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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이여원

오십 외 1

 

 

기억과 생각이 다르다는데 둘 다 본 것 같다. 그러다 둘 다 흐릿해지는

공작의 깃털이 부스스 흩어진다. 에스컬레이터 탄 죄 밖에 없었던 것 같

은데 산과 들이 눈앞이다. 정오를 지났으니 반드시 밤은 올 테고 신도림

역 계단 위 누군가 꽃을 들고 있어도 즐거움은 딱 반이다. 어쩌면 이렇

게 반으로 나누어진 나이일까. 몇 사람쯤 떼어낸 나이. 어느 쪽이 중심일까.

골똘하다보면 기울어져버려 양쪽을 다 잃은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때, 검은 비닐봉지 속에도 우아함을 넣을 수 있는 밥의 정량을 알고 있는 밥그릇들과 찬반의 내공 법으로 여태껏 내 입맛에도 맞지 않는 식탁을 차리러 왔다 가는 나이. 춤이 있는 옷 몇 벌 사들고 중심에서 흔들고 싶은 나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상실의 배란기. 허무의 자식이나 낳고 싶은 나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의 나이. 밑진 장사의 끝 맛 같은 도무지 계산이 맞지 않는 이중 결산 같은 나이. 나누어줄 가족은 자꾸 생겨나고 노을빛 색조화장은 중장비 수준이지만 텅 빈 얼굴 속엔 도둑의 주름살로 가득하다. 성장을 하고 나서도 반응은 썰물. 김 서린 거울을 닦다보면 기미낀 흰머리 새 한 마리 거꾸로 왔다 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간격을 설계하다

 

 

햇빛을 고르고 조망까지 그림처럼 고른다

조건에 따라 논리와 허연 거품이 오고 간다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아

문밖으로 나가는 욕심들

아름다운 집을 꿈꾸는 소유욕은

친절한 사기꾼 같다

 

외양의 품격은 대부분 통장의 두께와 비례하고

법도 주먹도 아닌 간격의 불화는

높이의 욕심과 같은 것

간격은 공간적으로 벌어졌거나

감정적으로 벌어진 사이라는데

간격을 주로 설계하는 사람은 어디 없을까

집과 담이 없으면 골목은 생겨 날 수 없는 법

가끔은 일조권을 포기하고

골목을 생각해보지만

여전히 별 없는 하늘처럼 허전하다

 

햇빛을 갖는다는 것은

공동의 소유를 가둬두려는 것

엄밀히 말하면 간격도 공동의 소유일 뿐

간격을 위해서 핏대선 목소리로

담벼락을 높여 보지만

자정의 사계절은 간격을 잘 지켜가며

어설픈 지상의 구조물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차라리 계절 사이에 건물을 짓고 살고 싶어진다

 

봄이 조망권이 되고

가을이 일조권이 될 수 있는

그런 율격을 지닌 산책로를 찾아

몽유의 사람들, 집을 떠메고

계절의 어느 간격으로 떠나야 할지 서성거린다

 

 

이여원 - 2012<매일신문>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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