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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20호/시노래마을/콩밭에서―장종권 시/나유성 작곡/ 김영미 노래


콩밭에서
―장종권 시/나유성 작곡/ 김영미 노래


정무현



  눈에 콩꺼풀이 씌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 이 말은 예전에는 분명히 좋은 것이라 여겼는데 시간이 흘러 다시 보니 처음에 본 것과는 달리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실망의 소리를 뱉을 때에 하는 말이다. 특히 남녀 간에 이루어진 인연에 대해 자조적인 푸념을 늘어놓는 말이다. 물론 시간이 흐르지 않아도 제3자가 봤을 때 도저히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뜻에서도 당사자들을 향해서 이 말이 사용된다. 콩깍지는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질인데 여기에 껍질의 안쪽을 들여다보면 투명한 껍질이 나온다. 이걸 눈에 대보면 뿌옇게 돼서 사물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다. 그러니 분명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할 때에 ‘콩깍지가 씌었다.’라는 표현은 적절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많은 말 중에서 콩깍지를 비유의 대상으로 삼았을까?


  이러한 말이 나오는 데에는 그만한 시대적 배경이 있다. 현재 젊은 세대는 이 말을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젊은이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이 말을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의문점이 없다. 현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의 세대는 농경문화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변화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쟁을 겪고 가난을 겪으며 근대화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배움을 위해 십리길을 걸어야 했고 책가방은 보자기에 싸서 어깨에 걸었다. 학교에서는 우유배식을 받으며 쌀밥을 가져온 아이의 도시락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꽁보리 도시락을 연탄난로 위에 올려놓고 쉬는 시간이면 허기에 굶주려 일치감치 도시락을 해치우고 점심시간에는 모범생의 밥을 뺏어먹던 시절이었다. 끼니가 없어 추수한 보리밭을 뒤지며 보리이삭을 주워 보리죽을 끓여 먹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은 아버지의 밥상이 물려지기만을 기다리고 눈치 빠른 아버지는 혼자서만 오롯이 먹는 쌀밥을 일부러 남겨두고 헛기침을 하며 자리를 뜨면 아이들은 서로 차지하려고 했던 시절이다.
  우리는 이렇게 농경문화로 삶을 이어왔다. 따라서 농사와 관련된 표현이 유난히 발달되었다. 벼와 관련된 명칭만 보더라도 나락, 왕겨, 쌀, 볍쌀, 조곡, 정곡, 미곡, 현미, 백미, 쌀겨 등이 있고 싹으로는 볍씨, 곡아, 도아, 얼미, 도얼, 곡얼. 벼의 상태로는 싸라기, 뉘, 쭉정이 등이 있으며 벼를 사람과 동일시하여 벼의 부분명칭을 잎혀, 잎귀, 잎몸, 잎집으로 분류하고, 볍씨 발아부터 벼수확까지의 농경명칭, 쌀의 상태, 지역별 명칭, 방언 등을 합치면 엄청날 것이다.
  벼는 수도작의 대표 농산물이다. 이어서 전작의 대표 농산물은 보리, 감자, 콩이 될 것이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참으로 오랫동안 밭에서 일해왔다. 특히 보리는 겨울에도 푸른빛을 내어 농촌의 향기를 더욱 짙게 베게 했다. 봄이 되면 논농사에 이어 감자, 콩, 수수, 옥수수, 깨, 밀, 고추 등을 깨알 같이 심었다. 그리고 젊은 청년은 한낮 내내 내다놓은 소를 거둬들이고 소꼴을 베고 처녀는 밥을 짓고 참을 나르고 나물을 캐며 들판을 내달렸다. 이런 와중에도 젊은 청춘남녀는 불타는 가슴을 새소리에 싣고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맞추었다. 눈을 맞추기에는 정해진 곳이 필요 없다. 친구인 영식이 집을 갔을 때일 수도 있고 들판의 논두렁길을 걸을 때일 수도 있고 모처럼의 팔월대보름이거나 설날일 수도 있다. 눈이 마주치면 둘만의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공간이 필요하다. 사방이 귀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그들은 물레방앗간이 될 수도 있고 산속 골짜기가 될 수도 있고 때로는 밀밭일 수도 있다. 그렇다. 당시에는 불타는 서로의 인력을 끌어들이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다. 밀밭이면 어떻고 콩밭이면 어떤가.
  그러나 사실 그 광경을 그려본다면 콩밭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콩은 다 자라면 키가 60㎝에서 90㎝정도가 된다. 콩밭은 밭이랑에 가지런히 콩대를 올린다. 고랑에 드러눕는다면 여름의 강한 햇볕을 막아줄 만큼 큰 키가 아니다. 더구나 전통적으로 비탈밭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전작에서 윗밭에 있는 사람은 콩밭의 안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밀밭이 좋은지도 모를 일이다. 밀은 콩보다 키가 크고 봄, 가을 자라기에 날씨도 한몫을 하고 대체로 가림도 가능하다, 그래도 콩밭이든 보리밭이든 가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의 전통적 밭의 모습은 밭의 주종을 심고나면 밭의 경계에 깨, 옥수수, 수수 등을 심는다. 오히려 이들이 가림막을 해주는 경우가 된다. 이러한 농경문화의 환경에서 자연히 농사와 관련된 속담과 터부도 유난히 많이 생기게 된다. 쌀만을 보더라도 「쌀을 밟으면 발이 비뚤어진다. 밥을 흘리면 유산을 한다. 키질할 때 쌀알을 날리면 남편이 바람이 난다.」라는 속담 아닌 속담으로 터부가 생긴 것이다. 그러니 자연 농사와 관련된 속담과 터부는 넘칠 만큼 많다. 이런 이유로 콩깍지의 오묘한 형태는 자연히 대표적인 풍자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전쟁터이든 바닷속이든 밭에서이든 어디서든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다. 많은 속담과 터부에서 장종권 시인은 그때 누구나가 겪었을 아린 사연을 ‘콩밭에서’라는 가벼운 주제로 끌어들였다. 콩밭은 우리의 대표적 작물이다. 콩이라야 할 말이 많다. 콩밭에 들어가면 무더위 속에 담백한 땀내가 난다. 콩잎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이다. 이 냄새는 청춘남여의 내음과  어울려 더욱 짙게 감정을 끌어올린다. 도파민호르몬이 마구 흐르게 한다. 드디어 콩깍지가 씌는 것이다. 그러니 콩밭은 상상이든 상상 이상이든 가장 좋은 대상이 되는 것이다. 콩밭의 결실은 더욱 뚜렷하다. 알콩달콩 콩으로 맺어진 사연은 된장을 만들고 간장을 만들고 우리의 식탁을 영원히 함께 한다. 가장 한국적인 사랑이 콩에서 시작되는 것은 너무도 멋진 일이다.
  콩잎은 또한 농경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족인 소를 위한 특식이다. 들판에서 가득 베어온 소꼴을 푸짐하게 작두에 듬성듬성 잘라 큰솥에 삶아낼 때에 콩잎을 함께하면 더욱 진한 쇠죽이 된다. 이를 먹은 소는 밭이랑 논이랑 해종일 일을 해도 피곤을 모른다. 소에게는 산삼이 되고 사람들은 그런 가족인 소를 배불리 먹여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었다. 어쩌다 때를 놓쳐 소죽을 제때 끓이지 않으면 어른들에게서 불호령이 내렸다. 콩잎은 특유의 냄새가 있어 먹는 것에는 호불호가 있지만 적어도 경상도 지역에서는 매우 즐기는 음식이다. 푸른 콩잎을 삶아 쌈을 싸먹기도 하고 노랗게 물든 연한 잎은 삭혀서 깻잎처럼 양념을 하여 먹는다. 처음에는 다소 거북함이 있어도 이 맛을 기억하는 사람은 끝까지 콩잎을 떠나지 못한다. 그러니 콩밭에서 일어난 일은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장종권 시인의 「콩밭에서」는 적절한 사실을 바탕으로 상큼한 상상의 양념을 섞어 놓았다. 콩밭에서 놀다가 콩꺼풀 씌웠지요/콩밭에 들렀다가 발이 꽁꽁 묶였지요/웬일로 콩 냄새는 천지간에 폴폴/누이도 몰라 고모도 몰라 어무이도 몰라
  참으로 재미있는 상상이다. 콩밭에서 놀다가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사실은 보리밭일 수도 있고 마을행사에서일지도 모른다. 장소가 어디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이다. 콩깍지가 씌었다는 것은 콩밭이 제일이다. 콩밭에 들렀다가 발이 꽁꽁 묶였다고 한다. 그래, 콩깍지에 씌었으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벌컹되어 뒷모습만 보아도 현기증이 일어나겠다. 발이 꽁꽁 묶일만하다. 시인은 천지간에 콩 냄새가 난다라고 하지 않고 ‘폴폴’이라고 한다. 정말 그곳에는 향내가 상큼상큼 날아다니며 혼미한 의식으로 빠지게 한다. 주위를 둘러싼 나무도, 풀잎도, 여치도, 무당벌레도 모두가 혼미하게 빠져들었다. 극락이 따로 없겠다. 이건 농사일을 가업으로 받들어온 여자면 가슴으로 다 아는데 누이도 모르고 고모도 모르고 어무이도 모른다고 시인은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이 시의 마지막은 ‘알콩콩 이콩 달콩콩 저콩 꿈같은 콩밭나라’라고 마무리 한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알콩달콩 꿈나라를 꿈꾸는 환상의 세계라고 한다. 장종권 시인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리토피아가 콩밭에서 어쩌면 볼 수 있겠다.
  재미있고 판타지같은 이 시에 나유성 작곡가가 또한 재미있게 곡을 붙였다. 누구나 부르기 쉽고 따라 하기 쉽도록 곡을 붙였다. 이 시가 멜로디를 얻음으로써 더욱 이미지가 맺히게 만들었다. 아마도 나유성 작곡가가 이미 중년으로 접어듬으로써 이를 해학적으로 멜로디를 붙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겠다.
  장종권 시인은 계간지 《리토피아》를 꾸리고 있는 주간이다. 《리토피아》는 벌써 69호를 제작할 만큼 2001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결호를 내지 않은 국내에서 중견 문예지로 그 사명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성균관대를 나와, 난해한 시로 아직까지 본격적인 연구가 미흡한 김구용 시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현재까지 『개나리꽃이 피었습니다』. 『호박꽃나라』, 『아산호 가는 길』, 『전설은 주문이다』 등 7권의 시집과 장편소설 『순애』, 단편집 『자장암의 금개구리』 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고 있으며 사단법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이끌어오면서 시노래 보급 활동을 2002년부터 꾸준히 하고 있다. 현재까지 제8집의 앨범을 만들어냈으며 많은 가수와 작곡가가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 이를 보다 정교한 작업을 거쳐 모든 국민들이 함께 즐겨 부를 수 있도록 보급 활동을 하고자 한다.
  모처럼 「콩밭에서」는 우리의 힘든 농경문화에서도 삶이 살아있는 풍경을 멋지게 그려내어 이 노래를 듣는 모든 분에게 향수에 젖게 하는 푸근한 시간이 될 것이다. 노래를 듣고 싶다고요? 문화예술소통연구소>커뮤니티>시를 노래하는 사람>창작시노래(전체)에서 3집음악을 클릭하면 26번과 9번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콩밭에서 놀다가 콩꺼풀 씌웠지요
콩밭에 들렀다가 발이 꽁꽁 묶였지요
웬일로 콩냄새는 천지간에 폴폴
누이도 몰라 고모도 몰라 어무이도 몰라


콩밭에서 놀다가 콩꺼풀 씌웠지요
풀냄새 똥냄새 범벅 더 고소한 콩대 향기
오도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지요
알콩콩 이 콩 달콩콩 저 콩 꿈같은 콩밭나라                         


―「콩밭에서」 전문/장종권


※알립니다.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서는 매년 '시노래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국내의 저명한 작곡가가 시를 가사로 하여 작곡한 노래를 라이브무대로 발표를 합니다. 여기에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홈페이지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발표회 때 초청장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무현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사이에 새가들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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