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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근작조명



최서연






갠지즈강으로 가는 길에




대여섯 켤레 놓여있는,
신발 진열대에
죽은 개 한 마리 얹어 있다


뽑힌 망초 같은 배꼽에
붉은 꽃송이 몇 개 올려져 있다


그 앞을 지나는 빈 손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내 눈이
그때처럼 맑은 적이 없었다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 「승무」에서 인용함.






엉겅퀴



온몸 가시를 달고 살아도
엄살이나 비명 지르지 않아요
유서 같은 것은 더더욱 쓰지 않아요
절벽이지만 날마다 비상해야 할
그리운 사람이
아직은 내게 있고
텅 비어있는
내 희망의 한가운데로
한 모금 햇빛을 물어다 주는 나비가 있으니까요
시간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있어
보랏빛 꽃잎이 흔들리면
그대의 페이지를 넘기는 줄 알아주세요






꽃송이 몇 개가



꽃나무가 쪼그려 앉은
돌담 밑에
꽃송이 몇 개가 헌 신발처럼 뒹굴고 있다
코와 입이 찢어진 빨간 고무신짝 같다
나를 아는 듯
봄날의 소꿉놀이를 기억하냐며 빤히 쳐다본다
옹알이처럼 아련하고 애틋한 몸짓에
순간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검지를 입술에 물고 있는 것 같은
어쩌면 나의 체온이 맞을 것 같은 헌 신발에
꽃밥과 조약돌을 올려놓고
조막조막 늘어나는 설렘을 한 상 차린다


* 최하림의 「독신의 아침」에서 인용.






은하銀河



사람도 은하다
3월 하순,
빛의 터널을 지나 다압*에 이르면


먼 우주의 은하가 내려앉은 것 같다
구불거리는 은하 띠 따라
은빛 비늘 번진 섬진강 은어 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면
풀벌레 소리에 귀가 맑아지고
감자꽃 하얀, 여름밤의 은하가 흐른다


* 다압 : 전남 광양시 광양읍 다압면 매화마을.






번짐이다



먹물이 종이에 스며드는
발묵潑墨은
번짐이다


낯선 골목,
밥 끓는 냄새에
두레밥상이 생각나는 것도
번짐이다


하여,
내 나팔꽃 지는 저녁이
네 귀를 즐겁게 하는
나팔소리로 울려오고


강물이 흐르면서
더 푸르게 깊어지는 것처럼
네 봄이
청보리 물결치며 내 여름으로 익어가는
삶도 번짐이다




최서연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물은 맨살로 흐른다』. 막비시동인.






근작읽기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세계
―최서연 시인의 근작시
양 진 기




생명 있는 것들은 번식하여 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끈질기게,
강인하게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으려고 분투하고 있다. 현재 지구
상에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이러한 투쟁에서 승리한 종이다. 투쟁에
서 승리하였다고는 하지만 한 개체의 입장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
는 숙명이다.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죽
음을 맞이할 존재들이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삶과 죽음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빛과 어둠처럼 항상 동반하는 실재이다. 어둠이 없으면
빛을 명명할 수 없듯이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는 것이다. 삶이 역동
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상태라면 죽음은 에너지가 끊겨 어둠속으
로 침잠하는 상태이다. 누구나 살기를 좋아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죽음도 많이 목도하게 된다.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던 물고기가 순식간에 왜가리의 부리 속으로 사
라지는 일, 횡단보도를 걷던 중에 과속차량에 치여 그 자리에서 절
명하는 사람, 어떤 인과관계도 없는 묻지마 살인의 희생자들을 보면
전쟁터가 아니더라도 죽음은 삶의 옆에 바짝 붙어 같이 가고 있다.

하여 살아 있는 동안은 주어진 모든 것들을 향유하며 자유롭게 살아가고 죽음 역시 삶의 일부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다.
최서연의 근작 읽기에 실린 5편의 시를 살펴보면 삶과 죽음에 대한 시인의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시인의 언어는 삶에서도 죽음을 보고, 죽음에서도 생명을 끄집어내고 있다.



대여섯 켤레 놓여있는,
신발 진열대에
죽은 개 한 마리 얹어 있다
뽑힌 망초 같은 배꼽에
붉은 꽃송이 몇 개 올려져 있다
그 앞을 지나는 빈 손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내 눈이
그때처럼 맑은 적이 없었다



                                                                                                   ─「갠지즈강으로 가는 길에」 전문


이 시는 시인이 언젠가 인도로 여행하던 중 목격한 광경을 쓴 것 같다. 갠지즈강물은 강 근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하수와 강가에서 벌어지는 장례로 시체 태우는 냄새, 그 곁에 빨래하는 사람, 그 강물로 목욕하는 사람, 그 강물을 길어가는 사람, 종교의식을 행하는 사람 등 갠지즈강가는 죽음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죽은 개 한 마리 얹어 있는 곳에 붉은 꽃송이 올려놓고 경건히 합장하는 손은 이미 삶과 죽음을 별개로 보지 않고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어떤 슬픔에도 빠지지 않고 죽음을 관조하는 이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대여섯 켤레 놓여 있는” 이라는 것은 살아 있는 생활이 있다는 것이고 그 곁에 “죽은 개 한 마리”도 함께 있다. 결국 삶과 죽음은 항상 동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몸 가시를 달고 살아도

엄살이나 비명 지르지 않아요
유서 같은 것은 더 더욱 쓰지 않아요
절벽이지만 날마다 비상해야 할
그리운 사람이
아직은 내게 있고
텅 비어있는
내 희망의 한가운데로
한 모금 햇빛을 물어다 주는 나비가 있으니까요
시간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 있어
보랏빛 꽃잎이 흔들리면
그대의 페이지를 넘기는 줄 알아주세요


                                                                                            ─「 엉컹퀴」 전문


최서연 시인은 삶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살아가야 하며 고통 속
에서도 살다 보면 소소한 희망이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온몸 가시를 달고 살아도/ 엄살이나 비명을 지르지 않아요”
삶이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다. 어떤 이는 병이 들어 몸에 가시를 지
니고 살아가고, 어떤 이는 가정불화로, 자식문제로, 경제적인 어려
움으로 고통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현실은 막막하지만
“한 모금 햇빛을 물어다주는 나비”를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언제나
삶이 고통스러운 건 아니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면 사랑하는 이의 삶을 함께 읽는 날이 있을 거라고 노래한다. 최서연의 시는 뭔가 쓸쓸함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삶을 비관적으로 보자는 않는다.


꽃나무가 쪼그려 앉은
돌담 밑에
꽃송이 몇 개가 헌 신발처럼 뒹굴고 있다
코와 입이 찢어진 빨간 고무신짝 같다
나를 아는 듯
봄날의 소꿉놀이를 기억하냐며 빤히 쳐다본다
옹알이처럼 아련하고 애틋한 몸짓에
순간 나는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낀다
검지를 입술에 물고 있는 것 같은
어쩌면 나의 체온이 맞을 것 같은 헌 신발에
꽃밥과 조약돌을 올려놓고
조막조막 늘어나는 설렘을 한 상 차린다


                                                                                            ─「꽃송이 몇 개가」 전문


생명은 피어났다가 반드시 진다. 봄에 활짝 핀 아름다운 꽃들이 시들어 추하게 매달려 있다가 어느 순간 땅에 떨어져 뒹구는 광경을 보면 삶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며 매달려 있기보다는 때가 되면 바람에 날려 표표히 떨어지는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시인은 땅에 떨어진 꽃잎을 보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돌담 아래 작은 꽃나무들을 쪼그려 앉았다는 묘사에서 시작한 시어는 그 옛날 아련한 시절의 사랑을 떠올린다. 소꿉놀이 하면서 너는 신랑, 나는 신부하며 조막손 같은 손으로 꽃밥을 차리던 어린 시절을 그려낸다. “꽃송이 몇 개가 헌 신발처럼 뒹굴고 있다/ …… 옹알이처럼 아련하고 애틋한 몸짓”에서는 이미 생명을 다해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에서 다시 생명을 불러낸다. 떨어진 꽃송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리움을 호명하자 순간 몸이 달아오른다.


사람도 은하다
3월 하순,
빛의 터널을 지나 다압에 이르면
먼 우주의 은하가 내려앉은 것 같다
구불거리는 은하 띠 따라
은빛 비늘 번진 섬진강 은어 떼처럼
흘러가는 사람들을 보면
풀벌레 소리에 귀가 맑아지고
감자꽃 하얀, 여름밤의 은하가 흐른다


                                                                              「─은하銀河」 전문
시인은 매화마을의 축제에 다녀온 듯하다. 매화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그는 은하를 떠올렸다. 은하에는 무
수히 많은 별들이 모여 있다. 어쩌면 사람은 각자가 우주이고 천체
일 수 있다. 하나하나의 별들이 모여 은하가 되고 그 은하들이 모여
거대한 우주를 형성한다. 은하는 한 자리에 있지 않고 끊임없이 팽
창하고 움직인다. 은하를 구성하고 있는 별들도 생명체처럼 탄생하
고 소멸한다. 시인은 매화마을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무리를 은하의
흐름에 비유하고 있다. “구름이 환생한 듯 길이 환하다”라는 표현에
서는 삶을 밝고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살다보면 힘들고 짜증난 일
도 많겠지만 시인은 이 아름다운 세계에서 마음껏 즐겨보라고 노래
한다. “은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3월 하순/ 다압에서는 사람도
은하다”라며 사람들 자체가 빛나는 은하이니 이 아름다운 빛의 세상
을 즐겁게 살아보자고 속삭인다.

먹물이 종이에 스며드는
발묵潑墨은
번짐이다
낯선 골목,
밥 끓는 냄새에
두레밥상이 생각나는 것도
번짐이다
하여,
내 나팔꽃 지는 저녁이
네 귀를 즐겁게 하는
나팔소리로 울려오고
강물이 흐르면서
더 푸르게 깊어지는 것처럼
네 봄이
청보리 물결치며 내 여름으로 익어가는
삶도 번짐이다


                                                                            ─ 「번짐이다」 전문
자연 속에서의 생명체는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다. 같은 종이 아니더라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두 개체가 만나 깊은 유대를 맺게 될 때 그 과정은 서로에게 스며들고 서로에게 번지는 것이다. 나는 네게 스며들고 너는 내게 번지는 것이다. “밥 끓는 냄새에/두레밥상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점점 파편화되는 사회 속에서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들이 늘어나고 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정을 나누기 위해서는 화선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듯 가슴으로 상대방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 나팔꽃 지는 저녁이/ 네 귀를 즐겁게 하는/ 나팔소리로 울려오고” 있다는 것은 내가 느낀 저녁의 아름다움이 네게 번져 네 귀에는 즐거운 나팔소리로 들린다는 것이다. “네 봄이/ 청보리 물결치며 내 여름으로 익어가는/ 삶도 번짐이다” 너의 봄이 내게 번져 푸른 여름으로 익어간다는 구절은 상대의 것을 받아들여 더 큰 풍요로움으로 확장되는 현상을 노래한 절창이다.


5편의 시에서 최서연 시인은 삶에 대한 아름다움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였다. 죽음이 주는 공포를 이겨내고 심지어 죽음에서조차 생
명의 기운을 발견해 냈다. 삶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살아갈 만한 가
치가 있으며 그 삶 속에서 서로에게 번져 끝내는 청보리처럼 푸른
생명으로 물결치기를 기원하고 있다.





양진기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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