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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아라작품상/김설희/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 외 4편


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 외 4편


김설희



탱자나무
꽃 진 자리가 가시 끝이다
계단 끝에 걸쳐진, 막 시작한 아이의 걸음처럼 배꼽 하나 맺힌다


무시로 바람이 다녀가는데 배꼽이 커진다
이따금 비가 놀다 가고
해의 콧노래가 자박거리는데
떨어진 꽃을 찾아가는 길처럼 부푼다


그럴수록
탯줄과는 멀어진다


멀어진다는 것은 자란다는 것


자란다는 것은
장벽이 많아진다는 말인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인가


커진 배꼽의 기원을 생각하는데
황금빛 탱자 향이 부르터 올라
가시 끝이 그만 둥글어진다





냉장고 수리하는 날



지상의 코드 하나를 물고
날마다 몸속을 휘저었어


온몸은 뜨거운데 뭔가 허전했어
김치 된장 마늘 배추 무……
거침없이 먹었어
먹을수록 훈기는 감돌지 않고 오히려 차가워져


막 벌어지려는 장미꽃처럼
뜨겁게 불타오르고 싶어
뜨거워지고 싶어
 
막무가내 차게 하는 것이
탯줄 같은 끈 하나를 잡고 있는
이유일까


시린 손으로
무의 성질 병속 내용물 수박의 질량……


어루만지던 시간이 얼마인가


전신인
냉매가 사라지고
구리선마저 삭는 줄도 모르고





견고한 유리



호텔 온탕에서 유리 밖을 본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채 어디론가 떠간다
시커먼 바람에 소나무 대나무 가지 채 흔들린다
대나무 밑에 작은 풀들도 몸서리친다
비마저 뜀박질이다
초롱꽃도 불안한 종소리를 낸다


구름이 검은 한 바람은 멎지 않는다


유리 밖의 일이다
아니 유리 안의 일이다


수증기가 낮게 피고
늘어지게 피로를 푸는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다


물속은 봄날처럼 늘 푸근하다


눈은 감을수록 이기적이다


차가운 비가 서로 엇갈리거나 마주치거나
구름이 어디로 흐르거나 사라지거나
낮은 풀들이 소문 쪽으로 눕거나 쓰러지거나


감은 눈을 뜨고 싶어 하지 않는다


쏠리는 바람은
빨간 파란 녹색 현수막을 흔든다
○○당 ○○당들도 같이 능청거린다


저 먹구름이 언제쯤 벗어나려는지
바람은 언제쯤 잦아질지
감은 눈은 언제쯤 뜨려는지


곧 선거일이 다가온다는데





꽁지



가지에 앉고서도
저렇게 꽁지를 흔드는 것은
새로 앉은 가지의 무게를 재는 것일까
가고자 하는 다른 방향을 재는 것일까


몸의 가장자리
그러나
몸의 중심


어둠 한 벌 털어내고 햇살자리에 앉는 순간
바닥을 가리키는 꽁지
드디어 흔들리는 가지와 새가
균형을 잡는다


꼬리를 아래로 늘어뜨린다는 것은
비로소 평안해진다는 것인가


그 자리에서 한참 가장자리를 털다가
하늘 한 번 보고
다시 꽁지를 아래로 내리는





너에게 가는 길



벌어진 입술 속,
혀의 길이를 측정하고
발음을 고르는 혀의 움직임을
번져가는 겨울바람이 주시한다


너의 발은 눈 속에 묻혀 있다


눈물 흘리지 않는 너의 깊이에다
내 무릎을 대고 너와 키를 맞추고 싶다
무릎이 시리도록 너의 주위를 맴돌다
너의 명암을 내 맘대로 조절하고 싶다


너의 사방을 따라 나도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싶다
잘 헹구어진 햇살이 너의 얼굴에 얹힐 때
문득 살아나는 너의 얼굴 속에 갇히고 싶다


그 때 너는
차가움 속에서 삶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심지로
나의 꽃으로 살아난다


내가 너라는 우주 한포기 가만히 보듬어 온 날
손이 얼고
발이 얼고
입이 얼어붙었다





<심사평>


응시와 통찰을 담아내는 이미지의 힘


시의 무게와 색채, 이런 것들이 잘 어우러져 빚어내는 시의 의미와 가치는 애초에 어디서 비롯할까? 여러 방향의 대답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또한 분명하다. 시인의 자세다. 여기서 자세는 시인의 윤리관이나 처세 방식을 지목하지 않는다. 대상, 즉 사물(사건과 물질)과 마주했을 때 풀어나가는 자, 혹은 받아쓰는 자 나아가 자기를 재번역하는 존재로서 그의 태도, 시각과 집중을 지칭한다.
김설희 시인은 앞에서 언급한 의미에서 ‘시인다운 시인’이다. 때로는 끈질긴 응시로 새로운 이미지를 조합해내고, 또 때로는 순간의 통찰로 사물의 이면을 끌러내 형상화 한다. “탱자나무 꽃 진 자리가 가시 끝이다/계단 끝에 걸쳐진, 막 시작한 아이의 걸음처럼 배꼽 하나 맺힌다”(「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는 발견은 ‘응시’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단번에 오래 지켜보아서 될 일이 아니기에 시인은 오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대상을 반복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고, 그래서 꽃이 지는 모습과 그 빈자리에서 ‘배꼽’ 같은 움이 생겨나는 것을 본 것이다. 이 행위 전체를 응시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가지에 앉고서도/저렇게 꽁지를 흔드는 것은/새로 앉은 가지의 무게를 재는 것일까/가고자 하는 다른 방향을 재는 것일까”라고 묻는 것도 응시의 결과다. 앞의 작품보다 시간적 길이는 짧더라도 오래 지켜보지 않은 상태에서 생겨날 수 없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세는 “황금빛 탱자 향이 부르터” 오르고 “몸의 가장자리/그러나/몸의 중심”이라는 감각과 인식의 새로움을 생성한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날개를 가진 것들은/바람이 가득 찬 것들이야//팽팽한 것들의 껍데기는 얄팍해/터지기 전/양을 줄이려면 날개를 저어야해//날갯짓은/부풀어 오른 몸이 어쩔 줄 몰라 하는 거”(「바람의 특성」)처럼 눈앞에 현시 된 이미지를 통해 상상의 내용을 더 구체화한다. 새의 날개를 바라보면서 그것의 구성을 생각하고 결국 날갯짓의 이유를 상상적으로 찾아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즉 ‘새의 날갯짓’을 통해 “바람의 본능은 방향을 바꾸는 일”이란 통찰에 다다른다. 내용과 의미의 크기를 떠나 자연스러운 과정과 적절한 형상화에 주목한다.
이번 수상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잘 정련精練된 시인의 자세가 한층 더 빛을 발하면서 첨예화尖銳化하기를 기대한다. 우주에 가득한 사건과 물질에 고르게 관심의 눈길을 보내고, 관여關與의 자세를 지속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장종권 백인덕





<수상소감>


상을 받는다는 것은 시처럼 마음을 마구 설레게 한다. 무엇 때문에 받는지 구체적 사연은 모르지만 하여튼 가슴이 뛴다. 시를 쓰고 퇴고를 거듭하며 환각에 빠지듯 나의 감각은 신선하게 생기가 돈다.

어쨌든 시를 써왔고, 시를 쓰고 있고, 시를 쓸 것이다. 시의 길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성실히 관찰하며 사물의 모습들을 잘 받아 앉힐 것이다. 어느 사물이 아파하는지 곤궁에 빠져있는지 헐벗고 있는지 두루 살필 것이다. 꽃피는 봄에 우는 바람의 속을 뒤질 것이고, 벌어지는 꽃잎의 향기도 우려낼 것이다. 누구의 입김에도 날아갈 수밖에 없는, 힘없는 먼지들의 동네는 구석이다. 구석구석에 몰려있는, 어느 먼지의 하소연도 잘 받아낼 것이다. 예리하게 또는 무던하게 시안의 방향을 돌려가며 그들에게 집중할 것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쓸 것이다.

아직 미진한 저에게 이 큰 상을 주신 《아라문학》에 깊이 감사드리며 부족한 부분은 노력하며 보완하겠습니다.





*김설희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산이 건너오다』.





기원과 생장生長의 관계학
―김설희의 시세계


백인덕



1.
시는 본질적으로 기원의 흔적을 담고 있다. 아니, 모든 창조는 본래 기원을 되풀이 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 현재 인류의 속이나 종적 진화를 매번 되풀이하는 것과 같다. 사라진 꼬리뼈의 흔적은 우리의 유적 유대를 확인시켜 주고, 배꼽은 개인의 계보를 확실하게 증명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창조란 상상할 수는 있지만 아직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신도 마찬가지다. 융의 ‘집단무의식’이나 ‘원형이론’은 인간이 얼마나 깊이 자기 기원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간명하게 설명한다. 굳이 창조 신화나 황금시대 등을 더 언급하지 않더라도 쓰여 진 모든 시는 현대적 양상으로 기원을 재탐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설희 시인은 기원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눈앞의 생생한 현상의 과거와 미래, 다른 말로 하면 어떤 현상의 원인과 목표를 동시에 내포한 시적 지향을 드러낸다. 이번에 접하게 된 작품들을 통해서 유추해보자면 이러한 특징은 시인은 기질보다는 일종의 사유체계, 즉 살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탱자나무
꽃 진 자리가 가시 끝이다
계단 끝에 걸쳐진, 막 시작한 아이의 걸음처럼 배꼽 하나 맺힌다


무시로 바람이 다녀가는데 배꼽이 커진다
이따금 비가 놀다 가고
해의 콧노래가 자박거리는데
떨어진 꽃을 찾아가는 길처럼 부푼다


그럴수록
탯줄과는 멀어진다


멀어진다는 것은 자란다는 것


자란다는 것은
장벽이 많아진다는 말인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인가


커진 배꼽의 기원을 생각하는데
황금빛 탱자 향이 부르터 올라
가시 끝이 그만 둥글어진다


―「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 전문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 ‘원융무애圓融無碍’의 정신을 드러낸 것으로 읽히기 십상이다. 물론 ‘가시 끝도 자라면 둥글어진다’는 표제가 이를 강력하게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탱자나무’에서 ‘꽃’이 떨어지고, 그 자리를 ‘배꼽’ 삼아 ‘황금빛 탱자’가 맺히는 과정, 즉 일종의 경로를 세밀하게 따라가면서 정작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다른 것으로 보인다. “멀어진다는 것은 자란다는 것”이라는 단호한 명제가 함축하는 ‘거리’, 혹은 ‘간격’이 그것이다. 불가분으로 옴짝달싹 못하게 붙어있는 것들은 각 개체로서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 없다.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사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원활한 성장을 위해서는 간격이 필요하다. 물론 이 작품은 시공간이 응축된 단계를 보여주기에 더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지만 광의의 차원에서 ‘생장의 관계’를 사유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예리한 눈은 ‘지는 꽃’이 아니라 ‘꽃 진 자리’를 관찰한다. 그래서 거기가 ‘가시 끝’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지켜본다. 그 결과 “막 시작한 아이의 걸음처럼 배꼽 하나 맺”히는 것을 찾아낸다. 일단 현상적으로 한 지점의 변화가 주목된다. 꽃(풍성함/유인誘引)→가시(헐벗음/배척排斥)→배꼽(둥글어짐/비정형)이 한 자리에서 단계적으로 지나간다. 물론 이 변화는 무시로 다녀가는 ‘바람’과 이따금 놀다가는 ‘비’와 콧노래 자박거리는 ‘해’를 필요로 한다. 시간의 경과와 양분의 획득이라는 두 측면을 하나로 드러내는 수월한 이미저리다.
이 모든 변화를 포착하는 시인의 눈 근저根底에는 “배꼽의 기원을 생각하는” 사유 체계가 놓여 있지만, 실제 주목하는 것은 “황금빛 탱자 향이 부르터 올라/가시 끝이 그만 둥글어”지는 생장의 관계다. 사실 모든 생명에게 “자란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쇠퇴한다는 것‘을 동시에 의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에 기원을 덧붙여 한 개별 존재의 변화를 원형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림으로써 그 변화의 일회성을 극복하고자 한다.


탯줄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잎 하나가
끊어진 거미줄 한 올을 잡고 달랑거린다


공중이다
사방이 바람이다

어느 틈 기척만으로도 움츠러지는
바싹 오그린 몸이 매달려 있긴 땅이 멀다
하늘도
구름도 아득히 멀다


삶 한 장이
보일 듯 말 듯 한 오라기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깊이 흔들리는 허공


저 허공을 할퀴는 것이
내 놓지 못한 목숨일까
가느다란 숨을 죄는 바람일까


―「허공에서」 부분


모든 기원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시인은 이를 “탯줄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는 잎 하나가/끊어진 거미줄 한 올을 잡고 달랑”거리는 형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미지화 한다. 상식적으로 지상의 모든 물체는 결코 중력을 이길 수 없다. 언젠가 거미줄은 다시 끊어질 것이고 매달렸던 잎은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 자기 순환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탯줄’을 벗어나 ‘공중(허공)’에 “바싹 오그린 몸”으로 매달려 있다. 시인은 이 ‘잎’에서 직설적으로 ‘삶’을 끌어낸다. 결국 시인이 보고 있는 것은 “삶 한 장이/보일 듯 말 듯 한 한 오라기를 부여잡고/몸부림치면 칠수록/깊이 흔들리는 허공”이다. 탯줄을 잊으면 배꼽이 자라날리 없고, 그러면 삶이란 그저 ‘목숨’이라는 ‘한 오라기’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의미없는 몸짓이 되고 만다. 기원의 영향은 본래 자리를 벗어나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시인은 어느 날 ‘너라는 우주 한 포기’를 가만히 보듬어 온다. 이유는 “너의 사방을 따라 나도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싶다/잘 헹구어진 햇살이 너의 얼굴에 얹힐 때/문득 살아나는 너의 얼굴 속에 갇히고 싶다”(「너에게 가는 길」)는 바람 때문이다. 이 바람希은 허공의 바람風이 아니어서 ‘우주 한 포기(난蘭인가?)’의 기원을 결코 흔들지 않는다.


2.
김설희 시인의 작품은 엄밀하게 말해서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기원이 현상과 맺는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그 기능과 가치를 새롭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물’은 ‘대지의 배꼽’이라는 상징을 거느린다. 하물며 ‘원시의 우물’이라면 더 말해 무엇 하랴. 시인의 시선은 탱자나무 가시 끝에서 허공을 거쳐 우물의 물 표면까지 깊숙이 내려간다.


이끼 돋은 원시의 우물 하나 있어


울타리가 우물의 어깨를 반쯤 덮을 때
제 키보다 몇 배 긴 두레박 끈을 슬슬 사리더니
우물로 확 풀어내는 여자


두레박 같은 편지가 웅숭깊은 우물에 닿기까지
무한히 비틀거렸어
비밀한 낱말들이 부딪히며 어긋났어


깊이 고인 물까지의 거리에
바람이 일고 천둥 치고  
한 동네가 우울해졌어

 

우물에 꽃이 피었어
겹겹 퍼지는 꽃잎이 파랗게 질렸어
우물은 아득해져 그만 눈을 감아버렸어


빈 듯 꽉 찬 편지 한 장 다녀갈 때마다
우묵한 동네는 파리하게 슬펐어


―「우물」 부분


무릇 생명체가 그렇지만, 특히 인류의 삶과 문명의 지속은 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작게 한 마을의 형성은 물을 중심으로 하고, 우물은 흔히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앞의 작품에서는 ‘여자’의 행위가 우물의 ‘원시’, 또는 ‘시원’에 일종의 정서적 빛깔을 덧댄다. “제 키보다 몇 배 긴 두레박 끈을 슬슬 사리더니/우물로 확 풀어내는 여자”는 분명 어떤 비극, 최소한 상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인다. ‘슬슬 사리더니’ 일순간 ‘확 풀어’낸다는 것이 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개인(여자)의 상황은 집단(동네)으로 확산하는데 그 매개에는 ‘우물’이 있다. ‘비밀한 낱말’이 던져졌던 우물 위에 핀 꽃들이 파랗게 질리고 결국 동네가 파리하게 슬퍼진다는 것은 언 듯 보기에는 별개의 현상인 것 같은 것들이 결국 한 기원을 가졌음을 세심하게 풀어내고 있다.
시인이 기원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결국 생장의 원리를 본래 상태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기획이다. 그래서 시인은 ‘구멍’, 즉 “뭇 생명을 기르는 긴 복도”를 관찰하고, “뚫린 곳으로 흐르는 에너지/시린 몸들이 녹는”(「구멍」) 것을 발견한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자기 기원을 가장 재빠르게 무화하는 것은 ‘바람’이다. 그래서 바람은 뿌리 없음, 그렇게 때문에 지향도 없는 정처 없음의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단면으로 볼 때, 바람을 닮고 싶어 하기도 한다. 기원의 속박 때문이든 날개의 유혹 때문이든 바람은 생장의 이미지로 유효하다. 시인은 이를 잘 알고 있다. “날개를 저을수록/ 탱글탱글한 바람이 수그러드는 것 같아도/사실은 새 바람이 자꾸자꾸 생성되고 있어/멀리 날아가려는 속성이 더 키를 세웠는지/하늘 높이 허공을 젖더니/느닷없이 풀들이 살아있는 땅 쪽으로 내려오는”(「바람의 특성」) 것을 본다. 바람과 날갯짓의 관계를 통해 ‘멀리 날아가려는 속성’과 결국 ‘땅 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바람의 본능은 방향을 바꾸는 일‘ 뿐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그저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찻물을 끓여요
찬물이 끓는점을 찾아 가는 동안
화장실을 거처 뒷문으로 들어오는 가을을 잠깐 만나고
돌아온 사이
탁자위에 얹어 둔 가방이 사라졌어요


악어가 끈덕지게 물고 있던
볼펜 두 자루
카드 두 장이 든 지갑
해 넘긴 수첩 한권 올해 수첩 한권
자동차 면허증 단발머리사진 주민번호
시집 한 권 안경 선글라스 USB 두 개
......


악어 한 마리가 나에게서 멀어졌는데


달아오른 물이 화끈거리고
뜨거운 수증기를 뿜는 주전자는 덜컹거리고
녹차를 기다리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없는 가방을 찾는데
닫힌 문마다 끓는 물소리처럼 들썩거리고


나의 눈과 손
나의 재산
나의 역사가
나를 두고 나를 벗어났는데


차茶 대신 가방을 들고 나간 앞니 하나 빠졌던 사나이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까지 나를 데리고 갈까


내가 지배해온 악어 한 마리가 나를 떠난 날


나를 그물처럼 옭아매고 있었던 악어 한 마리
에서 내가 벗어난 날


―「가장 가벼운 날」 전문


이 역설적인 제목의 작품은 김설희 시인이 기원과 생장의 관계를 사유하면서 가닿게 된 한 경지를 슬며시 풀어내 생생한 이야기로 보여준다. 시인은 ‘찻물’을 끓인다. 물론 자신만을 위한 행위는 아니다. “녹차를 기다리던 사람”이 등장하므로 찻물은 건강한 관계를 상호 보증하는 의미에서 나누는 작은 인사 같은 역할을 기대한 사물이다. 하지만 시인이 “화장실을 거쳐 뒷문으로 들어는 가을을 잠깐 만나고/돌아온 사이” 찻물은 이미 끓었는데 시인은 ‘탁자 위에 얹어 둔 가방이 사라졌“음을 발견한다. 시인은 이 사태 앞에서 ”차茶 대신 가방을 들고 나간 앞니 하나 빠졌던 사나이/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어디까지 나를 데리고 갈까“를 생각하다가 결국 ”내가 지배해 온 악어 한 마리가 나를 떠난 날“이 곧 ”나를 그물처럼 옭아매고 있었던 악어 한 마리/에서 내가 벗어난 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매 순간 호명되고 증명해야 하는 ’나‘를 벗어났다는 의미로도 수월한 작품이지만, 차를 대접하려고 했던 ”앞니 하나 빠졌던 사나이“와의 어색한 간격이 완전히 소멸해버렸음을 ’가장 가벼운 날‘이라고 명명했다는 의미로 읽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김설희 시인은 기원과 생장이 맺는 관계에서 너무 가깝다는 것과 지나치게 멀다는 것의 의미를 더 깊이 천착穿鑿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난 것이다. 아니, 스스로 만들었다. 이제는 그 시작詩作이 시작될 뿐이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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