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닫기
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6호/단편소설/이덕화/생폴 드방스에서, 길을 찾다


이덕화


생폴 드방스에서,  길을 찾다



헬로우 헬로우 하며 반복해서 불렀다. 좀 떨어져 있었기 때문인지 몇 번 만에 머리를 획 돌리며 뒤돌아본다. 앗, 저 휘날리는 금발은!! 경은 말문이 막힌다. 아니, 여기에…… 금발도 경을 보고 놀랐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냐고 묻는다. 이 생폴 드방스 오는 것이 오늘의 계획 중의 하나였다고 말한다. 금발은 자신의 집이 바로 생폴에 있다고 했다. 경은 순간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에서 벗어나 구원자를 만난 기분이다. 지금 자신은 호텔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호텔은 여기 라 콜롬보 도르 호텔 외의 호텔은 마을 벗어나 위쪽으로 많이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금발이 안내해 줄 듯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더니 한참 고민하듯 아무 말이 없다. 자신의 부모님 집이 비어있으니, 자신이 거기서 잘테니 당신은 오늘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한다. 경은 망설인다. 아무리 한 번 만난 사이라 해도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 집에서.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차로 니스까지 데리다 주겠다고 한다. 니스를 가도 엑상 프로방스까지 갈 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경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 참, 내가 사는 집이 샤갈이 살았던 집이라고 하면 넌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금발이 경의 백을 뺏아서 앞질러 간 곳은 한참 안쪽으로 들어간 마을의 제일 끝에 있는 라인이었다. 왼쪽으로 골목이 새로 시작되는 담장이 덩굴로 둘러싸인 돌로 된 집에 열쇠로 문을 열었다. 문도 아취형이다. 개가 거실 한쪽 방석 놓인 곳이 제자리인지 가서 물그릇에 있는 물을 먹는다. 낯선 사람을 봐도 짓지도 않는 점잖은 개다. 우리나라의 잘 생긴 진돗개 비슷하다. 아래층은 부엌과 큰 서재 겸 거실이 있었다.
금발은 경을 쳐다보며 잘 방을 안내하겠다고 하며 2충 계단으로 올라간다. 경도 금발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 왼쪽에는 욕조가 달린 꽤 넓은 화장실과 오른쪽에는 방이 있었다. 큰 방에는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침대 맞은 편 쪽에 샤갈의 생폴 드방스를 소재로 한 그림 한 점이 붙어있다. 생폴 드방스를 소재로 했을 때는 고향 비테프스크를 그릴 때보다는 덜 몽환적이다. 현실적이다. 오리지널 그림을 가정집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금발을 따라 방을 지나 테라스로 갔다.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이 쭉 퍼져있다. 아치형의 테라스 중간에 조그마한 분수가 졸졸 거리며 물이 흘러내린다. 분수를 테이블 삼아 양쪽으로 나무 의자가 놓여있다. 금발은 자신이 먼저 의자에 앉으며 경도 앉아 보라고 한다. 금발이 기둥에 있는 스위치를 누르자 두 면으로 된 거울 화면이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펼쳐진다. 아래쪽 거울과 위쪽 거울 양쪽에서 지중해가 넘실거리고 있다. 조금 멀리 보이는 지중해를 과학적 방법을 동원, 거울 속으로 끌어들였나보다. 경은 저절로 감탄사가 났다. 애즈 빌리지에서는 비가 왔었다. 그래서 안개에 가려 낭떨어지 밑으로 멋있게 보인다는 지중해를 볼 수 없었다. 거울 속 저 너머의 에메랄드 빛 지중해가 거울 속에서 넘실거리고 있다. 테라스 너머에는 갖가지 작고 큰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었다. 경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감동이 일어났다. 숲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금발에게 달려갔다. 금발은 경을 깊이 포옹했다. 경은 금발이 여기까지 데려 와 준 것이 너무 기뻤다.
제가 독립하면서 이 집에서 살게 된 거죠. 집 바깥은 그대로지만 안은 많이 고쳐진 집이라고 했다. 경이 한참 넋을 잃고 있는 사이 금발은 방 바깥에 있는 벽장에서 꺼냈는지 새 침대 시트와 베게 시트를 침대 위에 내려놓는다. 침대 시트를 빼고 새 것으로 갈기 시작한다. 경은 자신이 하겠다고 뺏었다. 그러나 금발은 이 침대는 자신이 익숙하기 때문에 더 잘 할 수 있다며 다시 빼었다. 그리고 베개잎까지 갈아주고 내려가며, 곧 같이 저녁을 먹게 샤워하고 내려오라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경은 멍한 채 테라스로 가서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자 후배한테 보이스 톡이 왔다. 도착했냐고 한다. 아, 미안, 오늘 휴일인 줄 몰라, 스케줄이 꼬여서 마지막 버스를 못타 내일 액상으로 가야겠다. 연락한다는 것이 호텔 정하느라 왔다 갔다하다, 미안 해, 저녁까지 준비했는데. 고마워! 정말 미안해, 저녁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혼자 먹으라고 했잖아. 내일 글쎄? 마지막 버스라도 타고 내일은 꼭 올라가야지. 지금 여기 생폴 드방스, 그래 너도 조심하고 내일 봐. 금발이 기다릴 것을 생각하고 얼른 목욕탕으로 갔다. 그리고 샤워를 시작했다. 그리고 실내복 겸 잠옷으로 가지고 온 가벼운 원피스를 입고 아래층으로 갔다.

식탁에는 야채 샐러드와 연어 구이, 다양한 빵과 치즈, 올리브, 소고기 스테이크,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이 차려져 있었다. 오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시장을 봐 둘 걸! 반찬이 하찮아서. 냉장고에 있는 것은 다 내 놓았으니! 맛있게 먹어요. 경은 금발이 했던데로 어깨를 추켜올리며, 그레이트 그레이트!! 나에게는 최상의 저녁 만찬이라고 했다.
금발은 경을 쳐다보며,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느냐고 했다. 순간 부끄러워, 당신이 프랑스인이라 그렇게 생각되지,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보면 형편없는 영어다. 금발은 자신도 미국에서 2년간 살기도 했다고 한다. 누나가 의사이기 때문에 조카들을 부모님이 돌보고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기 때문에 자신은 고향을 지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신의 친 할아버지가 이 지역의 시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자신의 집안은 생폴을 보존하고 아름답게 가꿀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자신이 지적재산권 소유분쟁 해소를 위한 회사를 설립한 것도 그런 집안 책임감 때문이었다. 레드 와인, 와이트 와인?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금발이 일어서서 와이트 와인병을 들고 물었다. 경은 앞에 놓인 와인잔을 들면서 우선 와이트 와인했다. 금발이 와인을 따를 때 잠시 흘깃 했더니,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많이 나는 쎄미용semillion이었다. 와인병을 경이 받아 금발의 잔에 따랐다. 그리고 잠시 경이 너 이름이 뭐니? 금발이 만난 지 몇 시간 만에 이름을 묻는 거냐고 했다. 당신은 내 이름을 묻지도 않았잖아? 서로 와인잔을 들고 웃었다. 우리 이제 정식으로 인사하자고 한다. 클레지오, 경 둘은 와인잔을 들고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잔을 부딪치고 가볍게 한 모금씩 마셨다. 음! 부드럽고 달콤한 복숭아 향의 맛이다. 다시 한번 잔을 부딪친다. 연어와 야채를 홀스레디쉬 소스로 버무른 연어 샐러드를 집어 먹었다. 약간 매운 맛이 와사비의 매운 맛인지 경의 입에 익숙하다. 연어의 맛과 화이트 와인의 맛이 잘 어울린다. 다시 와인잔을 부딪친다.
다시 이 집에 관해 이야기 해주세요. 어떻게 샤갈이 이 집에 살게 되었는지 듣고 싶었다.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만들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 이 집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이 집을 새로 개축하며 알함브라 궁전 분위기를 살리려고 2층 테라스에 분수도 만들었다고 한다. 클레지오는 어깨를 치켜세우며 양손을 벌렸다. 클레지오의 습관화된 제스춰인가보다. 샤걀이 두 번째 부인 바바와 결혼 후 이 집은 다른 사람이 살다 마침 다른 곳으로 이사가면서 이 집이 비게 되었단다. 샤갈은 결혼 후 계속 죽을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해요. 그럼 30년 이상 이 집에서! 금발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원래 이 집은 클레지오의 할아버지 소유로 있다, 아버지가 이어 받고 다시 아버지가 자신에게 몰려주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안은 이 동네에 대대로 물려 온 땅이 많았다고 한다. 샤갈, 미로, 마티스 , 르느와르 등 많은 화가들이 드나들 때 생폴 드방스가 주목을 받는 마을로 성장했다  샤갈과 자크 프로베르 등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죽고 함께 했던 다른 예술가들이 이 마을을 빠져나가면서 한 때 생폴 드방스가 쇠락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시장으로 지낼 때 생 폴 드방스를 예술가들이 많이 올 수 있게 새로운 정책을 입안, 예술가들이 생폴에 정착할 수있게 유도한 것이 성공, 지금 이렇게 생폴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클레지오의 집안에서 땅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집을 많이 지어 예술가들에게 싸게 임대를 해, 살고 싶은 예술가들이 다 올 수있게 유인한 것이 성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폴 전체가 유명해지니 마을의 임대료가 조금씩 올라 생폴 드방스 사람들도 더불어 윤택하게 되었다고. 그 때 할아버지는 생폴 드방스의 영웅이었다고. 그래서 지금도 생폴 드방스에서는 함부로 임대료를 많이 못 올린다고 한다.
클레지오는 생폴 드방스가 잘 운영되게 모든 문제를 마을 사람들과 의논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한다고 한다. 생폴 드방스에는 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만큼 작품을 두고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 그것을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주업무이고 그 다음은 생폴 드방스를 어떻게 아름답게 유지하느냐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이 바로 자신의 일이고 자기 회사의 일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에도 중국 관광객이 여기에서 샀다고 그림 하나를 진품인지 가려달라고 한 달 전에 중국 대사관에서 연락이 오고 그림을 어제 세관에서 찾아 와 오늘 그것을 위한 회의로 일찍 온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생폴 드방스의 어느 갤러리에서도 판적도 없는 누구의 그림인지도 모르는 가짜 그림이었다고. 그런 일이 많냐고 물었더니. 똑같은 경우는 아니라 해도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경은 클레지오가 생폴 드방스를 위해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지게 본인의 취미 생활을 유지하면서. 클레지오가 경을 유심히 쳐다봤다. 궁금한 것을 묻고 싶은데 아무 말을 않고 와인잔을 든다. 경도 묻고 싶은 말도 많았지만 아무 것도 물을 수 없었다. 클레지오가 레드 와인을 또 다른 잔에 따라 주 었다. 이것은 남 프랑스에서 많이 먹는 로제 와인인데 모르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흔히 마트에서도 살 수 있는 비싸지 않은 와인인데 그 대신 향이 좋아 경이 좋아할 것 같아서… 그러면서 와인을 따뤄 준다.
음 정말 향이 좋다. 약간 진한 꽃향기 같기도 과일 향기 같기도 하다. 맛도 나쁘지 않다. 자신들은 식사할 때 보통 이 와인을 마신다고 했다. 하기야 와인의 나라 프랑스잖아…면학 분위기를 유지하려는 후배와도 첫날 와인 한 병을 마셨다. 그리고는 계속 여행만 했다. 경은 여행지에서는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대부분 그 다음날 일정 때문에, 여행지에서 분위기를 찾아 술을 마시기에는 교통편도 또 술을 찾아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이제 제법 술이 취하는지 경이 침묵 무드로 들어간다. 아직도 이른 시간이다. 이런 분위기 갖추어진 날은 쉽지 않다. 내일 생폴 마을을 오전 중에 돌고 바로 액상 프로방스로 돌아가면 된다. 마음조차 홀가분하다. 클레지오가 다시 와인잔을 든다. 경이 와인잔을 들어 다시 당신을 만난 것이 기적 같다며 브라보를 외쳤다.
클레지오가 우리의 인연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작곡한 프란시스 테레가이다 고 외쳤다. 아니다 모하마드 1세 알 갈리브이다 경이 다시 외쳤다. 와인잔을 들어 다시 클레지오의 잔에 부딪쳤다. 클레지오가 한 손으로 경을 포옹한다. 그리고 경의 와인 잔에 자신의 와인을 더 부어준다. 경은 마음이 벅차 아무래도 영어로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경은 계속 너를 꿈 속에서 보았다고만 했다. 클레지오가 놀란다. 아니 언제? 어느날 이후 몇 번씩. 니스에서 너가 떠난 이후 아쉬움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아직 클레지오 너가 나에게서 무언지 모르겠다. 그래서 시를 섰다. 경이 자신이 쓴 시로 영어로 번역해서 낭송했다. 경은 와인잔을 치켜들고 띄엄 띄엄 시를 낭송했다.


니스의 바닷가에서  


수많은 날 들 중의 어느 새벽
니스의 바닷가에서
몇 겹의 안개 속에서
먼 먼 길을 돌고 돌아
우연한 너와 나의 만남 
깊고 깊은 포옹
이 짧고 영원의 순간을
역시 꿈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으리 


왜 이 시를 읊으니 눈물이… 경은 당황한다. 클레지오도 당황한다. 클레지오가 경의 옆자리로 옮긴다. 그리고 포옹한다. 경은 너무 행복하다. 너와 알함브라 궁전의 왕의 방에 대해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는 게 행복하고, 꿈에 만난 너를 정말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생폴 드방스에서 다시 너를 만나서 행복하고. 그래서 오늘은 마음껏 취해보고 싶다. 클레지오는 경의 눈물이 자신을 원망하는 것으로 착각했는지 변명하기 시작했다. 노 클레지오, 너의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 연주를 한 번 더 듣고 싶을 뿐이야. 클레지오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여기는 관광지이기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름을 물을 수 없고, 물어도 소용이 없다. 단지 순간적인 만남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너처럼 우연히 두 번을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다. 그럴 때 아니면 대부분 이름을 묻지 않는다. 그런데 너랑 헤어져 오면서 너를 그대로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몇 번씩 다시 너에게로 가게 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기타로 치고, 알함브라 궁전을 지은 왕의 이야기, 왕의 방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여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야기할 때는 감탄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다시 이야기를 꺼내면 기억도 못했다. 처음으로 당신이 완벽하게 나와 일치하는 의견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평소하던 습관대로 이름도 너에 관한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왔다는 것을 알고 차를 돌려 갔을 때는 이미 넌 바닷가에 없었어. 그래서 너와의 인연은 거기까지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너를 만났다. 한국에서 넌 나를 만나러 온 거니? 그렇다고 했다. 클레지오는 농담으로 한 말을 경이 그렇다니까, 클레지오는 경을 쳐다보며 정말? 을 몇 번 반복했다. 경이 꿈꾼 이야기부터 금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지난 날을 이야기하려니 가슴이 벅찼다.
이미 두 병의 와인도 끝났다. 클레지오가 다시 와인을 따려고 한다. 더 이상 와인을하지 말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기타 연주를 다시 한번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클레지오가 일어나 경의 옆으로 와 경의 손을 잡고 2층 계단으로 끌었다. 이제 잠잘 시간? 경은 이 이상한 분위기가 뭔가하고 클레지오에 이끌려 따라갔다. 2층 계단을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클레지오가 입구에 있는 스윗치를 올리자 불이 환해지면서 꽃밭이 나타났다. 와우~ 이런 가을에도 웬 꽃! 투구화, 추명국 갖가지 색의 국화꽃, 왜승마, 층꽃나무, 용담 등 갖가지 색이 어우러진 야생화 정원이다. 설치대 위에 높게 설치한 망원경도 하늘을 향해 있다. 클레지오가 경의 손을 잡고 긴 나무 의자 위에 눕힌다. 가만히 누워 있어 보라고 한다. 그리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자신이 내려가서 기타를 가져올 때까지 누워서 있어 보라고 한다. 이렇게 누워있으니 세상 천지에 자신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은 별을 볼 수 있을래나? 하늘을 본다. 북극성을 비롯한 초저녁 별들이 깜박거린다. 웅웅거리며 소리가 모였다 다시 흩어진다. 술기운 때문에 의식이 집중되지 않는다. 술에게 자신이 먹히지 않게 심호흡을 한다. 자신이 멀리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가물가물한 의식을 잡고 다시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순간 윙 하며 모기 소리 같은가 반복적으로 왔다 갔다 한다. 그러나 다시 벌레들의 날개짓 소리가 여기저기 들린다. 경은 무슨 일인가 일어나 눈을 떴다. 와우 수십 마리의 반딧불 초롱이 이 꽃 저 꽃으로 몰려다닌다. 클레지오가 켰던 전등불은 자동인지 이미 꺼져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경은 자신이 동화의 세계에 와 있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정지역에서만 자란다는 반딧불이 !! 생폴 드방스 사랑한다. 그 때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의 연주가 처음 바닷가에서 들린 것처럼 들릴 듯 말 듯 아득하게 들린다. 언제 왔는지 클레지오가 말없이 기타 연주를 하고 있다. 반딧불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낮게 깔리는 듯한 기타 연주가 묘하게 어울어져 깊은 산속처럼 고즈녁하다.
경이 잠이 깬 것은 새벽 2시이다. 액상 프로방스에서부터 시차 때문에 9시면 잠이 들고 2시에 잠이 깬다. 그때부터 작업도 하고 책도 읽고 후배가 일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한다. 후배가 일어나면 같이 아침을 먹고 후배는 학교로 경은 터미널로 행했다. 어제 밤 클레지오의 기타 연주 소리가 가물가물 들리듯 끊어지듯 한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 망원경으로 별을 봐야지 하는 생각을 품고 아득히 의식이 멀어졌다. 클레지오는 부모님 집으로 간 것인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금 별을 보면 딱 좋은 시간이다. 경은 침대 맡에 있는 조명등을 켜고 백 속에서 휴대용 담요를 꺼낸다. 커피를 마시고 싶다. 드립 커피를 배낭에서 하나 꺼내 경은 계단 복도의 불을 켜고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간다. 부엌 쪽의 스윗치를 찾아 불을 켜고 커피 포터를 찾는다. 식탁 위에 어제 저녁 먹었던 음식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클레지오에게 미안하다. 기타 연주를 부탁하고 가물가물 의식을 잃었으니. 싱크대 옆에 커피 포토를 찾아 물을 넣고 끓인다. 찬장에 진열된 커피잔을 꺼내었다. 드립 커피의 봉투 위를 찢어 커피잔 손잡이에 고정하려다 커피 포토의 물끓은 소리가 요란해 깜짝 놀라 컵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 소리 때문인지 거실 안쪽에서 인기척과 희미한 그림자가 다가온다. 경은 깜짝 놀라 클레지오? 클레지오? 오, 예스, 대답이 들어왔다. 그쪽에서 스윗지를 눌렀는지 거실이 순간적으로 확 눈에 들어온다. 거실 한쪽 구석에서 잤는지 거실 쇼파로 조립한 간이침대와 얇은 이부자리가 깔려있다. 클레지오가 잠 옷 위에 까운을 걸치며 하품을 문 채 부엌쪽으로 왔다. 잠을 깨워서 미안하다. 혼자인 줄 알았다.    
클레지오가 미안하다고 한다. 어제 경이 의식이 없어서 일어나 남의 집에서 무서워 할 것 같아, 부모집으로 못 갔다고 한다. 경 역시 클레지오 침대를 뺏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클레지오가 벌써 일어난 것이냐고 물었다. 지금 커피 끓여서 옥상으로 별을 보러가려는 중이었다고 했다. 다시 클레지오는 하품을 한다. 내일 아침에 다시 내년 생폴 드방스의 캘러리 월세와 리모델링 등 제반 문제를 협의하기로 해 지적재산권 보존위원회가 열린다고 했다. 9시에 회의가 시작한단다. 어제밤 자기 전에 회의 준비를 해야 해 자료와 기존 월세의 통계, 리모델링의 경우, 얼마까지 지원해야 하느냐 등 이전 자료를 정리하고 회의 준비를 마치고 잤다고 한다.
경이 리모델링에 드는 비용을 지적 재산권 보호위원회에서 지원해주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처음 갤러리아, 아뜨리에가 들어올 때 매월 적금처럼 지적 재산권 보호위원회에 저축한 돈으로 지원이 가능하다고 했다. 리모델링이나 이런 저런 필요할 때 사용하기 위해. 아뜨리에나 갤러리가 리모델링을 할 때는 지적재산권 보호위원회에서 회의를 거쳐서 돈이 지불된다. 이 때 갤러리에서 지원해달라는 돈을 다 지원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 해 정해진 금액만을 지불받았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갤러리 주인이 돈이 많다고 개인 돈을 더 내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생폴 드방스의 평균적인 균형을 맞추어야 이 마을을 유지하고자 하는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 한 갤러리나 아뜨리에가 자신의 개인 자신이 많다고 큰 갤러리를 사서 독식하면 이 마을이 자본에 의해 먹히면 지금 수준의 마을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는 한 번 둘러봐서 짐작하겠지만 그만 그만한 집에 비숫한 규모의 아뜨리에나 갤러리 등이 아담해서 마치 자신의 집 거실 같은 분위기이다. 
클레지오 커피? 오 케이~ 경은 두 잔의 커피를 만들어 클레지오에게 한 잔을 자신이 한 잔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려고 발 한쪽을 올리고, 클레지오에게 혼자 별을 볼 수 있으니 잠을 더 자든지 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커피 잔을 받으면서 클레지오는 또 어깨를 으쓱 올리며, 어차피 잠은 안 올 것이고 회의 준비도 끝났다며 같이 옥상에 올라가자고 한다. 경은 잠든지 얼마 되지 않은 클레지오를 깨운 것 같아 미안했다. 클레지오는 옷을 갈아입고 가겠다고 먼저 올라가라고 한다.
그동안 남 프랑스에서의 하늘을 보고 싶었지만, 거의 하늘이 구름으로 덮여보이지 않았다. 어제 밤의 하늘로 미루어보면 별을 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며 옥상을 올랐다. 반딧불은 다 어디로 날아갔는지 몇 마리만 불을 달고 웅웅거렸다. 어제 누웠던 긴 나무를 보자 여기 누워서 가물거리던 의식을 붙잡고 알함브라의 궁전의 추억 연주를 듣던 것이 생각났다. 그 다음은..아무리 생각을 떠올려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침대에 마치 자기 집처럼 얌전히 자고 일어났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침 별똥별이 휘익하며 아래로 떨어진다. 아, 별똥별 오래간만에 본다. 커피잔을 나무의자에 내려놓고 망원경대로 올라간다. 수많은 별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빛을 내다 꺼졌다를 반복한다. 이젠 더 이상 한국 어느 곳에서도 별무리를 볼 수없다. 어쩌면 경의 방황은 그 이후였는지 모르겠다.
생폴을 온다고 인터넷 자료를 뒤지다 알게 된 자크 프로베르의 시가 생각난다. 「이 사랑」에 나오는 시처럼 별을 볼 때마다 염원하게 된다. 우리가 어디 있던 너가 있던 그 자리에 너가 있어다오. 그리고 가끔 생명의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다오.
‘이 사랑’ 이라는 제목의 장시였다.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은 일부분을 외우면.

 

그래 난 외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다른 모든 이를 위해
거기에 있어다오
네가 있는 거기에
옛날에 있는 거기에
거기에 있어다오
움직이지 말아다오
떠나지 말아다오
사랑받은 우린
너를 잊었지만
넌 우리를 잊지 말아다오.
우리에겐 세상에 오직 너뿐
우리를 싸늘히 식도록 내버리지 말아다오.
아주 먼 곳에서라도 언제나
또 어느 곳에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신호를 보내다오
아주 오랜 훗날 어느 숲 모퉁이에서
기억의 숲 속에서
문득 솟아나
우리를 구원해다오. 


-자크 플로베르, 「이 사랑」 마지막 부분


여기서 샤갈과 거의 같은 시기를 살았다는 프랑스의 국민시인이라는 자크 프로베르 시는 단순하면서도 많은 울림을 주는 시가 많다. 샤갈과 근처에 살았다는 자크 프로베르의 집은 인터넷에 주소까지 나온 것을 보면 샤갈과 달리 임대로 든 집이 아니고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클레지오가 역시 커피잔을 들고 망원경을 보고 있는 경 옆으로 온다. 클레지오도 며칠 동안 거의 별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별을 볼 수 있는 것은 역시 경이 럭키하다고 한다. 여행 다니면서 별보기를 많이 시도했으나 쉽지 않다. 여행을 같이 간 모든 맴버들이 오직 별을 보는데만 목적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관광을 같이 하면 거의 실패한다. 관광 일정을 끝내고 들어오면 자정 가까운 시간이다. 하루 종일 팍팍한 일정 속에서 호텔에 돌아오면 샤워만 하고 바로 다음 일정을 생각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경은 몽고에서도, 남미 콜롬비아의 우유니에서도 별보기에 실패했다. 우유니에서는 피곤함에도 파트너는 피곤해서 못 일어난다고 해서 그대로 자게 두고 새벽 2시에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나갔지만, 그날도 날씨가 흐려 보지 못했다. 안나푸르나에서는 그래도 3시에 일어나 베이스 캠프로 향하는 산 속에서 기대하지 않은 은하수와 별무리를 만나는 행운을 가졌었다.
클레지오가 망원경을 쳐다보다 경을 본다. 자신이 내년 겨울 12월 쯤 아이슬란드 오로라를 보러가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경은 숨이 턱 막혔다. 경도 요즈음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를 보기 위해 시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중이다. 오케이 갈 것이다. 너무 쉽게 대답하니 클레지오가 경을 돌아보며 리얼리?를 두 번이나 반복한다. 경은 자신도 오로라를 보기 위해 캐나다 쪽으로 가나 아니면 아이슬란드로 가나 고민하고 있었다고 대답한다. 클레지오가 신기한 듯이 경을 쳐다보며 정말 우리 둘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은 것 같다고 감탄한다. 경은 알함브라 궁전에 가서 왕의 방을 보면서 왕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 때 경은 몇 백 년 전에 이 왕과 인연을 맺었어야 하는데 현실 속에서 경이 외롭게 사는 것은 아마도 그 왕과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 때 왕이 클레지오 자신이라고 말했다. 둘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새벽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웃음을 멈쳤다.
클레지오는 경의 오른손을 얌전히 잡았다. 자신은 살아가면서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힘이 쏟는다고 했다. 자신은 생폴 드방스의 이웃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데 힘을 쏟자고 맹세하게 된다고 한다. 자신이 행복한 순간만큼 이 생폴 드방스의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이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머무르면서 작업하는 화가들이나 설치 미술가들도 불편없이 작업할 수 있게 도우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폴 드방스의 행복감이 세계 여기저기로 퍼져나가 세계인류가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폴 드방스에서 절약하고 낭비하지 않고 쓴 예산 중에 일년 동안 결산해서 남은 돈은 모두 아프리카의 마다카스카라 등 몇 군데로 지원이 된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너만 행복하면 안된다. 너의 행복감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그 행복은 시너지 효과를 가진다. 생폴 드방스가 그럴 때 진정한 아름다운 마을이 될 것이다.
경은 클레지오의 말을 듣자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경이 생각하던 행복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올리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그의 ‘지쳤어’하는 말이 경의 귓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여기 와서 클레지오의 말을 들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경은 서울로 돌아가면 그에게 클레지오 이야기와 생폴 드방스 이야기를 해주어야겠다. 서울로 돌아가면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클레지오의 가족은? 결혼은? 갑자기 클레지오에 대해 궁금해졌다. 경은 클레지오를 쳐다봤다. 아이슬란드에 나하고 가도 되니? 클레지오는 다시 어깨를 으쓱하며 와이 낫? 한다. 너의 가족은? 롱롱 스토리, 우리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하자. 클레지오에게도 사연은 있는 것인가. 경은 화제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났다.       
      
경과 클레지오는 긴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경은 클레지오에게 샤갈과 자크 프로베르에 관해서 이야기 좀 해달라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샤갈과 자크 프로베르가 자주 가던 라 콜롬보 도르 호텔에 같이 술도 마시고 식사도 같이 했다. 자주 샤갈과 자크 플로베르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나 자신은 아직 어릴 때라 특별히 샤갈이나 자크 프로배르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나중에 책을 통해 그들에 관해 읽었을 뿐이다. 대부분 그들은 낮에는 집에서 작업을 하고 저녁에 산책을 하거나 예술가들끼리 모였다고 한다. 그들은 라 콜롬보 도르 호텔로 몰려서 술을 먹었다고 한다. 그 호텔도 옛날에는 허술한 여관 겸 식당이었는데 외부에서 온 화가들이 한 달 간 혹은 몇 달간 머무르다 돈을 지불할 수 없자 그림을 주고 가는 화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후 그 화가들이 유명해지면서 그림값이 오르고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 호텔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호텔 로비에 그 때 받은 그림을 전사하고 있어 더욱 그 호텔이 유명해졌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 유명한 화가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그들이 평범한 화가들이었으니, 나중 그들이 평가되면서 유명해진 화가가 많으니까. 나중에 생폴이 관광지로 부각되면서 마을 사람 중에는 관광객에게 듣고 그때서야 누가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를 통해 샤갈, 마티스, 미로, 등의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오긴 했지만 자신은 그때 초등학교 학생인지라 이름을 들어도 별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 집은 원래 비워있다 샤갈이 빌린 집이기 때문에 1층 작업실에서 부인 바바와 낮에는 거의 작업을 밤에는 어울려 술을 마셨다고 한다.
클레지오는 샤갈의 처음 부인 벨라는 자신의 고향 비테프스키와 함께 환상적인 모습으로 샤갈의 그림에 나타나는데 비해 바바는 극히 현실적으로 나타난다. 샤갈과 같은 유대인 집안에 고향조차 같은 벨라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거의 샤갈 자신과 동일시되어 있다. 샤갈은 벨라를 볼 때마다 고향을 떠올렸고 그들의 환상 속에는 언제나 고향이 중심에 있었다. 샤걀에게 유대인 집안은 자신의 뿌리였고 유대인 풍속 속에서 보낸 러시아의 비테프스키의 유년의 추억이 어린 그의 상상의 세계였다. 그런 추억을 공유한 벨라는 바로 고향이며 자신의 상상의 자극제였다.
클레지오는 자신이 읽은 샤갈이 쓴 벨라에 관한 글에서 ‘그녀의 침묵은 나의 것, 그녀의 눈은 나의 눈, 마치 그녀가 오랫동안 나를 알아봤고 나의 어린 시절과 나의 현재와 미래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었단다. 그 이후 자신도 그런 사랑을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자신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여자를 만나기가 쉽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샤갈은 행복한 남자였다고 했다. 경은 클레지오의 얼굴을 보았다. 희미한 새벽의 여명 때문인지 클레지오는 우울하게 보였다. 클레지오의 사랑에 대해서 듣고 싶다. 그러나 묻지 못한다.
또 벨라는 젊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기에 만났고 바바는 50세가 넘은 시기에 만났다. 바바를 만난 그 당시 샤갈은 성서에 빠져있었다. 성서의 감동 소재에 몰두,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들은 대부분 니스의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또 후기에는 스테인 글래스 작업을 같이 했기 때문에 이텔리, 독일 등 장기 출장을 많이 갔다. 그래서 생폴 드방스에 있는 날보다 떠나 있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한다. 독일 마인츠 성당에 스테인 글래스 작업 요청이 왔을 때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에 꼭 가야하나를 많이 망설였는데 결국 하나님의 집 교회를 위한 일로 받아들였다고 클레지오 어머니께서 부인 바바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해줬다고 한다.  
클레지오!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네요. 역시 여기 온 보람이 있네요. 샤갈이 함께했던 이 공간에서 샤갈 이야기를 들을 것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별까지 쏟아지는 밤에.. 경은 커피잔을 들며 클레지오도 커피를 함께 마시자는 신호를 보냈다. 참, 어제  이 의자에서 가물가물 의식이 멀어지는 것까지는 알았는데, 어떻게 침대로 갔는지 기억이 안나요. 클레지오가 커피를 한 입 마시고 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기타 연주를 다 끝내고 경한테 왔더니 색색하며 조용히 잠이 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자신이 부축해서 침대로 데려가려고 팔을 끼었더니 벌떡 일어나며 자신이 갈 수 있다며 씩씩하게 계단으로 내려가던데.. 기억 안 나요? 전혀요. 신기하네요. 이번 여행하면서 몇 번 기억은 안 나는데 내 의식이 원하는 것을 몸이 이미 해놓았더라고요. 어제 밤처럼! 클레지오가 경을 빤히 쳐다본다. 왜 제가 이상하게 생각돼요? 그것은 의식과 신체를 자세히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네? 그럴 수 있죠! 의식이 기억 못하는 것을 몸이 기억하는 경우 많지 않아요. 경의 어깨를 의지하고 있던 클레지오 고개가 떨어진다. 경은 클레지오를 일으키어 아래층으로 내려 보낸다.   
다시 잠이 들어 깨보니 7시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샤워를 하고 모든 짐을 다 정리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클레지오가 거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경은 부엌에서 컵에 물 한 잔을 따뤄 다시 2층으로 올라왔다. 부엌에서 아침을 대략 준비하고 싶었으나 회의 준비하는 클레지오에게 방해가 될까봐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침대에 누울까하다 테라스로 나갔다. 근데 테라스에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출을 보기 위해 기둥에 있는 단추를 눌렀다. 거울을 내리자 마자 태양빛이 너무 강렬하다. 밖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거울에 반사된 태양이 마치 불난 집처럼 하염에 싸여 있다. 지중해에서 뜨는 일출과 일몰을 이 테라스에서. 별까지 즐길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마을 생폴 드방스. 그 마을의 아름다움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클레지오. 부럽다. 여기야말로 햇빛으로 샤워를 하고 달빛으로 목욕을 해도 누구 한 명 침범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자 그동안 생각하지 말자고 마음 속 깊은 곳에 구겨 넣은 그의 잠적이 떠오르며 가슴의 아픔이 밀려온다. 행복하고 즐겁게 일하면서 자신을 재창출하고 있는 클레지오와 일로 고스란히 자신을 소모하고 있는 그가 비교되었다. 가끔 휴가를 얻어 경이 짠 여행 스케줄에 억지로 일정을 맞추어 함께 할 때도 있지만 시간내기가 쉽지 않다.  클레지오는 자신의 조그마한 행복을 찾아 일로 소모된 에너지를 충전 받고 있다. 그러나 클레지오와 달리 그는 모든 에너지를 일로 소모한다. 그러기에 그는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그래도 그는 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다행이다. 자신이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고객들 중에 전 재산을 잃을 위험도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한다는. 일의 성격이 클레지오와 다를 뿐이다. 또 클레지오처럼 살 수 있는 여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그를 가정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 그는 자신의 직업으로 해야하는 에널리스트로서의 경제 동향 분석이나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도 마치 숙제처럼 하고 있다. 그러기에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이번 그의 잠적이 그런 것에 대한 답을 찾는 기회가 되었으면. 오히려 경에게는 철저히 시부모로부터 분리, 경이 글 쓰는데 방해되는 에너지를 소모 못하게 보호해주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일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아래층에서 클레지오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경은 얼른 일어나 방을 거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 클레지오가 벌써 아침 준비를 다했다. 경은 미안하다. 굿모닝!! 클레지오. 굿모닝, 경 하면서 클레지오가 다가와 가벼운 포옹을 한다. 그리고 경이 앉을 의자를 빼준다. 야채 샐러드, 빵, 햄, 치즈, 삶은 계란, 올리브, 커피까지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다. 남자로부터 이렇게 저녁, 점심까지 서비스 받기는 처음이다. 서비스하는데 익숙한 경은 서비스 받는 게 불편하다. 그러나 인간 대접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은 좋다. 
경은 빵에 치즈를 바르면서 자크 프로베르 집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클레지오는 아주 가깝다고 했다. 자신의 집에서 똑바로 올라가면 같은 라인에 담장이 제일 많은 집이 자크 프로베르가 살았던 집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다른 사람이 산다고 했다.경에게 자크 프로베르가 파리에서 자살을 시도한 것 아느냐고 물었다. 안다고 했다. 왜 그랬을까요. 경이 물었다. 클레지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경은 클레지오가 안다는 소리인지 모른다는 소리인지 몰라 커피를 마시며 클레지오 얼굴을 쳐다봤다. 이것은 자신의 추측일 뿐이라며 클레지오가 말했다.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인간의 에너지를 완전 소모시키는 곳 아니냐,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심리적 충족감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바쁘게 살죠, 그러면 그럴수록 더 심리적으로 허해지죠. 자크 프로베르의 시를 보면 단순하면서 그 속에 진리가 드러나잖아요. 그런 사람이 파리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기로 이사 온 후 자크 프로베르는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오늘 자크 프로베르 집과 이 마을을 둘러 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충분히 가지고 마지막으로 샤갈 무덤으로 가려고 한다. 벨라를 잃은 이후 그 외로움에 대해 대화를 하고 싶다. 그리고 니스 시내로 들어가 메세나 광장 등 시내를 좀 보고 오후에 액상 프로방스로 돌아가려고요. 경은 오늘 일정을 클레지오에게 말했다. 점심도 좋은 레스토랑에서. 노 클레지오!! 말허리를 경이 잘랐다. 노, 클레지오! 이것으로 충분히 고맙다. 지금부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클레지오는 경에게 내년 겨울에 정말 아이슬란드에 오로라 보러 갈 것이냐고 물었다. 경은 이제 한국 돌아가서 열심히 살고 겨울에 아이슬란드에 갈 것이다. 클레지오는 여기 와서 며칠간 지내다가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경은 노, 아이슬란드에서 만나자고 했다. 클레지오를 다시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고 경이 말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더 멋진 기타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경이 클레지오가 하던대로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이 지금까지 그렇게 환상적인 기타 연주를 들은 적이 없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경이 말했다. 그리고 클레지오는 너의 소설을 보고 싶다고 했다. 자신도 그러고 싶다. 좀 더 유명해져서 언젠가 영어로 번역이 되면… 더 열심히 쓸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클레지오 때문에 소망이 생겨 그것을 소설로 쓰고 싶다고 했다.
먼저 가깝다는 자크 프르베르 집으로 갔다. 정말 붉은 벽돌 아담한 건물에 온통 담장이 뒤덮인 집이 나타났다. 창문이 있는 쪽만 담장이 침입을 못한 것 같다. 창문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자크 프로베르를 상상해 본다. 어렵지 않고 쉬운 문장으로도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보고 있는 시를 볼 때마다 아무 것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자크 프로베르를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살 기도까지.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것이다. 이 집도 클레지오네 집 규모만한 집이다. 동네가 다 그만그만한 아담한 집으로 지어졌다. 아직 관광객들이 도착하지 않았는지 마을이 조용하다. 붉은 색 철제 아치형의 대문 앞에 놓여있는 하얀 칠을 한 조금한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있다. 의자를 꺼내어 앉아본다. 그리고 자신이 올라 온 골목을 내려다본다. 마을이 인간적이다 라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다. 그것은 인간을 위협하는 특별히 큰 건물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자크 프로베르는 이 마을 자체가 시적이기에 이 곳에서 시를 쓰지 않아도 행복했을 것 같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마을. 집 하나 하나가 말을 걸고 있다.
관광객을 맞이 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대부분의 갤러리와 아트리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쇼윈도어를 통해 바라 본 갤러리마다 특색이 있다. 대부분의 실제 현대작가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개성있는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갤러리에서 하루 종일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비슷비슷한 갤러리와 아트리에로 채워진 사이사이의 골목은 마치 미로 같다. 마을 중간 중간에 설치 미술과 같은 예쁜 우물과 자코메티의 거인 같은 작품들이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비슷비슷한 골목을 몇 바퀴 돌아 생폴 드방스를 떠나기 전에 마을의 안쪽 끝에 있는 샤갈의 묘지로 갔다.
샤갈의 묘지는 마을 공원 끝에 있었다. 샤갈 묘지 돌 위에 샤갈이 자주 그렸던 염소나 닭이 그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놓고 간 돌들이 소복이 쌓여있다. 경은 묘지를 내려다보며 샤갈을 생각했다. 샤갈이 자신처럼 사랑했던 벨라가 미국에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으로 갑자기 죽었다. 그 충격으로 1년 이상 작업을 못하고 혼자 된 외로움 속에서 벨라만을 추모했다. 외로움의 강을 건너 둘째 부인 바바를 만났을 때는 10년이 지난 후였다. 여기는 바바와 함께 묻혀있다. 샤갈은 죽어서 벨라를 찾을 것 같은데, 벨라는 여기 없다.                                                                 





*이덕화 평택대 명예교수, 소설가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7 26호/아라포럼/권순긍/고전문학 속‘사랑’의 다양한 변주變奏 부관리자 2020.01.29 137
136 26호/아라세계/신연수/인천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 (1) 부관리자 2020.01.29 406
135 26호/산문/천선자/아이들이 없는 나라 부관리자 2020.01.29 87
134 26호/산문/정경해/카프카의 변신 부관리자 2020.01.29 98
133 26호/계간평/김영덕/시인들의 독도법讀圖法 부관리자 2020.01.29 79
132 26호/시집속의 시/정미소/잠깐의 물 파문을 그린 후 사라지는 조약돌처럼 부관리자 2020.01.29 59
131 26호/시時/안眼-미니소설/장종권/덕보네 不和萬事成 부관리자 2020.01.29 62
130 26호/단편소설/최임수/선인장 꽃 부관리자 2020.01.29 54
» 26호/단편소설/이덕화/생폴 드방스에서, 길을 찾다 부관리자 2020.01.29 73
128 26호/신작시/문현숙/남동생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62
127 26호/신작시/이성필/휘파람 불다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49
126 26호/신작시/홍계숙/마지막 종지기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72
125 26호/신작시/김정미/그늘꽃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48
124 26호/신작시/이승예/먼 섬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68
123 26호/신작시/이외현/배부르셨나요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57
122 26호/신작시/전홍준/구멍망둥이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79
121 26호/신작시/황상순/여우, 꼬리에 비밀을 감추다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57
120 26호/신작시/전방욱/발원을 찾아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57
119 26호/신작시/신정일/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41
118 26호/신작시/정승열/소나무 외 1편 부관리자 2020.01.29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