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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온라인청소년백일장 예심통과자ㅡ윤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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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황
댓글 0건 조회 1,753회 작성일 17-06-21 09:35

본문


벽지처럼 뒤틀리는 공간마다

 

 

 

어둡게 끈적거린다

유리창에 사선으로 거미줄을 치는

네온사인이 푸른 피를 흘리고

나는 그걸 두 손으로 받아다가 등목을 한다

히터 바람에 녹은 벽지는 누덕거리며

현이 다 늘어진 콘트라베이스 소리에

내가 헐벗은 온몸으로 빈 공간을 긁는다

 

십자가 위에 햇빛처럼 걸린

굶주린 고양이의 성대를 뽑아다

야옹 하고 울어본다

세상에서 사라진 소리는

창백하게 녹아가며 웅덩이를 만든다

얼어붙은 바깥세상과 맞댄 손바닥엔

성에가 돋아나고 있다 나는 어쩐지

하염없이 격리된 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벽지는 아직도 조각나있고

그 안으로 몸을 비스듬히 구겨넣는다

기댄 등처럼 구부정하게 웅크린 밤을 본다

낮은 아다지오, 내게 트릴 섞인 알레그로를 쥐여주었던

악보가 아직도 소화되지 않은 채다

그 때 만들어 두었던 비 메이저 스카프

문득 그걸 두르고 올 걸,

남는 흔적이라면 적어도

채도가 높았으면 좋겠으니까

 

고양이가 자꾸만 주위 벽지를 긁어대며

실어증을 앓듯 기침한다

발톱은 녹아드는 허벅지 안쪽을 할퀴고

미리 새겨두었던 크레바스들 위로

열병처럼 지독하게 꽃피는 키스마크들

조난당하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내가 조난당하며

야옹

 

잃어버린 내 목소리를 고양이가 내고

 

언젠가 몸을 뉘였던 원목 독서대 위로

개미들이 줄을 서서 지나간다

머리카락처럼 구불거리는 그들의 인공심장은

일정한 또는 일정하지 않은 진자운동을 반추한다

귓속에서 꼬물거리며 기어나오며

벽지를 갉아먹는다 나는 그걸

이불처럼 덮어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흔들리는 다리뼈,

개미들은 자신의 인공심장을 유지하고 있다

자꾸만 얹어지는 낱말과 얼굴 반절이 잠겨버린

나는 단지 숨바꼭질을 하고 있는 거야

 

사람들은 자주 사랑하고 이따금씩 숨을 쉰다

간격 사이의 통증이 벽지에 묻는다

네온사인으로부터 흐르던 파란색 피를

정맥에 주사하면 더 빨리

벽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외롭게 사람이 된 고양이가 이족보행을 한다

코가 묻히면 그제야 나는 숨을 쉴 수 있다

결핍이 누가 찢었을지 모를

이불을

다시 덧대고 그루밍을 한다






연간 공중캘린더


 

 

해마다 야윈 목동이 발을 끕니다

소리에 놀라 자지러지는 어느 울음이

밤거리를 덮은 암막에 구멍을 냅니다

 

적막이 소란처럼 쏟아지는 자정

 

흘러내리는 빛마다 엮여 위성을 만듭니다

손끝으로 가늠하는 봄의 도형들,

별을 치는 목동의 꼬리가

궤도를 닦아 차례로 내어주면

 

우리는 타원형의 길에 각자의 숨을 덧칠하면서

대답 없을 물음을 끊임없이 던졌습니다

 

품 안의 별들이 고요히 잠들 때

나무와 잇닿은 손끝은 출생을 누설합니다

너희들은 자라서 한 편의 시가 될 거야

 

가로등이 손을 맞대어 안개처럼 눈을 가리고

그림자가 온 동네를 감싸면

간절하게 사랑했으나 침묵에 찬 오월의 밤

이제야 목동은 잠시 슬픔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별자리가 하염없이 연소하는 계절

 

목동의 발자국이 천정에 닿아

가장 밝게 노래합니다*

 

 

*봄철, 목동자리의 알파성가장 밝은 별은 천정에 가깝게 뜬다.






토성 관찰 보고서 위성 20821에 의한


 


각자의 푸른 밤을 보낸 위성들은

떨어지지 않는 성대를 갈라 스스로

빈집에 갇힌다

눈 볼 일 없는 사막의 모래가

젖어만 가고 허상은 별똥별이 떨어지듯

잔상을 남기며 더 진해지기만 하는데

비가, 뜨거운 비가 흩어지면

헤아리던 손가락마다 고리에 잘렸다

20801로 시작하는 번호가 일정하게 불리자

이름 없는 위성들이 차례로 아픈 배를 부여잡고

사전식으로 배열되어 컨베이어벨트에 오른다

수감된 구치소에서 통보되는 토성의 폭풍

존재하지 않는 발판을 밟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돌았던 궤도

위성마다 보이지 않는 낙인에 잠기면

적어도 달이 기울 때까지 유지될 새로운 궤도가

결정되는 날

우리가 몇 번 숨을 쉬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다

눈을 가리고 있던 검정색 리본을

벗겨내는 손길이 다정한 만큼, 다정한,

또 익숙해진 인두의 냄새가

다정함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위성들의 높낮이를 결정한다

납이 녹는 소리가 뭉쳐 텅 빈 구를 만들고

그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닿지 않을 토성의 고리에게

소리치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절규처럼

그러므로 조금 더 높이 올라가

눈을 맞고 싶다고 기어이 고백하는 것이다

첫 번째를 발음하는 건 언제나 아프다고

밀려난 파도가 매질 없는 공간을 부유한다

잘 떠나라 쓸쓸하게 눈먼 위성들아

우리는 단숨에 눈을 비비고

자꾸만 덜컹거리며 앞을 바라보면

환상통이 여전히 토성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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