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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3호/계간평/백인덕/자연은 ‘중재’하지 않는다


자연은 ‘중재’하지 않는다


백인덕



1.
다시 봄을 맞이한다. 봄을 향해 지난겨울을 뒤적이는 심사는 처량하다. 봄이면 마땅히 변화를 기대해야 하지만, 현대인으로서의 일상은 나날이 더 잘게 쪼개져 같은 권태와 좌절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다. 달라진 것이라곤, 봄의 대명사였던 꽃샘추위와 황사 자리에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가 들어섰다는 것, 지독하게 기침을 하는 필자는 길을 나서기가 두렵고, 애연가로서 새 담배 한 대 피워 물기가 망설여진다. 예나 지금이나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긴 매 한 가지인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봄에 시는 발표되는 양 만큼 질적 변화를 보여줄 수 있을까, 정치적 함의로 뛰어난 작품 말고 인식과 창작의 차원에서 지평을 확대하는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괜한 고민일 것이다. 사하라가 원래 사막이 아니었고 처음부터 이렇게 넓은 면적을 차지하지도 않았을 테니, 변화는 미세하게 초미세먼지처럼 스미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수도 한 병 없이
주먹밥도 없이
두 개의 국경을 넘으려면
박주가리의 독이 온몸에 퍼지도록
빈속을 쓴 잎으로 든든히 채워야 해
오직 분별이 없는 새들만이
독으로 온몸을 칠갑한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겠지만
박주가리의 쓴맛이 그들의 혈관에 이르게 될 즈음에는
그 새들의 주소는 영원히 지상이 되고 말 거야
공중에 문패를 달고 싶어 하는
어떤 날 것들도 박주가리의 방패를 뚫지는 못해


눈물은 피로를 부르는 질량일 뿐이니
액체 따위는 출발 전에 미리 비워둬
우리 앞에는 변변한 휴게소나 주유소도 없지만
성질이 사나운 새들의 내장을 뒤트는 박주가리의 독과
우리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의 백만 기병이 있어
별들이 허공에 그려준 지도는 어떤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아


정처업는 정처의 끝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날개를
끌어 당겼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름을 좇아
침낭 속에 잠들어 있는 별들을 깨울 시간이야
날개 위에 부스러진 이슬을 털어낼 시간이야


―김보일 「제왕나비의 출사표」 전문


시인은 제왕나비(모나크)monarch를 소재로 해서, 출사표를 덧붙이면서 여러 정보를 결합해서 새로운 생각거리를 던진다. 제왕나비는 여러 대륙에 분포하는데 작품의 내용 “두 개의 국경을 넘으려면”에서 유추하자면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종을 말하는 것 같다. 캐나다에서 멕시코까지 최장 2,900km를 이동한다고 한다. 그런데 ‘박주가리’는 서식지가 아시아니 “박주가리 독이 온몸에 퍼지도록” 무장을 할 수 있는 종은 쿠릴열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가는 종일 것이다. 이 두 정보는 다른 사실을 지시하지만 전혀 틀린 것은 아니다. 시인이 주목한 것은 대장정에 나서는 제왕나비가 썼을지도 모르는 ‘출사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리얼리스트라 해도 시를 읽으면 사실 여부만을 따질 필요는 없다. 사실(fact)이라는 것은 언제나 해석 앞에서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물론 과학적 사실을 예외로 하고, 어쨌든 ‘출사표’의 내용은 비장하다. “눈물은 피로를 부르는 질량일 뿐이니/액체 따위는 출발 전에 미리 비워”두라고 한다. 게다가 ‘휴게소’나 ‘주유소’ 같은 변변한 휴식처나 보급 거점은 없지만 “성질이 사나운 새들의 내장을 뒤트는 박주가리의 독과/우리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의 백만 기병이 있어/별들이 허공에 그려준 지도는 어떤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는 다고 호언장담 한다. 출사표에서 드러나는 배포가 가히 영웅의 풍모를 가졌다. 이런 의인화의 이면에는 수법으로서의 알레고리를 통한 시적 재미는 물론 작고 나약해지기만 하는 인간 존재에 대한 쓴 소리라는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시인은 ‘정처 없는 정처의 끝’(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제왕나비를 통해 오늘의 우리를 되비추고 있다.
우리는 자연이고, 자연이 우리의 모태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이 대전제의 달콤함에 빠져만 있다면 의식하는 존재로서의 자기와 자기 인식과 싸우는 시인으로서의 책무 둘 다에 태만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엄정하게 우주적 시각으로 본다면, 자연은 무자비하고no-mercy, 후회하지 않고no-regret, 상기하지 않는no-recall다. 즉 개체의 운명에 관여는 하되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네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괜찮아, 조금만 참아
했지만
그리고 밤마다 나는 네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너의 아픔이 전해올 때마다 나는 달빛 아래를
걸었다
달의 행적을 따라가며
너의 슬픔을 보았다
멕시코의 피라미드 떼오띠우아칸에서도 보았다
맨발의 사람들이 그 신전을 향해
줄지어 올라가는데
너도 올라가고 있었다
달빛이 흐르고 있었다
죽음의 길이라고, 아니 수천 명의 심장을 바친 제의
제단이라고
까마득한 곳까지 그 속으로 네가 올라가고 있었다
달의 중심
달의 그림자 안으로 네가 사라지고


달빛이 흐르는 밤은
여전히
네가 다시 지상에 남는 밤이기를
마음을 만나 다시 돌아오는 밤이기를


―송영희, 「달의 신전」 전문


자연의 속성이 어떻든 그것을 인격화하는 것이 시인의 책무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달’은 천체 중에 지구가 거느린 유일한 짝이고, 잘못 이해하면 지구의 위상보다 더 떨어지는 하찮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류는 끊임없이 달을 신격화하면서 숭배해왔다. 인공의 불빛으로 어둠을 겨냥할 수 없었던 시대, 달은 암흑 속의 인도引導였고 위로였으며 밝은 내일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시인은 상징이 된 이 특성을 오늘로 호명하면서 “네가 아프다고 했을 때”라는 암흑을 건너가고 있다. 나아가 “달의 행적을 따라가며/너의 슬픔을 보았다”라고도 한다. 달은 차고 기우는 것이라서 밤을 밝히는 강도가 변할 수밖에 없다. 뭇 생명의 강렬도, 즉 생기도 이처럼 차고 기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인격화된 달은 자연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의 표지로 작동한다. “달빛이 흐르는 밤은/여전히/네가 다시 지상에 남는 밤”일 것이고, “마음을 만나 다시 돌아오는 밤”일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변화와 변하지 않는 것의 변화를 생각하다가 지난 호를 읽는 시선이 갈피를 잃고 말았다. 눈앞에 당도하는 생생한 현실은 언제나 크고 무겁고 복잡하기까지 하지만, 몇 편의 시로 우리는 우공이산愚公移山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직하게 사소한 오독과 작은 위로에서 되레 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일찍 고아가 돼 빈 몸으로 객지를 배회하며
뜬소문만 무성하던 사촌 형이 왔다


몸을 밑천으로 벌어먹어도 빈손이었던 형과
이장한 백부모伯父母의 산소로 함께 인사를 갔다


봉분 넘치도록 삐비꽃이 피었다
꽃에서 고슬고슬 익은 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고인이 된 뒤에도 백모伯母는 알았던 거다
남겨놓은 자식이 배곯을 세라
밥을 고봉으로 담아놓고 기다린 것이다


어린 삐비꽃을 오랫동안 씹으며 형은 몰래 울음을 감추었다
적막함만 쌓이던 봉분에 뜨거운 배후가 생겼다


삐비꽃이 또 한상 올라왔다


―이진욱, 「고봉高捧」 전문


원래 무관한 자연 현상을 인간적 심사나 행위의 반영으로 인격화하면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인가. 추상적으로는 유대감의 회복이나 심신의 치유, 회복 작게는 위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땅의 4~50대가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선호하는 TV 프로그램이 모 종편방송의 ‘나는 자연이다’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전통적으로 시도 이러한 관계회복과 정서적 동일성을 노래해왔고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낯설게 느껴졌을 법도 한 방문을 통해 자연을 통해 회복되는 인간관계의 한 양상을 군더더기 없이 명징한 서사로 들려주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삐비꽃’이라는 이미지가 큰 역할은 한다. 방문자인 형은 ‘몸’의 존재다. 일찍 육친肉親을 여의였기에 외롭게 되었고, “몸을 밑천으로 벌어먹어도 빈손”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가 찾아간 이장한 부모님의 봉분이 ‘고봉’을 닮았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허한 몸에는 따뜻한 말보다 가득한 밥 한 공기가 더 이로운 법이다. 하지만 시인은 능숙하게 봉분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침입한 ‘삐비꽃’에 주목한다. 이 꽃 형상에서 “고슬고슬 익은 밤”을 연상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정말 주목할 부분은 가득 담은 고봉 같은 봉분의 형상이 사촌 형에게 주는 위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막함만 쌓이던 봉분에 뜨거운 배후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고봉의 형상으로 자식을 위하고, 그 밥 냄새가 좋아 자식은 다시 부모를 찾을 것이다. 이 중심에 매개로서 ‘삐비꽃’이 놓여 있다. 이는 자연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잘 보여준다.


  달팽이가 지나간 배춧잎은 텅 비어 있다
  비어 있는 문양은 느린 시간의 발자국, 무형의 무늬 속으로 늦여
름이 빠져 나간다 사각사각 초침들이 배추 이파리를 지날 때 점액질
흰 달은 둥글게 살이 찐다 여름의 막바지들이 겹겹으로 들어차고 막
바지에 다다른 파란을 달팽이가 갉아 먹는다 파란의 흉터는 공중의
숨구멍


  모든 흉터는 파란이 파란(波瀾)을 겪으며 걸어온 흔적이다


  달팽이가 지나온 흔적 너머로 늙은 개가 하품을 하고 밀잠자리들
이 고춧대 끝에서 구름의 전파를 잡는다 알밤이 툭툭 가을을 세고
수수열매 자루들마다 공중을 쓸고 있다


  지금은
  배추들이 겉잎을 버리는 시간
  풀벌레 소리가 배춧잎으로 스며드는 시간
  햇살과 바람의 끝자락이 알곡처럼 자루에 담기는 시간

  오른돌이바람이 천천히 공중의 시간을 돌리고 있다


―송연숙, 「달팽이, 시간을 굴리다」 전문


거리를 유지하고 일단 ‘관찰자의 자세’를 견지하기만 한다면, 자연은 우리가 관습적으로 동화와 투사를 통해 무시했거나 가려버렸던 새로운 면모들을 스스로 드러내곤 한다. 관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가 행위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인은 “달팽이가 지나간 배춧잎은 텅 비어 있다”는 묘사로 시작한다. 그런데 정말 텅 비었다면 이미 배춧잎이 아닐 것이다. 과장이지만 지나치지는 않다. 왜냐하면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그 ‘문양’이 생겨난 이유가 아니라 ‘문양’을 거느린 ‘막바지 여름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관심의 방향, 또는 관찰의 시각을 조금 비틀기만 해도 우리는 계절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이를 통해 시인은 ‘지금’을 “배추들이 겉잎을 버리는 시간/풀벌레 소리가 배춧잎으로 스며드는 시간/햇살과 바람의 끝자락이 알곡처럼 자루에 담기는 시간”으로 재정의 할 수 있게 된다.
자연은 아무것도, 언제나 중재하지 않는다. 중국과 우리가 다투지 말라고 바람의 방향을 바꾸지도 않고, 봄비의 때를 이르거나 늦게 조정하지도 않는다. 무심한 자연 앞에서 우리가 의지를 돋워 버티거나 아니면 그 의미를 왜곡하면서 인격화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이토록 간절하게 봄비가 기다려지는 것은 꼭 미세먼지 때문만은 아니리. 그랬으면 좋겠다.





*백인덕 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짐작의 우주』.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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