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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7호/단편소설/김현숙/이웃집 여자들


이웃집 여자들


김현숙



  오늘도 산책길에 그녀를 만났다. 여자는 오늘도 묵묵히 땅만 보며 걷고 있다. 틀로 콕 찍어낸 듯 매일 똑같은 웨이브 없는 커트 머리에, 얼 빠진 모습으로 갈색 티셔츠에 회색 바지, 크고 허름한 운동화를 질질 끌며 멍한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니 자세히 보면 입가에 뜻 모를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도 하여 그것이 보는 사람을 더욱 안쓰럽게 한다. 워낙 유순하고 반듯했던 사람이라 결코 무엇엔가 화가 난 사람의 표정은 아닌 것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리게 만든다. 그녀의 뇌리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말해주는 듯한 백지와도 같은 무연한 낯빛. 그녀의 대뇌 측두엽 해마의 반란. 뉴런의 변이. 사고와 기억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주요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만 느낌이다.  
  사람이 어쩌다 저리 되고 말았을까. 초가을 햇살 아래 산책로 벤치에서 신문을 읽던 현혜는 솟구치는 회한을 참을 길 없어 잠시 신문에서 눈을 떼곤 짠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파트 외곽을 따라 이어진 긴 산책로는 길 양 켠으로 늘어선 가로수와 벤치, 그리고 단지 내 초,중고가 어깨를 나란히 모여 있어 등하교길의 활기와 소음을 빼고 나면 종일 고즈넉한 고요가 깃든 길이라 그곳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하거나 신문을 읽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신도시 아파트가 형성된 지는 근 20여년. 그러니깐 현혜네가 이사온 지도 근 15년이 다 되어갔다.
  여자의 집은 현혜네와 같은 아파트 동일 라인의 위 아래 층이라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주 눈길이 마주치는 이웃이었다. 여자는 늘 언행이 조신하고 자그마한 몸매에 약간 내성적인 느낌을 주는 타잎이었고, 중학교 교사인 남편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단란한 가정의 전업주부이며, 오직 살림과 가족의 건사 밖엔 모르는 듯한 면모가 언행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런 유형의 여자였다. 그 집의 특징이라면 지극히 소탈하고 평범한 모습의 여자를 제외한 온 가족이 다들 너무도 빼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어 누구라도 보는 이를 한 눈에 사로잡는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이사 온 초창기 엘리베이터에서 가장 인사를 잘 하는 아이들도 그집 아이들이었다. 이웃 어른들과 마주쳐도 꼿꼿한 자태로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질 않는 요즘 애들과는 달리 해맑은 미소로 밝게 인사하는 모습이 보는 이조차 환하게 미소 짓게 하는 그런 존재였다. 때문에 이웃에 별 관심 없는 현혜였으나 유독 태희, 태민, 그들 남매만은 유독 뇌리에 또렷이 각인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엄마인 여자는 한 쌍의 백학처럼 눈부신 외모의 남매와는 너무도 그 분위기가 달랐다. 아이들은 일견 번듯해보이는 아버지쪽 유전인자를 물려받았다고 이해될 법도 했으나 소위 롱다리에 훌쩍 큰 키는 아담한 체구의 부모 그 어느 쪽도 닮질 않았음이 놀랍기만 했다.
  아이들이 참 예뻐요.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예의 바르고 인사성 있고…… 참 잘 자랐네요.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여자를 만나면 현혜는 몇 번이고 그렇게 아이들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아, 네에. 감사합니다. 그럴 때마다 여자의 반응은 늘 한결 같아 그저 빙긋 웃어보이며 담담히 반응할 뿐이었으나 모성 저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기쁨만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나곤 했다. 그럴 때면 초점 흐릿하던 여자의 눈빛은 까맣게 빛이 나곤 했기 때문이었다. 극히 평범한 외모라 빛나는 느낌 같은 것이라곤 전혀 없는 그녀였으나 그럴 때만은 그 어떤 은밀한 자부심, 환열 같은 것이 순식간에 여자를 에워싸며 그녀의 눈이 영롱히 빛남을 현혜는 놓치지 않았다.
  서울에서 수도권 신도시로 이사 온 현혜네 아파트엔 단지 내에 초중고교가 한데 몰려 있는 탓인지 고만고만한 청소년들을 자녀로 둔 한창 나이의 젊은 여자들이 유독 많았다. 한창 나이라 해봐야 40대 초반이었으나, 이미 아이들을 다 키워 대학을 졸업시켜 이제 각자의 길을 따라 품을 떠나보낸 50대 중반의 현혜로선 아파트의 여자들이 한참이나 그렇게 젊어 보일 수밖엔 없었다. 성당엘 다니는 같은 동 반모임 인원만 해도 무려 12명의 여자 중 현혜가 끝에서 두어 번째로 나이 많은 측에 속한 걸 보면 연령층의 분포가 대강은 짐작이 될 만 했다.
  5층 여자는 애초 저마다 엇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둔 이웃 여인들과도 전혀 어울리질 않았다. 학부모 모임 등을 통해 얼굴을 익히고 아이들끼리 한 반이라 서로 이름을 알고 있는 정도에서 그칠 뿐, 전혀 왕래라곤 없는 것이 특이하다면 좀 특이한 점이었다. 하지만 다만 여자가 다소 폐쇄적 성향을 지닌 성품이려니 여겼을 뿐이었다. 아니 그 보단 그녀에게 그닥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얘기가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집 아이들이 너무도 예쁘고 빼어난 것에 비해 여자에겐 타인의 관심을 끌 만한 특별한 요소가 없었다고 말함이 더 맞을 것이다.
  그에 반해 현혜의 성당 교우들은 대체로 대부분 싱그럽고 아름다웠다. 적어도 신앙의 안정감이 바탕된, 나름의 활력과 개성을 지닌 여자들이었다. 현혜로선 그들이 지닌 젊음과 탄력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으나 그들이 겪는 신산한 모든 것을 두루 거쳐 온 연륜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관조할 수 있음이 또한 묘한 평온감을 안겨주었다.
  교우들 중 특히 시라Syra와 이다Ida, 그 두 여자는 본질이나 성향에 있어 매우 대조적인 경우여서 눈에 띄었다. 미대 출신의 시라는 그 외양부터가 더없이 화려하고 활달하며 언행에 서슴이 없는 반면, 이다는 경상도 출신의 지독히 가부장적 성향인 남편의 그늘에서 조신하고 여리기 이를 데 없는 마치 한 포기 풀잎 같은 성정의 여자였다. 따라서 그들의 교육 방침이나 양육법 또한 현저히 다를 수 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라에겐 아들이 셋이었는데 두 아들 밑으로 딸이 하나 생기기를 간절히 원했으나 그 시도가 끝내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결국 터울이 많이 나는 늦동이 아들을 하나 더 갖게 되었다. 때문에 늘 5살짜리 사내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그녀는, 그러나 우악스런 아들 셋 사이에서도 늘 씩씩하고 활력이 넘쳐 경이롭기만 했다. 반면 이다는 권위주의적인 마초형의 남편 밑에서 위로 딸 하나와 아들 하나, 지극히 우등생인 남매를 키우며 조용히 살림에 전념하며 성당 활동에도 열심인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유형이었다.
  성당 여자들과의 반모임엔 ‘나눔’이라는 좀 특별한 시간이 있었다. 각자의 기도 속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저마다의 고뇌와 갈등, 그리고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서로 진솔히 털어놓고 그 해답을 강구하고 모색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선 무엇보다 서로의 마음을 활짝 열고 기도하듯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 보이는 게 중요했다. 이사 온 직후 현혜는 낯설고 서먹함 때문이기도 하였으나 그러한 여자들의 모임에 어울리길 극히 주저했다. 그러나 한 냄비 가득 수제비를 끓여 현관문을 두드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환한 미소로 인사를 건네오고, 부활절이면 온갖 정성으로 만든 예쁜 계란을 전하는 구김살 없고 밝은 여자들의 모습은 결국 현혜의 마음을 함락시키고 말았다. 실비 형님. 어정쩡한 자세로나마 결국 반모임에 나가게 된 현혜를 성당 여자들은 그렇게 불렀다. 현혜의 세례명인 실비아Silvia를 줄인 친밀감 깃든 호칭이었다.
  한 달에 한번 차례로 돌아오는 반모임이 있는 날이면 여자들은 저마다의 살림 솜씨와 발군의 요리 실력을 발휘, 직접 만든 음식을 선보이며 풍성한 식사와 다과의 자릴 마련하곤 하여 현혜를 놀라게 했다. 뭐하나 버릴 게 없는 예쁘고 알뜰한 여자들이라고 현혜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써야만 하는 그런 일에 어느 만큼 지친 나이의 현혜는 자기 차례가 오면 집에서 법석을 떠는 대신 으레 여자들을 데리고 무조건 야외로 나가 밥을 샀다. 주로 풍광 좋고 이름 난 음식점을 순례하는 식이었는데 그 또한 살림에만 얽매인 여자들의 기분을 전환하기엔 더없이 적절한 시간이라고 다들 좋아했다. 그런 시간들을 함께 하며 점차 교우간의 유대를 넘어선 짙은 친화감이 형성된 때문일까. 나눔의 시간 외에도 여자들은 곧잘 현혜를 찾아 와 개인적인 문제들을 의논해오곤 했다.


  어느 봄 평일 아침이었다. 아파트 현관 벨이 울려 나가보니 뜻밖에도 시라가 눈물을 흘리며 서있었다. 실비 형님, 저랑 얘기 좀 하실 수 있나요. 그럼, 있고 말고. 어서 들어 와. 그녀를 우선 안으로 들여 드립 커피 한 잔을 내려주며 그녀의 기분이 가라앉길 기다렸다.
  형님, 준이 놈 땜에 미치겠어요. 자식이 아니라 웬수에요, 웬수.
  시라는 중3때부터 큰 아이 준이 인문고에 갈 성적이 안되어 맘고생을 톡톡히 한 터라 이웃 보기 부끄럽다며 곧잘 눈물바람으로 현혜를 찾아오곤 했기에 새삼 놀랄 일은 아니었다. 
  신학기 초인데 지금 학굘 안 간다고 이불 뒤집어 쓰고 저러고 누워 있어요. 잘난 상고 들어 간 주제에 사람 속을 완전 뒤집네요. 시라는 아침부터 옹고집을 부리며 등교를 거부하는 큰아이 준을 타이르고 달래며 별별 짓을 다해봤으나 허사, 그만 열불이 치솟아 자신이 먼저 집을 뛰쳐나오고 말았다며 엉엉 소릴 내어 울었다. 맘을 달래려 혼자 아파트 동산엘 올라 몇 바퀴나 돌며 기분을 가라앉히려 애썼으나 도저히 안돼 현혜를 찾아왔다고 했다.
  너무 상심하지마, 시라. 상고에 가서 내신 좋고 학생부 점수 잘 따면 외려 대학 가기 더 쉬울 수도 있어. 대신 학부모 활동 열심히 하며 준에게 힘 좀 실어 줘. 근데 준이가 오늘 학굘 가기 싫은 이유가 뭐래. 현혜가 차분히 운을 떼자, 시라는 한숨을 내쉬며 사건의 전말을 얘기했다. 학년 초라 복장, 두발 단속이 한창 강화된 때, 마침 봄방학 내내 머릴 기른 준이가 담임 교사에게 걸려 정수리 한 가운데가 마치 고속도로를 낸 듯 바리깡으로 휑하니 밀려버리고 말았다는 것. 그렇잖아도 급우끼리 서로 가오 잡고 은근 파워 게임에 신경 쓰는 시기인데 정수리를 밀린 채론 쪽 팔려서 도저히 학교엘 갈 수 없다는 게 준의 얘기였다. 가뜩이나 요즘 마악 사귀기 시작한 같은 반 여학생 보기에도 완전히 폼을 구기고 말았다는 게 준의 생각이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패션 모자를 씌워주며 머리털은 금방 곧 자라나니 조금만 참고 견뎌보라고 등을 떼밀어도 막무가내. 적반하장도 유분수, 외려 미친 듯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릴 지르고 난리였다며 시라는 다시금 눈물을 글썽였다.
  시라,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맘을 너무 조급히 갖지 마. 그리고 되도록 아일 이해하려고 노력해봐. 학교 하루 안 간다고 큰 일 나는 거 아니잖아. 만약 험한 사고로 다치거나 아프거나 해서 학교 못가는 경우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 해. 현혜는 그런 식으로 시라의 맘을 달래었고 자신의 양육 경험을 살려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공부 잘하는 아들이 반드시 사회의 모범생이 되란 법 없고, 또한 공부와 효孝가 꼭 그렇게 정비례하는 게 아님을 주변의 모든 경우를 봐서 익히 잘 알고 있었던 때문이었다.
  그날 시라는 현혜의 조언대로 준과 함께 흔연히 백화점 나들이를 하여 그에게 새옷과 비니 모자, 그리고 맛있는 걸 잔뜩 사 먹이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었고 오는 길엔 미용실에 들려 준의 머리도 되도록 바리깡 흔적이 안나게 잘 밀어주었다. 아들과의 데이트,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다음 날 아침 밝은 미소로 등교하는 아들의 씩씩한 뒷모습에 시라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반면 이다의 아들 민호는 동네에서도 칭송이 자자한 범생이었다. 전교 일등을 도맡아 하는 우등생에 잘 생긴 외모, 거기에 글까지 잘 써 주변 학부모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아이였다. 독서광이라 할 만큼 책읽기를 좋아하여 이다가 아들의 체계적인 독서를 위해 가정방문 독서지도사를 둘 정도였다. 이다의 딸, 민호의 누나 역시 선하고 예쁜 얼굴에 공부를 잘 해 자식 농사 잘 지은 케이스로 동네 여자들의 부러움을 샀다. 현혜가 보기에도 이다의 아이들은 어디서나 눈에 띌 만큼 인물 있고 똑똑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좋았다. 시라 또한, 이다네 아이들은 어쩜 그렇게 반듯하고 나무랄 데가 없대요, 하며 긴 한숨과 함께 약간은 불온해보이고 반항적인 자신의 아들, 준을 비교하며 민호의 남매를 부러워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운다는 건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 현혜의 나이, 살아 온 세월이 그걸 말해주었다. 타고난 감성과 다독으로 더없이 예민하고 명민하던 민호가 고 2가 되자 어느 날 돌연 등교를 거부하며 홈 스터디를 고집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이다는 거의 실신 지경에 이르렀으나 민호는 요지부동이었다. 학교란 환경이 불필요한 신경 소모와 박제화 된 획일적 교육으로 극히 비효율적인 과정일 뿐이라는 게 민호의 생각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보다 창의적이고 실리적인 독학의 길을 택해 학습 효과를 최대한 끌어 올리겠노라 완강히 맞서며 결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너무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 탈이었다. 예컨대 폭넓은 독서가 가져다 준 자유에의 갈망과 보다 더 높은 차원의 교육을 향한 염원에서 비롯된 선택일 법도 했다. 그러나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담임 교사를 비롯, 학교 선생님들, 가족 친지 등 주변의 모든 이들이 정규교육의 강점과 학우들간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민호를 만류하고 설득했으나 탄탄한 독서로 무장된 민호의 사고와 아집은 아무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5층 여자의 아이들, 태희와 태민은 유난히도 현혜의 눈에 자주 띄었다. 중학교 때까진 그리도 인사성 밝고 예쁘던 연년생 남매가 고등학생이 되고 부턴 어쩐 일로 그 행동 양상이 너무도 달라져 과연 그들이 예전의 그 아이들이 맞는지 현혜는 자주 헷갈렸다. 아파트 4층과 5층 사이 층계참에 담배 꽁초가 버려져 있다며 아파트 청소 아주머니가 주의를 줄 때만 해도 현혜는 자신의 남편은 비흡연자라며 적극 부인하는 선에서 그쳤으나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층계에 쪼그리고 앉아 친구와 함께 담배를 피워 물다 후닥닥 위층을 향해 튀어 달아나는 5층집 딸, 태희를 목격하는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친구를 잘못 사귀었나, 몇 번이고 5층 여자에게 귀띔 해줄까 싶은 마음이기도 했으나 워낙 교류가 없는 이웃이라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긴 다리가 그대로 드러나는 점점 짧아만 가는 교복치마, 여대생 같은 긴 머리, 빨간 입술, 뽀얗게 분을 바른 태희의 모습은 중학생 때의 귀엽고 청초하던 모습은 흔적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오가다 마주치면 늘 환하게 인사하던 모습은 간곳 없고 태희는 점차 현혜와의 마주침을 피하며 눈을 내리깔곤 모른 척 달아나기 일쑤였다. 반면 남동생 태민은 등하교길 종종 해사하고 예쁘장한 여학생의 손을 꼬옥 잡고 다녀 주위의 시선을 끌곤 했는데 어쩜 그런 당당함이 외려 더 양성적 행위가 아닐까 하면서도 현혜는 일면 5층 남매를 향한 한가닥 불안한 예감 같은 것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독일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에릭슨의 정신분석학적 분류에 따르면, 인간발달 단계에서 현혜는 자신이 처한 시기가 바로 자아통합의 단계가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생을 돌이켜보며 그 궤적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통합하는 단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후회까지도 수용하여 그 한계를 인정하고 또한 그 안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시기. 현혜는 이즈음 자신이 처한 때가 바로 그러한 시기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학교 앞을 지나다 아이들을 볼 때면 그맘 때 자신의 아이들이 생각나 돌연 가슴이 뻐근해오며 모든 것이 후회되는 슬픈 회한에 눈시울이 뜨거워짐은 도무지 예삿 일이 아니었다. 주위의 아이들 하나하나가 그저 무심히 보이질 않고 그 옛날 자신의 아이들과 겹쳐 때늦은 각성과 성찰로 가슴이 미어지곤 했다.
  늦깎이로 어쩌다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리게 된 후, 밤 새워 원고지 앞에서 끙끙거릴 땐 한창 자라나는 두 아이의 영양은 물론, 때론 도시락조차 제대로 챙겨주질 못한 모성이고 보면 새삼 맘이 아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살뜰히 간식을 챙겨주기는 커녕 시선조차 따뜻이 맞춰 줄 여유가 없는 강파른 세월이었다. 어휴, 소설 쓰는 엄마를 만나다니. 내 팔자도 참 기구해. 아들 아이는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 와 머릴 쥐어뜯으며 글 쓰고 있는 내 모습에, 버럭, 화를 내며 가방을 집어던졌다. 그로부터 이어진 걷잡을 수 없는 아이의 일탈과 방황에 도리없이 현혜는 글 쓰는 일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 뿐인가. 모성의 따스한 관심과 보살핌에서 벗어난 딸 아이는 재수까지 합쳐 1차, 2차 대입시 원서를 무려 24장씩이나 쓴 끝에 겨우겨우 서울 외곽의 어느 여대에 합격할 수가 있었다. 아직도 재수 학원의 등원 첫날, 가냘픈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메고 집을 나가던 딸아이의 애처로운 뒷모습을 그녀는 잊지 못한다. 화사한 봄꽃 향연 속에서 참새처럼 재잘대며 무리지어 걸어가는 대학 새내기들의 활기차고 발랄한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해 봄을 떠올리면 지금도 그녀는 심장이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좀 더 잘해줄 걸. 보다 지혜롭고 따뜻한 모성으로 대할 걸……. 하지만 그건 이미 다 지나간 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현혜는 늘 이웃 여자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 품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펴줘야만 한다고, 생에 있어 그 보다 중요한 일이란 실상 아무것도 없다는 걸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대입시의 결과는 엄청난 이변이었다. 그토록 말썽을 피우며 시라의 속을 썩히던 준은 상고로 진학하여 학부모 운영회장을 맡은 시라의 열성에 힘 입어 학업 성과 외 모든 교내외 학생 활동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소위 학생부종합전형의 최대 수혜자가 되어 서울의 중류권 대학에 거뜬히 합격하는 이변을 낳았다. 반면 이다의 아들 민호는 학교생활을 접고 홈 스터디를 통해 독학한 결과 결국 입시에 실패했다. 예측 불허의 결과에 교우들은 모두 말을 잃었고 현혜는 민호의 대입 실패가 너무도 안타까워 속이 아렸다. 한 해전 이다의 딸, 민호의 누이가 서울의 명문대 한의대에 합격하여 동네가 떠들썩했던 것과는 완전 대비를 이루는 상황이었다.
  대입시 후 이다는 한동안 동네에서 그 모습이 사라지고 보이질 않았다. 홈 스터디를 고집한 끝에 결국 재수의 길로 들어선 민호의 대입시 결과에 충격이 너무 큰 탓인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녘 고향집에 내려가 휴양 중이라는 얘기, 교외의 어느 한적한 수녀원으로 피정을 떠났다는 설 등이 전해져 와 현혜는 도시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이다의 핸드폰은 전원 꺼짐 상태의 지속이었고 한동안 어떻게 연락할 길이 없어 현혜는 적이 속이 탔다. 
  반면, 준의 상고 진학으로 3년간 늘 얼굴을 펴지 못하던 시라는 상고의 유리한 내신 점수, 학종부 등 입학사정관제의 혜택을 톡톡히 입어 예상 외로 준이 인in서울의 꽤 괜찮은 대학에 합격하자, 그간의 모든 것을 보상 받듯 기쁨에 넘쳐 어쩔 줄을 몰랐다. 언젠가 현혜가 시라 대신 써 준, 준의 학교 교지에 실린 학부모 대표의 글이 인기를 끌어 학교측으로부터 더욱 주목을 받게 된 점도 준의 학교 생활에 큰 보탬이 되었고, 또한  모든 면에서 애들을 먼저 키운 현혜의 조언이 매우 요긴한 도움이 되었다며 시라는 현혜에게 거듭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현혜의 마음은 상심에 빠진 이다의 거취가 걱정되어 시라의 감사가 그리 큰 기쁨으로만은 와 닿질 않았다. 이왕이면 맘 고생 극심했던 시라와 이다, 그 두 가정에 복이 골고루 내려졌더람 하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환경일까, 두뇌일까, 가계 대대로 전수되어 내려오는 피의 내림 DNA일까. 아님 타고 난 성향이나 건강, 성격 등이 학습의 주요 동인인 것일까. 그 중 무엇이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웃 아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혜인은 새삼 깊은 의문에 빠져들곤 했다.    
 
  5층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이상 징후를 느낀 건 아파트 울타리의 산수유가 노오랗게 꽃망울을 터뜨리던 대입시가 있던 그해의 봄, 그즈음이었다. 대입시 와중 내내 5층 여자의 집은 너무도 조용하고 잠잠하기만 했고 한동안 태희와 태민을 전혀 본 적이 없음도 기이하기만 했다. 더구나 또래를 둔 학부형들 사이에서도 5층 아이들의 대입 결과에 관해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봄 외출에서 돌아오던 현혜는 마침내 아파트 현관 엘리베이터 앞에서 5층 여자의 축 쳐진 기운 없는 모습과 마주쳤다. 강보에 싸인, 백일이 막 지났을까 말까 한 갓난 아이를 품에 안은 여자의 출현에 현혜는 와락 반가움 느끼며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나, 아기가 예쁘네요. 누구에요. 현혜의 물음에 여자는 매우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멋쩍게 웃어보였다. 뭔가 넋이 빠져버린 듯한 멍한 모습에 상호 의사 소통에 장애가 온 듯 도무지 감정이 내비치질 않는 무감각한 표정이 섬찟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친척 아길 맡아 키우시나봐요. 아, 네에…… 여자는 그제야 얼굴을 들어 비싯 웃어보이며 겨우 그렇게 반응했으나 굳은 듯 무표정한 얼굴은 변함 없었다. 현혜는 너무도 놀란 얼굴로 5층 여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집 4층에서 엘리베이터를 내렸다.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 가을이 지날 동안 5층 여자는 이제 더 이상 현혜의 눈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5층 여자 대신 어느 낯선 여인의 품에 안긴 아기의 모습만을 간간히 볼 수 있을 따름이었다. 부모의 애절한 기다림, 인내, 노고 등은 간과한 채 군대 간 남의 아들, 그리고 남의 집 아이 자라는 것만큼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일은 없다는 건 맞는 말임을 현혜는 절감했다. 5층집 아기의 성장이 바로 그러했다. 겨우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한 두해 겨울이 지나고 나면 어느새 동네를 깡총깡총 뛰어다니고 어언 자기 몸피만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어린이집을 드나드는 장면을 목격하게 됨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동안에도 어쩐 일로 여자의 모습은 한동안 주변에서 통 마주치질 않았다. 한동안 뜸했던 끝, 지난 가을 무렵 비로소 5층 여자는 다시금 동네 산책길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자의 모습은 마치 외양은 같으나 전혀 다른 사람인양 변해있었다. 우선 예전에 알던 이웃들을 일체 알아보지 못했고 현혜가 바로 눈 앞에서 인사를 해도 마치 낯선 사람을 보듯 뜨악한 낯빛으로 서먹하게 대하는 점이 그러했고, 산책 중 길을 잃어 몇 번이고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간 아는 이들의 손에 이끌려 겨우 집을 찾는 등의 일련의 행위가 그걸 말해주었다. 대뇌 양쪽 측두엽에 자리한 해마의 반란으로 지형이나 인물, 일정 장소에 대한 기억과 정서적 반응, 주위환경에 대한 공간적 정보를 입력하는 장치가 완전히 마비되고 만 것일까. 아님 사건이나 사실의 중요성, 특히 감정과 연결된 요소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편도체의 역할이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것인가. 현혜는 마치 육신에서 혼이 저만 빠져나간 듯 넋 잃은 여자의 모습에서 가슴 미어지는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 아이들 칭찬에 수줍은 미소로 답례하던 반짝이는 눈빛은 다 어디로 갔나. 인사성 있던 그 고운 모습의 아이들은 왜 보이질 않는 것일까. 불현 듯 밀려오는 세월의 무상성과 허허로움이 현혜의 가슴을 가득 메워왔다.  
  가뜩이나 최근 몇 년 사이 가까이 지내던 시라, 이다 등 성당 반모임 근 10여명에 달하던 교우들이 하나 둘 이사가고 그 풍성하던 모임도 점차 축소되어 이젠 특유의 활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대신 ‘그 향기-그리스도의 향기’ 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조성, 두 달에 한 번의 만남으로 겨우 옛 교우들의 정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것은 변하고 흐른다. 그 만고의 진리를 요즘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다. 이웃의 희로애락, 부침을 지켜보며 현혜는 더욱 그것을 절실히 통감했다.
  아파트 산책길 벤치에 앉아 신문을 펼쳐 든 현혜의 눈에 줄곧 앞만 바라보고 걷고 있는 5층 여자의 모습이 보여 현혜는 긴장했다. 며칠 전에도 길을 잃고 헤매는 여자를 그녀의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몇 마디 말을 건넸으나 여자는 삐긋 웃어보이기만 할 뿐 도무지 말이라곤 없었고, 그녀의 집 5층 버튼을 눌러 주어도 4층에서 내리는 현혜를 따라 함께 내리려는 통에 혼비백산, 반드시 5층 그녀의 집 앞까지 데려다 줘야만 함을 현혜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아래 위층에 살며 결코 모른 척 할 순 없는 일이었다. 예의 산책길을 한 바퀴 돌아 나오리라 예상하며 현혜는 한참을 벤치에 앉아 여자를 기다렸으나 허사였다.
  무언가 불안한 마음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 현혜가 산책길 모퉁이를 따라 마악 몇 걸음을 옮기자 저만치서 여자의 팔을 잡고 걸어오는 한 나이 든 아낙의 모습이 보였다. 현혜가 반색을 하며 5층 여자에게 다가가자 함께 오던 아낙이 비로소 안도하는 낯빛으로 현혜에게 말을 건넸다. 이 분을 아세요. 그럼요, 같은 동 바로 위층에 사는 이웃인데요. 저랑 함께 가면 돼요. 근데 댁은 누구신지요. 현혜가 물었다. 한 교회 다니는 교우에요. 아낙이 말했다. 낮에 혼자 교회 오면 번번이 집에 가는 길을 잃고 헤매곤 하여 가족들이 애를 먹어요. 방금 교회 앞에서 저랑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다면 필경 또 길을 잃고 말았을 거에요. 5층 여자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뚜벅뚜벅 앞 서 갔고 현혜와 아낙이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저이 혼자 나오면 절대 안되는데 현관문 열고 자꾸 밖으로 나와 가족들이 애를 먹는다니까요. 아낙이 거듭 우려를 표하는 통에 비로소 현혜가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물었다. 근데 얌전하고 참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저렇게 된 거에요? 글쎄 말입니다. 아프기 전엔 교횔 안 다니다가 요즘에야 나오기 시작해서 저도 자세한 건 잘 몰라요. 다만 딸애의 탈선과 퇴학 땜에 충격 받아 저리 됐다지요. 대학 들어가 한창 예쁘게 꽃 필 나이에 애 엄마가 돼버렸으니 그 에미 맘이 어땠겠어요. 아낙이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혹시 그집 아기가 딸이 낳은 애라는 것인지……. 현혜가 놀라 반문했다. 아니, 위층이신데 아직 그 사실 모르셨어요. 어머, 저는 이미 주위에 다 알려진 일인 줄 알곤. 어머, 어쩌나……낭패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아낙이 말을 얼버무렸다. 근데 왜 병원 치료는 안 받나요. 왜요, 오랫동안 입원도 하고 한동안 교회 소속 기도원에도 가 있고, 온갖 치료를 다 받았어도 진전이 없어 요즘은 그저 교회 다니며 성령 치유만 받고 있다네요. 아…… 그랬군요. 강한 둔기로 머리를 세게 얻어 맞은 듯 얼얼한 충격에 현혜는 더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그만 가보시죠. 이 분 제가 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겨우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5층 여자는 혼자서도 잘 갈 수 있음을 보여주듯 두 사람의 대화엔 전혀 상관없이 앞장 서 성큼성큼 걸어갔다. 현혜는 황급히 여자를 뒤따르며 교회 아낙을 중도에서 돌려보냈다. 교회 아낙이 전하는 얘기에 충격이 커 좀 멍한 느낌이긴 했으나 맘을 한껏 추스르며 현혜는 5층 여자를 데리고 자신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여자는 전혀 방향 감각이 없었다. 아파트의 다른 동으로 들어가려는 걸, 저 동이 우리 동이에요, 하며 시종 현혜가 앞장 서 길잡이 노릇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자가 돌연 아파트 정원 벤치에 주저앉으며 현혜를 향해 손짓했다. 늘 목석 같이 굳어 있던 얼굴에 섬광인양 한가닥 미소가 어리는 모습이 놀라워 현혜는 감전된 듯 여자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옆에 앉았다. 여자에게서 그런 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다.
  저어, 바이칼 호수를 아세요?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바다처럼 넓고 깊은 호수 말이에요. 저는 어디서든 호수만 보면 바이칼이 생각나 기분이 좋아져요. 울오빠가 이르쿠츠크에서 광산을 하는데 무척 부자에요. 우리 애들이 아직 고등학생이잖아요. 졸업해서 대학 갈 때면 꼭 데리고 오랬어요. 태희는 발레를, 태민이는 성악을 공부하고 싶대요. 그곳에 유학 오면 울오빠가 도와준다고 약속했거든요. 
  뜬금없이 바이칼을 얘기하는 여자의 눈빛이 순간 캄캄한 그녀의 대뇌, 그 어디쯤을 비추는 살별인양 찬연한 빛으로 반짝였다. 예전 현혜가 여자의 아이들을 칭찬할 때 드러내 보이던 까맣게 빛나는 눈빛. 여자의 무의식에 낙뢰가 내리친 듯 깜빡 제 정신이 든 것일까. 이즈음의 흐릿하고 초점 없는 눈빛과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현혜는 여자의 갑작스런 변화에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으나 일면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근원 모를 반가움에 스며들 듯 여자와 얘길 나누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특히나 ‘이르쿠츠크’ 란 도시를 그토록 정확히 발음하는 여자의 말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혜 자신조차 늘 이르쿠르츠를 이르츠크, 혹은 이르쿠츠로 발음하기 십상인 까닭에 더더욱 그녀의 또렷한 총기와 발성이 놀랍기만 했다. 다만 여자의 의식에서 시간이란 오직 과거의 어느 한 때에 고정되어 그것이 영원한 현재로 인식될 뿐임이 안타까웠다.
  저도 실은 바이칼이 젤 가고 싶은 곳이에요. 늘 그곳이 그리워요.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던 중 이르쿠츠란 도시에서 주유를 위해 잠시 쉬었다 간 적이 있어요. 여름 저녁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도시가 그렇게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일 수가 없었어요. 순간 그곳 바이칼 호수를 떠올리며 언젠간 꼭 한번 이르쿠츠에 다시 오리라 다짐했지요. 현혜 또한 그때의 여정을 떠올리며 새삼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르쿠츠가 아니고요. 이르쿠르츠에요.  이르쿠르츠. 놀랍게도 여자가 현혜의 틀린 발음을 고쳐주며 맑게 웃어보였다. 순간 두 여자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하하하…… 정말 모처럼만에 보는 여자의 환한 웃음이었다. 맞아요. 이르쿠르츠. 난 매일 그걸 틀리게 발음한다니까요.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우는 이르쿠르츠, 그곳의 이름난 호수 바이칼. 지구상에서 가장 크고 깊고 차갑고 오래된 담수호. 몽골어로 ‘자연’을 뜻한다는 바이칼.
  어느 먼 곳을 향한 여자의 눈빛이 아스라한 그리움에 넘실거렸다. 하긴 우리 동네도 호수는 많아요. 나름 꽤 아름다운 곳이라 자주 가는 편이에요. 산책길 끝 저 산 모롱이 돌아 꼬불꼬불 산길 타고 끝까지 가면 바로 호수가 보이잖아요. 당장 바이칼은 못간다 해도 거기만 가도 기분이 좋아지죠. 무심코 하는 현혜의 말에, 그럼 저 산만 넘어가면 호수가 보인다는 거죠, 분명히 맞는거죠. 여자는 몇 번이고 호수로 가는 길을 확인하며 눈을 반짝였다.
  그러나 어느새 다시 멍한 표정으로 돌아간 여자와 함께 그들은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예의 4층 현혜의 집엘 따라 내리려는 느낌이라 현혜는 와락 긴장하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까지 올라가 그녀를 집 앞에 내려 주었다. 여자는 이제 혼자의 외출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 아낙의 말은 현혜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옥같은 자식의 탈선으로 한 순간 그만 넋을 놓고 만 애달픈 모성. 여자의 사연을 알고 나니 미어질 듯 가슴이 아파 현혜는 한동안 도무지 망연하기만 한 기분이었다, 그토록 청초하고 예쁘던 아이가 그렇듯 일찍 꺾이고 말다니……. 그러나 앞으로도 그 애에게 남은 생은 얼마든지 길다. 만회와 회복, 치유의 시간은 아직 충분히 있을 터. 다만 심약한 모성의 돌연한 발병만이 더없이 안타깝고 안쓰러울 뿐. 감당키 어려운 큰 충격과 고통, 슬픔은 치매 혹은 정신분열의 인자를 유발시킨다는 학설은 맞는 것일까. 여자의 생이 한없이 애처로워 현혜는 가슴이 먹먹해옴을 참을 길이 없었다.  
 
  가을이 짙어지자 여자의 병은 점점 더 깊어만 갔다. 그러나 반면 그 집 아이는 너무도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나 놀라웠다. 아니 여기에요. 이쪽, 이쪽이라니깐요오. 아파트 근처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5층 여자의 손을 꼭 잡곤 길을 안내하는 당차고 똘똘한 아이의 모습에 현혜는 형언할 길 없는 감동을 받았다. 그건 제아무리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명을 거두고 키우는 일만큼 희망, 신비, 경이를 절감케 하는 일은 없음을 확인하는 광경이었다. 
  병의 예후가 점차 더 악화된 것일까. 날씨가 제법 차가와지며 여자의 외출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동네 산책을 미루는 일이 없는 현혜의 눈에 한동안 여자의 모습은 거의 보이질 않았다. 어쩌다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건 반드시 여자의 가족 중 누군가의 보호 하에 동반자와 함께 있음을 목격하는 경우 뿐이었다. 때문에 한동안 보이지 않던 여자의 두 아이들과 남편까지도 그녀와 함께 산책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성인이 된 후 거의 만난 적 없는 태희와 태민은 눈부시리만큼 아리따운 청년으로 성장해있었다. 그간 무엇을 하며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하는 일은 무엇인지 그들에 관해 많은 것이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모델처럼 늘씬한 키에 TV 화면에서 막 튀어나온 아이돌 가수처럼 뻬어난 외모의 젊은이로 변모된 모습에서 단지 모든 걸 상상에 맡길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이웃들과 전혀 눈을 마주치려 하질 않았고 늘 여자의 몸을 부축하며 챙 넓은 야구모를 깊이 눌러쓰거나 고개를 푹 숙이며 우정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려는 빛이 역력하여 아무도 감히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된 정황이 너무도 맘이 아파 현혜는 차라리 제 쪽에서 먼저 시선을 피하거나 모른 척 외면하여 그들의 맘을 편하게 해주려 노력했다.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며 지내던 잘 알던 이웃을 모른 척 해야만 하는 그들의 심경은 어떠할까. 하긴 한 동 50호가 되는 주민 중 현혜네만큼 오래 사는 경우도 드물긴 했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몇 세대 외엔 거의 다 이사가고 바뀌어 여자의 급작스런 발병 사실을 알고 있는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희 남매가 가장 두렵고 피하고 싶은 이웃은 바로 자신이리란 생각에 현혜는 돌을 매단 듯 가슴이 무거웠다. 
  그날 오후 아파트 계단에서 맞딱뜨린 충격으로인해 현혜는 더욱 착잡하기만 한 기분이었다. 가까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아파트엘 들어서니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현혜는 무거운 짐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4층 중간 쯤을 올랐을 때 절규하듯 외치는 5층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어서 웅성웅성 잡고 끌고 말리는 듯한 다급한 실랑이의 기척에 현혜는 주춤 걸음을 멈추곤 계단을 타고 울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 지금 떠날꺼야, 바이칼, 바이칼로 갈거야. 나, 나 좀 보내줘 제발. 이거 놔아. 못된 것들! 모두 애물단지. 니들 다 꼴도 보기 싫다, 진짜 싫어……!! 엄마, 왜 이러세요. 안돼요, 엄마, 제발 좀 들어가서 쫌 이따 저희랑 함께 나가요. 여보, 정말 이럼 안돼. 나랑 같이 가자니깐. 엄마아, 엄마 진짜 왜 이래, 저번처럼 또 길 잃음 클나아…… 들려오는 내용으로 보아 5층 여자와 그녀의 가족임이 분명했다. 계단을 통해 탈출을 시도하려던 여자가 4층 현혜의 집 앞에서 가족들에게 붙잡힌 것임이 틀림없었다.  
  여자는 계속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울부짖었고 남편과 아이들은 여자를 끌고 5층으로 올라가며 극구 그녀를 말리는 상황이었다. 현혜는 순간 더 이상 계단을 오를 수 없다는 판단에 무거운 짐 보따릴 들곤 힘없이 도로 계단을 내려왔다. 결코 맞닦뜨려서는 안 될 장면이었다. 가뜩이나 현혜와의 마주침에 짙은 곤혹감을 느끼며 한사코 피하려고만 하는 아이들인데 그런 정황에서의 마주침이란 결코 있어선 안될 일이었다. 너무 오래 살았다, 이곳에. 태희, 태민 그들 남매의 심적 자유로움, 평안을 위해서도 이젠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것일까. 현혜의 심경은 착잡하기만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오후였다. 세탁기를 돌리는 현혜의 귀에 아파트 관리실로부터 긴급 공지사항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 여러분, 긴급 협조 사항 알립니다. 당 아파트 11동 503호에 사는 53세 김미지씨께서 아침에 집을 나간 후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합니다. 김미지씨는 최근 기억력이 상실된 환자분이라 하오니 이 점 양지하시어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 부탁드립니다. 인근에서 그 분을 발견하시거나 찾으신 분은 속히 당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연락바랍니다. 차림새는 회색 바지에 갈색 점퍼 차림, 단발 커트 머리형이라 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현혜는 세탁기의 정지 버튼을 눌러 소음을 죽인 후 몇 번이고 귀를 기울이며 방송을 듣다간 그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분명히 5층 여자의 실종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순간 직감적으로 여자의 행방이 뇌리에 와 박혀 현혜는 자신이 마치 죄인이 된 양 가슴이 마구 벌렁거렸다. 지난 번 아파트 정원 벤치에서 유독 산 너머 호수로 가는 길을 묻고 또 묻던 여자의 결기 어린 눈빛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전화기를 들어 다이얼 114를 누르는 현혜의 손에 심한 떨림이 전해왔다. D호수공원 관리실 번호 좀 부탁드립니다.
 
  현혜의 직감은 정확했다. 공원관리실과의 통화 결과, 여자는 벌써 몇 시간째 호숫가를 맴돌며 좀체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어찌 혼자 산을 넘어왔는지 옷이며 신발이며 온통 흙투성이가 된 채 종일 호숫가를 배회하는 여자. 이를 수상히 여긴 공원관리실측에서 보호대상자로 지목, 예의 주시하고 있노라 얘기했다. 감사합니다. 이웃인데 지금 곧 데리러 갈테니 조금만 더 보호해주세요.        
 
  그리운 바이칼, 오직 그녀만의 바이칼을 향하여…… 현혜는 전속력을 다해 차를 몰고 여자가 있는 호숫가를 향해 달려갔다.





*김현숙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89년 《현대문학》 신인상 추천완료. 작품으로 출모, 삼베 팬티, 어두워지지 않는 밤, 가지 않은 길,  꽃비 내리다, 홋카이도 3월의 눈, 등 다수. 소설집 『하얀시계』,  『노을 진 카페에는 그가 산다』,장편 『먼 산이 운다』, 이화문학상 수상,아시아 황금사자 문학상(우수상), 한국문협 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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