연이 앞에 놓인다.

“자 먹자!”라고 힘차게 말한 나의 말이 무색하게 세연이는 또다시 닭 가슴살의 섬유 한 가닥을 떼어내 밥을 먹는다.

“세연아 선생님 돈 많아!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돼”

“아빠가 이렇게...” 똑같은 대답이다.

“에이 선생님이랑은 괜찮아. 이모! 여기 삼계탕 3인분 포장해 주세요!”

“세연아! 이건 장조림이랑 달라서 금방 상하거든? 선생님이 방금 많이 시켰는데 별로 안 좋아 해서 네가 다 먹어야 해. 그래서 빨리 안 먹으면 다 버려야해! 그럼 아깝지?”

멍하니 나를 보던 세연이가 대답한다.

“응”

세연이 집에 도착해 빈 냄비에 삼계탕을 담는다. 그런데 또 세연이는 방충망 앞이다.

“세연아 누구 기다려?”“엄마”

“엄마 오늘 봤잖아? 그래도 거기 있어야 해?”

“하나, 둘, 셋, 넷...” 세연이는 대답 대신 손을 입으로 가져간 채 숫자를 센다.

나는 말없이 세연이의 뒤에 앉아 뒷모습을 바라본다. 창밖의 새까만 밤에 기댄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도 작다. 또 얼마나 작을 때부터 이 아이의 이러한 삶은 시작 된 것일지 생각한다.

‘미안하다, 엄마가 미안하다...’ 병원에서 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던 말이다. 정말로 세연이의 어머니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필리핀에서 시집을 온 것 일까. 아이를 낳게 되면 돌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치료를 확실히 하기 위해 세연이를 낳은 것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어머니는 아이를 낳았을 때, 그리고 병원에 누워 있는 지금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삼십 하나, 삼십 둘...” 세연이는 숫자에 맞추어 앞니를 이리저리 만진다.

나는 몇 년 뒤를 생각한다. 아마도 세연이는 어머니가 돌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방충망 앞에서 홀로 끝없이 기다리던 그 어머니가 말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세연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자신의 어두운 유년시절을 원망하며 울음을 터뜨릴까? 아니면 설마 사실을 알고 나서도 모든 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어두운 기다림들을 가슴 속에 썩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후자이지 않기를 간절히 빈다.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모든 것을 혼자 감내하고 아파하기에 세연이는 너무 작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까지 세연이를 괴롭혀 왔고 지금의 세연이를 만들었다.

“칠십, 칠십 하나, 칠십 둘.. 아야!”

세연이가 숫자세기를 마쳤다. 그리고 내게 다가와 거멓게 변해가는 앞니를 가리킨다. 아니, 앞니가 있던 그곳엔 선홍색 피가 흐르고 있다. 세연이는 살짝 놀란 눈으로 뽑힌 이를 내려본다.

잠시 뒤 피가 멈추자 원래 썩어가던 이가 있던 자리엔 새하얀 영구치가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았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