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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계간평

백인덕





시가 퍼져나가는 두 가지 방식





1.
   유사한 질문을 두 개 받았다. 하나는 작은 문학회의 합평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학의 규모가 큰 특강이 끝난 후 질의응답시간이었다. 질문의 요지는 이런 것이었다. 시란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것 아니냐, 그런데 왜 어떤 대중적인 시는 시가 아니라고 하고 독자가 전혀 읽을 수도 없는 시를 뛰어나다고 치켜세우고 상을 주는 것이냐, 그러니까 이 질문의 함의는 오늘의 한국 현대시에 대한 독자의 불만이 응축된 것이었다. 사실 두 자리 다 ‘시간관계상’이라는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고 말았지만, 나는 사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의욕이 없다. 시가 수필도 아닌데 ‘마음 가는 대로 쓰라’고 그 본래 뜻은 생략한 채 수강생 모으기에 급급한 현실도 부정하기 어렵고, 그럴듯한 출판사가 소위 책장사 좀 해보겠다고 이른바 ‘기획시집’을 양산하는 현상에도 딱히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아무거래도 좋으니 남이 읽을 때 너도 읽어라 하면 좋으련만 ‘직업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시가 퍼져 나가는 두 가지 방식에 대해 생각해 본다. 바슐라르는 “반향은 세계 안에서 우리들의 삶의 여러 상이한 측면으로 흩어지는 반면, 울림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 자신의 존재의 심화에 이르게 한다. 반향 속에서 우리들이 시를 듣는다면, 울림 속에서는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시를 말한다. 그때에 시는 우리들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울림은 말하자면 존재의 전환을 이룩한다.”고 했다. 그가 철학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기서 ‘시’가 미학적 대상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하고, 그 감상鑑賞의 목적이 ‘존재의 전환’이라는 것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바슐라르는 시가 퍼져나가는 두 가지 방식을 ‘반향과 울림’으로 정의했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동양과 서양의 종은 타종이 방식이 전혀 다르다. 서양의 경우는 종 안에 쇠구슬 같은 것을 넣어 종을 흔들면 소리가 나는 방식이지만, 동양의 종은 종의 빈속을 밖에서 나무 등으로 두드려 소리를 내는 방식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국의 종은(성덕대왕 신종을 특유의 예로 들지만) 이른바 맥놀이현상이라는 것이 있어 울림이 잦아들었다 커졌다하면서 오래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울림’은 결국 ‘빈 속’과 그 소리가 처음 닿게 되는 지면의 ‘꺼짐(파임)’을 통해서 비롯하고 지속된다는 점이다. 시가 독자와 맺게 되는 공감의 관계도 이와 같지는 않을까?



저명한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져와 인천에다 논리정연하게 쏟아놓은
‘상호 문화적 대화를 통한 지구적 보편성’은
방청객을 하품 나게 하고
배움이 부족하고 논리정연하지 못함을 실토한 나는
“일생 처음으로 많은 학습을 제대로 했다”는 것으로
토론자의 역할을 마쳤다


뒤풀이까지 치르고
허겁지겁 인천에서 김포 집으로 가는
자정 넘은 귀가길
한산한 막차 전철 안
쉰아홉 살 나보다 열댓 살이나
더 먹어 보이는 나이 든 남자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
각선미 좋은 허벅지에 눈이 꽂혔다


                                                                     ―정세훈, 「지구적 보편성」 부분



   시인은 ‘보편성’에 대한 일종의 불만, 혹은 불안을 드러낸다. ‘저명한 시인과 소설가와 평론가’와 ‘배움이 부족하고 논리정연하지’ 못한 ‘나’의 대비를 통해 이른바 보편성의 실제 현장성을 되묻고 있다. 이어지는 ‘자정 넘은 귀가길’에서는 일종의 속물이 등장하고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그런데, 나는/왜/어찌하여/무엇 때문에/저 나이든 남자를 관찰하는 것인가”라는 자괴감 가득한 탄식이 터진다. 이유가 여럿 상상할 수 있지만 이 자리에서 중요하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실 진짜 문제는 ‘보편성universality’에 대한 일종의 불만이 곧바로 ‘개별성individuality’이나 ’특수성speciality’으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시는 불가피하게 그것이 언어라는 외피를 벗어던질 수 없는 한 ‘개연성probability’의 영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즉 ’지구적 보편성‘은 어려운 추상적 가능성이라서 불안한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실제처럼 내리꽂히기 때문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시들은 그저 반향으로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이리저리로 끌고 가려는 독단적 의도를 감추지 않는다. 실험시 뿐만 아니라 정형화된 서정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2.
   시가 퍼져나가는 또 하나의 방식, ‘울림’,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들 존재의 심화”에 이르게 하고 “울림 속에서 우리들 자신의 시”를 말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그것은 개연성으로서 우리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군가가 지나간 길


마음의 무게로
발자국이 발자국을 지우고
흔적 없이
단층처럼 켜가 져서 깔리는
목주름의 때 같은 시간들을 저마다
저의 길이라 하네


바람도 햇살도 고드름이 진 오후
뒤쳐져서 무리를 잃어버린 에이도스가
꽁꽁 언 발 하나를 들어
사방 이리저리 디밀어보고 있네


                                                                       ―노두식, 「추운 날」 전문




   이 작품은 ‘추운 날’을 노래하고 있지 않다. 정확하게는 “누군가 지나간 길”을 더 정확하게는 홀로 남은 ‘에이도스’, 즉 형상形相의 탐색(“꽁꽁 언 발 하나를 들어/사방 이리저리 디밀어보고 있네”)을 그려내고 있다. 역사 이래로 수없이 되풀이 되었을 사건을 ‘추운 날’이라는 한 계기를 통해 다시 시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 ‘누군가’가 나일수도 있고, ‘에이도스’가 또 나일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떤 보편성을 획득한다. 비록 작은 생각 같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자기 확인이라는 점에서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비가 오고 가을은 저만치 비껴서고 있네.
축제 같은 하루도 일찌감치 저물고
손대국밥 집에서 계모임하는 동네사람들
시끄러운 테이블을 메운다.
네 식구 조용히 순댓국에 곱창볶음으로
허기진 주말의 저녁을 채우고 빗물 피해 걷는 길
차가운 공기가 가슴속으로 젖어든다.


                                                                                      ―권지영, 「산다는 건」 부분



   우리가 이미 체험으로 알고 있듯이 ‘산다는 건’ 머리로 이해하고, 말로 설명하려들면 한없이 추상적이고 모호해지지만 이렇게 느릿한 한 컷처럼 시적으로 형상화하면 눈에 잡힐 듯 선명해져 온다. “비가 오고 가을은 저만치 비껴서고 있네”라는 도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을의 끝자락은 축제의 마지막처럼 무언가 허전하면서도 뿌듯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적 사태와는 다르게 그것이 자연의 계절적 순환에 따른 것이라면 더욱 그 감정은 풍부해지고 짙어진다. 그래서 시인은 “사직서를 낸 친구의/막걸리 마신다는 문자” 한 통에 가슴속으로 젖어드는 차가운 공기를 뒤로 하고, “달을 품은 동그란 사발로 들어간/그리움 한 덩이”를 통해 ‘산다는 건’에 대한 자기 자신만의 대답을 찾아보는 것이다.



3.
   반향과 울림을 시가 퍼져나가는 두 방식으로 정리했지만, 사실 시가 미적 감상의 대상이 되었을 때 ‘공감’을 불러일으키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는 결정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독자들이 ‘스스로by oneself’ 시를 묻고 답하는 과정을 수행하느냐의 여부가 공감의 문제와 직결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문제, 즉 왜 쉬운 시를 좋은 시라고 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쉬운 시’에 대한 개념이 잘못 정립된 것도 있지만 종국에는 제도로서 시 교육이 본질적으로 내포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한다. 우리의 독서 대중에게 시 감상법을 가르친 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인의 상황은 어떤가? 대부분의 시인은 자신의 시적 인식을 명제로 개념화하기 이전에 자신이 유발했거나, 자신에게 밀려온 정서적 자극들에 대해 묻고, 답하는 작업을 망설이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뜯어진 철망을 타 넘어온
어두운 풀벌레 소리에 이끌려
가파른 길을 오르면
너와집처럼 바람에 수긍한 자세


이 거처는 주인의 굽은 등을 닮았다
문이 등에 맞춰 낮아진 것일까
등이 문에 맞춰 굽어진 것일까


달빛을 쬔, 거둬들이지 못한 소쿠리에
늦가을 것들이 붉다
달빛도 오래 쬐면 그슬린다는 것을
내려오는 길에 알게 되었다


                                                                    ―이상윤, 「그 집을 지나며」 부분



   시인은 ‘어두운 풀벌레 소리’에 이끌려 ‘어두운’과 ‘달빛’에서 연상되지만 거친 ‘가파른 길’을 오른다. ‘풀벌레 소리’라는 외적, 감각적 자극에 이끌려 시인은 낮은 집, 즉 ‘주인의 굽은 등을 닮’은 집에 도달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 ‘너와집’에 대한 이런저런 감상을 늘어놓기 보다는 사물과 사람이 융합하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문이 등에 맞춰 낮아진 것일까/등이 문에 맞춰 굽어진 것일까”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어 이 질문은 “달빛도 오래 쬐면 그슬린다”는 전혀 새로운 인식에 가 닿는다. 이 인식 이후는, 그것은 시인이 시적으로 형상화해야 할 많은 질문들을 함축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개연성이 늦가을 쓸쓸한 한 풍경 같은 작품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보다 개념적인 인식의 수고를 통해서도 스스로 묻고 대답하고, 다시 수정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다.



얼음기둥에 갇힌 혀를 읽느라
눈이 햇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어둠은 냉정하게 지져야 하는 장르
시들기 전에는 사랑도 비관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방향성 좋은 낱말들을 풀어
먼지 쌓인 애인을 가동 시키려 궁리한다
천천히 오해 속을 걸어 다니며
견정혈에 깊이 박힌 불신의 뿌리를 뽑아낸다


묵언 수행에 들어간 허기와
배고픔에 밀려난 포만은 동문일까?


                                                                                         ―한석호, 「찬란의 방식」 부분



   이 작품에서 시인은 “시들기 전에는 사랑도 비관적인 구조가 아니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표면 그대로 이해하자면, 사랑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열정’ 그 자체가 끊임없이 저 자신을 태울 연료를 공급함으로 미래를 향한 어떤 낙관적인 가능성이 엿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시 자체에 보다 집중해서 보면 결국 사랑도 ‘언어’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인데(그것이 시인이 이 작품에서 드러내는 개성적 관점이다) ‘얼음기둥에 갇힌 혀’란 더 이상의 변화나 생성을 유발하지 못하는 말 그대로 죽은 듯한 말들인데, 시인은 “방향성 좋은 낱말들을 풀어/먼지 쌓인 애인을 가동시키려 궁리한다.” 이 ‘궁리’는 결국 ‘오해’와 ‘불신’을 넘어서는 무엇, 어쩌면 ‘열정’의 재점화를 겨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석호 시인이 표제로 ‘찬란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아주 세심한 전략이라 할 수 있는데, ‘찬란하다’는 것은 결국 얼음과 얼음 사이에 잠깐 반짝이는 햇살처럼 찰나적이며 일회적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시인의 다짐은 빛난다. “균형 잡힌 논객의 펜으로/흔들리지 않는 사라의 실체를 받아쓰고 싶다”는 시인의 욕망은 이쯤에서 정당성을 획득하고, ‘얼음기둥에 갇힌 혀’를 읽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 된다.







**약력:199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끝을 찾아서』, 『한밤의 못질』, 『오래된 약』, 『나는 내 삶을 사랑하는가』, 『단단斷斷함에 대하여』, 저서 『사이버 시대의 시적 상상력』 등. 본지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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