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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5호/서평/정치산/남해, 푸른 언어를 낚아 시로 밥을 짓다


정치산


남해, 푸른 언어를 낚아 시로 밥을 짓다
―김현근 시집 『백일홍, 꿈을 꾸다』를 읽고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을 되도록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시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고 경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수많은 도시들, 사람들 그리고 사물들을 보아야 하고, 동물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고, 새들이 어떻게 나는지 느껴야 하며 작은 꽃들이 아침에 피어날 때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 시인은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하고, 알지 못하는 길, 예기치 않았던 만남과 오랫동안 다가오는 것을 지켜본 이별’ 등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것을 경험한 것들이 추억으로 남지만 ‘추억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추억이 많으면 그것을 잊을 수도 있어야 하고 다시 그 추억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큰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고 하며 ‘추억 그 차체로만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추억이 우리들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시선과 몸짓이 되고, 이름도 없이 우리들 자신과 구별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몹시 드문 시간에 시의 첫 마디가 그 추억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릴케는 『말테의 수기』에서 말한다.
김현근 시인의 시집 『백일홍, 꿈을 꾸다』를 읽으며 시는 감정이 아니라 경험이라고 한 릴케의 말을 되새기게 된다. 김현근 시인의 고향은 남해이다. 그의 시편에는 남해에 대한 사랑과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남해 곳곳의 지명이 자주 등장한다. 시인이 태어나고 살아온 남해에 대한 사랑이 녹아난 여러 시편 중 몇 편을 추려 읽어 보기로 한다. 제일 먼저 「내 어머니 윤노리 나무」를 살펴보기로 한다.


물미도로가 시작되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독일촌 바닷가
몽돌마을에 사는 윤노리 나무는
젖은 바람을 어깨에 메고
늙은 외발로 숲을 짚고 있다
옹이진 말들을 검버섯처럼 껴안고 있다
눈을 감고
와락 상처 안으로 들어가 보면
콩대며 깨대며 보릿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말소리 울음소리 땀냄새 피냄새가 얼크러져 있다
윤씨네의 반평생 속내
도리깨질하는 저! 윤노리 나무의 팔들이며
한때는 쇠코뚜레로 살았던
응어리가, 이제는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문득 恨 밖의 세계를 본다
매질도 쇠코뚜레도 필요 없는


―『내 어머니 윤노리 나무-천연기념물, 물건 숲에서』 전문


시인은 남해군 생태계의 보고 물건방조어부림에 있는 윤노리 나무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한다. 고기들이 숲 그늘을 찾아오기 때문에 고기를 불러들이는 숲이라는 뜻을 가진 어부림의 수많은 나무들 중에서 하필이면 윤노리 나무에서 어머니를 발견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니 ‘윤씨네의 반평생 속내’라고 표현한 구절로 미루어 어머니의 성이 윤씨 라는 것과 상처 나고 옹이진 윤노리 나무를 보며 어머니의 모습이 시인에게 와 닿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고기들을 불러들여 먹을거리 걱정 없이 살게 해주는 물건숲에서 윤노리 나무의 형상을 보며 ‘젖은 바람을 어깨에 메고/늙은 외발로 숲을 짚고’ ‘옹이진 말들을 검버섯처럼 껴안고 있’으며 ‘한때는 쇠코뚜레로 살았던’ ‘이제는 닳아서 반들반들해진 한’을 가진 어머니를 발견한다. 평생을 집안일에, 자식 일에 쉴 틈 없이 일하다가 이제는 팔이고 다리고 모두 망가져 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윤노리 나무에서 보았던 것이다. 무심히 지나쳐 버릴 수 있는 그 숲에서 먹을 것 걱정 없이 살라고 애쓰던 어머니의 모습을 고기들을 불러들여 사람들의 먹을거리를 해결해 준 물건숲을 보며 더 생각하게 되고 그리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풍성한 숲에서 옹이 지고 상처 입고 서 있는 윤노리 나무가 어머니 같아 더 마음이 갔을 것이리라 여겨진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림움을 간직한 시인의 섬세한 감성을 느끼며 아버지에 대한 그림움을 투영한 「남해 지겟길」이라는 시편도 살펴 보기로 한다.


평산항 콧등 올라서니
누군가 한 짐 부려놓은 바다가 달려옵니다
보란 듯이 두루마리처럼 해안선을 펼쳐 보입니다
유구마을 앞, 섬 하나 가슴을 드러내자
동행했던 황톳길도 헉헉거리며 붉은 숨을 몰아쉽니다
뭍으로 오르고 싶어 섬은 얼마나 울었을까요
아버지의 무거운 지게처럼
생의 등짐을 내려놓고 싶은 날 있었을 것입니다
나도 섬이었을 때
달빛으로 편지를 쓰고 비구름에 섞여 울었던 날 있습니다
어떤 인생도 빗방울 하나, 파도 한 소절이 문제입니다
저 작은 섬도 응어리로 쓴 일기책 한 권쯤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 지겟길을 발바닥으로 읽습니다


―「남해 지겟길」 전문


「남해 지겟길」에서는 시인이 섬이라는 곳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 애썼던 것을 느낄 수 있다. ‘뭍으로 오르고 싶어 얼마나 울었을까요’라는 행에서는 시인의 마음이 엉기어 나오고 그 끝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달려 나온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할 때 서울로 가려고 무진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으며 몸도 마음도 지쳐갔던 시절의 서울살이가 문뜩 떠오른 시였다. 김현근 시인이 ‘달빛으로 편지를 쓰고 비구름에 섞여 울었던 날’처럼 상처 받고 혼자가 되어 음악다방의 한 귀퉁이 어둠 속에 웅크려 마음을 다독이던 시절이다. 김현근 시인이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마다 지겟길을 발바닥으로 읽었던 것처럼 청량리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을지로, 청계천으로 걸으며 서울 지리를 발바닥으로 읽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시다. 그리움으로 끝내 다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되는데도 그때는 그런 걸 깨닫지 못하고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했다. 시인은 벗어나려고 했던 그곳에 계속 살고 있으며 그곳의 곳곳을 다니며 시로 밥을 짓고 있다. 그중에 「남해바래길」을 살펴보면 시인은 자신의 시 세계로 남해를 끌고 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가인마을 뒷산
고사리가 지천이다
볕을 움켜 쥔 주먹손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사리밭을 빠져나와
녹색길을 따라간다


한나절 걷기 좋은 산책길
꼬막 멍게 속살 같은 달달한 이야기가 익어간다
한낮 햇발에
은빛 복근을 번뜩이는 적량 고두 가인
언포 바닷길, 복근의 힘줄로 튕겨낼 갈매기들
어디선가 들리는 공룡울음에
황급히 바다를 몰고 날아오른다


바닷가 갯바위에 찍힌 공룡 발자국
아이들과 거대한 발자국을 신고
고생대 중생대를 걸어 들어간다


중생대 쥐라기 공원에서 놓아먹이던
시조새를 찾아 날개를 퍼덕이는 길,


공룡 한 마리 뒤를 따라온다


―「남해바래길」 전문


남해 지겟길에서의 기억을 뒤로하고 시인이 창선면 면장으로 근무했던 남해바래길로 향한다. 남해바래길은 바래길 제7코스로 적량리에서 가인리, 고두리, 언포리 등을 거치는 코스라고 한다. 시인은 볕을 웅켜 쥔 가인마을 뒷산 고사리밭을 지나 언포 바닷길로 산책길을 나선다. 이 산책길에서 만난 공룡화석지에서 시인은 공룡이 살던 세계로 들어간다. ‘공룡의 울음소리가 바다를 물고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아이들과 거대한 발자국을 신고 고생대 중생대를 걸어 들어’가서 ‘시조새를 찾아 날개를 퍼덕이는 길’로 향한다. 시인은 릴케가 말한 ‘자신과 구별되지 않는 것이 되는 그때 비로소 시 한 줄의 첫 마디가 추억 속에서 걸어 나오는’ 것처럼 현재도 과거도 아닌 시인의 상상 속에서 머물고 있다. ‘남해는 시인이 존재하는 현재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시로 밥을 짓듯 시인의 상상 속에서 상상의 기지개를 켜는 시인만의 공간이라 여겨진다.
시인은 그 상상의 공간을 벗어나 현실에서는 세상에 휘둘리고 상처받을 때마다 앵강만에 와서 젖은 슬픔을 말리고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는 것 같다. 그러한 면면을 「앵무새가 사는 바다」에서 느낄 수 있다.


용소 지나
오페라하우스 모퉁이 돌아내리면
어머니 젖줄처럼 출렁이는
앵강만
청남색 날개 수평선에 올려놓고
흥얼거리는 배 한 척 가슴에다 붙여 놓고
깃 세운 물결로 오르간을 두드리네
가끔 내 마음도 요동칠 때 있네
찰싹 거릴 때 있네
쩡 쩡 금 간 속바다에
닻 내려보고 돛 올려보아도
음표 하나 바다 깊이 내리지 못할 때 있네
푸드덕, 갯바위 청솔가지로 젖은 물기 털어내지 못한 날
아이처럼 울고 싶어
아이처럼 웃는 앵강만을 찾을 때 있네
수면 위를 조잘대는 햇빛 달빛
해면을 걷는, 바람 바람 바람
무리 지어 일가를 창립하는 모래소리 몽돌소리
구른 횟수만큼 둥글어지는 소리
나도 둥글어지며 조잘대며 젖은 슬픔 말릴 때 있네
청솔가지 붙잡은 갯바위에서
앵무새 한 마리 푸른 깃털 말리고 있네


―「앵무새가 사는 바다」 전문


앵강만은 비가 오는 밤이면 꾀꼬리 소리가 많이 나서 앵무새 앵 자를 붙였다는 앵강만을 시인은 마음이 요동칠 때나 찰쌀 거릴 때, 금 간 바다에 닻을 내려 보고 돛을 올려보아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 찾아간다. ‘아이처럼 울고 싶어/아이처럼 웃는 앵강만을 찾을 때 있네/수면 위를 조잘대는 햇빛 달빛/해면을 걷는, 바람’을 보고 ‘아이처럼 울고’ 나면 시인의 ‘젖은 슬픔도 말’라가고 ‘구른 횟수만큼 둥글어지는’ 앵강만 몽돌처럼 모난 마음도 ‘둥글어지며 조잘대며 젖은 슬픔을 말’릴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앵무새 같은 앵강만에 슬픔을 널어놓고 모나고 거칠었던 지난 시간을 수십 번 구르면서 둥글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몽돌처럼 둥글게 다듬어진 시인은 ‘무리지어 일가를 창립하는 모래소리 몽돌소리로’일어나 힘차게 날아오를 푸른 깃털도 다듬으며 때를 기다릴 것이다. 시로 지은 밥이 허기지지 않고 풍성해지도록 신의 음식이 되는 그날이 될 때까지 열심히 시를 건져 올릴 것이다.


나는 하루 한 편, 하루 한 끼의 시를 먹네
눈으로 먹고 입으로 먹고 귀로 먹기도 한다네
하지만 소화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네


새들은 지느러미를 달고
물고기는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신비한 상상의 나라
돌멩이가 생각을 하고 사람은 신이 되기도 한다네
시를 먹으며 누구나 신이 된다네
시는 신의 음식이라네


내가 지은 조촐한 밥상
아직 신이 되지 못한 나는
한 달에 한 권의 식사를 한다네
그래서 늘 허기가 진다네


―「시로 지은 밥」 전문


시인은 결국 시로 지은 밥이 신의 음식이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은 조촐하고 허기진 밥상이지만 그래서 ‘하루에 한 편, 하루에 한 끼는 시를 먹’는다. ‘눈으로, 입으로, 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통하여 시를 먹지만 소화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먹고 소화해서 시로 지은 밥을 상에 올린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처럼, ‘산울림’의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처럼 새들에게 지느러미를 달아주고 물고기에게는 날개를 달고 돌멩이가 생각하고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의 나라를 만든다. 그래서 시를 먹으면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꾼다. 시가 밥이 되지 않는 세상에 시로 밥을 짓는 시인은 늘 허기진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가 써지지 않아서 늘 허전하고 아쉽다. 그래도 끊임없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시가 밥이 될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김현근 시인은 열심히 발로 읽은 시들에 상상을 얹어 멋진 시들을 써 내려 갈 것이다. ‘한 줄의 시를 쓰기 위해서 많은 도시를 보지 않으면 안 되고 하늘을 나는 새의 날개를 느껴야 하고, 아침에 피어나는 작은 꽃들의 몸짓을 알아야 한다.’는 릴케의 말처럼 김현근 시인은 남해 지겟길에서처럼 발바닥으로 읽은 길들과 앵강만에서 보았던 앵무새의 몸짓과 나무와 꽃들의 몸짓을 느끼고 걸으며 멋진 시어들을 건져 올려 시로 지은 풍성한 밥상을 차려 놓으리라 기대해 본다.





*정치산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바람난 치악산』. 강원문학 작가상,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원주문학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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