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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5호/산문/우성희/어머니의 꿈


우성희


어머니의 꿈



외출에서 돌아온 어머니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뭔가 아쉬움이 잔뜩 묻어있는  힘없는 얼굴이었다.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으셨어요?”
미심쩍어 묻는 나에게 어머니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대신 내손을 잡았다.


1923년 경북 문경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는 22살 때 해방과 함께 실시된 공개 채용시험에 응시하여 경찰공무원이 되셨다. 신장 167cm의 어머니는 제복이 잘 어울리는 멋진 여순경이었으리라. 길을 걸어가다가도 당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은 따라잡아야 직성이 풀린다고 예기할 정도로 경쟁심과 성취욕이 높았던 어머니는 분명 훌륭한 여경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키가 크고 대장부다운 풍모였던 외조부는 첫딸인 어머니에게 정을 많이 주셨단다. 어머니는 가끔 해방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하여 그리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이야기하곤 하셨다.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장에 나갈 때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단다.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150cm를 밑도는 작은 키였는데도 외삼촌과 어머니의 키가 큰 것은 한 번도 뵙지 못한 그분, 외조부의 덕이리라 생각된다.


나의 아버지도 160을 겨우 넘기는 단신이셨다. 연미복차림에 작달막한 아버지와 키를 맞추기 위해 엉거주춤한 웨딩드레스 차림의 어머니의 결혼식 사진은 좋았던 시절의 두 분을 보여준다. 일본에서 공부하고 오셔서 광산소장으로 잘나가던 아버지와 장래를 촉망받는 경찰 공무원의 결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실업자가 되셨고 나를 낳고도 경찰생활을 이어가던 어머니도 경찰이었던 탓에, 전쟁 중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옷을 벗었다.


피난지 대전의 집은 앞의 넓은 채마밭과 뒷마당에 닭장이 있어 두 분은 해보지도 않던 양계와 채소농사로 생계를 이어갔다. 그 와중에서도 어머니는 자식들 교육에 열성이셨다. 감기중의 아이를 업어서라도 등교시키고,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구구단을 못 외운다고 한겨울 밤중에 홀딱 벗겨 방밖으로 내몰곤 할 정도였다. 뚜렷한 직업이 없었던 두 분은 최대한 절약하며 사셨겠지만 재산은 조금씩 축이나 서울로 귀경하였을 때는 집을 장만할 처지도 못되었다.


수복된 서울로 돌아온 아버지는 어느 초자공장에 전무로 취업하셨지만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학비며 먹성에 생활형편은 호전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그 공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퇴직하고 말았다. 시대의 격랑에 휘둘리며 생활에 의욕을 잃으신 아버지대신 생활의 책임은 어머니에게 돌아가 경험도 없는 분식집을 차리고 그것이 우리식구의 호구지책이 되었다. 여장부 타입의 어머니는 주방과 홀을 오가며 분주하셨고 아버지는 국수틀을 책임지셨다.


요즈음에도 음식장사는 어렵다. 소문난 대형음식점이 떼돈을 버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음식점들은 생활을 영위하기에도 바쁘고 그나마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것도 자주 본다. 그 시절이라고 다르랴! 경험도 없고 자본도 없는 우리집은 온 식구가 매달려 인건비를 절약하여 남는 돈으로 생활하는 정도였다.


격동의 시절을 앨리트로 살아 오셨던 아버지는 국수가닥을 뽑아내며 지쳐가셨고 음식을 만드는 틈틈이 배달일도 마다않던 어머니의 고충은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생활고에 일찍 철이든 나는 초등학생 몇 명 모아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솜 공장에 물 길어다주는 일로 어머니의 힘을 덜어드리려 애썼지만 자라나는 자식들 뒷바라지 걱정에 두 분의 고뇌는 깊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외출을 하셨다. 가게를 연 후 좀처럼 쉬지 않던 어머니가 성장을 하고 외출을 한 것이다. 그리고 다 저녁에 힘없는 표정으로 돌아오셨다. 저녁상을 물린 후, 지나가는 말처럼 어머니는 말하셨다. 그 옛날의 여경 동기들 몇몇이 연락이 되어 만났는데 그중 한명이 시집도 안가고 계속 근무하여 꽤 고위직에 올랐단다. 당신은 경찰 생활이 적성에도 맞았고 계속 근무했으면 친구 못지않게 출세했을 텐데 전쟁이 원수라고 푸념삼아 말하셨다.


자존심 강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된다. 지금의 당신 처지와 비교해보니 옷을 벗은 것이 못내 아쉬운 기분도 드셨으리라. 처량 맞은 기분도 드셨으리라. 그러나 어머니는 다음날부터 다시 씩씩한 분식집 주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성공한 자식들의 미래를 꿈꾸는 어머니로 돌아와 있었다.





*우성희 2013년 《한국산문》으로 등단. 수필집 『내 인생의 작은 뜨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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