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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6호/아라포럼/권순긍/고전문학 속‘사랑’의 다양한 변주變奏


권순긍


고전문학 속‘사랑’의 다양한 변주變奏



1. 죽은 자와의 사랑
(1)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혼
옛날이야기에 보면 귀신이 등장하여 산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는데, 우리 소설사에서 최초의 전기傳奇라는 『최치원崔致遠』이 그런 이야기다. 실존 인물 최치원에 얽힌 이야기로, 두 처녀 무덤인 쌍녀분雙女墳을 매개로 하여 살아있는 남자주인공 최치원과 죽은 처녀 귀신의 하룻밤 사랑을 다루고 있다.
남자 주인공 최치원은 당의 과거에 급제하고 율수현위溧水縣尉가 되어 초현관招賢館에 놀러 갔다가 두 자매의 무덤인 쌍녀분을 보고 그들의 한을 위로 하고자 시 한 수를 짓는다. 그 시를 보면,


꽃다운 정이 저승의 꿈 속에서도 통한다면              芳情儻許通幽夢
기나긴 밤인들 나그네 위로함에 어찌 방해가 될까   永夜何妨慰旅人
외로운 여관에서 만약 운우지정을 나눈다면            孤館若逢雲雨會
그대와 더불어 「낙신부洛神賦」를 이어 부르리          與君繼賦洛川神  


라 하여 죽은 처녀 귀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무덤의 주인인 8낭자, 9낭자는 율수현의 부자 장 씨의 딸이었는데 각각 18세, 16세에 돈 밖에 모르는 부모의 강요에 의해 소금장수와 차 장수에게 시집가게 되었다. 두 자매는 고민하던 끝에 죽음을 택해 꽃다운 나이에 사랑을 나눠 보지도 못하고 원귀가 되었던 것이다.
두 처녀는 시비 취금을 보내 최치원의 의사를 확인한 다음, 밤에 최치원을 찾아와 시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었지만,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다른 까닭에 눈물을 흘리며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최치원은 “동쪽 바다 건너 온 미미한 서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해 외로운 처지임을 드러내는 바, 바로 이 점에서 젊은 나이에 죽어 외로운 무덤의 주인이 된 두 처녀 원귀들과 서로 마음이 통했던 것이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고 안타까운 사랑이었지만 외로운 변방의 나그네와 처녀 원귀에게는 분명 위로가 됐으리라.
여기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사랑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만남 이상의 큰 의미는 가지지는 않는다. 서로가 미래를 약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각각 이승과 저승에 속해있기에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만 시로 전달할 뿐, 미련을 남기고 서로 이승과 저승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전해진 「수삽석남首揷石枏」은 죽은 자가 나타나 머리에 석남가지를 나누어 꽂고 서로 사랑을 나눈다는 낭만적인 얘기로 발전되었다. 그 전체내용은 이렇다.


신라시대에 최항이란 사람이 있어 그 자字가 석남石南이었다. 첩이 있었는데 부모가 금지하여 보지를 못하고 몇 달이 흘렀다. 돌연 죽어 8일이 지났는데 밤중에 최항이 첩의 집으로 찾아왔다. 첩은 그가 죽은 줄 모르기에 기뻐하여 맞으니 머리에 석남가지를 꽂고 첩에게도 나눠주며 말하기를
“부모가 너와 같이 사는 것을 허락해서 내가 너를 데리러 왔다.”고 했다. 드디어 첩과 같이 가서 집에 이르렀는데 최항이 첩을 밖에 두고 집에 들어간 지 오래되어 새벽이 되도록 소식이 없었다. 집안사람이 나오다 그녀를 보고 왜 왔느냐고 물어 첩이 이야기를 다 하니 집안사람이 말하기를
“최항은 죽어서 8일이 지나 오늘 장사를 치르려고 하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요.” 하니, 첩이
  “님께서 나와 더불어 석남가지를 나누어 꽂았으니 이를 알아보면 되겠지요.” 라고 하여 이에 관을 열고 시신을 보니 과연 머리에는 석남가지가 꽂혀있었으며 옷은 이슬에 젖어있었고 신발도 이미 신겨져 있었다. 첩이 그가 죽은 것을 알고 통곡하며 자신도 죽고자 하니 최항이 이에 소생하여 30년이나 같이 살았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첩에 대한 애틋한 사랑 때문에 죽은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여자에게 찾아와 생시와 다름없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얘기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죽은 자가 나타나 마음을 전할까? 죽은 자의 영혼이 사랑하는 사람의 주변을 맴돈다는 헐리우드 영화 『사랑과 영혼ghost』처럼 정말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그러기에 여자도 따라 죽고자 하니 남자가 소생하여 못 다한 인연을 이어간 것이다. 『최치원』에서처럼 스쳐가는 인연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 못 다한 사랑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한층 강렬한 사랑의 힘을 느끼게 한다.


  (2)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의 약속 혹은 절의節義
이런 연장선상에서 김시습金時習(1435~1493)의 『금오신화金鰲新話』가 위치한다. 5편 작품 중에서도 귀신과의 사랑을 다룬 ‘명혼소설冥婚小說’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 『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은 죽음도 뛰어넘는 더욱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김시습은 왜 여귀女鬼와의 사랑을 보여주고자 했을까?
우선 『만보사저포기』를 보자. 전라도 남원에 사는 양생이라는 젊은이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에 홀로 거처하면서 달 밝은 밤이면 배필을 그리워하는 시를 지어 읊었다. 하루는 부처님과 저포놀이(주사위 놀이의 일종)를 하여 이기게 되자 약속대로 배필을 구해달라고 한다. 그러자 한 아리따운 아가씨가 법당 안으로 들어오고 불상 뒤에 숨어 그녀를 지켜보던 양생은 첫 눈에 반해 육체적 관계를 갖기까지 이르지만 사실 그 아가씨는 왜구의 칼날에 죽은 귀신이었다. 새벽이 되어 여귀가 사는 곳을 같이 가던 중 그녀가 귀신인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는다. 거기서 여귀와 3일을 보내고 일단 헤어진 다음 죽은 딸을 위해 재齋를 지내러 가는 부모를 만나고 다시 처녀 귀신과 만나지만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다르기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양생은 여자를 위해 정성스레 장례를 치러준 뒤 지리산으로 들어가 종적을 감춘다.
『이생규장전』도 유사한 내용인데 어렵사리 결혼하게 되는 과정이 보태져 있다. 송도에 사는 이생이 태학에 공부하러 다니던 길에 최 씨 처녀를 만나 사랑의 시를 주고받으며 비밀스럽게 관계를 맺는다. 집에서 반대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부부가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홍건적의 난리를 만나 부인은 죽음을 당하고 폐허가 된 집에 돌아온 이생은 혼령이 된 아내를 맞이해 몇 년 동안 관계를 지속해 나간다. 몇 년이 지난 뒤 결국 아내는 떠날 수밖에 없었고 이생도 아내를 따라 생을 마감한다.
이 작품들에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사랑이 한 순간의 만남으로 끝나지 않고 절절한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주목해 보자. 비록 그것이 허구라 하더라도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할까? 사실 원귀冤鬼일 경우 숱한 전설에서 보이듯이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지 애절한 사랑으로 발전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이다.
이 두 작품의 여주인공은 각각 전란 중에 왜구와 홍건적에게 죽음을 당해 귀신이 되어 등장한다. 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이생규장전』을 보자.


이경二更이 되었을 무렵, 희미한 달빛이 지붕과 들보를 비쳐 주는데, 멀리 복도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다 이르러 바라보니 바로 사랑하는 아내가 거기 있었다. 이생은 그녀가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으나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에 반가움이 앞서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귀신인걸 알고 있음에도 오히려 반가워하는 것이다. 죽은 여주인공이 “제 환신도 이승에 되돌아와서 남은 인연을 거듭 맺으려”한다며 “그대께서는 허락하시겠습니까?”하자 이생은 “그것이 애당초 내 소원이오.”하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죽음도 뛰어넘는 사랑이라고 할까. 상대방이 산 사람이 아님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게다가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의 관계를 몇 년 동안 이어간다. 게다가 놀랍게도 사랑을 나누는 것이 “보통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여주인공은 왜구와 홍건적이라는 불의한 세계의 횡포에 의해 몸이 찢겨진다. 이 세상에서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주인공은 이를 인정치 않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에서 사랑을 이어 나간다. 하지만 그 사랑은 현실의 공간에서 오랫동안 지속될 수가 없었다.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다르기에 약정된 기간이 지난 뒤 남주인공은 단절된 세계의 저편에서 저승으로 향하는 여주인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자신도 뒤를 따른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이승에서의 삶은 의미가 없기에.
7년 동안 경주의 금오산金鰲山에 틀어박혀 김시습이 했던 작업은 바로 이것이다. 곧 ‘세조정변’이라는 불의한 세계의 횡포에 저항하며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왜구나 홍건적의 칼날 앞에 여주인공이 처참하게 살해됐듯이 김시습에게 단종을 폐위시킨 세조정변도 그러했으리라.
어떻게 할 것인가? 홀로 거대한 세상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능한 방법은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여 죽은 여주인공을 다시 살려내고 그로 하여금 부당한 생의 단절에 저항하게 하는 길이다.

즉 못 다한 생을 끈질기게 이어가게 하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비현실의 공간이라 할지라도 세계의 부당한 횡포에 저항하는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김시습이 판타지인 전기傳奇소설에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소설의 전범인 『전등신화剪燈新話』를 읽고 쓴 「전등신화 뒤에 쓰다.」라는 시에서 “말이 세상교화에 관계되면 괴이해도 무방하고/일이 사람을 감동시키면 허탄해도 기쁘니라.”고 했다. 세상을 깨우치고 또한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황당한 판타지라도 좋다는 것이다. 전기소설의 특징은 바로 이런 비현실성과 낭만성이기에 부당한 현실의 횡포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그 양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평생 뭉친 가슴을 쓸어 없애 주리라.”고 했다.
하지만 16세기 어숙권이『패관잡기』에서 지적했듯이 “전등신화를 답습했지만 생각하는 것과 언어표현이 보다 뛰어나니 어찌 청출어람에 그칠 것인가.”라 할 정도로 『금오신화』는 독창적이다. 『전등신화』의 대부분 작품은 행복한 결말로 끝나고 비현실적인 설정은 하나의 흥미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금오신화』는 거의가 비극적이며, 그것은 부당한 세계의 횡포로 인한 생의 단절을 거부하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된다.
그러기에 김시습은 그 아름답고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절의節義’를 드러낸다. 여주인공이 목숨을 버리고 정절을 지킨 것이나 또 이들을 받아들여 남은 생을 이어가다가 뒤를 따르는 남주인공의 행위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생규장전』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애처로워하고 슬퍼하여 그들의 절의를 사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절의’다.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그 사랑의 약속!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군주이거나 자신이 믿고자 했던 명분이어도 관계없을 것이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말하는 ‘님’과 같은 것이다. 어쩌면 죽음으로써 완성되는 그런 것이리라. 그러기에 더 아름답고 처절하다. 여주인공의 독백처럼 “절의는 중하고 목숨은 가볍다.” 했으니, 그 굳은 맹세야말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이어주는 믿음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 님의 부재不在, 그리움의 시간


(1) 상사相思의 정
두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 늘 같이 붙어 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같이 있고 싶어서 결혼을 한다고 한다. 요즘 같으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예전에는 남녀의 만남도 어려운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연애’라는 용어도 사실은 근대에 들어와 생긴 말이다. 남녀의 만남이 어려운 시절이기에 짧은 만남 뒤에는 으레 길고 긴 이별의 시간이 이어지곤 했다. “님을 생각한다”는 ‘상사相思’라는 말은 바로 그런 그리움의 표현이다. 사랑을 노래한 시가 중에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이별과 그리움, 즉 상사相思의 노래다. 멀리는 「동동動動」을 비롯한 고려속요로부터 조선시대 수많은 시조와 가사, 한시가 그런 그리움을 노래했다.
게다가 ‘충신연군지사忠臣戀君之詞’라 하여 님에게 버림받아 오매불망寤寐不忘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심정으로 임금의 총애를 갈구하는 방식이 시가의 한 양식으로 자리 잡았으니, 송강 정철의 「사미인곡」·「속미인곡」 등 이른바 미인곡美人曲 계열의 가사가 그렇다.
그러니 고려속요나 시조, 가사, 한시 할 것 없이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의 주류는 그리움, 곧 상사의 정인 것이다. 그 상사를 제목으로 내세운 가사 「상사별곡相思別曲」을 보자.
“인간이별 만사 중에/독수공방獨守空房이 더욱 섧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의 정서를 아주 전형적으로 그려내 하나의 패턴을 만들었다. 이를테면 “자나 깨나 깨나 자나/님을 못 보니 가삼이 답답/어린 양자樣姿 고은 소리/눈에 암암 귀에 쟁쟁/보고지고 임의 얼굴/듣고지고 님의 소리”같은 식이다. 그리운 님의 모습과 소리를 눈에 보일 듯, 귀에 들릴 듯 실감나게 표현했다. 결국 님을 찾아가 만나려하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 내 상사 아르시면                님도 나를 그리리라
적적심야寂寂深夜 혼자 앉아               다만 한 숨 내 벗이라
일촌간장一寸肝腸 구비 썩어               피어나니 가슴 답답
우는 눈물 바다 내면   배도 타고 아니 가랴
피는 불이 일어나면   님의 옷에 당기리라
사랑 계워 우던 울음   생각하니 목이 메고
교태嬌態겨워 웃던 우음  헤아리니 더욱 섧다


님의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사랑은 그래서 늘 확인한다고 하지 않던가. 이 노래의 작중화자는 확인할 수 없는 님의 사랑에 매달려 온 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함 뿐이라. 그래서 “나며들며 빈 방으로/오락가락 혼자 서서/기다리고 바라보니/이 내 상사 허사로다.”고 체념하기에 이른다. 그러면서도 “아마도 네 정情이 있거든/다시 보게 삼기소서”라고 여운을 남겨둔다.
이 노래는 이처럼 그리움을 잘 포장하여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특히 기방妓房에서 주로 애창되었다고 한다. 이별의 한과 그리움은 그 일을 겪어야 하는 당사자들에게는 고통이지만 타인에게는 객관화되어 유흥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가요가 왜 이별의 아픔과 그리움으로 채색되어있는지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 길고 긴 불면不眠의 밤
돌아올 기약 없는 님을 기다리는 상사相思의 긴 시간은 대개 불면의 밤으로 이어진다. 님이 나를 생각하는가? 혹은 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이다. 이른바 ‘전전불매輾轉不寐’가 그것이다.
맹산의 기녀 강강월江江月이 지었다는 시조를 보자.


기러기 우 밤에  홀노 이 업셔
잔등殘燈 도도혀고 전전불매  에
창窓 밧긔 굴근 비 소예 더옥 망연茫然여라


님 생각에 잠은 아니 오는데 기러기 울고 가고 창밖에 비가 오니 정말 처량하기 그지없다. 잠 못 이루는 밤에 기러기와 비는 처량한 배경으로 그만이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한시를 보자. 한시로 이름이 높은 부안 기생 매창梅窓의 「규중의 원망閨中怨」과 「가을밤秋夜」이다.


배꽃 눈부시게 피고 두견새 우는 밤    瓊苑梨花杜宇帝
뜰에 가득 달빛 어려 더욱 서러워라    滿庭蟾影更淒淒
님 그리워 꿈에서나 만나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相思欲夢還無寐
일어나 매화 핀 창에 기대니 새벽에 닭울음소리 들리네 起倚梅窓聽五鷄


이슬 내리고 푸른 하늘엔 별들이 성긴데    露濕靑空星散天
외마디 소리내며 기러기 구름가를 날으네   一聲叫鷹塞雲邊
매화가지 걸린 달이 난간까지 오도록    梅梢淡月移欄欖
거문고 뜯지만 잠은 오지 않네     彈罷瑤箏眠不眠


첫 수는 서럽도록 배꽃이 하얗게 핀 봄날 밤에 잠 못 이루는 정경을 노래한 것이고, 둘째 수는 기러기 울며 날아가는 가을밤에 잠을 못 이루는 정황을 그린 것이다. 첫 수에 나오는 배꽃, 달빛, 두견새 울음소리, 매화 등이 서럽도록 아름다운 봄날 밤을 수식하고 있다. 그렇다. 너무도 아름다운 봄날 밤에 같이 있어야 할 님이 없기 때문에 더욱 서글픈 것이다. 보색대비처럼 봄날 밤이 아름답기에 님의 부재는 한층 더 도드라져 보인다. 백호白湖 임제林悌(1549~1587))의 시 「이별의 말도 못하고無語別」에 묘사된 “배꽃에 걸린 달을 보고 눈물 흘리네泣向梨花月”의 정서와 서로 통한다.
봄날 밤의 정경이 화사하다면 가을은 한층 쓸쓸하리라. 그래서 님이 더 그리운 것이다. 찬이슬, 하늘에 성긴 별, 구름 가를 나는 기러기는 그대로 허전하고 쓸쓸한 심정을 대변한다. 이 쓸쓸한 밤, 님은 떠나갔던 것이다. 그래서 매화가지에 걸린 달이 난간에 이르도록 잠을 못 이루는 것이다. 거문고를 뜯으며 마음을 달래지만 님이 아니면 어떤 것도 위로가 될 수 없으리라. 이 허전하고 쓸쓸한 가을 밤, 잠 못 이루는 여인의 모습은 그대로 쓸쓸한 가을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 그 일부가 된다.
더욱이 님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순간에도 님에게 이런 모습을 전하고 싶어 한다. 님이 자신을 가련히 여겨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진주 기녀 매화梅花의 시조를 보자.


야심오경夜深五更토록 잠 못 이뤄 전전輾轉할 제
구즌 비 문령성聞鈴聲이 상사로 단장斷腸이라
뉘라셔 이 행색行色 그려다가 님의 압헤


님 그리워하는 고통이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절절하다. 하지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런 심정을 다만 님이 알아주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 애달픈 사랑의 넋두리여!
홍랑의 시조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님에게 각인시키고자 한다.


묏버들 갈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
자시는 창窓 밧긔 심거두고 보쇼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홍랑은 1673년 가을, 함경도 경성에 북도평사로 온, 삼당시인三唐詩人의 한 사람인 최경창崔慶昌(1539~1583)을 만나 군막에서 겨울을 함께 보냈다. 이듬해 봄 서울로 부임하는 최경창을 함경도 영흥까지 따라가 배웅한 뒤 함관령에 이르러 날은 어두워지는데 비까지 내리자 애달픈 사랑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이 노래와 함께 버들을 꺾어 최경창에게 보냈다고 한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풍속은 버드나무의 강인한 생명력과 잡귀를 쫓아내는 힘을 빌려 무사히 여행하기를 기원하는 액막이 주술에서 비롯되었지만, 원래의 의미는 퇴색되고 그 대신 이별의 비애를 상징하며 때로는 버드나무에 상대를 묶어서 머무르게 하려는 소망을 담은 것으로 변했다. 홍랑이 바라는 바는 바로 님을 묶어 자신의 곁에 두려는 바람이다. 그러기에 버드나무 가지를 선물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아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자신은 새로 난 버들잎이 되어 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것이리라.


  (3) 그리움을 노래한 황진이黃眞伊의 시조와 한시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다가 헤어지는 일은 일반 여염집 여자들로서는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규중을 벗어나 남자를 만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녀들은 수많은 남성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정을 주고 헤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남성중에는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기에 기녀들의 노래에는 이별의 한과 그리움의 정서가 유난히 많이 드러난다. 조선중기에 문학으로 이름 높은 황진이의 시조와 한시를 보자.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라 더면 가랴마 제 구야
보내고 그리 情은 나도 몰라 노라


당당하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였지만 사랑하는 정인情人도 있을 것이다. 짐짓 마음에 없는 척 하며 이별을 주도했지만 그리워하는 마음을 속일 수 없나보다. 있으라고 했으면 가지 않았겠지만 구태여 보내고 나서 가슴앓이를 한다. 그래서 보내고 그리는 정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어나는 것이라 한다. 여기서는 님을 보내고 난 뒤 후회와 그리움이 뒤섞여 나타나 있다. 아직 시간이 경과한 것이 아니기에 그리움의 농도는 그리 진하지 않다. 그 그리움이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시조에 이르러서이다.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엿관대
월침月沈 삼경三更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
 
자신은 신의를 어겨본 적이 없는데 님은 온다고 하고 소식이 없다. 밤은 깊어 삼경이 되었는데도 올 낌새를 보이지 않는다. 이제 오지 않나보다 체념하지만 가을바람에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가 나면 행여 님이 왔는가 하여 부질없이 내다보게 된다. 나뭇잎 하나 질 때마다 온 신경을 집중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그리움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짐짓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겠느냐고 둘러댄다. 님을 기다리는 초조함과 이를 떨치려는 여유로움이 묘하게 어울려있다. 그러기에 더욱 진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리움의 변주들이 한시 「반달을 노래함詠半月」에 이르러는 더 절실한 가락으로 바뀐다.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서  誰斷崑崙玉
직녀의 빗을 만들었는가  裁成織女梳
견우가 한 번 떠난후에  牽牛一去後
수심 겨워 벽공에 던져 버렸네  愁擲碧空虛


푸른 하늘에 떠 있는 반달을 보고 이를 직녀의 빗으로 환치한 다음 왜 직녀의 빗이 그곳에 있을까를 노래한 것이다. 1년에 한 번 밖에 만날 수 없는 견우와 직녀의 재회를 통해서 짧은 만남 뒤에 긴 이별의 시간을 감내해야 하는 직녀의 심정에 주목한 것이다. 직녀가 머리를 빗다가 문득 견우도 떠나고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곱게 단장을 하는가 하며 저 푸른 절망의 공간으로 수심 겨워 빗을 던져버렸다. 그것이 벽공에 떠 있는 반달인 것이다. 그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지르는 작중화자의 모습이 보인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서로 마음이 통했던 정인들이 있었건만 천한 신분의 기생이라 그들과 삶을 같이 하지는 않았다. 그저 잠깐 동안에 정을 나누고 헤어졌을 뿐이다. 특이하게도 가곡을 잘 부르는 선전관 이사종李士宗과 6년 동안 계약결혼을 하는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년은 황진이가 이사종 집에 가서 일가를 먹여 살렸고, 3년은 이사종이 황진이에게 와서 그렇게 하였다. 하지만 전 생애를 함께 해로하지는 않았다. 그러기에 황진이의 외로움과 그리움은 더했으리라. 뭇 남성들의 선망을 받으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지만 정작 자신과 삶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절대적 외로움의 표출이 바로 황진이의 노래인 것이다.


(4) 기약 없는 기다림과 절망
인간에게 가장 무기력한 것은 시간의 흐름 혹은 세월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시작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바위처럼 굳었던 맹세는 시간의 풍화 작용 속에서 바람에 날리는 모래로 변했다. 풍화된 시간! 이 이미지를 잘 포착해 낸 시가 이옥봉李玉峰의 「자술自述」이다.


근래 안부를 묻노니 어떠 하신지요   近來安否問如何
달빛 비친 창가에서 첩의 한은 많습니다  月到紗窓妾恨多
만약 꿈 속 내 영혼이 자취를 남긴다면  若使夢魂行有跡
문 앞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됐을 겁니다  門前石路半成砂


첫 행은 오지 않는 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 그리움은 이내 원망으로 바뀐다. 애초 동전의 양면처럼 그리움의 반대편엔 원망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오지 않을, 아니 올 가망이 전혀 없기에 그 원망은 점점 깊어진다. 잠 못 이뤄 몸을 뒤척인다는 표현보다 “첩의 한은 많습니다.”는 표현은 얼마나 간결한가. 그 속에는 작중화자가 하고 싶은 모든 말이 압축돼 있다. 여기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시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꿈 속 내 영혼이 자취를 남긴다면/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됐을 겁니다.”에 이르면 그 절망의 터널 속에서 지르는 외마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쉽게 생각하면 그리움의 간절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밤마다 그리움에 사무친 영혼이 집 밖을 배회하는 애절함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집 앞의 돌길이 반은 모래로 변할 정도로 영혼의 배회가 반복 됐음을 상기해보자. 얼마나 간절했으면 그 영혼이 돌길을 모래로 만들 정도로 배회했겠는가. 그 긴 심리적 시간동안 님은 오지 않았다. 이제는 모래로 풍화된 그 긴 기다림의 시간은, 단순히 그리움에 사무친다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돌길이 모래로 변했다는 이 기막힌 구절은 절망의 세월 속에 내지르는 외마디 비명이다.
허균許筠(1569~1618)이 지은 시화집 『학산초담鶴山樵談』에 의하면 이옥봉은 승지 벼슬을 하는 조원趙瑗의 첩이라 하며 “시가 매우 맑고도 굳세어서, 얼굴 단장이나 하는 부인들의 말투가 아니라.”한다. 이 시는 이옥봉이 관가의 소장을 대신 써준 것에 기인한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조원으로부터 소박맞은 후 남편의 부름을 기다리며 쓴 시이다. 하지만 조원은 끝내 옥봉을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 긴 기다림의 시간만큼 간절함이 들어있다.
옥봉의 다른 작품 「규정시閨情詩」를 보더라도 그렇다.


약속을 해놓고 님은 왜 이리 늦나  有約郞何晩
뜰에 핀 매화는 떨어지려 하는데  庭梅欲謝時
갑자기 가지 위의 까치 울음소리 듣고는  忽聞枝上鵲
거울 쳐다보며 헛되이 눈썹만 그리네  虛畵鏡中眉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그 긴 기다림의 시간 속에서 까치 울음소리를 듣고 반가워 혹시나 님이 오지 않을까 화장을 고친다. 하지만 님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제서야 “약속이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오지 않을 님인데” 라며 비로소 어리석은 자신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 시에는 님이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의 처절한 몸짓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절망의 기다림이 여성에게만 천형天刑처럼 주어진 것은 아니다. 남성 역시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에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조선 후기 시인인 담정藫庭 김려金鑢(1766~1821)에게서 찾을 수 있다.
담정 김려는 성균관 유생시절에 그의 문체가 패사소품이라는 이유로 이른바 ‘문체반정’에 연루되어 과거시험이 금지 당하고 유배에 처해지는 비운을 겪게 된다. 게다가 유배생활은 북쪽의 함경도 부령에서 최남단의 진해에 이르기까지 무려 10여년에 걸쳐 이어졌다.
그런데 부령에 있을 때 그곳의 기생인 연희蓮姬라는 여성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오가면서 동등한 친구로서 사랑을 나누었고 서로를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연희는 담정을 위하여 철따라 의복을 지어주고, 그 부모의 제삿날에는 직접 제사상을 차려주기도 하였다. 담정 역시도 연희를 위하여 「연희언행록」이라는 글과 수많은 시를 지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이렇다.


무얼 생각하나?    問汝何所思
저 북쪽 바닷가.    所思北海湄
연못에 붉은 연꽃 천만 송이 피었는데  塘裏蓮花紅萬蘤
연희가 그리워 보고 또 본다네   蓮姬之故亦愛爾
마음도 같고 생각도 같고 사랑 또한 같아서 同情同意又同憐
한 줄기에 난 두 송이 연꽃 부럽지 않았거늘 豈羨人間幷蔕蓮
사랑하던 사람이 원망스런 사람 되고  百年歡家變寃家
좋은 인연이 나쁜 인연 되었구나.  好因緣成惡因緣
하늘 끝 땅 끝에 산과 강 막혀있어  地角天涯隔山河
허공 중에 그리운 노래 죽도록 불러보네  畢身空唱離恨歌
전생에 무슨 죄 지어 이런 고통 겪는 건지  前生罪過他生戹
연희야 연희야 어쩌면 좋으냐   蓮兮蓮兮奈若何


이 시는 부령에서 다시 남쪽 진해로 유배를 옮겼을 때 그곳에서 연희를 그리워하며 지은 것으로 290수의 연작시 『사유악부思牖樂府』에 들어있다. 이제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처음엔 만날 수 없음을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그 고통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연희야 연희야 어쩌면 좋으냐”는 하소연이기보다 차라리 비명에 가깝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면서 내지르는 절규인 것이다.


3. 금지된 사랑, 그 황홀한 고통
(1) 금지된 사랑의 연대기
이 세상의 사람 수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것이 사랑이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마도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리라. 사회통념상 도저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그런 사랑이다. 하지만 어쩌랴,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을.  
우리 문학사에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의 서두를 장식하는 것은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에 실려 있는 「심화요탑心火繞塔」이다. 한 미천한 역졸이 선덕여왕을 너무 사모하여 결국 불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다.


지귀志鬼는 신라 활리역活里驛 사람이다. 선덕여왕의 아름다움을 사모해 슬퍼하며 우느라 모습이 야위었다. 여왕이 절에 가서 향을 사를 때 그 소식을 듣고 지귀를 불렀다. 지귀는 절로 가 탑 아래에서 행차를 기다리다가 홀연 잠이 들었다. 여왕은 팔찌를 빼서 지귀의 가슴에 얹어두고 궁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잠이 깬 지귀는 한참 동안 번민하고 절망한 끝에 마음의 불이 일어나 그 탑을 돌다가 불귀신으로 변했다. 이에 여왕은 술사에게 명해 주문을 짓게 했으니 이르기를,
“지귀의 마음 속 불이 몸을 태워 불귀신이 되었구나. 푸른 바다 밖으로 흘려보내 보지도 않고 가까이 하지도 않으리.”
했다. 그러므로 그때 풍속에서는 이 말을 문의 벽에 붙여 화재를 막았다.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여왕과 역졸 간의 사랑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반해서 넘볼 수 없는 여왕을 사모하게 되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너무 사모한 나머지 이제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밖에 없었다. 여왕을 만나야 하는 순간에 너무 긴장한 탓에 잠이 들어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 슬픔과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여왕이 가슴에 얹어준 팔찌를 징표삼아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불꽃이 자신을 태워버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참으로 상징적이다. 실제 이야기에서 마음의 불(心火)이 나서 온몸을 태웠다고 하는데, 금지된 사랑의 열병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그 목소리 외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결국 자신을 파멸로 몰고 가는, 그런 금지된 사랑이다.
『심화요탑』은 신분으로 인해 이루어질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신분이 아닌 다른 종류(동물)와의 금지된 사랑을 다룬 작품들도 있다. 이런 비현실적이고 낭만적인 작품들은 ‘전기傳奇’라는 장르로 전하는데, 같은 책 『신라수이전』에 실린 「김현감호金現感虎」가 그렇다. 호랑이 처녀가 흥륜사興輪寺에서 탑돌이를 하다 김현이라는 낭도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은 그의 손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복을 빌기 위해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는 과정에서 어떤 처녀와 눈이 맞은 김현은 정을 통하고 그녀의 집에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그 처녀는 사실 호랑이기에 김현이 집에 오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었다. 그래서 그녀의 노모는 김현이 사나운 오빠들에 의해서 해를 당할까 숨기기에 이른다. 이윽고 호랑이 세 마리가 들어와 사람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자 하늘에서 이들을 벌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처녀는 그 벌을 자신이 대신 받아 죽기로 작정하고 세 호랑이를 보낸 다음 김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처음에 군자가 우리 집에 욕되이 왕림하심을 부끄럽게 여겼으므로 거절하였는데 이제는 숨김없이 충심을 피력하고자 합니다. 천첩과 낭군은 비록 같은 류가 아니었으나 하룻밤의 즐거움을 얻어 그 부부의 은의恩義는 실로 무거웠습니다. 하지만 세 오빠의 악함은 하늘이 이미 싫어하였으니 이 한 집안의 모든 재앙은 제가 홀로 당하려 합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죽기보다는 차라리 낭군의 칼 아래에 엎드려 죽어서 덕을 갚아드리는 것만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삼국유사』)


하지만 김현도 비록 다른 유와의 비정상적인 관계이지만 부부의 예로써 “어찌 아내의 죽음을 팔아서 요행으로 한 때의 작록을 바라겠느냐”고 거절했다. 그럼에도 호랑이 처녀는 다섯 가지의 이익을 들어 김현에게 자신을 죽이기를 강권했다. 결국 호랑이 처녀는 성중에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사랑하는 김현의 칼을 빼어 스스로 자결함으로써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에 대한 보답을 한다. 이 이야기는 서로가 사랑했지만 다른 유이기 때문에 사랑이 이루어지기 불가능하고 비극적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을 담고 있다.  


(2)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로 맺어진 금지된 사랑
우리 문학사에서 금지된 사랑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은 바로 궁녀와 젊은 선비의 사랑을 그린 『운영전 雲英傳』일 것이다. 금지된 사랑은 남녀의 만남이 자유로워진 근대 이후에나 가능했을 법하지만 중세 봉건시대에도 남녀의 만남이 어찌 없었겠는가. 하지만 『운영전』처럼 궁녀와 선비의 만남은 아주 드문 경우이다. 운영의 주인인 안평대군의 말처럼 “궁녀가 한번이라도 궁문을 나가는 일이 있으면 그 대가는 죽음이다. 또 외부인으로 궁녀의 이름을 아는 자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기에 이들의 사랑은 죽음을 각오한 그런 애절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안평대군이 기거하는 수성궁으로 수려한 젊은 선비 김 진사가 찾아와 시를 짓는 자리에 궁녀들이 불려나가고 운영이 먹을 갈게 되면서 이들은 만난다. 김 진사가 글씨를 쓰다가 먹물 한 방울이 운영의 손가락에 잘못 떨어져 이들의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숙명적인 사랑이라고 할까. 서로는 무엇에 홀린 듯 상대방을 그리워하고 상사병에 걸리게 된다. 김 진사는 비교적 자유로운 처지에 있었던 젊은 선비였지만 수성궁의 궁녀로 있는 운영이 문제였다.
궁녀는 죽기 전에는 절대로 궁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불문율이다. 새장에 갇힌 새이며 화분에 심은 화초인 것이다. 주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지만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풀려날 기약 없는 감옥에 갇힌 처지인 것이다. 운영과 그의 친구 자란·은섬·옥녀·비취가 서궁으로 거처를 옮기자 운영이 “산사람도 중도 아니면서 이렇게 깊은 궁에 갇혀 있으니 이야말로 장신궁長信宮과 다를 바 없구나”라고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했을 정도다.
이런 운영에게 정말 벼락같이, 해서는 안 될 사랑이 찾아온 것이다. ‘손가락에 잘못 떨어진 먹물 한 방울’이 열일곱 처녀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궁녀의 처지를 자각하고 마음을 잡는 방법이 있겠지만, 운영은 그러지 않았다.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속으로 자신의 온 존재를 던진 것이다.
운영은 김 진사가 올 때마다 문틈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훔쳐보았고, 운영을 보지 못하는 김 진사는 몸이 날로 여위어갔다. 서로를 그리워하다 상사병에 걸린 것이다. 어느 날 운영은 “어찌하여 월하의 인연을 못 맺는가.”고 상대방을 갈구하는 시를 한 편 써서 자신의 금비녀와 함께 싸 김 진사에게 전해 줄 결심을 하게 된다. 왜 사랑은 늘 확인받고 싶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지를 시를 써서 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전할 지도 문제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저녁 안평대군은 술잔치를 크게 열어 손님들에게 김 진사의 재주를 칭찬하고 그가 지은 시를 보여주는 자리가 있었다. 운영은 옆방으로 가 벽 하나를 마주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곤 밤이 깊어지자 벽을 헐어 김 진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가슴 졸이는 그 부분을 보자.


밤이 깊어지고 손님들은 저마다 한껏 취했습니다. 저는 벽을 헐어 구멍을 조금 내고 들여다보았지요. 진사님도 제 뜻을 알고 구석을 향해 앉더군요. 제가 편지를 구멍으로 던졌더니 얼른 주워 숨기고 집으로 돌아 가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편지를 뜯어 시와 사연을 읽어보고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도무지 편지를 손에서 놓지를 못하셨답니다. 그리운 마음은 전보다 더해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이었답니다. 바로 답장을 쓴 다음 보내려고 했지만 전할 길이 없어 날마다 늘어가는 것은 슬픔과 탄식뿐이었답니다.


얼마나 기막히고도 당찬 행동인가!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무모하게 만든다. 김 진사 역시도 운영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무녀巫女를 찾아가고 그녀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편지를 전한다. 언제 어디서나 핸드폰만 누르면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거나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요즘 같은 첨단 디지털 시대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아날로그의 감동이다. 편지 한 장이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고 목소리인 것이다. 그래서 김 진사의 답장을 읽은 운영은 “갑자기 주변의 온갖 소리가 끊기었습니다. 기가 막혀 입으로는 말이 되질 않았습니다. 눈물이 흐르고 흘러 눈물이 다하자 피가 뒤를 이어 흘러 나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까봐 병풍 뒤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고 한다.
이제 서로의 사랑을 편지로 확인했으니, 그 다음은 서로가 만나는 일이 남아있다. 이른바 ‘밀회密會’다. 금지된 사랑에서 밀회는 얼마나 황홀하고도 위험스러운가. 이런 종류의 영화를 보다보면 공포영화보다도 더 무서운 부분이 바로 이 밀회장면이다.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열중할 뿐이고 주변의 아무것도 보려하지 않는다.
사랑의 편지를 전해주는데 무녀가 있었다면, 담장을 넘어 운영과 밀회하는 데는 흉악한 하인 특이 있었다. 특은 김 진사의 재산과 운영을 차지할 욕심으로 담을 넘는 방법을 일러주어 어쨌거나 김 진사는 수성궁의 높은 담장을 넘어 단짝인 지란의 안내를 받아 운영과 대면한다. 그 짜릿한 밀회의 즐거움이 어떻겠는가? 『운영전』은 그 부분을 이렇게 전한다.


등불을 끄고 우리는 곧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즐거움에 대해서는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밤은 금세 새벽이 되었습니다. 닭들이 날 새기를 재촉하고 있을 때 진사는 일어나 바로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부터는 날마다 어두울 때 담을 넘어와서 새벽에 돌아가시곤 했습니다. 나날이 사랑은 깊어지고 정은 두터워졌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만남을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자취가 남는 법. 눈이라도 온 날이라면 눈 위에 남는 발자국을 다 지우기는 어려웠겠지요. 진사의 출입을 알고 있는 궁녀들은 모두를 위험하다고 입을 모았지요.


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사랑의 행로인가. 마치 외줄타기 곡예를 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작품에서도 얘기하고 있듯이 사랑의 행로는 멈춰지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처럼 제한된 사랑이기에 더욱 그렇다. 이렇게 서로를 불태우면서 비극적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어느 날 김 진사의 시 중에서 “담장을 따라가며 몰래 풍류의 곡조를 훔치네”라는 구절이 안평대군의 의심을 사게 되고, 운영 또한 “운영의 시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뚜렷하구나, 전에 지은 시에서도 그런 자취가 보이더니, 도대체 네가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지난번 김 진사의 시에도 의심스러운 구절이 있었는데, 너 혹시 김 진사를 생각하고 있지 않느냐?”고 대군의 의심을 받게 되어 이들의 사랑에 위기가 닥친다. 둘이 밤에 도망할 것도 생각했지만 차마 결행하지는 못하던 차에 김 진사의 하인 특이 보물을 차지할 욕심으로 서궁西宮에 사람이 드나든다는 소문을 내어 화가 난 대군이 궁녀들을 죽일 작정으로 문초를 하기에 이른다. 이를 5명의 궁녀들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지어 올렸지만 모든 것이 드러난 운영은 결국 비단수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이를 알게 된 김 진사도 운영의 뒤를 따르니 이들의 금지된 사랑은 이렇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다.


4. 험난한 사랑의 길


(1) 신분차이에 의한 사랑의 수난

영원한 우리 고전 『춘향전』의 춘향은 기생이니 천민인 셈이다. 그런데 이몽룡은 양반이다. 이런 춘향이 명문대가의 양반도령을 만나 사랑을 이루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도 사는 처지가 다르기에  결혼하지 못하는 일이 흔한데 신분을 지고의 척도로 삼았던 중세봉건시대에는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다. 물론 기생이 양반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동등한 자격으로서 사랑을 하고 부부가 되는 것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기생을 사이에 두고 한량들이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는 ‘미기담美妓談’ 혹은 ‘탐화담探花談’은 조선 후기 문학작품에 수 없이 등장한다. 어느 고을에 원님으로 내려왔던 양반이 그곳의 아리따운 기생과 사랑을 나누었고, 임기가 다하여 서울로 올라간 양반은 기특하게도 자신을 위하여 절개를 지킨 그 기생을 첩으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일반적인 경우다. 어찌 보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냐고 할 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사랑인가는 여러모로 생각해 봐야 한다. 아름다운 꽃을 꺾듯이 예쁜 여자를 취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들 이야기의 제목으로 많이 등장하는 ‘탐화探花’ 혹은 ‘절화折花’라는 표현도 바로 그런 의미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정식 부인이 아닌 첩으로 삼았다는 대목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여성은 단지 남성의 노리개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기생을 가리켜 ‘말을 알아듣는 꽃’ 혹은 ‘말하는 꽃’이란 의미의 ‘해어화解語花’라 불렀다. 그런데 『춘향전』의 춘향은 기생으로서 양반의 노리개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살아가고자 했으니 여기에 따르는 사랑의 길이 얼마나 험난했겠는가.
처음 그네 뛰는 춘향이를 보고, 아름다움에 취한 이몽룡은 춘향을 기생의 딸이라 잠깐 즐기는 대상으로 밖에 여기지 않았다. 기생의 딸이니 데리고 놀아도 별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춘향은 이런 이몽룡의 초대를 매몰차게 거절함으로써 자존심을 지킨다. 결국 사또 자제 이몽룡이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고 자신의 입장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처음으로 난관에 봉착한 것은 첫날밤을 보낼 때이다. 이몽룡은 춘향의 미색에 반해서 ‘백년언약’을 맺고자 하지만 신분이 다르기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내 저를 초취初娶같이 여길 테니 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염려 말고 장가 전이라 해도 염려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박대행실 있을 손가, 허락만 하여주소.”라고 재차 다짐한 뒤 불망기不忘記를 써 주고서야 허락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춘향이는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 번 탁정托情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독수공방 홀로 누워 우는 내 아니고 뉘가 할고. 그런 분부 마옵소서.”라고 자신의 신분처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 그러기에 둘의 사랑이 구체적인 부부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상당히 험난한 장애가 놓여있는 것이다. 불망기라는 것도 당시의 관습으로 볼 때 사회적 구속력을 지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불안한 사랑은 변학도가 내려와 수청守廳을 강요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난에 직면한다. 남원에 내려온 변학도는 만사를 제쳐놓고 ‘기생점고’부터 하고 춘향을 찾는다. 춘향의 이름이 없어 물어보니 이 도령과 백년가약을 맺고 수절하고 있다고 하자 “이놈! 무식한 상놈인들 그게 어떠한 양반이라고 엄부시하嚴父侍下요, 장가도 안 든 도련님이 기생 작첩作妾하여 살자 할까, 이놈! 다시는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어서는 죄를 면치 못하리라!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다가 못보고 그저 말랴. 잔말 말고 불러오라!”고 지시하기에 이른다. 기생명부에 없으니 명부에 집어넣어 데려오라고까지 한다. 변학도는 춘향을 양반의 노리개인 기생으로 보고 이런 행위를 서슴지 않고 한 것이다.
춘향을 대하는 이몽룡과 변학도는 그 태도부터가 이렇게 다르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이몽룡과 우격다짐으로 수청을 강요하는 변학도, 바로 이 차이점이 춘향이 그토록 강하게 수청을 거부한 근거가 된다. 그러기에 춘향의 수청거부는 이몽룡을 위해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보다도 바로 이런 무자비한 폭압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것이 춘향에게는 곧 자신의 사랑을 지켜 나가는 것이다. 변학도가 기생이 무슨 정절이 있냐고 조롱하자 춘향은 다음과 같이 대꾸한다.


충불사이군忠不事二君이요 열불경이부절烈不更二夫節을 본받고자 하옵는데 연차 분부 이러하니 생불여사生不如死이옵고 열불경이부烈不更二夫오니 처분대로 하옵소서. (중략) 충효열녀 상하있소. 자상히 들으시오. 기생으로 말합시다.(「열녀춘향수절가」 84장본)


춘향이가 강변하는 것은 봉건적 덕목인 ‘열烈’인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사랑을 위해서 수청을 거부하겠다는 말이다. 곧 자신의 인간적 권리를 주장한 셈이다. 이런 춘향의 항변에 대해 “지나가던 새도 웃겠다.”거나 “기생이 정절이면 우리 마누라는 기절”이라고 단상에 있는 변학도가 비아냥거릴 정도로 당시 기생은 인간대접을 못 받았다. 때문에 당시 실정법에 해당되는 ‘열’이라는 명분을 통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야 했다. 당시의 봉건적 덕목을 이용한 것으로 춘향이 강조하는 ‘열’은 실상 한 인격체의 권리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외피外皮역할을 한다. 그러기에 추향이 주장하는 ‘열’은 그 핵심에 있어서는 봉건적 덕목과 상반되는 당당한 인격체로서의 자유의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왜 춘향은 죽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변학도의 수청을 거부했을까?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매를 맞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거지꼴로 내려온 이몽룡을 본 후로는 살아날 희망을 포기하고 사후처리까지 부탁한다. 아주 독하게 마음먹고 여러 유혹도 뿌리친다. 변학도는 이방을 보내 “네가 수청을 들면 관가의 창고 돈이 다 네 돈이 될 것이다.”하며, 어머니 월매는 “이번만은 눈 질끈 감고 수청 한 번 들어라.”한다. 실상 양반의 노리개 역할을 해야 하는 기생에게 잠자리 한 번 하는 것쯤 그리 대단할 것도 없다. 하지만 춘향은 양반의 노리개가 되어 구차하게 사느니 당당하게 죽겠다고 한다. 춘향이 바라는 것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지어미로 한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양반의 노리개가 돼야 하는 신분적 굴레는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여기에 당당히 맞섰던 여자가 바로 춘향이다.
한편 『심생전沈生傳』은 양반과 기생의 관계가 아니라 양반과 중인 신분 여자의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심생은 서울의 양반으로 운종가雲從街에서 임금의 행차를 구경하고 오던 길에 아리따운 처녀를 보고 반하여 그녀를 따라가 사는 집을 확인한 다음 매일 그 처녀의 집 담을 넘어가 방문 밑에서 밤을 지새고는 새벽에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기를 무려 30일이나 계속하였다. 30일이 되던 날 처녀는 심생을 방으로 들어오라 한 다음에 부모를 불러 그간의 사정을 얘기한 다음 심생을 따르겠노라고 했다. “제가 만일 도련님을 따르지 않으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시어 복을 제게 주시지 않을 거예요. 저는 마음을 정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근심하지 마옵소서. 아! 저는 부모님께서 연로하시고 동기간이 없으니 시집가서 데릴사위를 맞아 살아계실 때에 봉양을 다하다가 돌아가신 뒤에 제사를 모시면 제 소망에 족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제 일이 뜻밖에 이렇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하늘이라. 말해 무엇 하겠습니가?”라고 당당하게 말한 다음 심생과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심생이었다. 여자의 집에서는 사위로 여겨 의복을 마련해주고 모든 대접을 다해주는데 심생은 집에 얘기도 못하고 밤에 나갔다 새벽에 들어오는 일을 계속하였다. 당연히 집에서는 심생의 행실을 의심하여 절에 들어가 글을 읽으라고 명을 내렸고 할 수 없이 책을 싸들고 북한산성으로 들어갔다. 기다리던 여자는 결국 병이 들어 죽기에 이르러 유서가 된 편지를 심생에게 보냈다. 그 편지는 신분 차이 때문에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대해 여자의 세 가지 한을 담고 있는데 내용은 이렇다.


소녀 본래 무남독녀로 부모님의 사랑하오심을 받자와 장차 부모님께서는 적당한 사위를 구하여 만년의 의지를 삼고 후일의 계책을 마련코자 하였더니 호사다마好事多魔라 뜻밖에 악연에 얽히였군요. 넝쿨진 풀이 외람되게 높은 소나무에 붙었으니 서로 혼인하는 것은 이제 바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소녀가 아무 낙이 없이 시름하다가 마침내 병으로 죽음에 이른 까닭이옵고 이제 늙으신 부모님은 영원히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사오니, 이것이 첫째 한이옵니다.
여자가 출가하면 비록 종년이라도 문에 기대어 손님을 맞는 기생의 몸이 아닌 다음에야 남편이 있고 또 시부모가 있겠지요. 세상에 시부모가 모르는 며느리가 있사오리까? 소녀 같은 몸은 남의 속임을 받아 몇 달이 지나도록 일찍이 도련님 댁의 늙은 여자 하인 하나도 보지 못하였사오니 살아서 부정한 자취를 남겼고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는 귀신이 될 것이라 이것이 둘째 한이옵니다.
부인이 남편을 섬김에 음식을 장만하여 공궤하고 의복을 지어서 입으시도록 하는 일보다 큰 일이 있을까요?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한 번도 도련님께서 한 사발의 밥도 집에서 자시지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도련님을 모시기를 다만 잠자리에서 뿐이었습니다. 이것이 셋째 한이옵니다.
그 외 상봉하온지 얼마 아니 되어 문득 길이 이별하옵고 병으로 누워 죽음이 다가왔으니 대면하와 영결하지 못하옵는 따위는 아녀자의 슬픔일지언정 어찌 족히 군자에게 말씀드리오리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러 창자가 이미 끊어지고 뼈가 녹으려 하옵니다. 비록 연약한 풀이 바람에 쓰러지고 시들은 꽃잎이 진흙이 된다 하온들 끝없는 이 원한은 어느 날이라 다하리오. 아! 창 사이의 밀회密會는 이제 그만입니다.(『심생전』)


그 세 가지 한은 늙으신 부모님들이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 시댁에서 인정받지 못한 일, 남편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일이다. 모두 정식으로 혼인 하지 않았기에 발생한 일이다. 여자는 자신에 대한 애정을 가늠해 본 다음 심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남편으로 인정하고 부모에게도 그렇게 하겠노라 선언했지만, 심생은 감히 부모에게 얘기도 못하고 머뭇거리다 여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심생이 여자와의 일을 집에 정식으로 얘기하지 못한 것은 여자가 중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처녀는 중인 기술직인 호조戶曹의 계사計士 로 있다 은퇴한 집의 외동딸로 돈은 많아 부유했지만 양반과는 혼인할 수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니 심생은 혼인이 아니라 매일 몰래 만나는 밀회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처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심생은 붓을 던지고 무변으로 나갔지만 일찍 죽고 말았다 한다. 이 둘의 사랑은 심생의 우유부단함도 원인이지만 결국 양반과 중인이라는 신분 차이 때문에 깨지고 만 셈이다.


 (2) 방해자의 등장
서사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애정수난 과정에서 방해자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춘향전』의 경우도 신분으로 인한 애정수난이기도 하지만 변학도라는 방해자가 나타나서 그 일을 직접적으로 수행하기에 현실화된 것이다. 여기서 방해자가 어떤 성격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춘향전』의 변학도는 탐관오리의 전형으로 위치한다. 그러기에 춘향에 대한 수청강요는 부패한 봉건권력의 횡포라는 의미도 갖는다. 통속 소설에서는 방해자가 여러 명 등장하여 역사적인 의미보다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로 작용한다. 방해자가 보다 적극적이고 교묘하게 활약하는 작품으로는 『춘향전』과 비슷한 『옥단춘전』이 있다.


평양감사 김진희와 이혈룡은 죽마고우로서 누구든지 벼슬을 먼저 하면 서로 돕기로 약속한 사이다. 김진희가 과거에 먼저 급제하고 평양감사가 되자, 이혈룡은 그를 찾아 갔지만 냉대만 받고 친구인 김진희에 의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이때 그 자리에 있던 기생 옥단춘은 뱃사공을 돈으로 매수하여 이혈룡을 살리고 자신의 집에서 기거하게 한다. 그 뒤 서울로 돌아온 이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으로 가난한 신세를 면하고 풍족하게 살아가게 된다. 옥단춘의 권고로 과거에 응시한 이혈룡은 장원급제를 하게 되고 평안도 암행어사로 제수 된다. 걸인복색으로 평양에 내려가 옥단춘을 만나 보고, 이튿날 평양감사의 잔치 자리에 참석한다. 평양감사의 이름을 부르고 잡혀나와 옥단춘과 같이 한 배에 실려 죽을 처지에 이르게 되자 암행어사 출도를 외치고 상황은 역전된다. 이혈룡은 감사를 처단하려 한 친구의 정을 생각하고 용서해 주었으나 갑자기 하늘에서 번개가 치더니 감사를 없애 버렸다. 그 뒤 이혈룡은 평양감사가 되어 어진 정치를 펼치고 우의정까지 올랐으며 옥단춘은 정경부인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렸다.


이상의 줄거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춘향전』과 다른 점은 방해자인 변학도의 자리에 이혈룡의 친구인 김진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방해자가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기보다 통속적 흥미를 주는 장치로 나타난다. 평양감사 김진희는 친구와의 우정을 저버리고 권세를 휘둘러 그를 죽이려 했고, 뒤에 그가 살아있음을 알고 그를 살린 옥단춘과 같이 죽이려고까지 했다. 『춘향전』에서는 변학도의 모진 고난을 춘향 혼자 감당해야만 했으나 여기서는 두 남녀가 같이 겪어간다. 방해자의 제거도 변학도처럼 탐관오리에 대한 징치의 의미 보다는 의리를 저버린 친구에 대한 징벌의 의미가 더 크다.

그런데 그 방해자가 부모인 경우에는 정말 극복해나가기가 쉽지 않다. 『채봉감별곡』이 그런 경우다. 우선 작품의 줄거리를 보자.


평양에 사는 김진사의 딸 채봉이는 후원에서 秋色을 구경하다 강필성을 만나고 서로 좋아하게 되어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한다. 채봉의 어머니인 이부인도 기꺼이 승낙하고 혼약을 맺기로 약속한다. 한편 사위도 볼 겸 벼슬도 알아볼 겸 서울에 올라갔던 김 진사는 당시 세도가 허 판서에게 돈 만 냥을 바치고 과천 현감을 벼슬자리를 사고 딸을 허 판서의 첩으로 줄 약속을 하고 내려온다. 그래서 식구들을 데리고 상경하나 채봉은 도중에서 도망쳐 나오고 김 진사 내외는 화적을 만나 재산을 몽땅 털린다. 나머지 5천 냥도 바치지 못하고 딸까지 앓어버린 김 진사는 허 판서의 옥에 갇히게 되고 이부인은 채봉을 찾으러 평양으로 내려온다. 
채봉은 재상가의 첩으로 들어가는 것을 한사코 반대하고 몸을 팔아 기생이 되어 몸값 5천냥을 이부인에게 준다. 송이松伊로 이름을 바꾼 채봉은 강필성과 화답한 한시 구절을 문제로 내어 강필성을 다시 만나게 된다. 채봉의 재능을 인정한 평양감사 이보국은 채봉을 면천시켜 서기로 일하게 하고, 이것을 알게 된 강필성도 이방으로 들어오게 된다. 결국 이 둘은 감사의 주선으로 부모를 찾아 혼례를 올리게 된다.


작품은 봉건시대 말기 부패한 세도정권에 맞서는 젊은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채봉의 아버지인 김 진사는 부패한 세도가 허 판서에게 돈을 주고 벼슬을 사며 딸까지 허 판서에게 첩으로 주어 호강을 하겠다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채봉도 부모의 처사에 기가 막혀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뒤 되기는 바라는 가가 아닙니다.”라고 당당하게 세도가의 첩이 되라는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한다. 하지만 싸울 수 없는 일. 오죽했으면 “여자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한 번 정한 일이 있으면 비록 천자의 위력으로도 앗을 수 없는데 부모는 어찌 하신단 말이냐?”고 하소연할 정도다.
그것이 단순한 가부장적 권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문제가 비교적 단순할 텐데 극도로 타락한 세도정권과 맞물려 있기에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채봉은 말하자면 가부장적 권위와 동시에 봉건지배층의 횡포와도 맞서 싸우는 셈이다.
그 방법으로 우선 서울 가는 길에 도망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모의 말씀을 따라 재상가의 첩으로 들어가는 길이 자식된 도리인 효라는 것은 낡아빠진 봉건윤리일 뿐이다. 그러기에 이 길을 거부하고 기생이 되는 길을 택한다. 곧 돈을 벌기 위해 기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저는 기생이 될지언정 재상의 첩은 싫어요.”라고 말한다. 기생이 되는 것은 돈 오천 냥을 마련해 허  판서의 옥에 갇힌 아버지를 빼내기 위한 편법이면서 동시에 재상의 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결국 채봉은 기생이 되어 장필성과 주고받는 시를 문제로 내어 사랑하는 님을 만난다. 여기서는 기생의 신분이 크게 문제로 부각되지 않는다. 애초부터 기생의 신분으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 허 판서의 옥에 갇힌 아버지를 빼내려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생으로 몸을 팔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필성도 채봉의 사연을 듣고 “정처正妻로 맞을 것이다.”고 선언한다. 사회적 통념이 어떻든 정실로 맞이하겠다는 다짐이다.
채봉은 사랑의 방해자인 아버지로부터 몸을 빼내 부모와 헤어질 것을 결심하면서까지 사랑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간다. 그래서 평양감사에게 자신의 몸을 빼내주길 간청하여 평양부의 서기로 들어온다. 장필성 역시 채봉을 만나기 위해 평양부의 이방으로 들어온다. 이방은 대개 중인들의 차지여서 양반들이 하지 않지만 장필성은 채봉을 만나기 위해 그 일을 자원한 것이다. 결국 이들은 평양감사 김보국의 도움으로 사랑을 이루게 되지만 서로가 상대방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을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채봉과 장필성이 이루어가는 사랑의 의미는 단순한 남녀의 애정문제가 아니라 ‘개성존중’, 더 나아가서는 그릇된 가부장권이나 부패한 세도정권과의 싸움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만큼 이들이 추구하는 사랑은 값지다.


(3) 아슬아슬한 삼각관계
두 여자(혹은 남자) 사이에서 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삼각관계’라고 부른다. 이 역시도 진정한 사랑을 이루어 나가는데 걸림돌이 된다. 방해자가 돈이나 권력을 통해 힘을 행사한다면 삼각관계는 주인공의 마음속으로 들어와 사랑의 대상을 혼란스럽게 한다. 신파극 「장한몽」에서 이수일과 심순애 그리고 김중배가 삼각관계를 펼치더니 이광수 소설에 와서는 전매특허처럼 빈번하게 등장했다. 「흙」이나 「사랑」 등 애정이 개입된 작품은 여지없이 삼각관계가 드러난다. 이 삼각관계는 대중적인 작품에 많이 나타나 작품을 통속적으로 몰고 간다. 즉 사랑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대신 인물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장치로 많이 활용됐다. 독자나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기 위해 대중적인 멜로드라마는 거의 대부분 이 삼각관계를 활용한다.
삼각관계는 실상 근대에 들어와서 대중적인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등장한 문화적 장치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거기에는 분명 대중들의 취향에 부합하는 요소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 돈/사랑, 신식여자/구식여자 등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오늘날 드라마를 보면 성공/사랑이나 돈/사랑의 도식이 많이 등장한다.
우리 고전에도 드물지만 이러한 삼각관계를 다룬 작품이 있으니 권필權韠(1569~1612)이 지은 『주생전周生傳』이다. 예전에는 남녀가 스스로 만나 자유로운 사랑을 나누는 경우도 드물었지만 서로 사랑의 약속을 하게 되면 그것은 도저히 깰 수 없는 맹세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랑을 놓고 두 여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은 참으로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주생전』에서는 다르다 우선 작품의 줄거리를 보자.


주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태학에 다녔지만 연이어 과거에 낙방하자 과거를 포기하고 장사꾼이 되어 배를 사서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어느 날 배를 띄우고 잠이 들었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고향인 전당錢塘에 와 있었다. 주생은 거기서 어릴 적 친구인 기생 배도를 사랑을 느끼고 드디어는 부부로서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몰락한 양반 주생과 기생인 배도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다. 주생은 이웃에 사는 승상의 딸인 선화를 보고 첫 눈에 반해 애를 태우다가 선화의 동생 국영을 가르치게 되어 선화와 관계를 맺는다. 주생은 선화와 백년해로를 기약하고 매일 밤 밀회를 나누나 배도에게 이 사실이 탄로나서 다시 배도에게로 온다. 주생이 배도의 집에 머무르는 사이 국영이 뜻하지 않게 죽고 배도마저 병으로 시름시름 앓다 죽는다.
갈 곳이 없게 된 주생은 호주湖州에 사는 친척 장노인에게 몸을 의탁했는데 그의 주선으로 다시 선화를 만나 혼약을 맺게 된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혼약을 손꼽아 기다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주생은 명나라 구원병으로 여기에 참전한다. 다음 해 봄 명나라 군사들은 왜적을 대파하고 경상도까지 추격했지만 주생은 병이 들어 송도松都의 객사에 머물던 중 작자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 고전소설에서 남녀의 애정은 상호 독점적이어서 다른 상대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들에 의해 애정수난을 겪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애정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애정이 변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수난을 당하게 되기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여주인공이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사랑의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방해자가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자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상대가 나타나 애정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배도와의 애정으로 본다면 방해자일 수도 있으나 주생을 중심으로 본다면 그 상대가 바뀐 것이다. 주생이 선화를 만나는 그 장면을 들여다보자.


주생은 몸을 숨긴 채 다가가서 숨을 죽이고 엿보았다. 금빛 병풍과 채색 담요가 황홀하여 눈이 부시었다. 부인은 붉은 비단 적삼을 입고 백옥 방석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나이는 50정도 되어 보였으나 지긋이 한 쪽 눈을 감고 돌아보는 태도에는 아직 예전의 어여쁜 모습이 남아 있었다. 나이가 14,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부인 옆에 앉아 있었는데, 구름처럼 고운 머릿결에는 푸른빛이 맺혀있고 아리따운 뺨에는 붉은 빛이 어리어 있엇다. 밝은 눈동자로 살짝 흘겨보는 모습은 흐르는 물결에 비친 가을 햇살 같았으며, 어여쁨을 지어내는 아름다운 미소는 봄꽃이 새벽이슬을 머금은 듯했다. 배도가 그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배도는 그 소녀에 비하면 봉황에 섞인 갈가마귀나 올빼미요 옥구슬에 섞인 모래나 자갈일 뿐이었다. 그 소녀를 본 주생은 넋이 구름 밖으로 날아가고 마음이 공중에 뜬 듯이 황홀하였다. 그래서 몇 번이나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 들어갈 뻔했다.


바로 전날 배도와 같이 부부가 될 것을 약속하고 “푸른 산이 늙지 않고 푸른 물이 영원히 흐르듯이 내 마음 변치 않으리라. 만일 나를 못 믿는다면 하늘에 떠 있는 저 달에 맹세하리라.” 했던 주생이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사랑의 대상이 바뀔 수 있을까? 하지만 어쩌랴. 이런 것을 두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주생은 선화를 본 순간 백년해로를 약속한 배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을 느낀 것이다. “한 번 선화를 본 후부터는 배도를 향한 마음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한다. 그래서 선화의 동생 국영을 가르친다는 구실로 그 집에 기거하면서 담장을 넘어가 드디어 선화와 관계를 갖기에 이른다.


선화는 짐짓 못 들은 체하면서 즉시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주생은 방안으로 들어가 선화와 동침을 하였다. 선화는 나이가 어리고 몸이 허약해 정사를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옅은 구름 속에서 가랑비가 내리고 버들가지가 하늘거리며 꽃이 교태를 부리듯이 향기로운 울음소리로 속삭이는가 하면, 잔잔하게 미소를 짓거나 얼굴을 살짝 찌푸리곤 하였다. 주생은 벌이 굴을 탐하고 나비가 곷을 사랑하듯이 정신이 혼미하고 화락하여 날이 새는 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리만치 이들의 첫날밤은 아름답고도 달콤하다. 그 뒤로는 “주생과 선화는 하룻밤도 빠지지 않고 날이 어두워지면 만나고 밝아오면 헤어졌다”고 한다. 두 여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사랑의 줄타기가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배도와 선화도 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주생이 배도에게 간 사이 선화는 주생의 소지품을 뒤져 배도가 주생에게 준 시詩를 발견하고 질투심에 못 이겨 그 시를 먹으로  새까맣게 지우고 나서 대신 자신이 쓴 시를 넣어주고 온다. 그런데 배도도 주생의 소지품을 열어보고 자신의 시가 먹칠이 된 것과 선화의 시를 발견하고 화가 나서 선화를 시를 없앤다. 그리곤 주생을 추궁해 선화와의 관계를 실토하게 한다. 시는 요즘 같으면 사랑의 문자메시지에 해당한다. 자신의 숨길 수 없는 심정을 아름답게 적어 상대에게 준 것이니 두 여자가 서로 질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요즘보아도 신선할 정도로 통속적인 요소는 물론 두 여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주생과 그 상대역인 배도, 선화의 미묘한 감정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오랜 친구였던 기생 배도와의 만남, 서로 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 신분차이를 극복한 백년해로의 약속, 재색을 겸비한 승상의 딸 선화의 출현, 선화와의 은밀한 관계, 두 여자의 질투, 사태를 알아낸 배도, 국영과 배도의 죽음, 어렵게 이루어낸 선화와의 혼약, 조선으로의 파병과 와병, 기약 없는 만남 등 이루어질 듯 하다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이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처음 배도와 사랑을 나누었으나 새로운 대상인 선화가 나타나고 두 여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 결국 배도가 죽고 주생도 먼 친척에게 몸을 의탁했다가 다시 극적으로 선화와 인연이 닿아서 혼약을 약속했으나 조선으로 파병하고 병이 나서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품은 통속적인 장치들을 활용하여 흥미와 동시에 아슬아슬하고도 안타까운 사랑의 행로를 보여줌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알려준다.


5.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事―에로티시즘의 팽창


(1) 가식 없는 남녀의 성性
남녀가 사랑을 하게 되면 늘 같이 있고 싶고 서로 간에 정情을 나누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른바 ‘육체적 관계’를 갖길 원하는 것이다. 수많은 문학과 예술에서 표현된 ‘에로티시즘eroticism’이 바로 그것이다.
이옥李鈺(1680~1813)은 19세기 시정의 풍속을 시로 쓴 『이언諺』에서 “대저 천지만물에 대한 관찰은 사람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고, 사람에 대한 관찰은 정情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묘한 것이 없고, 정에 대한 관찰은 남녀의 정을 살펴보는 것보다 더 진실된 것이 없다.”고 하며 “대개 정이란 ……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모두 그 정의 진실됨을 살펴볼 수 없다. 그런데 유독 남녀의 정에 있어서만은 곧 인생의 본연적인 일이고, 또한 천도天道의 자연적인 이치인 것이다.”고 하였다. 남녀의 정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의 가장 가식 없는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이옥은 사랑에 관한 시를 ‘아조雅調’, ‘염조艶調’,‘탕조宕調’, ‘비조’로 나누었다. 그 중 탕조에 남녀의 정이 핍진하게 그려져 있다. ‘탕’이란 “규범에서 일탈하여 막을 수 없음을 이른다.”고 한다. 자연 일반 여염집 여자들보다 기생들과의 사랑을 노래한 시가 대부분이다. 그 중 한 수를 본다.


임이여 내 머리에 대이지 말아요 歡莫當儂髻
옷에 동백기름 묻어나요  衣沾冬栢油
임이여 내 입술 가까이 하지 말아요 歡莫近儂脣
붉은 연지 윤기가 흐를 듯해요  紅脂軟欲流


화장을 진하게 한 기생과 육체적 접촉을 하고 싶어 하는 한량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기생은 앙탈을 부리면서도 싫지 않은 눈치다. 하지만 화장이 엉망이 될까봐 걱정하는 듯하다. 이 시에는 남녀의 감정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어 당시 남녀의 정에 관한 풍속도를 잘 보여준다. 


(2)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
남녀의 사랑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장르로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고려속요일 것이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에 의해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매도됐지만 남녀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으로는 그 이상이 없을 정도로 빼어나다. 
고려속요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당시 유행하던 지방과 도시의 유행민요(지금의 유행가)들이 궁중의 잔치자리에 어울리는 궁중무악으로 개편되면서 생겨났다. 그러기에 민요적인 소박함이 두드러진 노래가 있는가 하면 궁중의 화려한 잔치자리에 어울리는 노래도 있다. 격렬한 사랑의 감정을 드러낸 노래는 당연히 후자 쪽이 많다. 서경(평양)을 중심으로 이른바 ‘도시의 유행민요’가 궁중무악으로 편입되면서 소박한 사랑보다는 적극적이고도 격렬한 사랑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서경을 노래한 <서경별곡>이다.


西京이 서울히 마르는
닷곤 쇼셩경 고마른
여므론 질삼뵈 리시고
괴시란 우러곰 좃니노이다


여음이나 후렴구를 빼고 나면 노래 가사의 내용은 이렇다. 서경이 비록 자랑스런 고장이고 ‘작은 서울’이지만은 사랑했던 님이 떠난다면 이별하기 보다는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서라도 (나를 사랑해준다면) 울면서 따르겠다고 한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했던 여자들에게 자신이 사는 터전과 길쌈은 생활의 전부였다. 그런데 자신이 누리던 이 모든 일상생활을 포기하고서라도 사랑하는 님을 따르겠다고 한다. 어떤 관계인지는 모르지만 더할 수 없이 적극적이고도 강렬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그러한 사랑은 『만전춘별사』에 이르러서는 죽음조차도 뛰어넘는 성性을 다음과 같이 절실하게 요구하기도 한다.


얼음위에 댓잎 자리 보아
님과 나와 얼어 죽을 망정
정 둔 오늘 밤 더디 새오시라


얼어 죽더라도 님과 함께 정을 나누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이 밤이 더디 새길 바란다. 죽더라도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어쩌면 그러다가 같이 죽어, 죽음조차도 함께 나누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이렇게 서로를 탐닉하고 심지어는 죽음조차도 뛰어넘는 것이다.
임매任邁(1711~1779)가 쓴 『잡기고담雜記古談』에 「내시의 아내」란 야담이 있다. 내시의 아내로 살던 여자가 자신의 정욕을 따라 집을 뛰쳐나온 뒤 처음 만난 중과 부부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내시의 아내가 집을 나오게 된 사정은 이렇다.


내가 본디는 서울 양인 집 딸이라우. 일찍이 부모를 잃고 외삼촌 댁에서 컸는데 외삼촌 댁이라는 사람은 나를 불쌍하게 여기거나 귀여워한 적이 없었다우. 그래서 나를 내시에게 시집보냈지 뭐유. 첫날 밤에 옷을 벗고 한 이불 안에 누워 같이 자는데 내 몸을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는 게 아니우? 나이가 겨우 열여섯 살이던 때라 남녀가 한자리에 들어서는 그저 이렇게 하는 것이려니만 여겼다우.
그 뒤 차차 세상 물정을 알게 되자 점점 싫어나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집디다. 때로 같이 누울 적이면 원통하고 분한 생각이 가슴에 그득 차올라 훌쩍거리며 울기도 했다우. 화창한 봄이 와 나비가 쌍쌍이 날고 수양버들 사이로 꾀꼬리 소리 흐를 적이면 오만가지 생각이 끓어올라 잠들 수 가 없습니다 그려.
가만히 생각해볼수록 비단 옷이며 흰 쌀밥이 내게 무슨 상관이겠수. 초가지붕 아래서 베 이불을 덮고 자고 나물죽을 나누어 먹더라도 진짜 사내와 사는 게 사실 인생의 더없는 낙이 아니겠수?
나는 시집을 갔다지만 아직은 처녀 몸이라 다른 남자에게 달아나 차라리 마음대로 놀아나고 싶더구려. 그럴 적이면 도망하고 싶은 생각이 불쑥 나다가도 문은 첩첩한 데다가 단속이 여간 아니니 혹 일이 드러나면 한 목숨 보존하기가 어려운 지라 그것도 두려워 못할 일이었다우.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났다우. 그러다가 나중에는 정 견딜 수 없게 되니 또 모진 생각이 듭디다. ‘이렇게 백년을 산들 무슨 낙이 있겠느냐. 설사 일이 드러나 죽는 대도 이 안에서 말라 죽는 것보다야 시원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래 계책을 정하고 몰래 입을 만한 옷들을 꿍져 놓고 비단과 가벼운 보물에다 은 수백냥을 한 데 넣어 이고 가기에 알맞춤하게 보자기에 쌌다우.


남부러울 것 없이 부유하게 살던 내시의 아내가 오로지 사랑의 교감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집을 뛰쳐나온 것이다. 그 여자는 “비단 옷이며 흰 쌀밥이 내게 무슨 상관이겠수. 초가지붕 아래서 베 이불을 덮고 자고 나물죽을 나누어 먹더라도 진짜 사내와 사는 게 사실 인생의 더 없는 낙이 아니겠수?”라 확신한다. 사실 그렇다. 남녀의 사랑과 여기서 기인된 성적 욕구야말로 그 무엇보다도 강렬하다. 죽음의 위험조차도 감수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리라. 


(3) 에로티시즘의 팽창
강렬한 에로티시즘의 한 단면은 사설시조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조선후기 도시의 유흥공간 속에서 여흥을 주도했던 가악예술의 꽃으로서 사설시조는 에로티시즘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전체 사설시조 500여 수 중에서 79 수에 해당하는 작품이 사랑과 성性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 중 성性을 적극적으로 노래한 작품을 보자.


각씨네 되올벼 논이 물도 많고 걸다하되
병작을 주려하거든 연장 좋은 내게 주소
진실로 주기만 한다면 가래 들고 씨 지어 볼가 하노라.


각씨네 더위들 사시오 이른 더위 늦은 더위 여러 해포 묵은 더위
오유월 복 더위에 정情의 님 만나이셔 달 밝은 평상 위에
츤츨 감겨 누었다가 무음일 하였던지 오장이 번열煩熱하고 구슬땀 흘리면서 헐떡이는 그 더위와 동짓달 긴긴밤의 고운님 다리고 따스한 아랫목과 두꺼운 이불 속의 두 몸이 한 몸 되야 그리저리하니 수족이 답답하며 목궁이 타올적의 윗목의 찬 숭늉을 벌떡벌떡 켜난 더위를 각씨네 사려거든 소견대로 사오시쇼.
장사야 네 더위 여럿 중에 님 만나는 두 더위야 뉘 아니 좋아하리 남의 게 파지 말고 내게 부디 팔으시오.


앞의 노래에서는 ‘논’을 여자의 성기에, ‘가래’ 혹은 ‘연장’을 남자의 성기에 각각 비유하여 많은 ‘씨’를 뿌려 생산량을 높이겠다고 한다. 남녀의 성 행위를 농작의 그것으로 비유하여 은근히 구애하고 있는 것이다.
뒤의 노래는 남녀의 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양한 더위를 늘어놓은 다음 성과 관계되는 그 더위는 누가 아니 좋아하겠냐고 반문하여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를 긍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다음의 시조에서는 이 성을 모든 소중한 것들과 비교하여 우위에 두고 있기도 하다.


고대 광실 나는 마다 비단 옷 좋은 음식 더욱 마다
은금 보화 노비 전택 비단 치마 대단 장옷 밀화주 곁칼
자지 향직 저고리 딴머리 석응황 모두 다 꿈자리 같으니
진실로 나의 평생 원하기는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얼굴 깨끗하고
잠자리 잘 하는 젊은 서방이로다.


여자에게 소용되는 온갖 것들을 늘어놓은 다음 그 모든 것들보다 잘 생긴 젊은 서방이 더 절실하다고 얘기한다. 그 젊은 서방의 기준이 “말 잘하고 글 잘하고 얼굴 깨끗한” 것에 “잠자리 잘하는” 요소가 추가되어있다. 예전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흔히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내세웠다. 말하자면 얼굴, 말, 글(글씨), 판단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판단력 대신 “잠자리 잘하는” 것이 들어간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인 성이 중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세적 예교와 도덕의 무거운 휘장을 뚫고 솟아나는 욕망의 자유로운 발산을 목격하게 된다. 이른바 ‘에로티시즘의 팽창’이다. 분명 성性은 중세 무거운 예교의 휘장을 걷어 내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소중한 개성에 대한 발견이다. 왜 르네상스의 숱한 그림과 조각들이 인간의 아름다운 육신을 드러내는지 생각해 보라. 르네상스 이전의 조각과 그림들은 모두 교회의 제단을 장식한 성상聖像이나 성화聖畵들이었다. 오로지 신에게 모든 영광을 바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시작되면서 고귀한 신이 아닌 인간에게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인간이 지니고 있는 개성과 본능적 욕구에 주목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육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이다. 


(4) 영혼과 육신의 아름다운 교감
성性을 다룬 작품 중의 백미는 단연 『춘향전』이다. 일찍이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李海朝(1869~1927)는 『춘향전』을 ‘음탕교과서’라 폄하하기도 했다. 한 대목을 다시 보자.


춘향과 도련님이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斜陽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에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를 구부려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드듯이 검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 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의 가는 허리를 담쑥 안고,
“비단 치마를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때,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錄水에 붉은 연꽃이 미풍을 만나 흔들리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 속옷 벗길 때에 무한이 싱강이 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의 청룡이 굽이를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싱강이 중 옷끈 끌러, 발가락에 딱 걸고서 끼어안고 진득하게 누르며 기지개 쓰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짝 벗어지니 도련님이 거동을 보려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이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쫓아 드러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 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 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즙骨汁낼 때 삼승三升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재미있는 일이야 오죽하랴. (『열녀춘향수절가』)


사랑하는 두 남녀가 성性에 이르게 되는 전 과정이 아주 자세하고도 구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벌, 나비가 꽃을 탐하듯 저돌적인 이몽룡의 모습과 부끄러워 거부하는 듯하면서도 받아들이는 춘향의 태도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춘향전』은 이 정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랑가’에서 보여주듯 사랑의 농도가 점점 짙어지며 성행위 또한 점점 대담해 진다. 게다가 만남이 계속되더니 이제는 춘향과 이몽룡이 성性을 즐기는 성희性戱의 단계까지 이르렀다. 『춘향전』에서도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와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 제는 기롱譏弄도 하고 우스운 말도 ”했다고 한다. 처음엔 어색하고 부끄러웠던 행위가 이제는 자연스레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말놀음’같은 외설적인 행위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춘향아, 우리 말놀음이나 좀 하여보자!”
“애고! 참 우스워라! 말놀음이 무엇이오?”
말놀음 많이 하여 본성부르게,
“천하 쉽지야. 너와 나와 벗은 김에 너는 온 방바닥을 기어다녀라. 나는 네 궁둥이에 딱 붙어서 네 허리를 잔뜩 끼고 볼기짝을 내 손바닥으로 탁 치면서, 이리 하거든 흐흥거려 퇴금질로 물러서며 뛰어라. 알심있게 뒤게 되면 탈 승자乘子노래가 잇나니라. 타고 노자 타고 노자, 헌원씨는 군기 사용을 익히고 큰 안개를 지피던 치우를 탁록야에서 사로잡아 승전고勝戰鼓를 울리면서 지남거를 높이 타고, 하우씨는 구년간의 홍수를 다스릴 적에 육행陸行함에 수레를 높이 타고, 적송자赤松子는 구름 타고, 여동빈呂洞賓은 백로 타고, 이적선李謫仙은 고래 타고, 맹호연孟浩然은 나귀타고, 태을선인太乙仙人은 학을 타고, 대국천자大國天子는 코끼리 타고, 우리 전하는 연輦을 타고, 삼정승三政丞은 평교자를 타고, 육판서六判書는 초헌 타고, 훈련대장은 수레 타고, 각읍 수령은 독교獨轎 타고, 남원부사는 별연別輦을 타고, 일모장강日暮長江 어옹漁翁들은 일엽편주一葉片舟 돋우어 타고, 나는 탈것 없었으니 금야 삼경 깊은 밤에 춘향 배를 넌짓 타고, 홑이불로 돛을 달아 내 기개氣槪로 노를 저어 오목섬을 들어가되, 순풍에 음양수陰陽水를 시름 없이 건너갈 적에, 말을 삼아 탈 양이면 걸음걸음이 없을소냐? 마부는 내가 되어, 네 구정을 넌지시 잡아 구정걸음 반부새로 뚜벅걸음으로 걸어라! 기총마騎聰馬 뛰듯 뛰어라!“
온갖 장난을 다 하고 보니, 이런 장관이 또 있으랴! 이팔二八 이팔 둘이 만나 미친 마음, 세월 가는 줄 모르던가 보더라. (『열녀춘향수절가』)


그야말로 정말 ‘광란의 사랑’이다. 16살 밖에 안 되는 청소년들(?)이 밤새 이런 짓을 하니 이거야말로 ‘청소년 야동’ 아닌가? 하지만 『춘향전』의 이 부분들을 보면 정말로 건강한 성性이 느껴진다. 사랑이 대상이 되거나 수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존재로 이루어지고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혼과 육신이 교감하는 진정한 사랑이다.
『춘향전』의 ‘사랑가’ 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너는 죽어, 장안 종로 인경되고, 나는 죽어 인경마치가 되어……인경 첫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 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뎅’, ‘도련님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사랑의 자장磁場안으로 들어오는 그런 경지다. 이런 사랑의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벌이는 육체적 행위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 공판과정에서 지지의견을 내놓았던 민용태 교수는 그 작품을 『춘향전』에 비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 될 말이다. 『춘향전』의 성性은 이 물신화되고 상품화 된 현대의 퇴폐적인 성性과 분명히 다르다. 현대의 물신화 된 성에는 진정성이 빠져있다. 그러기에 퇴폐적이다.





*권순긍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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