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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서평

이성수




시인은 별을 보고 항해하는 항해사
―정령 시집 『크크라는 갑』, 박효숙 시집 『은유의 콩깍지』




   서정시의 본령은 자아와 세계의 일치이다. 자아가 세계에 있으며. 세계는 자아 속에서 살아 숨쉰다. 시인들, 특히 서정시를 쓰는 시인들은 나무의 눈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매의 깃털에 흐르는 바람의 결을 느낀다. 그래서 소리 없이 내리는 눈보라에서 자끈둥 부러지는 나뭇가지를 보고 한 시대의 절망을 노래하기도 하고, 더 드높이 올라 세상과 삶과 인생과 생명을 관조하기도 한다. 서정시인들은 모두 별을 보고 항해하는 항해사이기도 하다. 『은유의 콩깍지』를 쓴 박효숙 시인이나, 『바람난 바람』을 낸 정령 시인 역시 그런 시인이다.

   추억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이다. 어머니 무릎에 누워 삶은 옥수수 알을 하나하나 빼먹으며 별똥별을 보던 추억을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으리라. 어디 그뿐이랴, 광채에 둘러싸여 있던 첫사랑의 추억은 또 어떤가? 밤을 지새며 심장의 피를 꺼내 쓰고 또 쓴 연서는 몇 장이나 되었던가. 그만큼 추억은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이 있어서 추억만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도 없다. 그 아름다움의 대상이 사라졌을 때의 상실감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김광석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서른 즈음의 그 어느 날을 기억한다고 하는데, 박효숙 시인은 “부뚜막에 앉아서 감자를 먹은” 기억을 곱씹으며 아름다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리움을 풀어놓은 유년의 언덕길”에 자신을 데려다 놓고 또글또글 익어가는 햇살을 한 알씩 떼어먹고 있는 것이다. 박효숙 시인의 말마따나  ‘꿈은 때로 먼 곳을 재생한다’(「풍경의 풍경」)
   그렇다. 박효숙 시인이 관조하는 세계는 과거이다. 그래서 시집 전편에 흐르는 감성이 사뭇 회고적이다. 또한 박효숙 시인의 『은유의 콩깍지』에서는 맑은 여성성과 실낙원 의식이 도드라진다.
   여성성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피지 못한 꽃이다. “쓰디쓴 바닷물을 울컥울컥 삼키며” “보이는 것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그녀를 문밖으로 밀어내고”(「역류성 식도염」) 있는 게 한국사회에서의 여성이 사는 어제와 오늘의 실상이다. 즉 한 사람의 삶은 평온할 수 있어도 ‘여자 한 명’의 삶은 평탄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우리네 어머니의 삶이 그러하고 우리네 아내들의 삶이 또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박효숙 시인이 계속 추억하고 있는 ‘어머니’는 박효숙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효숙 시인은 체념하거나 분노에 찬 여성성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효숙 시인이 제시하는 여성성은 맑고 순결하고 순수하다.


개울을 곁에 끼고 걷는 숲길, 길 따라 오르는 발길과는 달리 마음은 물소리 따라간다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보니 멀리 보이는 산도 가까이 서 있는 나무들도 입춘 지난 눈빛 푸근하다 섬돌 위에 앉아있는 정갈한 고무신과 어디선가 다듬이 소리 들릴 것 같은 낯익은 뜰, 키 낮은 돌담의 홍매화 가지 위로 햇살이 톡톡 꽃봉오리 빚는다 햇볕을 당기느라 연못 위 홀로 처진올벚나무는 올올이 제 깃털을 허공으로 띄운다 작은 나무 대문 열면 외할머니 금방 맞아줄 것 같은 안중지인眼中之人 선암사, 아들과 함께 기와불사 하며 올 한해 소원도 새기고 와송 곁에서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화엄에 든다 무릎 위에 앉은 햇볕에게도 고마움 건네는, 설 초하루 한나절이 둥둥 떠 맑게 흐른다   


                                                                                                            ―「맑은 날」 전문


   이 시에서 가장 주목할 시어는 ‘뒤돌아보니’라는 말이다. 뒤돌아봐야 ‘들릴 것 같은’ ‘외할머니 금방 맞아줄 것 같은’ 환상을 볼 수 있다. 박효숙 시인은 현실에서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면 도저히 볼 수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하지만 뒤돌아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시에서는 뒤돌아본다는 것은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박효숙 시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움의 대상들을 햇볕 아래 올올이 펼쳐 보이고 있다. 선암사에서 아들과 기와불사하며 봄 햇살을 맞는 박효숙 시인에게 외할머니는 안중지인(정든 사람이나 늘 생각하며 만나 보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섬돌 위에 정갈한 고무신과 다듬이 소리로 각인된 외할머니는 ‘뒤돌아’봐야 보이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없을 때의 슬픔은 화엄과 같은 적멸의 순간으로 승화한다.
박효숙 시인의 여성성은 지구와도 닮아 있다. 물론 박효숙 시인의 곁에 있는 자연은 이제 예전의 그 자연이 아니다. 산업화로 인해 ‘늦가을 소국 같은’ 어린 시절의 풍경도 사라졌다. 뒤돌아봐야 보이고, 추억해야 볼 수 있는 한 장면일 뿐이다. 그래서 더 그리움으로 남는 장면이다.
박효숙 시인이 과거와의 괴리가 시작되는 시점은 언제일까? 시 「소묘-수수밭을 지나며」에서는 박효숙 시인이 자연, 어머니와 헤어지는 순간이 잘 드러나 있다. 



언덕배기 비탈밭 수수 몇 그루,
파마하는 여자의 그물망을 머리에 쓰더니
순교 당한 이교도처럼 모가지 없는 몸뚱이,
눌변訥辯의 발자국만 서성서성 모였다
날짐승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몸,
이제 동네 아이들은
더 이상 수수깡을 갖고 거룩하게 놀지 않는다
별 초롱초롱해 더 무서웠던
밤의 밑둥치에 엉덩이 찔린 호랑이가 뒹굴던
그 수수밭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올해도 뚱뚱감자 꽃들은 환하게 피었건만
담 너머로 넘겨주고 넘겨받던 수수팥떡,
수수한 사람들의 수수한 정담은
어머니와 함께 산길을 넘어가 돌아오지 않는다
산길은 아이들도 데리고 산을 넘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소묘-수수밭을 지나며」전문


   언덕빼기 수수밭에 날짐승 한 마리 날아오지 않는 날이 바로 그 날이다. ‘밤의 밑둥치에 엉덩이 찔린 호랑이가 뒹굴던’ 전설이 사라지고 수수한 사람들의 정담도 사라지고 어머니가 산길을 넘어가 돌아오지 않고, 그 산길에 아이들도 넘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바로 그 날. 바로 그 날 우리들의 전통적이 공동체는 사라지고 산 너머 공장으로 도시로 떠난 아이들이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날부터 박효숙 시인은 모든 것을 상실한 채 그리움에 젖어 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제 박효숙 시인에게 있어서 추억은 “빛을 따라 나오는/어머니, 별, 아이들, 골목길, 그리고 소 울음/눈을 감아야만 갈 수 있는,/풍경의 풍경이다”(「풍경의 풍경」)
표제작 「은유의 콩깍지」에는 떠나갔던 아이들의 금의환향 소식이 들리지만 시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허상이다. 시인이 간직하고 싶은 원형은 아직도 뱃속에 있다. 그것은 한 번도 튄 적도 없고, 울타리 밖으로 내빼지도 못하고 온전히 시인의 의식 속에 남아 있다. 적막한 산업화의 그늘이 아니라 순수가 태동하는 어린 시절에 꼭꼭 숨어 있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자신의 분신을 입양한다. 자연을 잃고 어머니를 잃고 추억 속에서 살아가는 시인은 봄 꽃분 하나의 희망을 읽으며 삶의 정겨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문 닫는 상점들의 저녁거리에
눈빛 고운 아이들,
이른 봄 꽃분들이 줄지어 앉아 있다
옷깃에 매단 이름이 생의 유일한 목록이다
머리끝에 별 하나씩 꼭 붙든 채
그림자도 껴안아 놓지 못한다
네, 비록, 구름 낮은데 버려질지라도
밤하늘의 눈물은 한 줄기 시가 된다
바람 부는 날의 민들레 꽃씨처럼,
발걸음 닿는 곳 거기가 너의 주소다
빈 둥지처럼 비어있는 네 일기장에
울타리 오르는 나팔꽃을 그려줄까
햇살만큼 밝은 말도 담아줄까
 
내 손 가만히 이끄는 조막만한 꽃분,
봄 아이 하나 들인다


                                                                   ―「입양」 전문
 
   철저하게 자본화하고, 철저하게 산업화한 이 사회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화이고, 전설이며, 도타운 정으로 뭉쳐 살던 산의 이쪽이었으며, 어머니의 품이었고, 내가 애기였을 때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었다. 박효숙 시인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찾아주는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은 전사처럼 싸우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넌지시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잃어버린 것을 찾고 안 찾고는 이제 우리의 몫이다.
 
   정령 시인의 『크크라는 갑』은 몇 가지 읽는 방법이 있다. 우선 시 대부분이 서술형 문장이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다. 『크크라는 갑』은 ‘해라체’, ‘해체’ 혹은 ‘해요체’의 종결형어미로 구성된 서술형으로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시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해라체’
갈 봄 여름 없이 집을 버리고 정처 없이 떠돌다 돌아와 웃는 저 얼굴. 그 속에 작년 겨울 폭삭 말아 먹고 집 나간 아저씨도 몸을 살살 흔들며 웃는다.
자꾸 웃는다.
온 우주에 웃음소리 가득 번진다.


                                                                         ―「코스모스」일부



‘해체’
어느 부끄럼나라에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임금이 있었어. 그 나라에는 비읍이 없었어. 임금이 얼굴만 내놓고 온통 감싸고 다니면서 ㅂ자만 들어도 경기를 해서 백성들도 덩달아 싸매고 다녀야 했고 심지어 동물들도 싸매야 했어.


                                                                                                            ―「ㅂ」 일부


‘해요체’
새들이 닫힌 창문에 머리를 박아요
유리창을 툭 치고 돌아가는데요
길 건너 왕벚나무 무성한 이파리가 날개짓에 흔들거려요


                                                                                                            ―「찌륵찌륵, 새」 일부


   서술형 문장은 시의 간결성에는 흠이 될 수 있겠지만, 진술의 신빙성, 가감 없는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며, 애둘러 가지 않고 직선으로 다가가기 때문에 이야기를 담기에도 좋다. ‘해라체’는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래서 화자나 청자 모두 거부감이 없다. 시가 딱딱하게 보일 수 있지만 화자의 심정이 차분한 상태에서 아주 편하게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반면에 ‘해체’는 자기고백적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화자가 간곡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거나 귀엽게 말하고자 할 때 ‘해체’를 많이 사용한다. ‘해요체’는 격식을 따지지 않지만 청자에게 화자의 주장을 받아들이라는 권유의 의도도 담고 있다. 「바람의 바람」 시편에서 드러나는 화자는 모두 마치 실어증에서 방금 벗어나 세상 모든 일을 일러바치겠다는 사람 같다. 그만큼 정령 시인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정령 시인의 시집 『크크라는 갑』은 편안하다. 일상의 대화나 일상의 단편들을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버무려놓아서 사뭇 재미있기도 하다. 게다가 시집 제목을 보라. ‘크크라는 갑’이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은 뜻이 여러 가지다.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일 수 있고, 불륜일 수 있고, 희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 되었든 ‘바람의 바람’이라는 말에는 불량기가 가득하다. 이 불량기를 따라가며 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눈도 없다. 비늘도 없다. 가시도 없다. 아가미도 없다. 지느러미도 없다. 먼 옛날 바다를 유유히 자적했다는 설만 있다. 바다가 육지로 변했을  신생대 후기쯤이었을 것이다. 아열대지방의 한적한 모래 언덕에서였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흐물거리던 물고기의 몸은 생의 마지막을 위해 온전히 바쳤을 것이다. 스스로 비늘을 벗고 배를 가르고 통째 말라 굳어 갔을 것이다. 그리하여 말랑한 심장만 남은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망고를 먹으면 느껴진다. 물고기들의 치열한 생의 마지막 몸부림.   ―「망고」 전편

눈도 없고, 비늘도 없고, 가시도 없고, 아가미도 없고, 지느러미도 없는 물고기의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런 물고기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바람은 원래 망고의 삶이 아니었던가? 어찌보면 물고기와 망고를 오가는 관계 역시 불륜이다. 불륜의 돌연변이 과정을 거치면서 바닷속에서 육지로 올라오고, 그 육지의 나무에서 심장으로 말라 죽어가는 과일 망고를 먹으며 시인은 물고기들의 치열한 생의 마지막 몸부림을 느끼고 있다고 눙치고 있다. 동물적 상상력이 식물적 상상력으로 변이되면서 전해지는 이미지도 강렬하다. 
   정령 시인의 이야기는 일상과 함께 신화도 단박에 비틀어 버린다. 신화가 무엇인가? 상징이자 권력의 모태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는 것 역시 이 사회에서는 불륜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다. 「신 단군신화」가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너만 좋다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 사람 손길 닿지 않은 비밀동굴을 찾아야지. 비밀동굴에 풀잎 따다가 푹신한 침상 만들고, 예전에 도망간 호랑이랑 곰도 불러서 짝짜꿍도 하고 늑대랑 여우도 불러서 칡넝쿨처럼 어울렁더울렁 맨살 비비며 뒹굴어봐야지. 날이 새면, 제일 먼저 옹달샘으로 찾아가 달 속에서 떡방아 찧던 토끼랑 계수나무 밑에서 자고 있던 토끼랑 꾀 많은 토끼하고 반가이 마주하고 물도 마시고, 청설모랑 다람쥐랑 도토리 까며 비석치기도 하다가,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베고 누워 나뭇가지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도 듣고, 밤이면 부엉이랑 올빼미도 노루랑 꿩이랑 깨워서 고무줄놀이도 하고, 풀벌레와 쫑알거리며 알까기도 하다가, 노란 달과 마주하고 주거니받거니 밤새도록 술 따르며 왕게임도 할 수 있다는데, 다시 마늘이랑 쑥 줄게. 너, 먹으러  올래 안 올래?    ―「신 단군신화」 전문

이 시에서 춘향이와 몽룡이의 첫날밤을 연상한다면 필자가 너무 엉큼한 것일까? 춘향이와 몽룡이가 업고 놀고 웅아웅아 즐기는 모습이 ‘짝짜꿍도 하고 늑대랑 여우도 불러서 칡넝쿨처럼 어울렁더울렁 맨살 비비며 뒹굴’면서 왕게임도 하는 모습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좀 다르다면 춘향이 몽룡이가 둘만의 밤을 보내는 반면 정령 시인은 세상 만물과 어울렁더울렁 맨살 비비며 뒹굴겠다는 자연과의 일체감까지 노래하고 있다는 차이 정도? 더 신나고 쾌활한 파티를 연상할 수 있는 시이다. 게다가 시인은 당신을 초대한다. “다시 마늘이랑 쑥 줄게. 너, 먹으러 올래 안 올래?” 시인의 프로포즈에 당신은 이제 대답해야 한다. 갈 건가, 안 갈건가?
정령 시인의 시집 『크크라는 갑』을 읽는 또 하나의 요령은 일상의 유머를 맘껏 즐기는 것이다. 정령 시인은 라디오 방송에서나 나왔음직한 유머를 재기발랄하게 차용하기도 하는데, 그 웃음에 그저 몸을 맡기는 것도 『크크라는 갑』을 아주 즐겁게 읽는 방법이다.
 
미스 김을 찾습니다. 다소곳한 외모, 나긋나긋한 목소리, 업무 능력 최상인, 전 날 회식 후 사라진, 미스 김을 찾습니다.
실장을 끌고 가 노래방 문고리에 넥타이로 묶어 놓고, 과장 항문에 과감하게 똥침을 날리고, 대리 양복 안주머니에 개불, 멍게 몰래 집어넣던, 활달하고 소탈하고 싹싹하고 능력 있는 그녀, 쪽팔릴 것 같긴 하지만 모른 척 할 것이니 부디 출근하십시오. 지나고 나면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신청곡은 변집섭의 돌아와 줘 입니다. 잠시 후, 미스 김 전화가 왔다네요. 아직도 왜 부킹 안 시켜주냐, 주정중이랍니다.  


                                                                                                     ―「주당 미스 김」 일부


   ‘미스 김’이라면 사무실에서 그리 큰 역할을 하는 직원이 아니다. “업무능력 최상”이라고 하지만 “다소곳한 외모”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그냥 여직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무실 최하위 직원이 “실장을 끌고 가 노래방 문고리에 넥타이를 묶어 놓고”, 과장에게 똥침을 날린다. ‘미스 김’이 탈춤에서의 말뚝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상하가 전복된,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직장에서 차별 받고, 갖은 심부름만 하는 ‘미스 김’이 시 속에서는 자유를 획득하고 있는 모습에 독자들은 맘껏 웃어도 좋다.









**약력:1991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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