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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5호/기획탐방/우중화/그렇게 떠나 최고의 순간을 만나다


우중화


그렇게 떠나 최고의 순간을 만나다



이효석, 시인으로 만나다


동해, 라는 말만 들어도 푸르러지는 듯하다. 직접 몸을 담구지 않아도 마음은 어느새 짙은 블루색채로 물이 든다. 이른 봄날에 우리는 동해로 떠났다. 명색은 문학기행이지만 조금 더 일찍 봄을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만남의 장소로 선택한 곳은 평창 이효석문학관이었다. 한 때 문학소녀였다면 한 번쯤 읽거나 들어봤을 『메밀꽃 필 무렵』의 저자 이효석의 생가와 그의 일생을 모아놓은 문학관이다.
이곳은 이효석문학관과 효석달빛공원 두 가지 코스로 나뉘는데 우리는 먼저 이효석문학관을 들리기로 했다. 그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학창시절 결혼 취업까지 볼 수 있고 그 후의 작품 활동까지 자세히 알 수 있으며 영면에 들기까지의 한 생애를 고스란히 볼 수가 있었다. 전시실은 10여 개의 주제 구역으로 구분되어, 이효석의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들여다 볼 수가 있다.
사실 가산 이효석은 단편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는 소설뿐만이 아니라 시, 수필, 평론, 번역 등 다양한 글을 남겼다. 특히나 소설 속에 드러나는 그의 시적 서정을 안겨주는 한 줄 한 줄의 문장들은 오래도록 마음에 와 닿는다.
1907년에서 태어나 35세라는 이른 나이에 작고하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여전히 마음을 울리는 한국인의 감수성과 시인의 서정이 넘쳐난다. 나는 그를 이미 소설로 통해 만났지만 이제는 시인으로 새로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의 속에 나타난 시적 문장들을 몇 개 옮겨 적어본다. 지면의 여백을 통해 그의 문학의 향기를 다시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븟이 흘리고 있다...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왼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꽃다지, 질경이, 민들레……
가지가지 풋나물을 뜯어 먹으면
몸이 초록으로 물들 것 같다.
물들어야 될 것 같다.
물들어야 옳을 것 같다.
물들이 않음이 거짓말이다.
물들이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단편소설 「들」에서


나는 필연코 울 것이오. 자칫하다가는 어린애같이 엉엉 울 것이오. 이 큰 어린아이를 달래어 줄 어머니는 세상에 없을 법하오. 사랑은 만족을 모르는 바닷속과도 같다 할까. 가령 나는 진달래꽃을 잘강잘강 씹듯이 그대를 먹어 버린다고 하여도 오히려 차지 못할 것이며, 사랑은 안타깝고 슬픈 것-아름다우니까 슬픈 것-슬프리만치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우는 것은 그 아름다운 정을 못 잊어서지요.


                            ―이효석 산문 「사랑하는 까닭에」에서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가제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깨금 냄새가 난다.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이효석 그의 문학을 충분히 감상했다면 이제 메밀이 담긴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 이효석 문학관에서 약 500미터 정도 걸어가면 TV에 많이 나온 맛집으로 유명한 <메밀꽃 향기>가 있다. 그날도 MBN <생생정보통신>에서 나와 그 집을 촬영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우리도 PD의 인터뷰와 함께 TV에 나오는 행운도 얻으며 메밀에 대한 얘기를 더 자세히 들을 수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보통 메밀 품종과 다른 ‘쓴메밀’을 쓴다고 한다. “찰기가 없어 툭툭 끊어지는 보통 메밀과 달리 쓴메밀은 점성이 좋아서 면을 만들기도 수월하고 씹을수록 구수한 맛이 난다”고 했다. 쓴메밀은 블랙메밀, 타타리메밀이라 불리우는데, 일반메밀에 비해 루틴함량이 월등하게 높아서 건강해도 좋고 몸에 좋은 음식이라 찾는다고 한다. 쓴메밀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수증기로 삶아서 쓴맛을 제거하기에 쓴맛은 나지 않는다.
이외에도 통메밀을 멧돌로 갈아서 만든 순메밀묵사발, 강원도의 대표음식인 감자로 만든 감자만두, 다른 가게와는 차별화되게 타타리 메밀을 이용해 평창의 고랭지배추로 직접 담근 김치와 두부, 각종 야채를 넣어 매콤하니 맛이 좋았던 메밀전병등 메밀로 만든 음식들과 강원도 전통 음식맛을 배부르게 담고 올 수 있었다. 메밀꽃 피는 계절이 아니라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메밀의 알싸한 맛은 계속해서 남아있을 듯하다.


하늘문, 그곳을 오르다

함께하는 여행 속에서 우리는 가끔 개인적으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에 맞닿을 때가 있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인가? 그 미지의 시간 속 순간순간이 우리를 아주 색다른 체험을 하게하곤 한다. 평탄한 오솔길을 걸을 때만해도 우리는 전혀 알지 못했다. 강원도 동해 두타산으로 향했다.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으로 두타산 무릉계곡에 들어서려면 삼화사를 거쳐 쌍폭포와 용추폭포를 감상한 뒤 ‘하늘문’을 돌아 원점회귀하려면 관음사를 지나쳐야 한다고 한다. 천 년 전부터 세속을 벗어나기 위해 승려들의 수행의 발자취가 결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하늘문’을 들어가기가 그렇게 녹녹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올라가는 길에 조선시대 풍월객들의 지적유회 장소였던 1천500평의 무릉반석은 보기만 해도 감탄사를 자아냈고 후세에 살고 있는 나도 왠지 그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계곡을 따라 걷다보니 운치를 돋는 큰 바위틈 사이로 흐르는 내밀한 숨결을 내보이는 선녀탕이 보인다. 시원하게 몸이라도 한번 담아 보고 싶은 선녀탕을 아쉽게 뒤로하고 우리는 쌍폭포와 용추폭포의 멋진 풍광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여기서 돌아섰어야했다. 나의 수행은 여기까지여야 했다. 충분히 속세의 번뇌를 내려놓았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의연하게 돌아서야 했다. 그러나 ‘하늘문’이라니, 이것의 유혹을 놓칠 수가 없었다. 지명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왠지 그곳을 보면 좀 더 하늘 아래 가까이 수행된 자의 모습을 지니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실 시발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미리 준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함께한 여행객들의 호기심 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하니 하는 긍정의 마음 반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절반은 뒤돌아가는 길로 절반은 ‘하늘문’을 향했다.
하늘문 입구에서 너비 1미터 가량, 경사각 70도의 철제 계단을 보는 순간 잘못 선택했구나 하는 미리부터 염려가 들기 시작했다. 양손으로 철제 난간을 꽉 잡고 떨리는 발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기 시작하며 급격히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늘문’에서 오르는 하늘재 코스는 278개의 층층대가 여섯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늘로 향해 거대한 문이 열려있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조물주가 만든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는 결코 그러한 형상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지상과 하늘을 이어주는 사각형의 문이다.
첫 구간 150여 개의 층층 철제 계단은 바로 뒤로 넘어갈 듯 아찔했다. 진퇴양난이란 이럴 때 쓰이는 거구나. 다시 원점으로도 앞으로도 더 전진하기 두려워지는 마음일 때 서로는 말을 잃었다. 그저 조심조심 앞을 살피며 걸을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구간 60개의 층계를 오른다. 어떠한 장비도 없다. 그저 서로의 손을, 눈빛을 의지하며 천천히 걸을 뿐이다. 해발 1350미터 두타산 9부 능선에서 관음사까지 산허리를 돌아가는 길, 그 길은 세속의 모든 번민을 버리고 결국은 하늘로 가는 길이었다. 그러한 최고의 풍광을 언제 다시 경험할 수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생의 여행을 한다. 순간순간 내가 선택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때도 있다. 나만의 여행도 있지만 함께 해야 하는 여행의 목적도 길도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서로의 손을 잡고 떠난 하룻길, 서로의 손을 잡고 마감을 한다. 물론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각자 나눠지기도 한다. 조금은 덜 어려운 길, 조금은 내 취향대로 우회적으로 돌려 걸어가 보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지 못한 길 내가 몰랐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듯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누군가가 인도하는 알 수 없는 시간과 공간속으로 함께 떠나보는 건 어떨까. 물론 어렵고 아프고 힘들기도 하고 후회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떠나보지 않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생은 누군가의 손 하나는 잡고 걸어가는 길, 잡은 손 사이사이로 남은 생생한 또 하나의 흔적, 그 떠나는 길속에 그대이기를 또 우리이기를 오로지 나이기를 다시 설렘으로 기대하며 바래본다.





*우중화 2019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주문을 푸는 여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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