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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권두칼럼/장종권/흔들리다가 꽃처럼 그저 질 뿐이다


흔들리다가 꽃처럼 그저 질 뿐이다


장종권



흔들린다. 양양한 바다 위에 돛배 하나 흔들린다. 거대하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을 수는 없다. 어떤 배도 모두 흔들린다.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큰 바람에는 더욱 흔들리고, 바람에 이는 파도에 떠밀리며 더 위태롭게 흔들린다. 혹자는 흔들리는 배는 지극히 정상이고, 배는 당연히 흔들려야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상이건 아니건 간에 배는 흔들리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않는 배가 없다고 해도 흔들리는 배는 불편하다. 속이 메스꺼워지고 뒤집어지고 여차하면 구토에도 이르게 된다. 아니 정말 센 바람이나 파도에는 배가 침몰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제아무리 배라고 해도 흔들리면 위험한 것이다.


흔들린다. 무수히 뻗어난 나뭇가지들이 흔들린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수많은 나뭇잎들이 흔들린다. 나뭇잎 사이로 숨어있던 꽃들도 흔들린다. 바람이 부는 탓이다. 바람이 더 세게 불면 꽃은 피자마자 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뭇잎 속으로 자꾸 숨어들고 나뭇가지를 죽어라 붙들고 놓지 않는다. 혹자는 나무도 꽃도 흔들려야 정상이라고 말한다. 흔들리면서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운 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바람의 숱한 발길질을 받으면서 그래도 햇살 한 줌 얻기 위해 위태로운 얼굴을 드러낸다. 위험을 무릅써야 나비도 만나고 벌도 만나고 님도 만나게 된다. 와중에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도 있기 마련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바람은 신비스러운 꽃의 생명을 한순간에 유린하기도 한다. 그게 자연이기도 하다.


흔들린다. 뿔뿔이 흩어진 가족이 기어이 뿌리를 내던지고 흔들린다. 함께 모여 살았던 시기에는 가난하여도 서로 돕고 의지하고 우애하며 산 적도 있었다. 덕분에 자기를 뚜렷이 주장하지 못하고,  자신의 뜻도 펴지 못하고, 그저 가족의 일원으로 그저 가족이 되어 살기도 했다. 세상이 변하면서 가족도 최소단위로 흩어졌다. 부모보다 형제보다 내가 우선이 되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단위별로 흩어지면서 가족도 흔들린다. 부모는 운신이 어려운 지경이 되면 당연히 요양시설로 옮겨진다. 자식은 가끔 얼굴을 들이밀어도 불효막심하다 하지 않는다. 수명은 늘어나고 사는 것은 어려워지면서 당연한 이치처럼 누구도 나무라지 않는다. 이건 흔들리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저 당연한 변화라고 받아들인다.


세상도 흔들린다. 무슨 바람인지 알 수는 없으나 간혹 대단한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바람들이 거세게 불어닥친다.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람들은 마구 바람을 만들어 세상을 흔들기도 한다.  한 번 강력한 바람이 불고 가면 여기저기 꽃들이 떨어지기도 한다. 꽃들이 무슨 이름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이름들이 붙으며 떨어진다. 그 중에는 맹독성 향기를 가진 꽃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독이 있는 꽃이라면 모조리 떨어내야 하는 것이 옳다는 말로 들리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이 무엇이었는지 이제는 자신조차 잘 분별하기 어렵고 주장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신념이 맹독일 수도 있으니 도리가 없다. 정치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세상이 가장 건강한 세상이라는 말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언론과 SNS라는 새로운 문명의 장치들이 있어 그러기도 쉽지 않다. 싫건 좋건 들어야 한다. 밥을 먹을 때도 들어야 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들어야 한다. 귀를 막을 수도 없다. 눈을 감을 수도 없다.


시도 흔들린다. 제 얼굴도 모른다. 어떤 얼굴로 치장해야 하는지 고민하느라 여념이 없다. 제가 세상을 읽고 있는지, 사람을 읽고 있는지, 꿈을 읽고 있는지, 잘 모르는 지경이다. 흔들리다보니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시가 대접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시가 이미 죽어버렸다고 선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를 위해 시를 쓰는 것인지, 세상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인지, 써야 하는 것인지,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안개밭이다. 안개 속에서 흔들린다. 흔들리면 불안하고, 흔들리면 불편하고, 흔들리면 위험하다. 그래도 산 것들은 흔들리며 살아야 정상이므로 흔들린다.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바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다들 꽃처럼 그저 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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