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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4호/특집Ⅰ오늘의 작가/유시연/울음 우는 숲


유시연


울음 우는 숲



현관문을 열자 벽지 냄새가 강하게 끼쳐온다. 명숙은 비로소 내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너무 오래 걸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명숙은 그 동안의 힘겨웠던 시간이 이 집에 돌아오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십여 년의 세월은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드문드문 박혀 있던 산자락의 집들이 빌라촌으로 바뀌어 촘촘한 건물 사이로 골목이 생겨나고 음식점과 카페와 편의점이 들어서 있는 풍경은 옛 기억을 환기시키기에 혼란스러웠다. 일회용 무설탕 커피를 잔에 타서 마시며 명숙은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전경을 내다본다. 단풍 드는 가을산의 정경이 스산하다. 유난히 붉은 덩굴식물이 눈에 띈다. 참나무를 휘감은 덩굴식물의 붉은 단풍에서도 명숙은 나이듦을 의식한다. 언제 고꾸라질지 아슬아슬한 참나무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해 애잔한 마음이 든다.
이날 따라 커피가 유난히 쓰게 느껴진다. 커피 잔을 들고 안방 문을 열다가 명숙은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젊은 여자가 침대 위에 앉아 울고 있다.
“누, 누구세요?”
명숙은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묻는다. 백짓장 같이 창백한 여자가 침대 끝에 걸터앉아 명숙을 힐긋 쳐다본다. 명숙은 잡고 있던 문을 소리나게 닫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조금 후 정신을 차린 명숙은 커피 잔을 내려놓고 다시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여자는 보이지 않고 빈 침대가 덩그러니 붙박여 있다. 명숙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 헛것을 본 모양이라고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십 년을 꾸려온 식당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명숙은 여행사를 찾아가서 단체 관광객들 틈에 끼어 서유럽 5개국을 돌고 왔다. 일하느라 한 번도 집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명숙은 손가락 관절과 허리 통증이 심해지기 전에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는 여행팀에 끼어 가이드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만 다녔다. 기억나는 거라곤 성당과 수도원, 박물관의 성화 그림뿐이고 그 여행을 통해 명숙은 오래 전에 자신이 성당에서 세례 받았음을 기억해냈다는 점이다.
명숙은 안방을 다시 열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짐을 풀다 말고 가방을 챙겨들고 일어선다. 낡은 가구와 가전제품을 모두 버리고 와서 명숙은 텅 빈 공간에 몸만 달랑 남아 있는 현실이 먼 여행지의 민박집 방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사람이건 가구건 명숙은 이제 묶이고 싶지 않았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신선한 커피를 마시고 싶어 집을 나선다.
공원 옆에 있는 카페는 한산하다. 사십초반 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혼자 소파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 뜨거운 카페라떼 한 잔을 주문하고 실내를 둘러보는데 바이올린과 기타가 벽에 걸려 있는 게 눈에 뜨인다. 커피를 갖고 온 남자에게 악기를 다루냐고 물어보니 시작한 지 얼마 안됐다고, 며칠 전 월미도 광장 갈매기무대에서 배호 가요제가 있었고 동상을 받았다고 자랑한다. 대상, 은상까지만 가수 자격증을 주고 동상은 가수 자격증을 안줘서 못내 서운한 티를 내면서도 남자의 표정은 자부심이 가득했다. 손님이 없어서 이런 저런 질문에 순순히 대답해준다. 카페 문을 연지 일 년 되었고 원래 하는 일은 실내 건축 인테리어라며 일 년 동안 일을 하나도 못했다고 하소연이다. 구석에는 골프채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는 나무로 된 5단 책장에 낡은 책들이 꽂혀 있다. 책을 읽어도 되느냐고 묻자 당연히 된다고, 하루 종일 와서 책을 읽어도 좋다고, 커피를 안시키고 앉아 쉬었다 가도 된다고 인심 좋게 말한다. 여성 월간지를 뒤적이다가 창밖을 내다본다. 산기슭 공원에 히잡을 쓴 여인들이 모여 앉아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는 정경이 보이고 가끔 아프리카나 히스패닉계 외국인들이 지나다니는 게 보인다. 이곳에 공장도 없는데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져서 의아하다. 
명숙은 카페를 나와 공원 입구로 향한다. 산길을 따라 데크가 길게 이어져 있고 등산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그 길을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숲에는 도토리와 알밤이 떨어져 뒹군다. 코끝에 마른 잎 향이 스며든다. 이파리들이 몸을 도르르 말아 수분이 빠져나가느라 비틀린 몸을 매달고 있는 정경이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크가 끝나고 흙길이 나올 즈음 약수터가 나타나고 약수터 주위에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다. 긴 나무 의자에 앉아 명숙은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쳐다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작은 나뭇잎들이 하늘 가득 흔들리는 정경이 오래 전 봄날 남편 성국과 쳐다보던 꽃잎을 닮았다. 진달래와 노란 동백이 지고 산벚꽃이 가득 흩날리던 그 봄날에 명숙은 성국과 헤어졌다. 그러고 보니 낡은 나무 의자는 오래 전에 성국과 앉아 발을 까닥거리며 두 팔을 벌리고 꽃잎을 받아 안던 그 자리 같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때였고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방황을 하던 아들을 다독이느라 성당 기도 모임에 참여한 일들이 가물가물 피어난다.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소형스테레오를 허리에 차고 천천히 지나가는 산길에 귀국선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북에서 남으로 피난 내려온 친정아버지가 입에 달고 살던 트로트풍 곡이라서 귀에 익다. 지팡이를 짚으며 걷는 노인이 왼쪽 다리를 조금씩 절고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한쪽 어깨가 심하게 기울어진다. 느리게 걷는 노인 옆으로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간다. 노인의 보폭과 귀국선의 박자가 어긋나며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트로트 리듬에 4분의 2박자로 이루어진 노래가 노인의 보폭과 맞지 않는 풍경은 어긋나기만 했던 자신의 지나온 삶을 보는 듯해서 명숙은 천천히 노인의 뒤를 따라 걷는다. 노래가 그치고 노인이 공원의자에 앉아 거친 숨을 내쉰다.
노인이 앉아 있는 맞은편 의자에 중년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보면대 악보가 바람에 펄럭이더니 악보 한 장이 날아와 명숙 앞에 떨어진다. 명숙은 허리를 숙여 악보를 집어 들고 아코디언 남자에게 갖다 준다. 남자가 고개를 약간 숙여 고맙다는 표시를 하며 눈을 마주 본다. 남자의 눈빛이 유난히 까맣다. 명숙은 아코디언 남자 옆에 주저앉아 그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다. 피렌체의 옛 도시에서 만난 아코디언 노인과 숲 속에서 만난 중년 남자가 겹쳐지며 명숙은 한순간 지나간 시간의 그물이 얽히며 혼란이 온다. 피렌체의 오래된 다리 위를 지나갈 때 예복을 갖춰 입고 라노비아를 연주하던 노인의 표정은 담담했고 오직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음악에 몰두해 있었다. 한때 명숙은 음악을 좋아했고 클래식에 탐닉한 시간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잊고 살았다. 성국과의 관계는 그녀의 청춘뿐만 아니라 취미나 추억마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그건 인생의 소중한 부분, 아이가 부모를 떠나 외가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어떤 한 시기를 놓친 거나 다름없었다. 명숙은 노인이 연주하는 라노비아를 들으며 멀리 다리 밑을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다가 일행이 다리를 다 건너가고 혼자 남았다는 것을 알았다. 라노비아 노인에게 1유로 동전을 모자 안에 던져주고 멀리 일행의 꽁무니를 쫓아 간 기억이 난다.
남자는 주로 외국 곡을 연주한다. 베사메무초, 에델바이스 같은, 명숙이 주로 아는 음악이라 가만히 귀 기울여 듣는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한꺼번에 허공을 휘돌아 숲 여기저기에 떨어져 나뒹군다. 명숙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아코디언 연주를 듣다가 조용히 일어선다.  
공원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든다. 십 년 전 미용실이 그 자리에 있어서 명숙은 반가운 마음에 문을 밀고 들어간다. 어서 오세요, 파마를 말고 있던 여자가 힐끔 뒤돌아보고는 다시 부지런히 손을 놀려 파마를 만다. 얼굴은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데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어서 염색인지 원래색인지 분간이 안간다. 오래 전에 다니던 미용실인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서 좋네요, 했더니 주인여자가 뒤돌아보고는 낯이 익다고 말한다. 명숙은 미용실여자의 목소리에서 그녀가 예전의 그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더 반가운 티를 낸다.
“가게마다 주인이 바뀌었는데 여기는 그대로네요.”
“지겨워서 떠날까 하다가 그냥 눌러 앉았어요.”
“캠핑카가 문앞을 막고 있는데 치워달라고 하지 그래요. 남의 가게 앞에 두면 안돼죠.”
“아, 그거 우리 남편 거예요.”
문 앞을 가로막은 캠핑카가 답답해서 말을 했더니 미용실여자가 냉큼 말을 받는다. 미용실여자는 자기에게 의논도 안하고 그녀 남편이 덜컥 캠핑카를 샀다고 푸념이더니 평생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어서 남편과 같이 세상을 떠돌고 싶다고, 중형차를 사서 개조하는데 8천만 원 들었다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 어디어디 다녀왔냐고 묻자 아직 한 번도 떠나지 못했다고 대답을 하며 한숨을 내쉰다. 문 닫아걸고 휴가를 가지 그랬어요, 했더니 남편이 기술자라서 쉴 만 하면 공사 요청이 들어온다고, 이번 일만 마무리 하면 무조건 떠날 거라고 하는 그 표정에 기대감이 차있다. 파마 손님이 잠시 대기하는 중에 머리카락을 귀밑 수준으로 짧게 잘라 달라 말하고 미용실여자를 쳐다본다. 미용실여자는 살림이 펴졌는지 궁상맞던 예전과 달리 얼굴 표정에 여유가 넘쳐난다. 오래 전 미용실에는 김치볶음밥 냄새가 늘 떠다녔다. 미용실여자는 아침에 출근을 하며 도시락을 싸갖고 왔다. 양은 도시락 바닥에 배추김치를 잘게 썰어 참기름과 밥을 담아 연탄난로에 얹어 놓으면 김치 볶음밥 익어가는 냄새가 실내 가득 퍼지곤 했다. 어쩌다 미용실에 들러 밥 한 술 얻어먹은 적도 있고 밥을 먹고 커피 믹스를 진하게 타서 나누어 먹은 기억도 난다. 그러고 보니 연탄난로는 없어지고 가스난로가 구석에 놓여 있다. 힘들다고 해도 시간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인간의 삶을 변화시킨다.
명숙은 혼자되고 나서 모든 게 서툴러 허둥거렸다. 식당 문을 열고 일하는 아줌마를 구하고 월급을 제 때 못 줘서 지녔던 패물을 몽땅 팔아치웠고 형편이 좋아지면 팔아버린 패물 중에 반지라도 다시 사야지 했는데 다시 살 이유가 없어졌다. 그 반지는 성국과 결혼하면서 받은 예물반지였고 굳이 반지를 사서 끼고 싶지도 않았다. 손은 늘 젖어 있었고 부어 있었고 마디가 굵어져서 웬만한 가락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식당 손님들은 명숙이 끓인 곰탕 국물을 맛있게 먹었다. 우족과 잡뼈를 사서 열 시간씩 고아내고 국물에 살코기를 넣고 푹 삶아서 얹어주곤 했다.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황태를 넣은 깍두기는 시원하고 감칠맛이 났고 배추 포기김치를 담글 때는 생태를 사서 통째로 넣었고 생태 뼈가 삭을 즈음이면 김치가 익어서 감칠맛이 났다.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고 담백했다. 곰탕만 끓여 팔며 삼십대와 사십대를 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왜 사나 싶었다. 가끔 일하는 아주머니가 사장님 돈 벌어서 어디에 쓰시게요, 라고 하면 글쎄, 하고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허리 통증과 손가락 관절염 치료를 받으며 의사가 쉬라고 할 즈음이다. 그제서야 명숙은 산자락에 기대어 서 있던 옛집이 생각났다. 성국과 헤어지면서 전세를 주고 잊고 산지도 꽤 되어 그 집이 원래 명숙 집이었는지 아니면 남의 집인지 헛갈릴 정도였다. 오랫동안 전세비용을 올리지 않고 내버려둔 터여서 십 년 가까이 살던 세입자는 그 집에서 자식을 결혼시키고 넓은 집으로 굳이 이사 갈 생각이 없다며 정이 들어 그냥 눌러 앉아 산다고 말했다.
“동네가 변해서 몰라 보겠어요.”
“에구, 웬 빌라가 그리 많이 들어서는지, 동네 다 버려놨어요.”
미용실 여자는 빌라가 들어서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눈살을 찌푸린다. 걸어오면서 둘러보니 오층짜리 빌라가 많이 들어서 있기는 했다. 게다가 외국인이 더러 보여서 이 동네에 외국인이 거주할 환경이 되어 있나, 라는 의문이 든다.
“젊어 보여요.”
미용실여자의 과도한 친절을 받으며 바깥으로 나오자 저녁 해가 넘어가느라 골목이 온통 붉은 빛으로 출렁거렸다. 처음 이사 왔을 무렵에는 멀리 갯벌 끝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는 게 보였는데 그 사이 고층 아파트가 바다를 가로막아버렸다. 베란다 뒤쪽으로는 산이, 앞 베란다로는 바다가 보인다고 좋아했던 일들이 이제는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물을 끓여서 컵라면을 먹고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망연해진다.
안방 문을 꼭 닫아놓은 채 작은 방과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짐 정리를 한다. 가구를 버리고 왔더니 짐이라야 옷상자와 그릇 정도로 단출하다. 아들은 일찍 독립을 하여 해외에 나가 살고 식구는 없고 하여 원래 짐이 없기는 했다. 피곤이 몰려왔다. 명숙은 기다란 대걸레로 바닥을 닦고는 거실 바닥에 요를 폈다. 안방 침대는 선뜻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성국이 떠난 후 명숙은 안방 침대에 누워 눈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명숙은 안방에 울음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은 환각에 시달렸다. 그 방에 들어서기가 두려웠다. 문을 여는 순간 어둡고 축축한 공기가 명숙을 향해 와락 달려들 것만 같았고 뭔지 모를 어두움의 정체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 때문이었을까. 명숙은 창백한 여자의 환영을 보며 자신의 직관이 어긋나지 않음에 두려웠다.
베개를 베고 누워 있는데 아래층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발소리가 난다. 아이의 수는 한 명이 아니고 둘인 것 같다. 예전에 명숙이 살 때는 아래층에 젊은 새댁이 살았다. 사내아이는 예닐곱 살 되었고 출근을 하며 사내아이를 할머니 댁에 맡기러 간다고 했다. 그 사이 주인이 몇 번 바뀌었을 것이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아 명숙은 뒤척였다. 뒤쪽 베란다 창문으로 가로등 빛이 희미하게 들어온다. 앞 베란다에는 건너편 아파트 앞집 유리창 불빛이 투과되어 실내를 희미하게 비춰준다. 눈을 감고 이리 저리 뒤척이다가 명숙은 눈을 뜨고 천장을 쳐다본다. 네모진 등이 딱정벌레처럼 붙어 있는 천장에 베란다 불빛이 투영되어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아래층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 아이 엄마인 듯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들어온다. 가을이 깊어가며 나뭇잎이 말라가느라 서걱거리는 소리가 쉴새없이 난다. 정신은 더 또렷해져서 명숙은 일어나 불을 켜고 아직 풀지 못한 짐 속에서 맥주 캔과 와인을 꺼내놓는다. 맥주를 손에 잡았다가 미지근해서 와인 병을 딴다.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막 잠이 들려고 하던 터여서 명숙은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귀를 기울인다. 베개에 귀를 대고 옆으로 돌아눕는다. 울음소리는 가늘고 길게 들려오다가 흐느끼다가 멈췄다가 다시 들려온다. 명숙은 눈을 감고 가만히 여인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울음소리는 안방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아래층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전 아래층 새댁은 남자가 떠나고 어린 아들과 둘이 살았다. 밤마다 들려오던 새댁의 울음소리에 명숙은 잠들 수가 없었다. 명숙은 아래층 새댁이 다시 왔을 리가 없음에도 혹시 그녀인가 싶어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이들은 잠들었는지 조용하다. 바람소리가 창문을 흔든다. 창문 너머로 밤에 우는 새소리가 들린다. 예전에도 그랬다. 꼭 밤에만 우는 새가 있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똑 같다는 생각을 하며 명숙은 억지로라도 잠을 자려고 돌아눕는다.
아침 햇살이 머리맡에서 이마를 간질인다. 명숙은 드러누운 채 눈을 뜨고 유리창을 투과해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본다. 베란다 문을 열고 창을 내다본다. 숲 속에 기우뚱하니 기울어졌던 참나무가 쓰러져 누워 있다. 쓰러지면서 옆의 오리나무를 덮쳐서 두 그루가 포개어지듯이 길게 누워 있다. 붉은 담쟁이가 참나무를 친친 감고 놓아주지 않은 채 꼭대기까지 뻗어 있는 모양새가 볼썽사납다. 덩굴식물은 덩치 큰 나무를 타고 오르면서 무수한 뿌리를 나무 몸체에 박고는 수액을 빨아먹으며 한 그루를 통째로 점령해버렸다. 숲에는 그런 덩굴식물들이 있고 키 큰 나무들이 쓰러져서 썩어가는 게 보였다. 누군가 남의 인생을 쓰러뜨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남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남의 인생에 기대어 편하게 살거나 짐을 지우는 일들은 인간의 세상에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숲 속 덩치 큰 나무들이 쓰러져 누워 있으면 어김없이 그 안에는 개미 떼가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하거나 둥지를 꾸미고 있었다.
성국은 어머니 사랑을 못 받고 자라 결핍감이 있었다. 명숙은 부모의 과도한 사랑을 받기만 했지 나누어주는 데 서툴렀다. 명숙의 사랑을 갈구하던 성국은 명숙이 성숙한 관계로 성장하는 것을 못 기다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렸다. 성국과 헤어지고 살던 집을 전세주고 명숙은 그 집을 잊고 살았다. 남편 성국과 같이 신혼을 꾸민 집이었다. 십오 년을 살고 난 어느 날 남편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자가 돌아왔다며 그녀와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명숙은 남편의 표정에서 단호한 결의를 읽었고 다음날 성국의 짐을 쌌다. 성국과 함께 한 십오 년과 혼자 남아 살아온 십 년을 헤아리니 이십오 년의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버린 듯해서 명숙은 헛헛했다. 명숙에게 성국과의 시간은 인생의 정점이었고 그 후 혼자 남은 날들은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지나간 시간은 황무지였고 언덕위의 마른 바람이었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일회용 커피를 타마시고 명숙은 무얼 할까, 고심하다가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욕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몰골이 잠을 설쳐서 얼굴이 푸석거렸다. 명숙은 골목을 따라 성당을 향해 걸어간다. 성국과 함께 걸어 다닌 그 길이었다. 건물이 들어서기는 했으나 옛길은 남아 있었다. 골목 안에 기도원 간판이 두 개, 암자가 한 개, 무당집이 하나가 간판을 달고 있었다. 오층 빌라 건물 일층은 기둥만 세우고 주차장으로 금을 그어 놓았는데 그런 건물이 대여섯 동은 되었다. 골목 양켠으로 승용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되어 있어서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었다. 승용차가 오면 옆으로 멀찍이 비켜서서 기다렸다가 걸었다. 명숙은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성당 가는 길을 찾아 갔다. 옛 신작로는 폐쇄되어 주차장이 되어 있고 가드레인 옆으로 4차선 도로가 나 있다.
성당은 공사 중이다. 성당 마당 한 쪽 귀퉁이에 건축 자재가 쌓여 있고 성모동산을 새로 만드는 중이다. 성모상이 서 있던 자리는 예수 성심상이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고 성모 동산은 그 옆에 새로 꾸미고 있다. 예수 성심상 앞에 촛불을 봉헌하는 유리관이 있고 그 안에 색색의 촛불이 유리컵에서 흔들린다. 작은 초는 천 원, 큰 초는 이천 원이라고 씌어 있어서 이천 원을 유리관 밑 궤짝 틈새에 넣고 촛불을 켠다. 초에 불을 붙이며 누구를 위해 촛불을 봉헌할까 하다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냥 불을 붙이고 화단 앞 나무 의자에 주저앉는다. 단정한 옷으로 차려 입은 중년 부부가 성경책을 들고 마당에 들어선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부부가 계단 앞으로 다가오는데 낯이 익은 얼굴이다. 희끗거리는 머리카락, 감색 양복에 미소 짓는 얼굴, 부부모임을 같이 했던 성국의 친구 부부다. 명숙은 혹시 그들이 알아볼까봐 모자를 눌러 쓴다. 그 뒤에도 낯이 익은 부부를 만나며 긴 시간 신앙을 놓치지 않고 꼭 움켜쥐고 그 세월을 살아낸 그들이 놀랍기만 하다.
유리창이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는데 검은 수단을 입은 사제가 고해실로 들어가더니 고해실 벽에 전등불이 켜진다. 명숙은 고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언제 고백성사를 봤더라. 십 년, 이십 년… 그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하다. 명숙은 무엇부터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사제는 끈기 있게 기다려준다.
“제 인생이 실종되었습니다.”
“…….”
“남편이 떠날 때 붙잡지 않았습니다.”
“…….”
“제 안에 깊은 슬픔이 들어차서… 기쁨이 뭔지 잘 모릅니다. 남편을 원망하거나 분노하거나 하는 것보다 문제는… 제 과오 때문인가, 그런 자책감으로 괴롭습니다.”
“…….”
“제 잘못인가요?”
“…….”
“이 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에 대하여도 통회하오니 사하여 주십시오.”
“자매님은 잘못이 없습니다.”
그 말이 귀에 들어와 박힌다. 사제가 한참 말을 하는데 무슨 내용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명숙이 감정이 북받쳐서 감사합니다, 하고 일어서는데 사죄경赦罪經을 듣고 가셔야죠, 하는 고해신부神父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나며 도로 의자에 주저앉는다. 
치열하게 보낸 삼십대와 사십대, 그 시기를 뺀 명숙의 인생에서 남은 건 없었다. 추억도 기억도 모두 사라지고 늙어버린 몸과 위축된 마음만이 남아 있었다. 한 때 아들아이를 키우며 남자와 미래를 꿈꾸던 시간이 있었다. 돈을 벌어 집을 사고 자식을 가르치고 늙으면 예쁜 집을 지어 찾아오는 손주들을 맞이하고 요리를 하여 나누어 먹는 그런 꿈을 꾸었다. 남들처럼 그냥 그렇게 소박한 꿈을 꾸었다. 지나간 나날들을 함께 추억하고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명숙은 우울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에서 나오는데 머리를 뒤로 묶은 중년 여자가 아는 척 인사를 한다.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명숙은 낙담한 얼굴로 서 있는데 환한 미소를 짓던 여자는 현대 4차 아파트 구역장이라고 한다.   “아, 네에.”
명숙은 그제서야 그녀 얼굴에서 지나간 시절의 그림자 하나를 건져 올린다. 귓불이 유난히 복스럽게 생긴 여자였다. 구역장이 인사할 때 현대 4차 아파트 구역장이라고 현재진행형으로 인사해서 명숙은 그 부분을 곰곰 따져보는데 눈치를 챈 여자가 지금도 구역장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밝게 웃는다. 명숙이 따라 웃으며 아, 그랬군요, 하고는 그녀의 귓불을 다시 쳐다본다. 변함없이 도톰하고 길쭉하고 복스럽게 생겼다.
“지하식당에서 국수 드시고 가세요.”
구역장 여자가 명숙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잡아끈다.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점심을 혼자 먹어야 해서 못이기는 체 따라간다. 강당 규모의 지하식당은 사람들로 혼잡하다. 구역장 여자가 빈 의자를 찾아 명숙을 앉히고는 잔치국수 두 그릇을 갖고 온다. 4인용 식탁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놓여 있다. 명숙이 국수를 먹는데 구역장 여자가 힐끔거리며 살펴보더니 더 갖다 드릴까요, 한다. 명숙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충분하다고 말하고는 고개를 숙인 채 국물을 떠먹는다.
“점심식사 후에 시간 있으세요?”
명숙은 커피 한 잔 하자고 그러나 보다 싶어서 차 한 잔 사주려고 시간 있다고 대답한다.
“그럼, 저와 같이 잠깐 환자 방문 하는데 같이 가시죠.”
구역장 여자가 환하게 웃더니 명숙의 대답을 기다리기도 전에 결론을 내버린다. 명숙은 과거 그녀와 같이 환자 방문을 하고 기도를 해주고 하던 일들이 떠오르며 기억이 동강나지 않고 이어지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구역장 여자는 오랜만에 만난 이웃을 잊어버린 듯이 마치 예전에 함께 환자 방문을 다니던 시절로 착각한 듯하다.
“밖에서 기다릴 게요.”
명숙은 먼저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온다. 엷은 가을 햇살이 흰 건물 벽에 무늬를 그리며 일렁이는 정경이 눈이 부시다. 성당 마당에서 아득히 먼 거리에 다리가 보인다. 육지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는 안개에 싸인 듯 보였다가 멀어졌다가 해서 명숙은 눈을 끔벅거린다. 잿빛 갯벌이 드넓게 펼쳐진 채 가물거린다. 육지와 바다의 경계 어디쯤 보였다가 사라지는 다리처럼 명숙은 자신의 삶이 들려있는 듯해서 자꾸 눈을 비비며 앞바다를 바라본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 아니에요.”
구역장 여자가 쾌활한 목소리로 명숙 옆에 다가와 선다. 그녀에게서 생동감 넘치는 바람이 펄럭 넘어와 명숙의 몸을 휘감는다. 명숙은 구역장여자를 따라 성당을 나선다. 촘촘한 골목을 지나 차들이 달리는 도로를 건너 언덕으로 향하는 초입에서 구역장여자는 잠시 숨을 고르며 무릎이 아파서 걷는 것도 이제는 힘들다고 말하고는 다시 또 앞장서서 걸어간다. 언덕 양켠으로 공들여 지은 듯한 카페 건물과 한식당이 있고 넓은 잔디가 깔린 개인주택이 드물게 자리 잡고 있다. 명숙은 숨이 차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멀리 갯벌과 바다가 경계를 허문 채 은회색으로 펼쳐진 정경에 눈이 부셨다.
“힘드셨죠, 이제 다왔어요.”
구역장여자가 오층짜리 흰 건물 앞에 서서 환히 웃는다. 그 웃음이 밝아서 명숙은 따뜻한 안도감이 몰려온다. 입구에는 나무 푯말이 세워져 있고 ‘희망병원’이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 현관 전면에 커다란 글씨로 ‘희망병원’이라 암각된 간판을 쳐다보며 명숙은 구역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현관입구에서부터 소독약 냄새가 은은하게 떠다녔다. 복도 양켠으로 병실이 있고 가운데쯤 간호사실이 있다. 구역장여자가 간호사실을 향해 밝게 인사를 건네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환자 특유의 쿰쿰한 냄새가 훅 코를 찌른다. 구역장여자가 쾌활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그러고는 창가 쪽 침대로 다가가 선다. 명숙은 구역장여자 뒤에 멀찍이 서서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펴본다. 4인실 병상에는 말라서 거죽만 남은 남자들이 모로 누워 있고 링거 병이 달린 폴대가 각각 세워져 있다. 소리없이 떨어지는 링거액과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병실에 텔레비전소리만이 웅웅거렸다.
“마티아 씨, 몸은 좀 어떠세요.”
구역장여자의 말에 모로 누워 있던 남자가 천천히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표현을 한다. 명숙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 마티아. 분명 그 세례명은 아득한 기억 속 안개를 뚫고 순식간에 명숙의 귀에 와 꽂혔다. 명숙은 침대에 누운 남자 옆으로 몇 발짝 다가서서 살폈다. 그러나 옆으로 누워 있어서 구부정한 등허리와 가슴께를 덮은 푸른 담요만이 눈에 들어올 뿐 구별이 잘 가지 않았다.
명숙은 침대 끝에 걸린 남자의 신상 정보를 천천히 입속으로 되뇌어본다. 이름 김성식. 나이 57세…. 명숙은 이름과 남자를 번갈아 내려다보다가 그의 나팔꽃 같은 귀에 시선이 멈췄다. 오래 전, 한 남자를 가슴에 품었을 때 명숙은 유난히 큰 그의 귀를 만지며 나팔꽃 닮았다고 속삭인 적이 있었다. 귀가 작은 명숙은 때때로 남자의 큰 귀를 만지작거리며 꼭 반만 섞었으면 좋겠다고, 그녀의 귀와 바꾸자고 말하곤 했다. 명숙은 내복 위로 어깨선이 드러나는 남자의 비쩍 마른 얼굴과 몸집에 비해 귀만은 오므라지지 않고 동그랗게 핀 나팔꽃 같다고 생각했다.
구역장여자가 성수를 뿌린 후에 기도를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남자가 몸을 뒤척여 구역장 쪽으로 돌아누우려 애를 쓰는 동안 명숙은 뒤돌아서서 병실을 나와 버렸다. 열려 있는 복도 뒷문으로 나가자 돌을 쌓은 담이 가로막혀 있다. 담장 뒤로는 연두색 휀스가 둘러쳐져 있었다. 멀리 산중턱 칠부 능선쯤 전면이 유리창으로 된 저택이 보이고 저택 옆으로 암자의 5층석탑이 보였다. 풍경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명숙은 심호흡을 하고는 정신을 차린 다음 희망병원에서 나와 종종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오르막은 길고 멀었다. 그 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명숙은 길을 따라 걸었다. 숨이 턱에 닿을 즈음 휴게소가 보였다.
휴게소의 전면 유리문을 통해 멀리 갯벌이 보였고, 해안에 인접한 도시의 지붕들이 낮거나 길쭉하게 엎드려 있는 풍경은 멀리 있는 삶이 평탄해 보이듯이 평화로움이 감싸고 돌았다. 얼음 조각이 둥둥 뜨는 키위주스를 마시는데 목이 따끔거렸다. 차가운 것은 날카로운 법이다. 음료이건 사람이건 차가운 것은 날카롭게 몸을 찌르거나 베이게 한다. 예전의 그가 그랬다. 차가운 그의 표정은 명숙의 가슴을 날카로운 물체로 베듯이 지나가는 듯했고 가슴 깊숙이 통증을 가져다주었다.
휴게소 옆 전망대에는 멀리 이웃 도시의 경계와 해안선을 따라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오는 게 보였다. 산등성이에 세운 배 모형의 건축물도 눈에 들어왔다. 산자락 저택 유리창에 햇빛이 반사되어 출렁거렸다. 모든 것들이 그대로인데, 모든 것들이 제자리인데 명숙의 시간만이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어렵게 언덕을 오른 느낌이었다.
저녁밥을 굶고 쓰러지듯 곤하게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새벽 2시였다. 눈을 감고 다시 잠들려고 해도 낮의 장면이 자꾸 시야를 어지럽혔다. 명숙은 일어나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차가운 바람을 들이마셨다. 밤새가 울었다. 배가 고픈지 속이 헛헛했다. 창문을 닫고 명숙은 사과를 껍질째 베어 먹었다. 사과껍질을 오래오래 씹어 먹었더니 턱이 아팠다. 하루종일 식당일을 할 적에는 자리에 눕기가 무섭게 잠이 들었는데 일손을 놓았더니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일을 안하는 만큼 손가락과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도졌다. 몸도 바쁜 것을 아는지 일할 때는 심각하게 아픈 줄을 모르다가 일을 안하는 순간부터 삐걱거렸다. 여기저기 온 몸이 쑤셔댔다.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무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재봉질을 배우려니 시력이 문제였고 목공예를 하려니 기력이 딸렸다.
동이 틀 무렵 명숙은 다시 이불 속에 누웠다. 머리가 아파서 잠을 좀 더 자둬야 할 것 같았다. 눈을 붙이려는데 병실에서 본 그의 몰골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명숙은 다시 일어나 커피를 끓여 마시고 외출 채비를 한다.
희망병원 병실 문은 열려 있고 환자들이 아침 식사를 하느라 수저 소리가 들렸다. 명숙은 복도에 서서 식시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열린 문으로 김성식을 쳐다보는데 그는 입맛이 없는지 몇 수저 뜨다가 숟가락을 놓고는 밥그릇과 반찬그릇 뚜껑을 닫는다.
“안녕하세요, 기도해드려도 될까요?”
김성식은 명숙을 힐끗 쳐다보더니 드러누워 버렸다. 다시 한 번 명숙이 침대 가까이 다가서서 말을 걸지만 김성식은 유리창 쪽으로 돌아누워버렸다. 명숙은 순간 그 자리에 자신이 서 있는 이유를 잊어버렸다. 여기까지 왜 왔는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만난 적이 있는 듯한 남자였다. 혹시, 우리 전에 만난 적이 있던가요? 명숙은 그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눌러 참았다. 김성식은 같은 자세로 누워 명숙을 쳐다보지 않았다. 한 시간 째 마네킨처럼 그러고 있다.
어느 순간 김성식이 눈을 뜬다. 미동도 안하고 그의 침대 옆 보호자 의자에 앉아 있던 명숙과 김성식의 눈이 마주친다. 김성식의 눈동자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며 입술을 움직여 뭔가 말을 하지만 명숙의 귀에 들리지 않는다. 명숙이 김성식의 얼굴 가까이 자신의 귀를 바짝 대고는 귀를 기울인다.
“당신, 누구요. 불편하니 꺼져요.”
김성식의 입에서 나온 그 말 한 마디. 명숙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오래 전 남자가 명숙을 떠날 때 했던 말, 당신이 불편하다던 그 말이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 누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한때는 서로에게 탐닉하며 좋은 시절을 보낸 날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두 사람 사이가 나빴던 건 아니었다. 열정적으로 만났고 함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주기로 약속하며 미래를 꿈꾸기도 했었다. 멀리 언덕 너머의 세상처럼 그들이 함께 이루고 꿈꾸었던 목표가 상실되며 방황할 때 조차도 명숙은 한순간일 거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상에는 예견치 못한 일들이 종종 일어난다. 먹고살만해지니까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싶었던 걸까. 술을 못하는 사람이 간암에 걸렸다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폐암에 걸렸다는 일들이 세상 한 귀퉁이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제가 방해했나요.”
명숙은 김성식의 말투에서 분노의 흔적을 읽어낸다. 명숙은 조용히 일어나 병실을 나왔다. 혼란스러운 기억이 명숙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명숙은 정신없이 걸어 숲의 초입에 당도해서 뒤를 돌아다본다. 도시의 지붕과 건물들이 뒤죽박죽 뒤엉킨 채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풍경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숲 속으로 난 길에는 입구에서부터 데크가 깔려 있다. 평탄한 오르막인 데크 길을 걸으며 삶도 이렇게 평탄한 오르막이었다면 한 번 살아볼 만 했을 텐데, 김성식이든 어떤 인간이든 붙들고 덩굴식물처럼 한 세상 뒤엉켜 살았을 텐데, 지나간 시간은 어디로 갔나, 명숙은 나무의자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어두워지는 숲속에 명숙의 울음만이 스산한 바람소리에 섞여 허공에 흩어진다. 실컷 울고난 명숙이 울음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달이 떠오른다. 어디선가 베사메무초 음악이 들려온다. 나뭇가지가 심하게 떨고 있다. 명숙은 속으로 베사메무초 음률을 따라 부른다. 돌아보면 아무것도 아닌, 소소한 일상의 반복인 세월이었다. 그냥 노래 한 소절 부르면 될 그런 나날이었다.  





*유시연 2003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소설 『알래스카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오후 4시의 기억』, 『달의 호수』. 장편소설 『부용꽃 여름』, 『바우덕이전』, 『공녀 난아』. 에세이 공저 『꽃 진 자리에 어버이 사랑』 등. 정선아리랑문학상, 현진건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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