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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6호/특집2 오늘의 시인/박경순/국수 외 2편


박경순


│자선 대표시│


국수



‘국수’ 하고 말하면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국수 한 그릇
국물 한 사발
밥보다 많이 먹던
시절


아!
아버지


국수를 덜어주려면
그릇과 그릇을
붙여야 한다


온기를
그대에 나눠주듯
어깨를 바싹 붙여야 한다


내 어린 시절
한 끼 식사로
허기진 가슴
넉넉히 채워 주었던
국수
한 그릇


그리고






9월, 후포 밤바다에서 가을을 만나다



가을은 소리로 다가왔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그리움을 울컥 울컥
토해내는 후포바다는
여전히 여름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소나무 숲과
길을 잃은 검은 개 한 마리와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갈매기와
노을을 잊은 후포바다는
등기산 아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다 너머
고기를 잡으러 간
내 아버지와
내 아버지의 아버지는
대게 몇 마리 가슴에 품고
오실런지
녹등, 홍등 등대는
걱정스레 반짝거리고


집을 너무 멀리 떠나온
사람들은
9월, 후포바다에서
먼저 온 가을과 함께
나와,
나를 떠나간 사람과
보랏빛 여름 햇살을
그리고 있다





그대에게



하루가 다르게
부쩍부쩍 커지는 산을 본다


새벽
푸른 안개에 갇혀
차마 사랑한다 말도
제대로 못한 갑갑함을
풀어 놓는다


산을 지키는 것은
크고 잘 생긴 나무가 아니란 것을
그대는 아는가


튼실한 나무는
일찍 잘리어 어느 집 서까래로
잊혀져가고


산을 푸르게 지키는 것은
휘어지고 못생긴 나무란 것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늘 부족함으로 가슴 아파하는
작은 그대란 것을





│신작시│


메시지



자동차 유리창에
은행잎 하나


가을이 나에게
편지 한 장
보냈나 보다


올 한해 잘 있다 간다고
내년에 다시 오마
아쉬움이
잔뜩
담겨 있다





새벽길



언제나
내 길은 좌회전이다


나는 늘 멈춰서
어디로 가야할지
정해야 한다


아직
오지 않은 아침과
그대에게 붙이지 못한
편지를 만지작거리며
우체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입동 새벽길
아직
갈 길은 먼데


망설이는 당신의 손
아무도 모르게
지긋이 잡아주고 싶다
저 신호등
바뀌기 전에





7번 국도



당신을 만나러
7번 국도를 타고 갑니다


7번 국도 하면
나는 늘 설레입니다


7번 국도
그 끝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그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울진 망향 2터널 지나
만나는 바다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고
화살나무가 자라고
구절초가 피고
발목까지 눈이 쌓이더라도


그대를 가슴에 품듯
오늘도 7번 국도를
달려 갑니다





│시론│


내 삶에 있어서의 버팀목이 되어준 ‘詩’의 위안



작가는 작품 속에서 가치를 형성하고 창조하지만, 이러한 가치를 발견하고 음미하고 깨닫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 된다. 나는 작가도 되지만 때로는 더 지독한 독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곤 한다. 나에게 있어서의 詩는 위안이다. 이십대에 나를 지켜준 것도 詩였다. 詩는 삶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독자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서 ‘카타르시스’라는 무척 중요한 개념을 창시하였다. 플라톤은 문학이 이성적 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온당치 않는 감정을 터트리도록 자극을 준다는 이유로 ‘문학해독론’을 전개하였다. ‘카타르시스’나 ‘문학해독론’이나 다 독자 심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詩는 이러한 의미에게 다른 문학 장르보다 나에게 더욱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문학, 특히 詩에 대한 갈망은 매우 컸다. ‘詩作業’이라는 여성으로 이루어진 동인지를 결성하면서 詩에 갈망을 하나씩 하나씩 차분하게 채워나갔다. 매주 월요일마다 시론을 공부하면서 시창작에 몰입하였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로 사람을 소재로 하는 일체의 작업은 사회학적 의의를 가질 수도 있다. 시인의 상상력의 소산인 허구를 사회양상과 결합하여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회를 그대로 반영할 수도 있고 시적 장치인 ‘낯설게 하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내가 ‘해양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회적 존재로서 구별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생활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매일 대하는 바다와 안개는 그래서 나의 詩 속에 ‘소재’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특히 세 번째 시집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은 경비함정에서 근무한 1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출항’이라는 연작시 28편은 풍랑주의보가 내린 성난 바다와 한낮 유리처럼 잔잔한 바다, 또 그 바다 위 경비함정에서 생활하는 직원들의 힘들고 어려운 삶이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상상하는 낭만의 바다가 아닌 작가가 직접 경험한 사회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낯설게 하기’ 장치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한 번 읽음으로써 독자는 그들의 삶을 영화를 보듯 느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나에게 단점이자 장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작품에 ‘따뜻함’이 담겨있으면 족하였다.


  네 번째 시집 ‘그 바다에 가면’도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근무지가 지방으로 바뀌면서 작품의 소재는 더욱 더 ‘바다’에 가까워졌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도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詩’였다. 태안, 평택, 동해, 그리고 울진에 이르기까지 바다는 내가 길을 나서면 만날 수 있는 장소였다. 여름이면 해수욕장 안전관리를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는 바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를 만나고 그리움을 만났다. 그리고 매일 내 자신과 싸우는 나를 만났다. 태안과 평택에서 만나는 바다는 늘 석양으로 물드는 이별의 장소였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 바다를 나는 그대로 글로 쓰기를 원했다. 매일 석양을 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간을 맞춰 노을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그러나 동해와 울진에서 만나는 바다는 늘 희망의 바다였다. 일출은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기에 충분했다. 매일 같이 가슴까지 물들이는 일출은 어려웠지만 나는 그래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바다를 만났다. 그리고 일출을 기다렸다. 기다림은 참으로 행복하다. 바다를 만나고 또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모래사장에서도 갯메꽃이 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것은 내가 사물에 대한 관찰의 깊이가 날로 달라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풍경을 찍는 것에 1년을 보냈다. 그것은 새로운 깨달음이었다. 일출은 정말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똑같은 아침은 없었다. 그리고 네 번째 시집 ‘그 바다에 가면’을 만났다.


  돌이켜보면 내가 독자가 되고 작가가 되는 일은 참으로 기쁜 일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문학이 세상을 구원하지는 않는다하더라도 적어도 나에게 문학은 구원이 되었다.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매주 월요일 ‘보라’ 찻집에서 시론을 공부하고 시품평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느꼈던 가슴 뭉클함은 지금 생각해도 참 따뜻하고 좋았다. 내가 여러 가지 시적 장치를 사용해서 굳이 ‘낯설게하기’를 하지 않더라도 내 시를 한 번 읽고 작가가 참 따뜻한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으면 좋겠다. 나의 시집 한 권에 단 한 편이라도 힘든 사람에게 작은 용기가 되어주었으면 더욱 좋겠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나의 따뜻한 시선이 정거장에 서있는 어떤 이에게 어쩜 빛처럼 순간 느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문득 가슴이 시리도록 추운 겨울 새벽 아침, 울진 후포 바다 하현달 위로 반짝이던 별 하나가 보고프다. 여전히 나는  후포바다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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