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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산문/박하리/영화『국가 부도』


영화『국가 부도』


박하리



딸아이가 엄마 “영화 『국가 부도의 날』 개봉했는데 보고 싶어?” “보고 싶을 텐데…….” 지독하게 겪었던 것을 조금은 이해하는 딸아이와 일요일 아침 조조를 예매하고 영화관에 갔다. 조조라 그런지 객석은 텅비어 있었고 드문드문 가족끼리 연인끼리 앉아 있었다. 영화관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팝콘을 입으로 넣으면서 얼마만큼 치열하고 리얼하게 영화 『국가 부도의 날』을 만들었을까? 영화감독의 머릿속으로 깊이 빠져 들고자 노력했다. 입으로 팝콘은 계속 들어갔고 광고 후에 영화는 시작되었다.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등 배우들의 화면을 메우고, 국가가 부도가 날 수 있다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타이머신을 타고 1997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쇄업을 하고 있지만 1997년은 과도기였다. 수작업을 하던 일이 기계로 대체되던 시기였다. 서둘러 기계 설비를 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시기였다. 인쇄 기계는 국내에서는 생산이 안되었다. 가까운 일본은 인쇄 전반에 필요한 기계가 일찍부터 생산이 되었고 유럽에서는 독일에서 생산되어 수입되었다. 그렇다보니 중간에 기계 수입업자가 있고 그 분들이 소개하는 데로 따라야 했다. 수입업자들은 국내은행리스보다는 외화리스가 훨씬 이자가 싸니 외화리스를 권했다. 당장 내야하는 리스료를 조금이라도 적게 내야하는 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택했다. 1997년 여름 기계는 설치되었고 조금 있는 돈에 이율이 낮았던 외화리스 그리고 아버지의 보증으로 기계가 들어와 설치되었다. 지금도 큰돈이지만 1997년에 현금 육천만원 주고도 일억 육천이라는 리스를 안고 시작을 했다. 그때 인천 32평 아파트가 1억 전후였다. 아파트 두 채를 사고도 남을 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삼십대 초반에 배짱이 두둑했다. 시작은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에 꿈은 부풀어 있었고 인천에서 몇 안되는 사무실이었기 때문에 일은 밀리고 밀렸다. 기계 리스료는 월 삼백만원 조금 넘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낼 수 있었다. 영세사업장에 직원도 여덟 명이었다. 작다면 작았고 많다면 많았던 직원들과 일을 하기 시작했다. 시작한지 두 달째인가 난리가 났다. IMF란다 IMF가 뭐야? 구제금융? 나라에 돈이 없어? 한두 달 전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누구라도 말을 했다면 기계를 설치했을까? 나라에 곳간이 비었으니 알아서 하시라고 했다면 누구도 나와 같은 선택을 안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TV에서는 명퇴되는 은행원들이 울고불고하고 하루가 다르게 환율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환율 폭등으로 청구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나의 패착이었다. 외화리스? 금리가 약간 높은 국내은행 리스를 썼더라면……. 기계가 설치되었을 때 환율이 팔백원 정도였으니까 천오백원에서 천육백 원까지 올라갔을 때는 리스료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월 삼백만원정도 내던 리스료를 칠백만원까지 내야했다. 그리고 3개월에 한 번씩 정산료라는 것이 나왔다. 정산료를 적게는 300만원 최대로 700만원까지 냈다. 지금도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정산료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기계 리스료는 그렇다 하더라도 인쇄재료 또한 수입품이라 재료비도 달러가 춤출 때 마다 춤을 추었다. 직원들 월급에 리스료에 재료비 폭등에 숨 막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눈을 뜨는 것이 괴로웠으니 말이다. 직원들 월급날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맞추고 나면 재료비 구해야했고, 재료가 들어오면 그날은 살 것 같았다. 매일 반복되는 날들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눈을 뜨면 리스료 내는 날짜는 다가와 있었다. 그때도 왜? 무엇 때문에 IMF가 무엇이기에 나를 이렇게 만드나 죽어야하나 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나에게 보증서준 아버지 어머니가 눈에 선했다. 그래도 “살다보면 지나가겠지 죽기야 하겠어” 지금도 생각해보면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살아야 했다.


해가 바뀌고 대통령도 바뀌고 나라에서는 IMF를 벗어나야한다고 금 모으기가 시작되었다. 국민들은 순수했고 집집마다 모아놨던 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라 운영을 잘못해서 국민들은 힘들었는데 그 나라를 위해서 장롱 속에 있던 금들을 들고 나왔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어머니는 금을 조금씩 모아두셨다. 돌, 백일에 선물도 해야 하고 손자 대학 가게 되면 금을 내놓을 생각 이었다. TV에서 나라가 IMF를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딸아이 고생하니 뭐라도 해야지 다락에 꼭꼭 싸두었던 금을 팔아야겠다고 하셨다.
“엄마 얼마나 있는데?”
“많아?”
이런, 그 좋은 생각 뒤로 어머니의 금반지 판돈을 어떻게 달라고 할까 고민되어 잠을 설치기도 했다. 다행이 어머니는 마음을 알았는지 금반지 판돈을 내놓으셨다. 폭등한 리스료에 정산료에 재료값에 죽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그 때 그 금반지 판돈으로 며칠은 발을 뻗고 잘 수 있었다.
이즈음 사람들은 “사무실 문 닫으면 되지 뭐 하러”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부모님은 보증 잘못 서 준 죄로 사무실 문을 닫으면 집에서 내몰리는 상황이었다. 죽을래야 죽을 수 없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돈은 쓸 수 없는 것이 되었고 밤낮없이 벌어 사무실 꾸역꾸역 운영해 나갔다. 기계 리스료는 거의 끝나고 나라도 IMF도 벗어나고 기계는 더 발전하여 다시 바꿔야 하는 시기가 왔다. IMF가 준 인생교훈은 죽어도 외화리스는 쓰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남기고 지나갔다.
그때 그 시절 같은 시기에 나와 같은 사무실을 하셨던 사장님 견디다 못해 사무실은 문을 닫았고 살길이 없어 유사석유 팔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코끝이 시큰해졌다. 영화는 계속 되었고 한강다리위에서 삶을 비관하여 떨어지는 장면과 부도어음을 돌려 어음 받은 사장이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사연, 거리로 내몰리는 명퇴자들, 나라가 부도나도 기득권과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들, 그냥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눈뜨기가 괴로웠던 날들 그 때 생각하면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하는 국가부도의 날. 국가부도 1997년은 참으로 혹독했다. 또 다시 IMF가 온다면 생명을 부지할 수 있을까? 어머니도 안계시고, 금도 없고…….
영화는 끝이 났다.





*박하리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말이 퍼올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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