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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신작특선/선중관/새봄, 숲속의 사랑법 외 1편


숲속의 사랑법 외 4편


선중관



숲속의 새봄.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자 겨우내 꽁꽁 언 흙을 움켜쥔 채 숨죽여 지내온 나무와 풀뿌리들이 슬며시 힘을 풀어 햇볕이 드나들 수 있도록 제 몸을 허락하네.
훈훈한 봄바람은 조심스럽게 땅을 기듯 흐르다가 흙냄새 숲 냄새를 공중으로 피어오르도록 흔들어놓네.
아, 그 자리에 솟는 저 어여쁜 새순, 새 생명.


봄 숲에서 벌어지는 진한 사랑의 유희遊戱이다.
자연은 이처럼 고결하고 순박해서 그들 나름의 사랑법으로 새순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네. 아름답게 하나 되고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美를 보여주면서.





그냥



우리가 세상 살면서 때로는
그냥 적당히 넘어가 주기도 하고
알면서도 모르는 척
그냥 속아주기도 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해도
그냥 허허허 웃어넘길 줄도 아는
그냥의 처세술이 필요하다


자연을 보라
이른 비와 늦은 비
따사로운 햇살과 살가운 바람을
그냥 몽땅 내어주고
때 되면 꽃피우고 열매 맺어
우리에게 모든 걸
그냥 주지 않는가


따지고 계산하고 각을 세워봐야
각박한 내 마음에 먼지만 날릴 뿐이니
자연이 우리에게 모든 걸
그냥 내어주듯
우리도 그냥 그렇게 내어주며 살자
그냥의 처세술은 삶의 달관이며
인생철학이다





사람 흔적



깊은 산속에
사람이 지난 흔적이 있네
과일 껍질,
휴지,
빈 깡통,
페트병,
산림을 훼손한 파인 발자국 등


숲에 사는 짐승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훼손하지 않는데
사람이 지난 곳에는
예외 없이 버려진 검은 양심이 있네
흉측한 몰골의 깊은 상처
전혀 예쁘지 않은
사람 흔적





삼한사미三寒四微*



끊임없이 변하는 게 세상사라지만
숨쉬기가 버거운 이 환경변화
언제부터인가 삼한사미라는 변종 겨울을
몸으로 체험하며 살게 되었네


이른 봄이면 봄바람에 실려
고비사막에서 날아오는 황사바람 정도는
봄 앓이겠거니 감수하며 살았는데
한겨울에 미세먼지라니


사흘 추위 지나면 포근한 나흘 찾아오던
신이 내린 절묘한 기상 삼한사온
이제는 교과서에나 실린 옛말이 되었고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 마시는
숨 막히고 답답한 세상살이


장마철이면 폐수로 오염된 하천에
배때기 허옇게 뒤집힌 채
죽어 떠 있는 물고기들
그 사체가 왜 이리 눈앞에 아른거릴까


   *삼한사미三寒四微 :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로 가득하다’는 뜻으로 한국의 전통적 겨울 날씨를 뜻하는 ‘삼한사온三寒四溫’에 빗댄 신조어.





나이 셈법



청년 시절 한때는
나이를 한두 살 올린 적도 있었네
나이에 따라 서열을 정하는 풍습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지


장년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는
슬그머니 나이를 한두 살 내렸네
나이 먹는 일이 죄짓는 일은 아닐 텐데
괜히 꼰대 소리 듣기 싫어서


요즘 나는 나이 셈법이 더 복잡해졌네
태어나면서 한 살, 해 바뀌면 한 살 먹는
한국식 나이가 부담스러워
생일에 한 살 먹는 서양식 나이로 셈을 하지


군더더기 걷어내니 홀가분하고
시간을 번 것 같아 기분 좋은데
세월 앞에 발버둥치는 안쓰러운 모습
내려놓지 못하는 삶의 무게





<시작메모>


 산이 좋아 산을 찾고, 자연 속에 자주 들다 보니, 자연환경과 생태변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자연은 이 지구상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생명체의 보금자리이고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스스로 생성과 소멸의 시기를 알아 꽃피고 열매 맺기를 계속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것끼리 배타하지 않고 어우러지는 조화의 미를 보여주어서 좋다. 바위가 있을 곳에 바위가 있고, 물이 흐를 곳에 물이 흐르고, 우거진 나무와 조화를 이뤄 숲을 만들어 온갖 생명을 불러 품어 안는다.
 그 자연 속에 들면 눈, 코, 귀, 혀가 열리고 살갗의 모세혈관들이 기지개를 켠다. 숲으로 내리는 햇살, 바람결에 사각거리는 나뭇잎 소리, 청량한 새소리, 졸졸졸 물소리, 그윽한 풀 냄새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 자연의 속삭임은 모두 시가 되고 산문이 되고 내 삶을 살찌우는 언어가 된다.

 

 그 자연이 많이 병들고 아프다. 온갖 공해와 오염물질에 찌들고 미세먼지와 황사바람에 제빛을 잃어가는 숲. 무분별한 개발과 쓰레기 투기 등으로 훼손되는 산림. 자연이 망가지고 병들면 결국 그 피해는 사람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에 더욱 마음이 아프다.
 아픈 산에서, 아픈 마음으로 미세먼지를 마시며 걷고 있는데, 산모퉁이 길가에 막걸리 페트병 하나가 널브러져 있다. 볼썽사나운 사람의 흔적을 어서 지우고 싶어 얼른 배낭에 주워 담고서 산을 내리는데, 작은 박새 한 마리 쪼르르 길을 열어주며 마음을 달랜다. 상한 마음 여기서 풀고 가라며.





*선중관 《문학공간》으로 등단. 《창조문학》으로 수필 등단. 시집 『바람이나 인생이나』. 산문집 『거울 속의 낯선 남자』 외. 시와글벗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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