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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8호/단편소설/박마리/존재의 덫


존재의 덫


박마리



  여자가 그를 만난 것은 친척 집 결혼식에 갔다가 국민은행 사거리 신호등 앞이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해 다시 돌아 봤을 때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안 여자는 얼른 돌아서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간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행동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어느새 여자 앞을 가로막는다. 오래간만에 보는 것 치고 낯빛이 산 그림자처럼 그늘져 있다. 그로서는 당연한 표정일 것이고 그게 자신을 대하는 자세가 가장 적합하다고 느낀 여자는 걸음을 멈춘다. 
“차 한 잔 할까?”
표정이 부드럽기나 하나 신중함이 실려 있다
“그러자.”   
  아직 자신한테 그런 눈빛을 보이고 있다는 것에 다행인 듯 여자는 고개를 끄떡인다. 세월이 마음을 순하게 했는지, 아님 그 표정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정확히 가려낼 수 없지만 중요한 건 그를 피하지 않고 있다는 것에 여자는 자신 스스로에게 놀란다. 그에 대한 감정이 가뭄으로 바싹 말라 바닥을 드러낸 깡마른 도랑이라 생각했는데 촉촉이 젖는 물줄기가 자신 몸에서 일어나고 있어서다. 여자는 그동안 그를 자신 가슴에서 죄다 몰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촉촉이 젖어지다니,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여자는 시선을 건너편 빌딩에 둔다.
  몇 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전염병에 걸린 환자 피하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시야에서 황급히 사라졌다. 한 때 가깝게 지냈던 학창시절 친구고 또 오래간만에 봤으니 그간의 안부 물으며 알콩달콩 차 마시는 건 당연하지만 그와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에 여자는 그간 만남을 피했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자신한테 있어 절대적인 사람처럼 퇴근 시간에 맞춰 은행 정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뒤를 따랐고 술만 취하면 전화를 했다. 그런 성의에도 여자는 눈길은커녕 냉하게 대했다. 그러다보니 어디 사는지, 어떤 직장을 가졌는지, 결혼은 했는지, 그런 간단한 것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는 다시는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게 하는 결정적인 말을 하였다. 네가 오씨 아저씨 아들이라는 게 싫어! 그러니 전화도 하지 말고 찾아오지도 마! 여자가 이런 말을 하였을 때 그는 그게 최선의 행동인 듯 힘없이 등을 보였고 그 후로는 전화는 물론이고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기억도 쇠퇴해지듯 그렇게 뇌리에서 잊혀 가고 있었다. 그게 십 삼년이 지났다.
  그런 그를 오늘 불쑥 만난 여자는 놀랐기도 했지만 더 황당한 것은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십 년 전 싫어서 느꼈던 그런 후들거림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숙경아, 그동안 참 많이 보고 싶었어. 너만 생각하면 여기가 쓰리고 아파. 너는 변했지만 난 아직 그대로야. 오늘 단 하루만이라도 옛날로 돌아가 네가 날 사랑했던 그때 눈으로 봐 주면 안 될까?”
  여자를 바라보는 그 눈은 그 옛날 한 때 사랑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와 이렇게 편안하게 마주한 것이 그 사건이 있고부터 처음인 여자는 침묵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진실을 본 것이다. 그땐 그 입장을 단 한 번도 이해하려고 들지 않고 무조건 밀어냈다. 그러다보니 진실도 거짓으로 보여 그와의 결별은 당연한 것으로 안타까워 눈물 흘리거나 힘들어 하지 않고 그와의 관계를 끝냈다. 
  그땐 여자도 아버지의 여식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른들 사이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것을 외면하고 그냥 넘기기엔 아버지 사고는 작은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불구로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가정이 깨졌고 거기서 안아야했던 열뇌는 그를 보는 자체만으로도 고통이라 다가오는 것을 냉갈스럽게 거부했다.
  그랬던 자신을 오늘만이라도 옛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 속에 아직도 자신이 들어있다는 것을 여자는 느낀다.
  행단보도를 건너 찻집으로 가는 동안 그와 여자는 나란히 걷고 있지만 서로  말이 없다. 여자들 얘기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공사 소리가 섞여 등 뒤에서 들린다. 핸드폰 가게와 산부인과 병원을 지나 찻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 그는 문을 열어 여자를 먼저 안으로 들게 한다. 경음악이 깔리고 사람들이 다문다문 앉아있다. 
“우리 숙경이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 예쁘네.”
그는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동생 대하듯 대했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부드러움을 연출 하는 자세는 그대로다.
  휴대폰에서 딩동 문자 소리가 난다. 얼굴이 빨개진 여자는 얼른 백에서 폰을 꺼내 문자를 확인한다. 서른 중반 나이에 그것도 오래 전에 헤어진 남자 앞에서 사춘기에 일어날 법한 일이 일어나서다. 그와 헤어진 후로 여자는 남자에 대한 선망도 없거니와 결혼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 년에 세 네 번 입원하는 아버지 병원비와 다리 아파 식당 일도 못하는 어머니 뒷바라지로 남자 만나 사랑 따위에 젖어들 여유가 되지 않아서다. 매달 내야 하는 병원비는 접근하는 사내들을 물리치게 했고, 유명메이커 옷과 가방은 생각도 못했다. 마음이 힘들어도 동료들한테 꼭꼭 숨겼고, 어머니 앞에선 마음은 울고 있어도 입은 늘 웃어야만 했다. 그러면서 모진 현실에 순응 되어갔고 오씨 아저씨와 그에 대한 기억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랬는데 오늘 생각지도 못했던 그를 만나고 보니 공짜로 점심 얻어먹은 것 같았다. 특별히 할 말이 없는 여자는 버릇처럼 손을 만지작거리며 차만 야금야금 마셔댔다. 유리창 너머 미장원 간판이 어긋나게 매달려있고 공중전화 부스엔 어린 아이들이 들락거린다. 그것을 보고 있는데 잊고 있었던 지난 과거가 물안개처럼 풀어진다.   
 
  여자는 그와 사귀기로 하고 정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것이 고등학교 삼학년 때 였다. 반은 달랐지만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었다. 시험이 끝나는 날엔 중국집 가서 자장면을 먹었고, 영화를 봤고, 특별수업으로 늦게 끝나는 날엔 언제나 그가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렇게 붙어 지내는 동안 어렸지만 사랑이란 말을 했고 이 다음 결혼하자는 말고 오고갔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불행이 바로 뒤따라 붙었다는 것을 그도 여자도 몰랐다.
  그날은 삼학년 중간고사가 끝나는 날이었다. 외식하자는 아버지 전화를 받고 여자와 어머니는 함께 약속장소에 갔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 전화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약속은 상대방과의 약속이니만큼 철저하게 지키는 양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화가 불안으로 바뀌었다. 아버지는 그 이튿날 아침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자 어머니는 아버지 근무처에 전화했지만 오히려 출근하지 않은 아버지 상황을 직원이 물어왔다. 일하다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출근했고 여자 문제로 속 한 번 썩힌 일이 없었던 양반이 갑자기 행방이 묘해 애가 말랐다. 만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없자 어머니는 경찰서에 신고 했다. 더 기가 찬 것은 신고하고 집에 왔을 때 집안이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도둑이 든 것이었다. 어쩜 돈을 노린 범죄자 소행이 아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든 여자는 학교에 가지 않고 아버지와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찾아가 일일이 물어봤고 또한 전단지를 만들어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뿌렸지만 단서가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여자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있는데도 그한테서는 연락은 물론이고 만나러 오지도 않았고, 그 역시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같은 반 친구가 여자한테 말해줬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갑자기 멀어진 분위기에 서운했지만 아버지 실종으로 인한 다급한 마음은 그 존재가 그다지 깊이 와 닿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를 찾기 시작한 지 삼일이 지났을 때였다. 아침을 먹은 여자가 전단지를 들고 집을 나서는데 담장 옆 마치 버린 이불보따리처럼 둥그렇게 있는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머리를 하수구 쪽으로 향하고 새우처럼 구부러져 있는 모양새가 단박에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다. 그 길로 바로 병원으로 옮겨 치료 받았지만 아버지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바보였다. 겁에 질린 모양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불안한 눈을 굴렸고 사고 난 경위에 대해 전혀 몰랐다. 의사 말로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삼일 동안 어디서 누구한테, 왜 이런 봉변을 당했는지 알 길이 없는 여자는 답답하기만 했다. 그간 돈을 요구하는 협박 전화가 없는 것 보면 단순 돈을 노린 괴한 짓으로 보기엔 뭔가 석연찮고 그렇다고 원한으로 보기엔 짚이는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몇 달이 지났다. 아버지 몸은 회복이 되었지만 기억이 돌아오지 않았다. 간혹‘오씨 놈’이라는 말만 했다. 평소 하지 않던 아버지의 간헐적인 말에 여자는 그 아버지인 오씨 아저씨를 찾아갔지만 언제 갔는지 다른 곳으로 이사 가 집이 비워있었고 그 역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린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 소식을 알려고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그렇게 떠났을 땐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여자는 생각해서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은 사라진 지 이 년만이었다. 여자는 반갑지 않았다. 그로부터 들은 말은 너무 충격적이었고 그를 미워하기에 충분한 양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를 저렇게 다치게 한 사람이 오 씨 아저씨인 그 아버지라는 사실에 여자는 풀쑥 주저앉았다. 처벌 받을 수 있는 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자면 그 만큼 잔인해야 하는 자신 처지가 되어서다. 
  자신 아버지를 대신해 용서 비는 그에게 여자는 그 아버지를 처벌하는 대신 그와의 결별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드리지 않았다. 보상이라도 하듯 수시로 대문 앞에 쌀을 갖다놓았고 적지 않은 돈을 마당에 던져 놓고 갔다. 그 일을 일 년 넘게 하였지만 여자는 끝까지 외면하였다.
 
  여자는 찻집 유리창 너머로 마트 쪽으로 고개 돌린다. 대형 유리창엔 꽃게와 생선 사진이 금방 바다에서 건저올린 것처럼 싱싱하다.
“숙경아, 기억 나? 시험이 끝나는 날 영화관 가서 영화 본 것, 중국집 가서 자장면 먹고 돈이 모자라 한 시간 알바 한 것, 이런 추억들이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내 뇌리에서 돌아다니고 있어.”
  여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 싶었던 일을 그는 복잡한 구조 속에서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점처럼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는 숙연해 졌다. 과거를 추억하고 있다는 건 추억한 대상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과, 가지고 싶은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외로움을 대변하고 있는 듯해서다. 
  여자는 그를 본다. 흰 와이셔츠에 검은 슈트차림 위로 드러난 피부가 여름 바캉스를 다녀온 듯 구릿빛 피부가 젊은 청년을 유지하고 있지만 매끈한 둥근 턱 아래 도톰하게 붙은 살이 서른 중반의 나이를 보이고 있다.    
“결혼 했어?”
아무리 봐도 한 여인의 남편 냄새를 풍기지 않는 그에게 여자가 묻는다.
“아니, 하지 않았어. 할 수 없었어.”
  여자를 직시하는 그 눈이 이유가 있음을 보인다. 그도 자신처럼 그늘을 가지고 살고 있다는 한 단면을 읽은 여자는 물어본 것을 후회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어쩜 자신을 두고 한 말 같아서다. 마음이 설핏해지면서 자글거림을 가라앉히려고 여자는 물로 목을 적힌다.  
“결혼 너 때문에 못했어.”
그 질문에 여자는 놀라지 않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마치 결혼 못하게 자신이 막은 것처럼 말해서다.
“내가 결혼 못하게 막았어?”
“너와 결혼하고 싶은데 네가 그것을 받아주지 않잖아.”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바보가 되어 살고 있는데 어떻게 너와 결혼을 해? 너 같으면 그게 가능한 거야?”
  여자 눈꺼풀에 냉기가 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왜는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이건 분명해 내가 결혼하지 않은 것은 너 때문이야. 비록 어린 학창시절이었지만 우리 사랑했잖아. 그리고 결혼하자고 약속도 했잖아. 네 부모님께 잘하고 너 사랑하며 살고 싶어. 내 아버지가 저지른 죄 내가 살면서 갚게 나 좀 받아주면 안 되겠어?”
처음으로 갖은 의미가 인생을 지배하듯 여자와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을 그는 그대로 들고 있었다.
“그만해.”     
  더 이상 복잡함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여자는 말을 자르고 일어나 찻집을 나온다. 좋게 헤어지려고 했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불편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게 했다. 잊었다고 했는데 그를 향한 그늘이 아직도 자신 가슴에 일순 남아 있음을 여자는 느낀다. 마음은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행동이 냉정을 보였으니 아직 그 일을 잊지 않고 있다는 한 대목을 보여준 셈이다.
  아버지가 사고 나기 전까지만 해도 여자에게 있어 그는 좋은 남자 친구였다. 실수를 해도 미소로 바라봤고 부모님한테 말할 수 없었던 고민을 말했고, 제빵 집에서 빵을 먹으며 예쁘게 사랑도 했었다. 그때 그는 후광이 환한 백마 탄 왕자였다. 빈틈없이 내부가 꽉 찬 큰 그릇 같은 매력이 그를 좋아하는데 있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진실, 아름다움, 희망 그런 것들이 활짝 핀 꽃에서 시작된 환함이었는데 그런 열망이 꺾이는 건 잠깐이었다. 아버지 사고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철저하게 그를 버리게 했다. 그런 자신을 아직도 사랑으로 감싸고 있다니 그냥 흘려버리기엔 그 사랑이 깊이 묻어온다. 그런 것을 볼 때 오늘도 끝까지 좋은 자리를 하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자신 행동은 아직도 성숙이 들 된 미숙아라는 생각을 여자는 한다. 
  이만큼 내려와 걸음을 멈춘 여자는 찻집을 바라본다. 아직도 멀거니 앉아 자신을 보고 있는 그 모습이 유리창에 잡힌다. 여자는 다시 되돌아가 그 손을 잡아줄까 하다가 그냥 걸어간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는 그와 기분 좋게 헤어지지 못한 것이 전에 없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전화번호라도 받아놓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뒤숭숭한 마음이 무슨 일을 해도 시원하지 않았고 그가 한 말들이 순간순간 머리끝을 잡아당겼다.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아 다시 고객을 은행에 나오게 하는 실수를 범하는가 하면 저녁 먹은 것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 그한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연락처 아는 것은 금방이지만 여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 마음으로는 그 아버지를 용서했지만 머리는 여전히 나쁜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있는 이상 그가 아무리 만단애걸해도 결혼하는 건 허락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다.
 
  그 아버지는 A건설 사장이었고 여자 아버지는 공무원으로 군청에 근무했다. 서로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은 그와 여자가 다니는 학교 운영위원을 맡으면서 알게 되었다. 건설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던 그 아버지는 주로 관공서 일을 하였다. 입찰 받아 공사 하면 돈이 되는 건설업자들은 관공서 일을 하려 했지만 공사 따내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다. 입찰 과정이 까다롭기도 하지만 인맥이 뒤를 받혀줘야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건설업자들은 관계자 직원들을 가까이 두고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마침 입찰을 맡고 있었던 여자 아버지는 그 아버지와 안면이 있지만 특혜 주는 것 없이 공무원으로서 원칙대로 그 본분을 다했다. 그러자 그 아버지 회사가 번번이 입찰에서 떨어졌다. 일이 그렇게 틀어지자 아버지한테 불만이 많다는 것을 어느 날 저녁 먹으면서 여자는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그 말을 들인 지 일주일 만에 아버지가 초주검이 되어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  
  가장으로서 식구들을 책임져야 하는 일은 정말 힘이 들었다. 매달 생리하는 것처럼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날아오는 아버지 병원비 부담으로 여자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더 강해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침 은행 공개모집에 시험을 쳤고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한 여자는 은행에 취직 했지만 병원비 지출로 인해 형편이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 세월에 쫓기다보니 연애라는 것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겠기에 지인 소개로 두 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그것도 남자가 마다했다. 결혼해도 친정을 돌봐야 한다는 조건이 붙자 남자들은 슬그머니 거리를 두었다. 그런 남자들의 속물을 본 여자는 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결혼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일에만 충실했다.
  그런 날들이 때론 화가 났다. 젊은 자신 청춘이 아버지한테 사설처럼 묶여 있어서다. 그럴 땐 볕은 없고 음지로만 이어지는 그늘을 벗어나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었고 아버지가 빨리 죽어줬으면 하는 못된 생각도 했었다. 


  그와 그렇게 헤어진 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대출상담을 끝내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의자에 착석했다. 놀랐지만 친절이 몸에 밴 여자는 습관적으로 미소를 뛰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직원들이 눈치 채지 않게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몇 자 적어서는 여자한테 건네고 은행을 빠져나갔다. 오는 일요일에 지난 번 봤던 찻집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자신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정한 약속이지만 기분이 나쁘다거나 싫지는 않았다. 자신 때문에 지금껏 결혼하지 않고 있는 그를 위해 결혼은 받아줄 수 없지만 만나면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속 짧은 행동은 이젠 하지 않으리라 했다.  
  여자는 이번 일요일에 그 만나러 간다는 말을 어머니한테 말하지 않았다. 그가 오씨 자식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알아서 좋을 것이 없어서다. 일요일이 느리게 왔다.  
  이윽고 일요일, 여자가 약속 장소에 나갔을 때 그는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오늘도 단정한 슈트차림이었다.
“일찍 나왔네.”
백을 옆 자리에 놓으며 여자가 단정히 앉는다.
“귀한 사람 만나는데 미리 와 있어야지.”
“귀한 사람?”
여자는 생뚱맞은 얼굴로 본다.  
“나한테는 그래. 지금 네가 내 앞에 이렇게 있다는 게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찾은 기분이야.”
  오늘 이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은 듯 입가에 미소가 깔린다. 
“숙경아, 세상에는 우리 아버지처럼 용서 받지 못할 나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범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고하지 않는 착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너로 통해 알았어. 우리 아버지와 나를 찾아와 욕 한 번 하지 않는 네 마음 알고 있어. 그걸 알기에 너를 잡고 있는 거야. 차라리 네가 우리 아버지를 구속시켰다면 난 이렇게까지 미안해 하지 않을 거야. 죄 지었는데 벌 받지 않은 죄책감은 스스로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 아버지가 보여줬어.”
“그래. 내 마음 제대로 읽었네. 너를 사랑했던 그 순간들이 네 아버지를 처벌 못하게 했어. 네가 오 씨 아저씨 아들이었다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어.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어떻게든 벌 받게 했겠지.”
“숙경아, 우리 아버지 네가 벌주지 않아도 그 죄 벌써 받았어.”
  그 시선이 발아래로 떨어진다.
“죄를 받았다니?” 
여자는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본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 네 아버지 대신 하늘이 벌을 준 것 같아.”
  엄지손가락으로 테이블 끝을 긁으며 그가 말했다. 
“왜 돌아가시게 했어? 내 아버지로부터 용서받기 전에는 돌아가시지 않게 했어야지. 네 아버지 우리 아버지한테 용서 빌지 않았잖아. 우리 아버지도 용서하지 않았고!”  
  여자는 버럭 소리 지른다.
“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아버지 역시 괴로웠는지 매일 술로 살았고 그러다 어느 날 집을 나가 연락까지 끊었어. 그렇게 산 지 일 년 지나 경찰 연락 받고 갔을 땐 교통사고로 이미 돌아가셨어.”
  여자는 다음 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죽음은 모든 것들과 끝낸 것으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도 살아있는 자만이 하는 것이라 생각이 들어서다. 지나친 욕심이 타인을 파괴시키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다가 타의에 의해 비참하게 죽은 것은 죄를 받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살다 죽으라는 타고난 운명인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이 벌주지 않았는데 어찌 그 아버지가 비명행사를 했겠는가. 잘못 들어선 엇길은 뒤돌아 나오기 힘들고 한 걸음 내딛었다가 두 걸음 물러서기가 예사인 세상을 볼 때 스스로 화를 누르지 못한 분노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여자는 그 아버지 죽음 소식에서 뚜렷이 느낀다.      
  여자는 잠시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도 욕만 하였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는지 말하지 않았다. 다친 쪽이 아버지니까 피해자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어쩜 아버지가 피해자가 아닌 피의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당하지 않기 위해 먼저 물어버리는 동물의 식성을 본다면 그런 여분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여자는 십삼 년 전 그가 아버지를 찾아와 용서 빌었던 그때를 기억한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고 그렇게 한 지 다섯 번째였다. 그가 병원에 나타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누가 문병와도 거들떠보지 않고 누워만 있던 양반이 탄력 받은 스프링처럼 벌떡 일떠서 멱살을 잡고 지르는 고성은 환자 같지 않았다. 그런 성화에도 그는 죽을 죄를 짓은 듯 무릎을 꿇어앉은 채 날아오는 욕설을 온몸으로 다 받았다. 저대로 두었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았던 여자는 빨리 밖으로 나가라고 그에게 소리쳤다. 그때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온 간호사가 아버지한테 진정제 주사를 놨으면서 병실이 조용해졌다. 
  그런 아버지의 분을 본 여자는 아직 가지 않고 복도에 서 있는 그에게 다가가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그때서야 등을 보이고 돌아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무리에서 벗어난 동물처럼 외로워 보였다. 이렇게까지 박정스럽게 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버지 가슴에 응어리진 상처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나온 성질머리였다. 여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죄는 그의 아버지가 죄었는데 벌은 그가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버지가 잠든 것을 확인한 여자는 창가 쪽으로 향했다. 성당을 뒤로 하고 계단에 그가 앉아 있었다. 저렇게 무시당하면서도 아버지로부터 용서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아버지를 향한 죄송이 아니라 어쩜 죄인의 자식이라 사랑하면 안 되는 자신 처지 임에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행동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여자는 했다. 
  아버지는 용서하지 않았지만 피의자의 아들로서 이제 더 이상 용서 비는 일은 하지 말라고 여자는 문자 보냈다. 그러자 그는 고맙다는 문자를 보내왔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엔 다른 행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오씨가 죽었다는 말을 여자는 아버지한테 말하지 않았다. 어쩜 저렇게나마 버텨내는 것도 오씨를 미워하는 힘 같아서다. 오씨가 죽은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못된 놈이라고 씹어내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란 병이 겹쳐지면서 자신을 싸고 있는 주변성까지 잃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여자를 이웃집 아줌마로 봤고 오씨를 향한 욕도 하지 않았다. 
  공원으로 나오자 바람이 얼굴을 쓰다듬고 지나간다. 환자복을 입은 사내 몇 명이 화단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고 있다. 여자는 휴- 하고 공기를 들이마신다. 행단보도를 건너 좁은 도로를 걷는 동안 아버지는 가로수 나무를 하나하나 헤아린다. 
“아주머니, 이 길로 계속 가면 내 고향 진주가 나오지요? 잘 보고 가소. 이정표 잘못 보고 가면 엉뚱한 곳으로 빠지니까.”
  지금 아버지 머릿속은 고향에 가고 있었다. 난데없이 여자는 아주머니가 되었고 휄체어를 타고 있는데 자동차 탄 것으로 알고 있었다. 여자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고민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어느 새 듣지도 못한 이상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현실이 무시된 아버지를 한 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여자는 갑자기 방광이 팽팽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이 끈질기게 붙어 귀찮게 하는 존재로 답답해서다.    
  오후 시간이라 그런지 공원은 비교적 한가하다. 주차장을 지나 방갈로 옆을 지나는데 노래를 멈춘 아버지는 야단맞은 아이처럼 기가 죽은 얼굴로 여자를 본다.  저런 표정은 아버지가 대변 봤을 때 하는 표정이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날 법한 독한 냄새가 코를 비비게 한다. 
“숙경아, 미안하다. 냄새 많이 나지?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왜 이렇게 너를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구나.”
  지금 당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아버지는 알고 있다.
“아버지, 괜찮아요. 빨리 가서 목욕 시켜드릴게요. 조금만 참으세요.”
  거기까지 말하는데 까만 승용차 한 대가 비상등을 켜고 선다. 휄체어를 옆으로 돌리는데 그가 차에서 내린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그가 허리를 낮춰 인사 한다.
“이 나쁜 놈! 우리 딸 납치하려고 그러지?”
  아버지 손은 어느새 그의 뺨을 갈기고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리  틈도 없었고 그 역시 예측하지 못한 듯 당황한다.
  아버지는 오씨 아저씨 아들인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단순 딸을 납치하려는 사내로만 봤다. 깊어진 병증세가 그를 몰라본 것이다.  
“미안해.”
  뒤로 물러서며 여자가 말했다.
  그러는 사이 조금 전 화냈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큰 실수를 한 것처럼 시무룩해 져 있다. 
“아버지 모셔다 드릴께.”
  그가 차 문을 열어놓고 휄체어를 당긴다. 
“지금 아버지한테 냄새 많이 나. 그러니 그냥 가.”
여자가 아버지 쪽으로 다가서는데 그는 아버지를 안아 뒷좌석에 앉힌다.
“냄새 많이 나지?”
  그 뒤통수에 대고 여자가 말했다.
“괜찮아. 이 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 숙경아.”
“다음부터 이러지 마.”
  요양방원 앞 과속방지턱을 넘어서면서 차가 출렁한다. 그 바람에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앞을 본다. 놀란 모양이다.  
“이 보게 잘 생긴 청년, 우리 딸 잘 부탁하네.”
  조금 전 자신이 그한테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르는 아버지 눈빛은 진실성이 담겨있다.   
“아범님, 걱정하지 마세요. 숙경이 제가 잘 보호하겠습니다.”
  차에서 먼저 내린 그가 휄체어를 내리고 아버지를 안아 앉힌다. 여자가 앞으로 밀고 가려는데 아버지는 팔을 길게 뻗어 그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러자 그는 허리 숙여 인사한다.  
“어르신 일을 보셨군요. 따님 수고 하셨어요. 이젠 집에 가셔도 됩니다.”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요양사가 달려와 휄체어를 밀고 안으로 들어간다. 
“전화할게.”
  돌아서 가는 그를 여자는 묵묵히 본다. 그나 자신이나 존재의 덫에 걸려 정글 같은 세상을 그래도 잘 버텨왔고 버텨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배려보다 야박이 더 목 죄 온 시간들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는 것에 여자는 차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서 있다.

  요양사 부축 받은 환자가 지나가고 뒤를 간호사가 따라간다. 티브이 소리와 함께 고향에 데려다 달라는 정신없는 노인 목소리가 허공에서 놀고 있다. 여자는 계단을 내려와 그가 사라진 쪽을 걷는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신호에 걸린 차들이 길게 서 있다.    끝  





*박마리 1998년 《라쁠륨》 시 신인상..2003년 《한맥문학》 소설 신인상. 2012년 《한국소설》 신인상. 저서 『그네 타는 날들이 아름답다』, 『통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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