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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단편소설/심강우/욘혜민의 집


욘혜민의 집


심강우



스위치를 올리자 유리로 세공된 튤립 두 송이가 환하게 빛을 발한다. 티테이블 한쪽에 세워둔 액자가 눈길을 끈다. 빙하를 배경으로 딸아이와 찍은 사진이다. 아이는 주옥의 품에 안겨 해맑게 웃고 있다. 주옥은 아이의 눈을 빤히 바라본다. 미혼모란 말이 귓전에 맴돈다. 주옥은 방으로 들어가 회사에 가져갈 서류를 정리한다.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울린다. 주옥은 서류를 들지 않은 손으로 버튼을 누른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메시지가 뜬다.   
―밝은 모습 보니까 좋더라. 시간 나면 구경 와. 기초공사는 끝났고 지금은 통나무 가공 중. 엔진톱과 그라인더를 쓰기 시작한 뒤부터 새들도 숲을 뜨는구나! 어쩌겠어, 조鳥 선생께 양해를 구하는 수밖에. 
기초공사? 주옥은 한참만에야 고개를 끄덕인다. 준이 보낸 메시지다. 새들도 숲을 뜨는구나. 황지우의 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패러디한 것이다. 그리고 조 선생. 장난으로라도 동물을 선생으로 호칭하는 사람은 주옥이 알기에 준, 그 사람밖에 없다. 학보사 동우회의 정기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통유리를 통해 모교의 건물을 볼 수 있는 6층 카페였다. 인원을 세어 보니 열한 명이었다. 이게 다야? 주옥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만하면 많이 모인 거라고 같은 학번인 은주가 말했다. 주옥은 그때까지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거뭇한 턱수염에 굵은 안경테까지, 주옥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옆자리의 은주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가 뭐라고 했던 모양이다. 얼굴을 마주하고서야 알아보았다.
“오랜만이야. 내 모습이……좀 변했지?”
주옥은 저도 모르게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준이 싱긋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애써 웃음기를 담은 얼굴과는 달리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려 나왔다.    
“눈을 보니……알겠네요.”
흑백사진에 어울리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건 빈말이 아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눈빛은 여전했다. 아니, 그것도 좀 달라지긴 했는데 예전보다 그늘이 좀 더 짙어진 정도. 주옥은 그의 미소가 신경 쓰였다. 그건 어딘가 모르게 간신히 버텨나간다는 인상을 주었다. 다들 비슷한 시기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었다. 학과 선배이기도 했던 준은 당시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그는 매사에 깐깐했던 전임과는 달리 기자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리버럴리스트였다. 간혹 그게 지나쳐 강단 있게 처리해야 할 사안을 미적거리다 낭패를 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졸업 후 건축설계사무소를 운영하던 그는 가족을 잃은 뒤 한동안 칩거하다가 캐나다로 떠났다.      
“귀국했다는 얘길 들은 게 꽤 오래전인데……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가만히 심호흡을 한 뒤 물었다. 
“집을 짓고 있어. 통나무집.”
“네? 통나무집이라고 그랬어요? 어디에…….”
“목木선생과 조鳥선생이 사는 마을.”

 

*
                                       
온천호텔을 지나 10분쯤 달렸을까, 상류동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화살표가 왼쪽을 가리킨다. 주옥은 조심스레 핸들을 돌린다. 제방과 엇비스듬히 교차하는 굴다리를 통과하자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군데군데 파여 있어서 자동차는 지그재그를 그린다. 괜한 짓 하는 게 아닐까. 지그시 입술을 깨문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차를 돌릴 수도 없다. 좁은 길에서 차를 돌리다가 자칫 수로에 빠지기라도 하면 이만저만 낭패가 아니다. 그러니 덜컥 약속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의뢰인을 만나 랩톱컴퓨터에 신상에 관한 데이터를 입력한 뒤 회사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준이 보낸 두 번째 메시지였다. 완성된 정자를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통나무집이란 게 정자를 말한 거였나? 이 도시에 정자를 세울 곳이 어디 있다고. 주옥은 준이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주옥의 메시지에 곧바로 답장이 왔다.
―거기야 도시지만 여긴 시골이야. 그리고 내가 구입한 땅에 내가 직접 지은 정자야.
회사에는 파티 장소를 둘러본 뒤 곧바로 퇴근하겠다고 둘러댄 뒤 내비게이션에 새 주소를 입력했다. 주옥이 모는 자동차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식품공장들을 지나 마을로 진입한다. 마을은 공장 지대에서 산 쪽으로 5분 거리에 있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산자락을 더듬어 올라가자 투박한 옹벽이 나타난다. 완만한 너덜겅에 위치한 집터는 인위적으로 축대를 쌓아 조성한 곳이다. 바로 곁에 뽕밭이 있는 걸로 보아 거기도 얼마 전까지는 경작지였을 것이다.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종료를 알리는 멘트가 나온다. 주옥은 차창을 연다. 아닌 게 아니라 새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적당한 곳에 주차하고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한다. 주옥을 본 준이 손에 든 걸 내려놓고 손을 흔든다. 
“무슨 작업이에요?”
“필링과 샌딩이라고, 나무의 껍질과 옹이를 제거한 뒤 그라인더로 표면을 정리하는 작업이야.”   
“면앙정가에 나오는 풍경과는 영 다른데요.”
뭐, 무슨 풍경? 주옥의 말에 준은 목에 걸친 타월로 얼굴을 훔치며 반문한다. 에이,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주옥은 손을 젓고 주위를 둘러본다. 기둥을 세운 땅 주변에 잔뜩 쌓여 있는 원목들과 각종 공구들, 그리고 야무지게 생긴 중장비 한 대.  
“저 차는 뭐예요?”
“응. 지게차. 나무를 운반하려고 빌린 거야. 장정 서넛이 달려들어도 옮기기 힘든 나무를 저 땅꼬마가 거뜬히 해결하지. 운전석 앞에 기다랗게 달린 ㄴ자 모양의 쇠막대 보이지? 포크라고, 거기에 나무를 얹어.”
 “기둥을 보니 작은 규모가 아닌데……무슨 집이에요? 근데 혼자 일해요?”
“그럴 리가. 모두 다섯인데 일기예보에 오늘 비가 올 거라고 해서 나오지 말라고 했어. 근데 비가 안 오네. 그리고……당연히 내가 살 집이지.”
주옥은 준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긴다. 문자메시지로 알려온 정자가 거기에 있다.
“집도 짓기 전에 정자부터 세워요?”
신발을 벗고 먼저 정자에 오른 준이 손을 내민다. 괜찮은데, 하면서도 주옥은 그의 손을 잡고 정자에 오른다. 꽤 많은 술병과 빈 박스, 음료병과 잡동사니들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다. 냄비와 가스버너 따위의 취사도구도 눈에 띈다.
“다들 여기서 식사를 해. 간이식당인 셈이지. 좀 지저분하지?”
그러면서 준은 나무 소반을 당기며 앉지, 한다. 패러글라이더를 닮았네. 천장을 올려다보며 주옥이 중얼거린다.
“본격적인 집짓기에 앞서 만들어 본 거야. 예행연습이라고나 할까. 서 있지 말고 앉으라니까.”
아 네. 주옥은 소반 앞으로 다가앉는다. 준이 보온병에 든 걸 컵에 따른다. 뭔지 모르지만 발그레한 빛을 띠고 있다.  
“오미자차야. 얼음조각을 넣었는데 괜찮겠어?”
“목이 말랐는데 잘 됐군요.”
주옥은 연두색 캡슐약을 입에 넣고 오미자차를 들이켠다. 준은 무슨 약인지 묻지 않는다. 얼음 조각을 물고 있으니 아이슬란드에서 본 피오르가 떠오른다.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졌다는 강. 그리고 그 위를 둥둥 떠다니던 빙하. 그것을 가리키며 아이는 수줍게 웃었지. 알라스카 루피네Alaska Lupine, 이름도 생소한 보라색 꽃을 한 아름 안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생각난다. 아이의 양부모가 주옥을 배려해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사진이었다. 아이의 천진한 얼굴은 오로라보다 아름다웠다. 빙하의 냉기가 전해졌을까, 열기가 시원스레 몸 밖으로 발산되는 기분이다. 준이 한 잔 더, 하며 권한다. 주옥은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준은 말을 꺼내 놓곤 복사한 설계도를 뒤적거린다. 
“무슨 얘긴데 하다가 말아요?”
주옥이 채근하자 얼굴을 붉힌다.     
“아, 아냐. 졸업하고 처음 갔지 아마? 학보사 모임 말야.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아는 후배와 통화하면서 얘길 들었지. 엉겁결에 참석한 거야.”
모임에서 주옥을 만난 건 그러니까 잉여 소득쯤 된다는 투다. 은근슬쩍 비껴가는 저 태도. 주옥은 준을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알고 있는 준 선배가 맞네. 하나도 안 변했어.”
주옥의 말에 준은 손바닥으로 뺨을 문지른다. 당황할 때면 나오는 저 버릇도 여전하다. 
“고3 때 담임이 시조시인이었어요.”
주옥이 다시 입을 연다.
“유유자적, 천석고황, 물아일체, 그리고 목가적인 삶을 입에 달고 다니던 분이었죠. 대학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몇몇 친구들과 그분 댁을 찾아간 적이 있어요. 사모님이 거실의 장식장에서 꽤 화려한 식기를 꺼내 오더군요. 늦은 시간까지 환담을 나눈 뒤 선생님은 배웅을 하겠다며 우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어요. 엘리베이터가 꽉 차더군요. 한 친구가 숨이 막힌다고 했어요. 선생님이 대뜸 말을 받았어요. 정색을 하고 말이죠.”
잠깐 건너편 숲을 훑어 본 주옥이 묻는다. “무슨 말을 했게요?” 준은 묵묵부답이다.   
“선생님 가라사대, 글쎄 말이다. 비좁고 냄새 나고……어휴, 좀 무리해서라도 새 아파트로 이사 가야지 불편해서 못 살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말이죠,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와락 든 거예요. 아시겠어요?”
준이 가만히 건너다본다. 주옥은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는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겠어.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거 아냐? 그 담임선생님이나 나나 같은 부류라는 거지. 깨끗이 인정할게. 그래, 인정해. 그나저나 내가 알고 있던 임주옥이가 맞네. 옛날 그대로야.”
준은 주옥이 했던 말을 흉내 낸다. 그러고는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뭐 그런 낯빛으로 먼 산을 본다. 주옥도 고개를 들고 산을 본다. 황갈색의 뭉긋한 능선 위로 구름이 길게 걸려 있다.         


  *


여자가 가입비 환불을 요구했다. 파티장에서 남자의 얼굴에 물을 끼얹고 나간 여자였다. 예상했던 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이름을 확인한 순간 생글생글 웃던 얼굴과 갈퀴눈으로 흘겨보던 얼굴이 번갈아 떠올랐다. 소비자단체 소속의 직원이 아니랄까봐 여자는 반윤리적 상술의 문제점과 그에 따른 피해 사례를 조목조목 적어 회원 게시판에 올렸다. 논지는 간단했다. 매칭 상대의 인적 사항을 허위로 작성한 탓에 피해를 입었으니 보상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회사에서는 남은 미팅 건수에 대한 환불은 가능하나 전액 환불은 불가하다고 통보했지만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정신적 피해 보상 운운하는 여자에게 주옥은 소개 횟수를 늘려 주겠다고 제안했다. 여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대로 ‘폭탄’을 맞았군. 실장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주옥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내뱉었다. 울컥했지만 뭘 모르니 저러지, 하며 꾹 눌러 참았다. 기실 계량화할 수 있는 연봉이나 직급, 키, 몸무게 같은 것들과 달리 성격이나 취미는 등급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객관화할 수 없는 것들이므로 필터링 역할에 국한되었다. 가령 어떤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얌전하고 가정적인 여자를 원했다. 그럴 경우 프로필에 도전, 여행, 모험 따위의 단어가 기입된 여자 회원은 당연히 열외가 되었다. 이번 경우, 남자의 카사노바 기질을 파악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여자의 공세에 지친 주옥은 여자의 전화번호를 스팸으로 등록했다. 그리고 관리부에 수당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조속히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옥은 회원을 받을 때마다 가입비의 일정액을 수당으로 받는 이른바 ‘아웃바운드 방식’의 매니저였다. 여자는 소비자보상 규정을 들먹이며 내용증명을 보냈다가 별 반응이 없자 소비자보호원에 민원을 넣기까지 했다.
“베테랑은 무슨. 대체 어떻게 관리했기에 이 지경까지 온 거야.”
실장은 급기야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중인환시의 회의석상이었다. 주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강박감과 피로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증세가 도지는 느낌이었다. 프로작 한 알을 물도 없이 삼켰다. 동료가 참으라는 듯 두 손가락으로 엑스를 만들어 보였다. 회의가 끝난 뒤 주옥은 자신이 관리하고 있는 팀원들을 소집했다. 업무 분장에 관한 얘기를 꺼내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그 여자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당신이 소개한 인간이니 당신이 책임져야 할 거 아냐. 내 돈 돌려주지 않으면 당신, 이 바닥에서 완전히 매장시킬 거야.”
여자가 새된 목소리로 내질렀다. 뇌관에 불을 댕기는 말이었다.
“이봐요 김정희 씨,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뭐, 매장시키겠다구? 그래 어디 한번 해 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더니, 당신! 외모, 학벌, 직업, 재산,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다는 거 알아? 플러스 C등급도 될동말동한 주제에……상위 클래스와 매칭시켜 준 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어떻게 그따위 말을 할 수 있어? 남자한테 차였으면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지 애먼 사람을 들볶으면 되겠니? 나이로 봐도 막보고 무시할 사람이야 내가?”
한바탕 쏘아붙이고 나서 부서져라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주옥은 팀원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이런,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추태였다. 회원이 어떤 말을 해도 감정적 대응을 삼가는 것. 결혼정보회사의 으뜸 수칙이라고 미팅 때마다 강조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명색이 팀장이라는 사람이. 팀원들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단걸음에 달려온 실장은 한참을 씨근거리더니 시말서 제출을 명했다. 회사에서 사례비의 일부를 환불해 주는 것으로 사태는 봉합되었지만 실추된 위신을 회복할 순 없었다. 동료가 건네는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 날, 주차장으로 내려간 주옥은 자신의 자동차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앞뒤 타이어 네 개 모두 펑크가 나 있었다. 일이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지 자동차를 주차한 곳은 CCTV의 각도가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앞 유리창에 붉은 립스틱으로 휘갈긴 글씨가 있었다. 따라지 회사의 뚜쟁이 주제에, F등급이야 넌. 고개를 꺾고 간신히 해독한 글이었다. 


“근무 시간에 어떻게 여길…….”
원형톱으로 목재를 가공하고 있던 준이 주옥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톱밥을 덮어쓴 준의 모습에 주옥도 놀란다. 함께 일하던 인부들이 힐긋하고는 다시 작업에 몰두한다. 사표를 냈다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되어 가나 궁금해서 그냥……공구쌈지 찬 모습이 잘 어울리네. 진짜 목수 같아. 뭐 내가 도울 일은 없어요?”
여기저기서 발생하는 소음이 대화를 방해한다. 엔진톱의 경우 100데시벨이 넘기 때문에 자칫 소음성 난청이 될 수 있다며 준은 방음용 귀마개를 건넨다. 주옥은 귀마개를 하고 작업 과정을 지켜본다. 준은 중계를 하듯 작업 과정을 설명해 준다. 스위치를 껐다가 설명이 끝나면 다시 켜는 식이다. 설명에 의하면 지금은 골조 조립에 앞서 맞춤과 이음에 쓸 각종 구조물을 가공하는 단계이다. 그러고 보니 비슷한 것 같지만 다 다르다. 먹줄을 치는 사람, 끌과 망치로 홈을 파는 사람, 드릴로 목재에 구멍을 뚫는 사람, 각자의 소임에 맞는 나무 하나씩을 껴안고 있는데 일정한 길이로 절단된 나무들은 하나같이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다.
“더글라스 퍼douglas fir라고, 북미산인데 가장 많이 쓰이는 목재야. 어때, 잘 생겼지?”
준은 나무를 탁탁 쳐 보인다. 나무를 다루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어려운 만큼 뜻대로 가공된 나무를 볼 때의 기분은 각별하다. 고유어와 외국어가 뒤섞인 용어가 난무하는데 부재部材의 특정 부위를 인체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래쪽에 위치하는 부재를 받을장, 위쪽에 놓는 부재를 엎을장이라고 한다. 지금 하려는 것은 ‘통넣고 주먹장 맞춤’이라는 건데 부재와 부재를 결합시키는 데 필요한 작업이다. 준은 여기저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잇는다.   

“근데 주먹장이라뇨?” 주옥의 물음에 준은 주먹을 쥐어 보인다. 가공이 된 부위가 주먹처럼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나무를 끼우거나 이을 때 끼우는 쪽을 장부촉, 그것을 받는 쪽을 장붓구멍이라고 하는데 각각 수놈 장부, 암놈 장부로 불린다. 부연 설명이다. 당신도 한때 장부촉이었잖아, 대책 없는. 주옥은 입속말로 중얼거린다. 준은 장부맞춤의 과정을 보여줄 테니 잘 보라며 나무를 가리킨다. 암놈 장부부터. 고개를 돌리지 않고 말한다. 먼저, 가공할 부위에 정확한 치수의 사각을 표시한다. 원형톱으로 샌딩한 나무를 돌려 이번엔 엔진톱으로 주먹장을 따 낸다. 마지막으로 끌로 깨끗이 정리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작업이다. 다음은 수놈 장부다. 치수에 맞게 부재를 절단하고 절단선을 그린다. 보푸라기가 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코어링scoring(칼집을 내는 작업)을 한 다음 엔진톱으로 해당 부위를 가공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수놈을 암놈보다 2㎜ 작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놈이 불만일 텐데? 주옥의 말에 준은 고개를 들고 너도 그런 농담을 할 줄 아니, 하는 표정을 짓는다. 주옥은 피식 웃는다. 마무리는 앞서 했던 것처럼 끌이나 샌딩기를 이용한다. 손놀림이 제법 유연하다. 주옥은 암놈 장부와 수놈 장부의 완벽한 결합을 그려 본다. 에로틱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어때, 따분하지 않았어?” 준이 귀마개를 벗으며 묻는다. 주옥은 고개를 젓는다. “근데 선배, 이런 걸 언제 배웠어요?” “귀국하고 일 년이 지났을까? 웹서핑을 하다가 ‘통나무집 동호회’라는 이름을 발견했지. 이론과 실습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더군. 원래는 통나무집을 살 계획이었는데 급수정하고 등록했지.” 준의 표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지만 주옥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좀 쉬었다가 할까. 준이 정자로 향한다. 


주옥은 적어도 사흘에 한 번은 공사장을 찾았다. 거기엔 딱히 갈 데 없는 실업자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개입되어 있었다. 이상한 건 준의 태도였다. 기꺼워하던 표정이 시간이 갈수록 시들해진다고 할까. 아니, 착잡해진다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몰랐다.
별 탈 없이 진행되던 공사가 후반으로 접어들자 의외로 지지부진했다. 다들 열심인데 왜 이럴까, 주옥은 유심히 살펴보았다. 조립 작업엔 크레인까지 동원되었다. 상량에 이어 용마루에 서까래를 걸고 합판, 적삼목 기와까지 얹고 나니 번듯한 통나무집이 한 채 완성되는가 싶었다. 그러나 하부 작업에 들어간 뒤부터 덜컥거리기 시작했다. 의아해하는 주옥에게 한 목공이 최근 들어 준은 작업의 순서뿐만 아니라 정해진 구조물까지 임의로 바꾸려 든다고 했다. 설계도면을 무시한 그러한 처사를 수굿이 따를 목공은 없다. 이층마루 작업만 끝났을 뿐 벽체와 천장은 물론 창문, 계단 등 여타 작업은 덩그렇게 골격만 서 있었다. 설비와 전기공사를 맡은 기술자들은 마감 작업이 혼선을 빚자 툴툴거리며 뒷전으로 나앉았다. 주옥이 찾아갔을 때 준은 혼자서 창문틀을 만지고 있었다. 산 쪽으로 들창을 하나 달까 생각 중이란다. “준 선배, 일꾼들 없이 혼자 할 수 있어요?” 대답 없이 창틀을 들던 준이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팔을 부축해 일으키는데 술 냄새가 훅 끼친다. “선배, 무슨 일이에요?” 한동안 침묵하던 준이 돌연 네일건을 에어컴프레서에 연결한다. 둘러봐도 못을 칠 일은 없다. 뭐해요 선배? 주옥은 그의 팔목을 잡는다. 놔 봐. 준은 네일건을 들더니 천장을 향해 쏜다. 튀어 나간 못이 도리 부위에 박힌다. 빌어먹을, 일당을 더 준대도 일을 못한다잖아. 다들 배가 불러서 그래. 주옥은 준을 간신히 주저앉힌다. 벽에 기댄 채 준은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내를 생각해서 남향으로 주방을 냈는데 딸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바뀌더라는 식이다. 꼭 살아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하나 남은 일꾼마저 엊그제 공구함을 챙겨 나갔다고 했다.
주옥은 술병을 입으로 가져가는 준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난 처음에 선배가 전원카페나 토속음식점, 뭐 그런 용도로 짓는 줄 알았어.” 주옥의 말에 준은 씁쓰레 웃는다. “사실은 아내가 원해서야. 뒤로 산이 있고 앞으로 들판이 있는 곳에 통나무집을 짓고 싶다고 했어.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일기장을 봤지.” 주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부인을 무척 사랑했었나 봐요.” 주옥의 말에 준이 비죽이 웃는다.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누군가 숙제를 하다가 다쳤어. 그것도 나 때문에. 아무튼 그 숙제를 대신 해 주는 기분?” 준은 잠시 뜸을 들인다. “일에 매달리느라 말이지……그래, 돈벌이에 목을 매느라 가정엔 무심한 남편이자 아빠였어. 아무래도 돈에 포한이 졌었나 봐 내가.” 돈에 악센트를 가하던 준이 문득 말을 끊고 주옥의 눈을 들여다본다. 주옥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다. 술을 들이켜고 난 준이 더듬더듬 말을 잇는다. “그럭저럭……그렇게 되었어. 그랬던 거야. 그 사람이 그렇게 갈 때까지 단 한 번도 생일을 챙겨 주지 않았을 정도로……그래서 돈은 좀 모았지. 그 돈으로 이런 집을……이제 와서 말이지.” 준은 창 너머 어딘가를 무연히 바라본다. 얼굴이 석고상처럼 굳어 있다. 이럴 거면 왜 구경 오라고 한 거야. 주옥은 하마터면 그 말을 뱉을 뻔했다.   
아이를 입양 보내고 한참 지나서야 준이 결혼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준이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공교롭게도 주옥이 아이를 보러 아이슬란드에 갈 무렵이었다. 기분이 착잡했다. 준과 함께 보낸 밤이 떠올랐다. 그날이 언제였던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준은 주옥에게 위성과 같은 존재였었다. 일정한 거리 이상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밤을 같이 보내고 나서도 준의 궤도는 그대로였다. 준에겐 안 된 일이었지만 주옥이 선회하는 행성은 따로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주옥 역시 위성이었다. 언젠가부터 주옥은 자신이 선회하는 행성의 중력이 미약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다가 튕겨 나가지. 경고음이 들려왔지만 그렇다고 궤도를 수정할 생각은 없었다. 호남 형에 키가 훤칠한 그 남자는 명문대 출신의 벤처사업가였다. 무엇보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는 데 거리낌이 없을 정도의 부자였다. 주옥에겐 그 점이 중요했다. 궁티가 흐르는 준은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딱 한 가지 걸리는 건 그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별거중이라고 했다. 별거는 이혼의 예비 단계였고 그렇다면 승산은 충분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여자와 함께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여자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주옥은 자신이 그 남자의 많고 많은 위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때 네가 그랬었지? 가난뱅이랑 사느니 차라리 독신으로 살겠다고. 그날 넌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마셨긴 해. 남자를 떠난 기념일이라는, 참 이상한 명분을 내걸고 말이지. 기억 나니? 어쨌거나 그 말은 진심이었을 거야.”
아직 문을 달지 않은 개구부로 시선을 던진 채 준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주옥이 그의 손에서 술병을 채뜨리듯 가져와 들이켠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밤이다. 남자에게 웬 여자냐고 따졌었다. 남자는 냉소를 지었다. 주옥이 날 선 목소리로 계속 추궁하자 남자의 태도가 돌변했다. 남자는 무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집세다 용돈이다 내가 그냥 줬겠니? 또 옷값은 어쩌고. 주옥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다. 난 계약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넌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그날 밤……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에요?”
준의 입술이 달싹이다가 멈춘다. 남자에게 악다구니를 퍼붓고 돌아오다가 눈에 띄는 주점으로 들어가 술을 시켰었다. 억병으로 마신 상태에서 전화를 하고, 또 준에게 업힌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뒤는 깜깜했다. 눈을 뜨니 준의 방이었다. 벗은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주옥은 말을 꺼내다 말고 입을 다문다. 간신히 아이의 이름을 삼킨다. “알고 보니 불쌍한 사람은 선배 부인이야. 남편의 속내를 모르고 살았으니. 그러니 선배도 이제 그만해요. 솔직히 죽은 부인과 아이를 생각한다면 이러는 거.” 준이 손을 들어 주옥의 말을 막는다. “지금 짓고 있는 건물의 이름을 ‘혜민의 집’이라고 지었어. 아내와 아이의 이름에서 한 자씩 땄지. 언젠가 내게 그랬었지? 제자리에서 빙빙 원만 그리고 있다고. 그건 내가 스스로는 옴나위 못하는 스크류나사 같다는 말이었어. 그렇잖니?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해. 그래서 생각했지.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생을 써 나가자고. 집을 짓는 걸로 아퀴를 짓자고. 그날 모임에 나갔던 것도, 네게 연락한 것도 어쩌면 그런 결심으로 생긴 자신감 때문이었을 거야. 그런데 아내와 딸아이가 놔 주질 않네. 별 생각 없이 휘둘렀던 말들,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이 자꾸만 제동을 걸어. 그러니…….” 신발에 뭐가 들어갔는지 준은 신발을 거꾸로 들고 툭툭 턴다. 그러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주옥은 듣기만 한다.
“꿈에 아내와 딸아이가 나타나. 이상한 일이지, 근데 나타날 때마다 둘이 다른 곳에서 나를 불러.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내와 딸아이가 서 있는 배경이 자꾸만 변해. 방 구조도, 위치도, 창문 너머 풍경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는 거야. 사고 당일, 차에서 내리는 모습부터 시작할 때도 있어. 완전히 찌그러진 차량이 꿈속에선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야. 어떨 땐 딸아이가 아빠 여기, 하며 옆 좌석을 탁탁 치며 나를 불러. 내가 가면 자동차는 벌써 저만치 가 있어. 이상하지 않아? 살아 있을 때보다 꿈속에서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족이야. 어떨 땐 이런 생각이 들어. 만약에 그날, 같이 자동차를 탔다면 꿈속에서 저렇게 밝게 웃으며 함께 살 수 있으려나. 이러는 내가 웃기지? 그럴 거야.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이 우스워 히죽 웃기도 한다니까. 그러는 내가 맘에 안 드는지 가끔 아내는 방을 둘러보며 불만을 표시해. 뭔가 부족하다는 표정으로, 마치 뭔가를 주문하듯 손가락으로 여기저기를 가리키는데…….”
말꼬리가 흐려진다. 주옥은 고개를 들고 길게 숨을 내쉰다. 그만 할까? 주옥의 표정을 살피던 준이 묻는다. 주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요. 이제 그만. 주옥은 유리가 없는 창을 통해 하늘을 본다. 저 하늘을 날아가면 아이가 있는 곳에 닿겠지, 그런 객쩍은 생각이 스쳐간다.    


  *


다시 하늘이다. 준의 어깨를 지나, 주옥의 시선은 하늘로 향한다. 공사를 중단했으니 그럼 이 집은 조鳥 선생과 풍風 선생께 양도해야겠네. 주옥의 말에 준은 그렇지? 하며 열없이 웃는다. 그들이 있는 곳은 다락방이다. 아니, 정확히 말해 다락방으로 쓰기 위해 설계를 하고 골격을 세운 곳이다. 박공지붕이라 그런지 시선조차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밖으로 돌출된 창 앞에 서면 들판이 한눈에 보인다. 천장에까지 창이 있는 줄 몰랐다. 사각의 개구부엔 비닐이 처져 있다. 준이 간이 의자를 가져와 앉기를 권한다. “딸애가 별을 무척 좋아했어.” 준이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한다. 준의 목소리가 어쩐지 바람에 실려 오는 것 같다고 주옥은 느낀다.     
“있지 선배, 아이슬란드에 가 봤어요?” 주옥의 시선이 들판으로 향한다. 
“아이슬란드?” 준이 의아한 눈빛으로 묻는다.
“네, 이건 어떤 여자의 아이슬란드 기행에 관한 이야기예요. 짧지만 여운이 있는 이야기.”
여운이 있는 이야기? 준이 미간을 모은다. 주옥은 잠시 호흡을 고른다.  
“그린란드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에 위치한 섬나라. 대부분의 도시가 해안에 있고 사막과 화산, 그리고 만년설과 빙하가 동거하는 곳. 그러니까 여자가 간 곳은 불과 얼음이 공존하는 나라예요.”
휴대폰에서 수신음이 울린다. 주옥은 이름만 확인하고 끈다. 준이 초콜릿 반쪽을 건넨다. 웬 초콜릿? 주옥은 초콜릿과 준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술 좀 줄이려고 갖고 다녀.” 준이 덤덤한 표정으로 말한다.
“간을 살리자고 치아를 희생 시키는 거네.”
“간은 갈아 끼우기가 쉽지 않잖아.”   
후후, 웃고 난 주옥이 말을 잇는다.     
“……그 여자는 런던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아이슬란드로 가요. 어떤 여자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예요. 공항으로 가면서 화산이 폭발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어요. 선배도 보도를 봤으면 알 거예요. 그곳 화산의 폭발로 유럽 일대의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는 사태가 빚어졌잖아 왜. 그게 뭐였더라? 그래, 에이야프얄라요쿨, 189년 만에 폭발한 화산의 이름이에요. 주술사의 주문 같지 않아요? 이거 외우느라 정말 힘들었어.”
발음이 되게 힘드네. 에, 이, 야, 프, 얄라리 얄라? 준이 장난스런 표정을 지으며 커피가 담긴 보온병을 들어 보인다. 뭔가 빠져나간 사람처럼 굴더니, 이제 바로 돌아왔네. 약효가 나타나는 건가? 주옥은 웃으며 한 잔 주세요, 한다. 주옥의 권유로 병원을 찾은 준은 강박신경증이 가미된 ‘망상장애’ 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입원할 정도는 아니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준은 그날 한 달 치의 약을 받아 왔다. 주옥은 커피를 마시고 하던 얘기를 계속한다.   
“그 여자는 관광을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곧바로 여자아이를 만나러 가요. 여자아이의 부모에게서 초청장을 받았죠. 딱 한 번, 여자는 아이의 사진이라도 봤으면 좋겠다고 편지를 쓴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예요. 여자아이가 궁금해요? 봐, 그런 눈치네. 여자아이는 그 여자의 딸이에요. 입양 보낸. 아이의 이름은 욘시예요. 그곳 사람이 되었으니 당연한 일인데도 여자는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서운한 느낌이 들었어요. 여자는 초청해준 분들의 배려로 여기저기를 구경했어요. 어디 그뿐인가, 캠프파이어도 한 걸요. 억만년의 신비를 간직한 극지방의 평원에서 말이죠. 아이의 양부모는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었어요. 하긴 그러니까 그런 아이를 입양했겠죠. 아, 말 안했던가요? 그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어요. 다 엄마 탓이에요. 아이를 갖고도 술을 마셔댔으니까. 한 남자를 떠나던 날 밤, 기적처럼 생긴 아이였어요. 미련하게도 여자는 넉 달이 지나도록 임신 사실을 몰랐죠. 낳고 나서 일 년이 채 안 되어 입양기관에 맡겼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아이슬란드, 이름도 생소한 그 먼 나라까지 간 거예요. 영국인 부부였는데 아이를 입양한 후 이민을 갔다고 했어요.”
한 남자를 떠나던 날 밤. 그 말을 되뇌던 준의 얼굴이 상기된다. 그때 거짓말처럼 새 소리가 들려온다. 들었어요? 주옥이 준의 팔을 잡는다. 조鳥 선생이 돌아왔군. 화가 풀린 모양인데? 준이 짐짓 심상한 어조로 말한다. 
“……화산재가 덮여 자갈밭은 온통 까맸어요. 조금 더 걸어가면 구릉이 나오죠. 야생화가 곳곳에 숨어 있는 거기를 벗어나면 얼어붙은 폭포가 나와요. 평지에서도 볼 수 있는 폭포라니, 신기하지 않아요? 저 멀리 만년설을 쓰고 있는 산봉우리를 보다가 3분마다 뜨거운 물기둥을 뿜어 올리는 간헐천을 보면 혼란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곳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빙하가 떠 있어요. 아이의 눈빛은 그 빙하처럼 투명해요. 여자는 아이가 방금 빙하의 계곡에서 빠져나온 요정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는 그때까지도 여자에게 입을 열지 않았어요. 한국말을 몰라서만은 아니에요. 그보다 아이는 여자에 대해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 보였어요. 뭐랄까, 그것은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어두우면서도 밝은, 그러니까 모순된 것끼리 혼곤하게 섞인 감정이에요. 그곳의 날씨와 닮아 있어요. 그건 여자도 마찬가지였어요.”
주옥은 꿈꾸는 듯 아스라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준은 주옥의 얘기에 깊이 빠져든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떠나오기 전날 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북쪽으로 10㎞쯤 떨어진 곳에서 오로라를 봤어요. 책에서만 봤던 오로라를 말이에요. 옅은 초록을 띤 그것은 부드럽게 물결치는 커튼 같았죠.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에 여자는 저도 모르게 아이를 안았어요. 아이는 처음엔 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몸을 빼진 않았어요. 여자는 아이의 눈에 어린 빛의 무늬를 보고 있었어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여자의 생각 하나가 그 빛에 스미고 있었죠.”
준은 생각하는 눈빛으로 창밖을 본다. 주옥은 가만히 눈을 감는다.     
“……카운터에서 보딩패스를 받고 탑승구 쪽으로 막 걸음을 떼려던 참이었어요. 아이가 여자의 손을 잡았어요. 여자는 돌아봤겠죠. 아이가 뭐라고 웅얼거렸어요. 무슨 말이니? 여자는 무릎을 굽히고 아이에게 물었어요. 아이가 여자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어요. 그 또랑또랑한 눈으로, 세상에, 그 애가 무슨 말을 한 줄 아세요?”
주옥은 눈을 뜨고 준을 바라본다. 준은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린다. 주옥의 목소리는 비파의 현처럼 가늘게 떨려 나온다.          
“언, 마, 샤, 랑, 함, 이, 다. 나직이, 그렇게, 음절 하나하나를 아이는 모래성을 쌓듯이 완성했어요. 어색한 발음이었어요. 물론 여자는 알 수 있었죠. 양부모가 시킨 일이라는 걸. 하지만 뭐가 문제겠어요. 여자는 그 자리에서 아이를 안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어요. 가슴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것이 꾸역꾸역 나오는 거예요, 마치 용암이 분출하는 것 같았죠.”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준이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연다. 
“왜 늘 중간 지점에서 우물쭈물하느냐고, 온몸을 던지지 못하느냐고 물었었지?”
“…….”
“아이의 부모는 늘 싸웠어. 아닌 게 아니라 하루의 팔 할은 싸움이었어. 아이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서는 안 되었지. 그랬다간 정말 두 분이 이혼이라도 하면 큰일이었거든. 한마디로 눈치꾸러기가 된 거야. 그래봤자 결국 갈라설 운명이었지만. 그때부터였을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걸 본능적으로 피하게 된 게.”
준은 이번에도 주옥의 방식을 흉내 낸다. 주옥은 고개를 든 준을 본다. 준의 안색이 의외로 밝다. 주옥은 뭔가를 읽어내려는 듯 준의 얼굴을 찬찬히 살핀다. 준은 슬그머니 주옥의 시선을 피한다. 그리고 하던 얘기를 마저 한다.  
“……그리고 그것은 뭔가를 가지고 싶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뒷걸음치는 우유부단함으로 얼굴을 바꾸기도 했던 거야. 그러면서 그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을 거야. 그러니 끝내 너를 잡지 못했을 테지. 지금 이러는 것도 알고 보면 같은 맥락이야. 이런 걸 자기고백이라고 해야 하나 자가진단이라고 해야 하나…….”
  
*


준은 완공된 건물을 둘러본다. 미혼모를 위한 집이다. 미뤄 둔 숙제를 해결한 기분이다. 이게 다 주옥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주옥의 얼굴을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과거와 같은 구도가 재현될까봐 몸을 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래 묵은 가구를 대하듯 편안하다. 준공식 날 찾아온 주옥에게 아직도 가난뱅이가 싫은지 물어보았다. 
“……또다시 그 얘기군요. 정정할게요. 가난뱅이가 아니라 가난이 싫은 걸로.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 그때 선배가 싫었던 게 아니에요. 다만 선배와 함께 가난이란 끈에 묶여 2인1각 경주를 하고 싶지 않았던 거예요. 그렇게 해서 도달할 목적지가 어떤 곳인지 저는 알고 있었거든요. 아버지를 통해 배운 거예요. 아버진 수술비가 없다는 이유로 어쩌면 무사히 당도할 수 있었던 목적지를 버릴 수밖에 없었죠.”

휴게실 등 기본적인 시설은 물론 규모는 작지만 헬스장과 도서실까지 갖췄다. 중간에 개조하느라 남은 재산을 다 털어 넣어야했다. 준은 고개를 들어 간판을 본다. <욘혜민의 집>. 기존의 이름에다 또 한 자를 추가했다. 이 집은 상처 입은 영혼을 위무하는 집이 될 거야. 준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그 말을 되뇐다. 주옥이 새로 단 간판을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준은 천천히 마당을 가로질러 건물 입구로 간다. 계단을 올라가 다시 건물의 외관을 살피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통나무로 지은 데다 실내 인테리어 또한 친환경소재를 쓴 덕분에 새집증후군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성싶다. 준은 이층으로 올라가 복도를 걷는다. 깊은 숲에 들어온 듯 적요하다. 하지만 머잖아 미혼모들이 입소하면 활기를 띨 것이다. 어디에선가 젊은 엄마들의 재재거리는 목소리와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준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까운 방으로 들어가 창문을 연다. 그새 어둠이 내렸다. 드문드문 별이 박힌 하늘을 보던 준은 북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주옥이 아이슬란드 얘기를 하며 눈길을 보냈던 곳이다. 별 하나가 그의 눈길을 끈다. 촉수 낮은 알전구처럼 별은 희미하게 빛을 발한다. 욘시. 주옥이 말했던 그 이름을 발음해 본다. 툰드라지대를 지나온 바람이 당도한 듯 왠지 서늘한 느낌이다. 준은 시치미를 뗀 게 마음에 걸린다. 그땐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주옥은 이해해 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욘시, 너도 이해해 주겠지? 준의 눈에 별빛이 고인다.  





*심강우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 ‘서술의 방식’으로 수주문학상 수상.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시 부문 당선. 2014년 단편소설 「가면의 시간」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  2015년 단편소설 「구멍의 기원」으로 한국소설가협회 <신예작가> 선정. 2017년 제25회 눈높이 아동문학상 동시 부문 당선.  2017년 제27회 어린이동산 중편동화 당선. 2018년 소설집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으로 제29회 성호문학상 수상. 동시집 『쉿!』. 시집 『색色』. 소설집 『전망대 혹은 세상의 끝』.
방 아홉 칸으로 구성된 2층 목조 가옥이다. 상담실, 식당, 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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