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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색감과 질감의 마술사, 이미자

 

 

한지공예가 이미자 선생은 인천의 대표적인 공예작가다. 인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작가다. 예전에는 본 적이 없는 독특하고 생명감이 넘치는 색감을 개발해내고,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따뜻하고 편안한 질감을 구현해내는, 시를 쓰는 한지공예가다. 신포동 골목에 있는 그녀의 공방 ‘한지생각’을 찾았다.

이외현-고향이 본래 인천이신가요? 토박이처럼 보입니다.

이미자-인천은 아닙니다. 김포입니다. 그땐 아주 시골스러웠지요. 어머님이 국주도 담그곤 하셨어요. 쌀로 만드는 술 있잖아요. 아버지가 엔지니어셨는데 그 회사 사장님도 매일같이 저희 집에 간부들과 함께 오셨어요. 왜냐하면 어머님이 담그신 국주가 어디서도 보지 못한 맛이었거든요. 아버님은 주머니 속에 항상 영어사전이 있었어요. 그걸 넣고 다니시면서 제게도 맨날 죽을 때까지 공부해야 한다고 말씀 하셨어요.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지요. 술만 드시면 예술을 이야기하시고 예술인들을 끔찍이 좋아하셨어요. 만약 우리 아버님이 살아계셨더라면 내가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하면 아마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을 겁니다. 창의적인 예술을 좋아하셨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인 7월달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 대학시험을 못 본 거지요. 제 친구들은 모두 대학에 진학했어요. 상황이 그러다보니 공부가 들어오질 않더라구요. 공부하는 것이 별로여서 상업학교를 가긴 간 건데, 아버님까지 돌아가시다보니 공부는 아예 접을 수밖에 없었어요. 같이 공부하던 다른 친구들은 다 공부해서 전문대라도 가긴 갔지요. 저는 대학시험도 안 치르고 그냥 곧바로 생활전선으로 뛰어든 겁니다. 어머님은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분이라 아무 것도 할 줄 모르셨어요.

박하리-아, 김포에서 농사를 지으셨군요. 어린시절 농삿일은 저도 꽤 어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기억 나는 일이 있으신가요?

이미자-땅이 많진 않았어요. 밭하고 논이 조금 있었던 걸로 기업합니다. 어머님은 농사짓고 살림하고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시고, 별 어려운 문제가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하여간 우리 아버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아무튼 제 길을 마구 밀어줬을 거에요. 지금보다는 좀 더 수월하게 이 작업을 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머님께서 싸리나무로 빗자루 있잖아요. 그걸 만드시고 대나무로 채반 같은 것도 직접 만들어서 쓰셨어요. 가마니도 짜시고.

이외현-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장녀로서 엄청난 중압감을 받으셨겠습니다. 대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바로 뛰어드신 걸로 압니다. 직장 생활은 어떻게 시작했었나요?

이미자-처음에는 보험회사에 내근직으로 스물한 살 때 취직을 했지요. 영업소에 경리로 갔기 때문에 본사직원이었던 겁니다. 교육을 받았어요. 한 달 동안 교육 받고 영업소로 파견이 되어 일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월급을 안 주는 거에요. 결국 몇 달 월급을 받지 못하고 그냥 나왔어요. 그러고 나서 한지공예 배워 가게를 내버렸지요. 어머님은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니까 시집이나 빨리 가라고 서두르셨지요. 그래서 선을 자꾸 보도록 하셨는데 제가 안 본다고 하니까 몰래 보게 한 거에요. 저는 한지공예를 잘 배워서 공방을 내겠다 했어요. 그런데 어머님은 시집이나 가지 뭐 하러 이런 걸 배우느냐, 이런 거 배우면 팔자만 드세진다, 못 배우게 한 거에요. 우리 때만 해도 김포가 시골이잖아요. 제가 배포도 좀 크고 남자성향인가 봐요. 친구한테 돈을 빌려서 공방을 내버렸거든요. 김포 터미널엔가, 그게 스물두 살 88올림픽 때였지요. 배운 건 일 년밖에 안 되는데 배우면서 하겠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박하리-한지공예를 처음부터 혼자 터득하신 거네요. 처음부터 예술작업으로 접하신 것은 아닌 듯 보입니다. 그러니까 생활전선의 일환이었다는 것이군요.

이미자-어디서, 혹은 누구에게 배운 게 아니에요. 그냥 혼자 책 같은 걸 구해보면서 하나하나 터득해 나갔지요. 사실 한지 공예의 기술, 기법 이런 게 책으로 잘 나와있진 않아요. 나름대로의 방식이나 기술, 기법에 지나지 않거든요. 이게 교과서처럼 쓰여 있는 건 나와있지 않아요. 지금은 그래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서 미술교과서에 나오기도 할 겁니다. 중학교 2학년 교과서인가요? 그 때에는 볼만한 책도 없었지요.. 한지가 무언지 사람들이 잘 모를 때에요.

이외현-한지공예는 글자 그대로 한지로 하는 공에다 이런거 아닌가요? 그 한지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요?

이미자-닥나무로 만든 우리나라 종이지요. 요즘 많이 사용하는 화선지도 한지의 한 종류긴 한데요, 전문가도 한지의 종류를 다 알 수는 없어요. 너무 다양해서지요. 책도 만들고 서찰로도 사용하고, 그림도 그리고, 붓글씨도 쓰고, 그런 거지요.

박하리-언젠가 지슨공에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요. 지승공예라는 건 무언가요?

이미자-옛날 양반들이 붓글씨 쓰고 남은 종이를 버리잖아요. 천민들은 감히 새 종이를 구할 수는 없지요. 너무 비싸니까. 그래서 양반들이 쓰고 버린 종이들을 주워다가 풀에 짓이겨서 양푼 같은 거 있잖아요. 함지박 같은 것도 있고, 거기에 바르는 거지요. 발라두고 며칠 기다리면 수분은 다 날아가고 쪼그라드는 거에요. 건조가 되어서 딱 떨어지면 거기에 콩기름을 바르는 겁니다. 물에 담가도 젖지 않으니까 사용하기가 좋잖아요. 그런 거 아닌가요?

박하리-그렇다면 한지와 현대의 종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미자-요즘 시대엔 좋은 종이가 많이 나와요. 그런데 물만 닿으면 찢어지거든요. 한지는 질기고 오래 가고 통풍도 잘 됩니다. ‘지천년 견오백’이라는 말이 있어요. 종이는 천 년을 가는데, 비단은 오백 년밖에 못간다는 말입니다. 그만큼 종이는 오래 갑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다라니경이 보존이 잘된 것이 우리나라 한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라네요. 본래 중국에서 종이가 흘러온 것인데 그 중국이나 일본에서 우리나라 한지를 수입해갔다고 해요. 우리나라에서 재배한 닥나무로 만든 종이가 자기네 나라에서 만든 종이보다도 더 좋다는 거지요. 우리나라 토질이 닥나무를 재배하기 딱 맞대요. 그래도 전라도 쪽, 경상도 쪽에 열 몇 군데 혹은 스무 군데 정도밖에 안 되지요. 그러니까 현재 인사동에 나와 있는 종이들은 거의 수입이라고 보면 될 겁니다. 거기 열 몇 군데 되는 곳에서 만드는 한지로 우리나라에서 쓰는 한지를 다 공급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어요?

이외현-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전통한지 산업은 국가에서 지원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이미자-수제로 하는 전통을 천대하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서 손으로 하는 작업에 상을 타오는 건 다 우리나라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기술력이 좋은 거겠지요. 그래서 외국에서도 반응이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 국가에서 어떤 방법으로 지원을 해 주느냐 하면, 한지 박물관 같은 수십 억짜리 거창한 건물을 짓는 거나 한다는 거죠. 자기네들의 성과나 올리려는 거 아닐까요? 장인을 기르는 것도 기르는 것이지만, 처음에는 닥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닥나무를 심어야 종이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 일이 고용창출도 되는 것이지요. 닥나무는 시골 아무 데서나 잘 자라는 나무입니다. 지금 놀고 있는 땅 많잖아요. 놀고 있는 땅에 막 심어도 되거든요.

박하리-한지와 한지공예는 어떤 관계인가요? 종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글씨를 쓰거나 책을 만드는데 사용 하는 걸로 알잖아요. 그런데 종이로 공예를 한다는 것은 어떤 작업인가요.

이미자-500년 전에도 공예에 많이 썼어요. 나무장에도 한지를 입히고 했지요. 일단 옻칠을 한 것보다는 종이가 푸근하고 따듯한 느낌이 들잖아요. 그래서 옛날부터 그렇게 썼어요.

박하리-한지로 만든 오래 된 장은 못들어 봤는데요.

이미자-박물관에 가면 얼마든지 볼 수 있어요. 사극에도 조그만 소품들이 나와요. 매번 나오죠. 저는 그걸 현대화 시키는 작업을 많이 한 겁니다. 현대화 시키는 작업을 하다보니까 사람들 눈에 띈 거지요.

이외현-한지로 공예를 하면서 한지의 장점을 살린다는 건데요.

이미자-한지는 전통공예입니다. 전통 문양이 있잖아요. 몇 백 년이 흐른 지금 보더라도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지거든요. 한지의 종이 느낌이 좋은 것이고, 그것을 결합해서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창의적인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한지공예의 핵심인 거 같아요.

이외현-한지공예의 핵심이라는 것이 한지의 문양인가요?

이미자-한지 전통 문양과 한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느낌이지요. 그걸 가지고 아무 데도 없는 나만의 형태를 만드는 겁니다. 그것을 관상용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실생활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거지요. 예술적이고 회화적인 것처럼 바라보고만 있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박하리-한지로 공예를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 힘들지 않나요? 한지 생산 자체가 어려워서 값이 비싸지기도 하구요. 그렇게 되면 오늘날의 우리나라의 유통구조를 사용해서 팔아먹기는 여간 힘들지 않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재료 비싸고, 작업 힘들고, 그러다보니 값이 계속 비싸지게 되지요.

이미자-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요즘 사람들 생활수준도 높아졌잖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돈이 많다고 쓰는 게 아니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비록 경비가 다소 들어가더라도 투자를 많이 하는 걸로 보입니다. 한지공예 작품이 대중화 되어서 값이 싸져야 된다는 생각은 안하는 편이에요. 상품성과 작품성은 병행해야 한다는 거죠. 무조건 싼 것만 가지고는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고 봅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야 한다는 거지요. 일반적으로 그림에 대한 상식이 없는 건 마찬가지고, 한지공예에 대한 상식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턱없이 비싼 그림보다는 이 한지공예 화장대가 더 갖고 싶을 수도 있어요. 공예작품은 250만원이면 엄청 비싼 것이고, 그림은 1000만원 정도 해도 인정을 하는 고정관념이 문제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박하리-전통공예의 특성상 전통적인 음양오행에 입각해 있는 점도 두드러져 보입니다. 오방색이란 것이 있잖아요. 이런 색감도 현대적 감각에 맞는 변화는 어려운가요?

이미자-저도 빨강, 검정, 하양, 노랑, 많이 사용합니다. 음양오행에 의미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걸 조금 빈티지하게 색을 만들어낸 거죠. 그래서 외국인들이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이외현-색감이 상당히 화려해 보입니다. 오방색에서 제일로 중요한 색은 노랑이고, 청색, 적색은 그렇다 쳐도, 검은색은 안 좋으니까 많이 안 쓰셨잖아요? 그런데 색깔 종이 자체가 이미 다 만들어져 나오는 거 아니에요? 종이 색깔을 공예가가 직접 제작하지 못하니까. 결과적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지요. 색을 공예가 마음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한계말입니다 문양과 색감을 한지공예가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이미자-작품으로 작업해야 하는 경우에는 가능은 합니다. 원료를 구해오면 되지요. 원료를 구해 와서 무늬와 색깔을 현대적 감각으로 제대로 끌어낸다면 그 점도 가능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외현-닥나무 원료를 구해다가 그걸 걸러서 종이 만드는 과정을 공예가가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번거로운 작업이 될 겁니다. 종이 제작 설비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 않기만 한다면야 어디 시골 같은 곳에 설비를 해두고서 필요할 때마다 한두 번 가서 종이 색깔을 낼 수도 있겠는데 당연히 이론상 이야기겠지요?

이미자-백 번의 손이 가야 종이 한 장이 나온다잖아요.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사실은 어렵지요. 스위스 미술대를 졸업한 한 디자이너가 이 한지공예를 스위스에 가서 하겠다고 좀 배워 갔는데, 스위스에 종이 파는 데가 있어 갔더니 대만, 중국, 일본 제품은 있는데 한국 제품만 없더래요. 이것도 문제입니다. 한국이 생활공예에서는 세계 최고로 알려져 있는데 종이는 안 팔아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겁니다.

박하리-이미 제작된 오방색 종이에 변색되지 않는 물감 같은 것으로 2차적인 염색은 불가능한가요? 왜 그러느냐 하면, 한지라는 것은 특히 느낌과 색이 핵심이잖아요? 똑같은 장이라 하더라도 한지장이니까 더 선호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래서 변하지 않고 썩지도 않는 도료로 2차적인 염색이 가능하다면 좋을 것 같아 보입니다. 신비로운 색감을 내주면 더 좋지 않을까 해서요.

이미자-한지공예가들의 꿈이죠. 종이를 다림질하듯이 말리기 위한 철판 같은 것도 있어야 하고. 설비가 장난이 아니에요. 숫제 공장 수준은 되어야 할 듯합니다.

박하리-한지는 스미는 거니까, 도료든 뭐든 간에 살짝살짝 특별한 색을 뿌려서 다른 색감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법합니다. 다른 사람이 내지 못하는 색감을 내면 1단계는 성공이지 않을까요.

이미자-남이 못내는 색깔을 만들어 내서 방송도 여러 차례 탄 것일 겁니다. 한지는 수요가 있는데 제작을 못하고 있는 거에요. 한 번 염색하는 통에 물감을 넣어 한지를 뜨면 한 컬러에 오륙백 장이 나와요 그걸 다 산단 말이지요. 그래서 이걸 이 사람한테 50장, 저 사람한테 50장 팔았어요. 그런데 한지 컬러가 단순히 한 컬러가 아니잖아요? 여러 컬러잖아요? 제가 초창기에 돈이 좀 있었다면 금방 벌었을 거에요. 나는 노하우가 있잖아요. 한지를 못 구해서 안달인 적이 있었는데 제가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어쨌거나 색깔의 특별함 때문에 방송국에서도 찾아왔던 거지요.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좀 독특하고 다른 한지공예와는 차별이 되는 것 같아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이외현-방송을 타면 좀 달라지는 게 있나요?

이미자-수강생들이 놀라울 정도로 늘었지요. 그 때는 큰 힘이 되었어요.

박하리-색이 관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색 중에는 인간을 심오한 세계로 끌어들이는 묘한 색감이 있다고 합니다. 그 색감에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동하게 되고 왕성한 생명력이 우러나오기도 한다는데요, 아마 그 색을 한자로는 玄이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검을 현이라고는 하지만 완전히 검은색은 아니라고 하지요. 얼마나 기묘하면 현묘하다는 뜻으로 사용하겠습니까? 몇 단계의 염색 과정을 거치면서 탄생하는 색이라고 합니다. 이 선생님이 만드시는 색감이 이에 접근해가는 색감이 아니겠는가 생각이 듭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색이지요.

이미자-저도 그런 색감에 대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다보면 생활소비용이냐, 아니면 전통 작품이냐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색감에 충실하려면 아무래도 작업도, 비용도, 결코 쉽지가 않거든요. 작품을 만드는 일이 정말 어렵습니다. 우선은 사업성이 다급하니까 전시회를 한다든지 해야 겨우 작품에 몰입을 하게 되거든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지만 여건은 자꾸 어려워집니다. 시간이나 자금에 관계없이 작품 속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요.

이외현-그래도 작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공예품 속에 작가정신이 투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지요.

이미자-독특한 색감이나 질감이 구현되도록 노력할 뿐입니다. 요즘 한지공예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지요. 그런데 거의 천편일률적인 한계가 있어요. 전 다른 누구와도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겠느냐 생각합니다. 한지 업계나 공예 하시는 분들이 남들이 안 하는 걸 한다고 해서 이렇게 저렇게 찾아오고, 여기저기 강연 요청도 오고, 하는 거지요. 일단은 생활전선이라는 것이 늘 발목을 잡고 있지만, 독특한 색감과 질감을 꾸준히 찾고 있어요. 종이로 만들었음에도 자꾸 더 바라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작품이 좋지요. 한지지만 한지 느낌이 나지 않을 수도 있고, 날 수도 있고, 이것이 종이 제품인가, 정말 한지로 만든 것인가, 철인가, 도자기인가, 아리송한 느낌의 질감이 만들어진다면 더욱 좋겠지요.

이외현-한지의 질감이나 종이결은 그대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능력은 다른 것을 사용해서 색감이 더 발현되도록 하는 작업이 중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일단 형태도 다양한 것이 좋을 듯하고요.

이미자-자본주의 사회니까 한지를 꼭 한지만이 아닌 다른 것과의 결합으로 본격적인 상품화를 시도해야겠지요. 일반 종이나 다른 것들을 한지와 같이 섞어가며 작업하는 수도 물론 있겠지요.

박하리-한지가 전통적인 분야이지만 전통이 옛날식으로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죽어버리기 십상일 겁니다. 아무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탄생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입니다.

이미자-이 칡넝쿨을 보시면 이것도 한지잖아요. 당연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변화해야겠지요. 요즘은 음악도 그렇고 다 콜라보레이션 하게 되지요. 세발자전거 출연하셨던 분 중 어떤 분은 워낭소리를 판소리로 하시더군요. 본래 판소리를 하시는 분인데, 예전 판소리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거지요. 너무 듣기 좋은 거에요.

박하리-요즘은 새로운 것을 찾고, 그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시대 같아요. 기존의 것을 고수하거나 답습하거나 고정관념에 빠지면 실패하기 쉽지요. 한지 공예란 한지라는 특수하고 전통적인 것을 이어가는 것이지만 기존의 것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감각으로 발전시켜 가느냐 하는 것이 숙제인 것 같아요. 이 선생님이 그런 작업에 매우 충실하신 것이 든든합니다.

이미자-그걸 앞장서서 하는 사람의 하나로 보아주셔서 영광입니다. 저는 똑같은 것을 싫어해요. 그리고 모방도 싫어해요 누가 이런 걸 했다 하면 전 안 합니다. 그거랑은 다르게 하는 것이 더 즐겁고 신명납니다. 요즘 한지공예 하는 사람들은 그 작업들이 거의 비슷합니다. 문양이나 오방색 사용이나 다 그렇지요.

이외현-개인전도 꽤 하신 걸로 압니다. 특히 수상 경력이 대단히 화려하시던데요, 소개를 부탁합니다.

이미자-

이외현-자유롭게 들려주실 말씀이 있으시면 듣겠습니다.

이미자-작업이 생계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 보니까 그걸 바꾸기가 쉽지 않은 거에요. 그래서 전 잠을 많이 지지 않았어요. 뭐에 빠지면 파고드는 편이죠. 젊었을 땐 새벽 서너 시에 자고도 아침에 또 일어나 출근하곤 했지요. 잠을 조금 자는 거에요. 남보다 나아질려면 시간을 더 써야 하니까. 생계는 생계대로 이어가면서 다들 잠자는 시간에 전 다른 사람들보다 연구를 더 많이 한 거지요. 예전에는 돈이 없어도 예술을 했다는데, 예술하기에는 예전이 나았던 건가요? 뭐 하나 개발하려고 해도 다 돈이에요. 지금도 무언가 구상해 놓은 게 있는데 아직 이거를 시작하지 못하는 거지요. 마음만 바쁩니다.

박하리-이 선생님께서는 최근 시인으로 등단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지공예의 핵심인 색감과 질감을 다루는데에는 이 시적인 가슴과 눈이 정말 잘 어울릴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자-시를 쓰는 정신으로 한지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요. 시를 쓰는 마음으로 세상을 따듯하게 바라보고 싶기도 했어요. 어떤 예술이거나 내부에서 작용하는 세상에 대한 철학이 없으면 좋은 작품 만들기가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시는 제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요.

박하리-끝으로 스스로 자신의 강점을 소개해 주신다면 무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미자-당연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죠. 현재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다시 태어나도 직장생활보다는 이런 일이 더 좋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재미가 있어요. 더 어려운 문제가 생기니까 그럴수록 도전적인 심리가 발동을 하는 거에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이 분야에 한 획을 긋고 싶다는 생각도 감히 해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런 거 있잖아요. 가수도 관객이 있어야 노래 부를 맛이 나잖아요. 춤추는 사람도 그렇고. 그런데 전 혼자 하고 혼자 봐도 즐거워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함께 이 작업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면 더 행복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외현-앞으로 하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얼까요?

이미자-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보지 못한 전시회입니다. 방 하나에 모든 살림도구를 한지작품으로 채워보는 것인데요, 화장대에서부터 옷장, 침대까지 일체를요. 아마 사람들 구경 잘 할 겁니다. 어쨌든 아직은 힘이 들지만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해야지요. 내 세게 열심히 가다보면 언젠가는 열리지 않을까요?

이외현-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한지 예술작업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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