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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5호/신작시/변선우/마지막에서 시작되는 무슨 일 외 1편


변선우


마지막에서 시작되는 무슨 일



누군가 당신의 혓바닥을 쥐고 있다는 구상,
에서 피로는 물기처럼 몰려옵니다.


어느 날 다시 몰려나갈 테지만 당신은, 한없이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어떠한 방식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4월 22일*의 오후입니다.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새벽,
땅이 이다지도 흔들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지구가 자신의 형편을 선전하려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저의 추측입니다만.


‘나는 굉장히 불온한 상태입니다. 바다가 비좁아지고 있음에 대하여 말이지요.’ 이런 식의.


달아난다는 건 버거운 일이기에, 나에게는 간신히 막아낸 눈물이 있습니다.



*


오랜만에 발견한,
당신은 빨랫줄에 걸려 있습니다.
해골과 근육이 달아나더라도 주구장창, 매달려 있을 계획인 것처럼 명징해지고 있습니다. 사소한 일은 호기심에서 시작되므로


하늘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손바닥을 오므리지는 않습니다. 허방도 당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므로 그러니까,


이건 적당히 낭만적인 일이라 생각됩니다. 가로와 세로를 무작정 겹쳐놓는다고 하여 체크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 같은 사실이


당신에게 도래한 거라는 짐작…. 수일간의 불성실한 밤이 당신을 견뎌낸 것처럼, 덮어두고 오해해야 하는 일들이 뼈아픈 법이지요.


당신,


고구마는 땅에 붙어 살아왔지만 공중에, 떠올라서야 인류의 눈에 띌 수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가방을 사랑해본 적 없는 사람이지 않았습니까. 동굴에서 빠져나와 처음 맞닥뜨렸던 밤공기.
짝짝이 날개를 지녔던 날벌레.
때꾼하던 눈.


당신의 많던 물기를 누가 다 빨아먹었을까요, 팝콘을 깨물던 나는 아닙니다. 그러하므로 당신은 훔쳐 나온 목숨을 간수 못 하던 시절처럼, 피로해지는 모양으로 보입니다. 저기


높은 빌딩에서 곤두박질치는 사람과 당신이, 지리고 있는 현재의 땀이…


지극히 유사하군요. 나는 당분간 더께의 방식으로 당신을 응시할 테고 당신은, 더욱이 빳빳해질 테고
태양은 닿을 수 없는 거리 저기서, 주구장창 빛이란 애물에 종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꾸덕한 먹구름이 당신 위를 지나고 있습니다. 당신 아래에는 그 무엇도 없으며 라디오를 잃어버린
4월 22일*의 오후입니다.


태어나는 것보다
탄성과 반성의 상관관계가 자상해지는 오늘입니다.


 * 지구의 날.





담벼락의 전개



배롱나무는 나에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나는 직면의 자세를 번복하고 있습니다.
기분은 벗어나지만 배롱나무가


배롱나무를 타협하지 않고 있습니다.


내 아래 묻었던 찻잔을 생각합니다.
유행하던 질병을 생각합니다.


바닥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아무도 공감해주질 않던 시공이 있습니다.


당신의 주름은 무엇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나는 계절처럼 또 다른 불우로 갈아입습니다.
배롱나무가 배롱나무를 사수하더라도
목젖 몇 개는 빼먹었습니다.


새벽의 배롱나무가 속살거립니다.


떠나 버려, 개새끼.


플라스틱 단소와 말 두 마리가 머릿속을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새장과 세차가 없습니다.


나는 내 그림자에 기대어 입장을 정리합니다.


사과가 느껴지면 죽고만 싶어.


무너지려 들면,
새벽의 배롱나무는 현기증을 건넵니다.


불우를 주시하는 마음으로
웅덩이와 수영모와 접영의 마지막 호흡을 떠올립니다.
떠오르지 않는 배후를 생각합니다.


이불이 내 아래서 종말을 지우고 있습니다.
배롱나무는 기꺼이 뻗어가려고 있습니다.
투명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도끼는 두고 코트를 운명에 바릅니다.


저에게 어째서 수화기가 쥐어져 있습니다.


마지막에서 물고 뜯는 연인과 영혼을 전시하는 노인 둘,


사방을 당겨 리본을 묶는 소년 하나.
배롱나무가 통과하지 않습니다.





*변선우 2018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동인 <0>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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