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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청소년온라인백일장 예심통과 작품입니다-김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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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332회 작성일 15-08-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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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의 기억

 

 

냉동고 한구석

까치살모사 한 마리 눈 뜬 채로 죽어 있다

찬기가 배어든 듯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늪 같은 뱀의 동공

낙엽 위를 쏘다니던 기억은

뱀의 동공 속에 냉각되었다

눈동자에 낀 성에에는

뱀을 덮쳤던 그물망이 담겨 있다

구불거리는 몸뚱어리가

숲 속에 새겨진 과거의 궤적과 닮았다

밀렵꾼의 더운 숨결이 숲 속을 물들이던 날

뱀의 화살촉 머리는 그물망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독을 머금은 꼬리가 새겨놓은 곡선들

장설이 내리던 겨울쯤에는

숲 속을 수놓은 살모사의 문장들도 지워졌을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짙갈색 입아귀에는 점자 같은 줄무늬가 박혀 있다

살갗이 튼 뱀의 일생

해독되지 못한 뱀의 기억들이

허연 서리를 내뿜고 있다

 

 

 

 

동전 한 닢

 

 

저녁 열한시

삭혀지는 봄바람 속별들은 하나 둘 사위어 간다

밤의 냄새 물씬 풍겨오는 늘푸레 슈퍼

사내들은 컵라면을 후후 불며 설움을 건져 먹고

저 멀리 24시 순대 국밥집에선 족발을 찾는

술 취한 소리가 들린다

주인 아저씨의 속눈썹에는

보름달 같은 눈곱이 무겁게 걸려 있다

진득진득한 땀이 밴 손으로

여기 잔돈, 내 손바닥만 바라보신다

힐끔, 아저씨 이마에 패인 주름이 깊다

동백도서관 열람실의 불이 꺼지려면 아직 멀었다

밤거리를 움실거리는 색바람은

지친 듯 내 어깨에서 머물렀다

 

한 겹 한 겹 밤의 페이지를 넘기다가

쨍그랑, 하고 주머니에서 떨어진 동전 한 닢

나는 달무리 진 잡목들 아래서 걸음을 멈춘다

검푸른 물결 속에 빠진 동전

나는 그저 내버려 두었다

반짝이는 동전 한 닢, 내일 아침 누군가의 등대가 되길 바라면서

나는 탐조등 같은 달빛을 따라 걸었다

 

 

 

 

홍삼

 

 

1

방 천장 한 구석이 석양으로 얼룩질 때면

스탠드의 창백한 빛이 이지러졌다

먼지가 부유하는 방

할머니는 책장을 더듬거렸다

귓가에 바늘처럼 꽂히는 기침소리

할머니의 둥근 설움이 들썩인다

책장에 처박힌 홍삼농축액이 8년째 농익어 가고 있다

할머니 손등에 핀 검버섯처럼 검게 썩어간다

 

2

치료시기를 놓친 기침들이 밤공기에 희석된다

차가운 수돗물에 부은 홍삼액이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소매 속으로 스며드는 샛바람이 쓰다

나는 옷을 여미고 다시 펜을 든다

 

3

오늘도 백지 한 움큼이 검은 잉크에 뒤덮였다

창문가로 새어들어온 달빛

내뱉지 못한 말들이 컵 속으로 수몰되면

건조한 먼지들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할머니는 컵 밑바닥에서 찰랑거리는 홍삼을 확인하고는

비로소 잠에 들었다

나는 또 한번 쓰디쓴 한숨을 고아냈다

공기마저 쌉싸름한 밤

나는 설움을 마시며 또 한번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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