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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신작시

송진





누군가 내 옆에 앓았다



낙엽들이 무덤처럼 쌓여있고 나는 그 무덤 속으로 한없이 빠져 들어갔다 시침이 흐를 때마다 핏방울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머리 안에 화산이 들어있어 밤새 누군가 내 옆에 와서 끙끙 앓았다 친구의 입마름병을 낫게 하기 위해 나의 간을 바위 위에 올려놓은 것에 대한 비웃음을 당할 때였다 괜찮아 이번 생에 비웃음을 당하였으므로 내일의 시간이 좀 더 좋아 질거야 무명의 절들이 시내로 내려와 부처들의 녹취록을 건네주었다 밤새 누군가 이마 위에 차가운 물수건을 올려주었다 당신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을 챙겨줄 사람이 이렇게 없는 거예요? 궁금해진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기어이 입 밖에 그 말을 꺼내어 사랑방문 손잡이에 걸고 말았다 그 말은 나 자신에게도 건네는 말처럼 들려와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예상치 못한 눈물이었다 눈물이라는 것 그것처럼 아름다운 물방울이 내 몸 안에 남아있다니 학교 간 아이의 돼지 저금통에서 천 원을 꺼낼 때처럼 조심스러웠다 약국에는 결국 안 가겠지 병원도 역시 안 갈 거야 그럴 시간에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고 몇 알의 커피를 머그잔 안에 띄우고 향기로운 시간을 기다리겠지 창밖의 낙엽은 물들고 떨어지고 낙엽은 자신의 할 일을 알아서 잘 하고 있을 거야 아무리 아파도 병원은 안 가 누군가 이마 위에 올려놓은 물수건이 뜨거워지면서 툭, 한마디 내뱉었다 오늘은 4시에 광화문 집회 가야 하는데 병원에 안 가면 안가에라도 끌려갈지 모르는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하냐고 누군가 끙끙 앓으며 웃는다 그런가 나는 중세시대의 사람인가 나는 영국인인가 나는 스티븐 호킹인가 영국의 정원처럼 아름다운가 나의 시간은 아직 꿈꾸고 있는 정치인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지진처럼 갈라지는 아킬레스건의 만추 숨을 잘 쉬지 못하는 옆구리가 고개를 푹 숙인다 누군가 내 옆에 누웠다 목사가 지나갔고 신부가 지나갔다 자전거가 지나가고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말이 지나가고 소가 지나갔다 우리를 개돼지라고 부르던 그들이 지나갔다







벌개미취쑥부쟁이구절초




누가 누구라 해도 상관없었다 철조망 너머 바다가 보였고 선박들이 보였고 철교가 보였다 피난민들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짐을 지고 리어카에 노모를 태우고 어린아이들의 손목을 잡아 이끌며 걷고 있었다 보랏빛 눈물이 주르륵 노을이 물었다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요 벌도 개미도 집이 있다는데 우리의 집은 어디인가요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누가 그 길을 장난스럽게 잘 씹어진 껌처럼 쭉 잡아 당겨놓은 것 같았다 그 길은 향기도 단물도 모두 빠진 가파른 길 신발이 자꾸 벗겨지는 길 서러운 마음 따위는 저리 가라 이제 더 이상 서럽지 않다 맨얼굴에 맨발에 맨손에 우리는 즐겁고 흥겨워 어깨춤을 춘다 더 내려놓을 것 없는 들판 부디 민낯의 꽃이 되어라 푸른 기와를 한 장 한 장 구워 먹고 사는 그대 그 기와는 꽃들의 신음소리 이제 더 이상 어리석게 남은 기와는 없다 오직 들판으로 내려가야 할 길이 있을 뿐 마대빗자루는 은박지마포부대에 쑥대머리를 쓸어담는다 






**약력:1999년『다층』제 1회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지옥에 다녀오다』,『나만 몰랐나봐』,『시체 분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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