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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8호/시집속의시/정치산/바다, 그녀, 섬 꽃으로 피어


바다, 그녀, 섬 꽃으로 피어
― 박하리 시집  『말이 퍼올리는 말』중에서


정치산



  논둑길에 천년의 눈꽃이 피었다. 한겨울 꽁꽁 얼었던 얼음장이 깨어지고 뒤엉켜 바다로 흘러든다. 밀고 밀리며 떠내려 온 얼음이 섬 둘레를 가득 메운다. 어디에서 흘러온 얼음인지 알 수가 없다. 겨울의 시작은 섬을 건너 건너 또 건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바다가 온통  폐허다, 외줄에 묶여 있는 여객선은 얼음 위에 앉아 있다. 육지로 향하는 발들이 선착장에 묶여 있는 동안에도 얼음은 끊임없이 섬으로 밀려든다. 선창가의 보따리들이 얼음 밑으로 가라앉는다. 얼음이 힘 빠진 여객선을 바다로 밀어낸다. 얼음이 잠자는 섬을 먼 바다로 끌고 간다. 바다는 사납게 울고 얼음덩어리들은 춤을 추어도 섬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겨울을 지키려는 바람이 아직도 바다를 휩쓴다. 발길 돌리는 논둑길에 천년의 눈꽃이 피어있다.
―「서검도」


  서검도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서검리에 딸린 섬이다. 삼산면의 주도인 석모도에서 서쪽으로 8km 해상에 위치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사신이나 상인들이 황해로부터 한강 입구로 진입할 때 선박을 검문하던 검문소가 있는 섬이라는 데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특히 강화도의 서쪽에 있어 서검도라 하였고, 이는 강화도 남동쪽에 위치한 동검도와 대비를 이루는 지명이기도 하다.
  서검도의 높은 곳에 올라가 보면 북한땅 서해도 연백이 지척인 것처럼 내려다 보인다고 한다. 북방한계선에 가까운 곳이라 예전에는 주민들의 통제가 심했다고 한다. 가끔 밤에는 조명탄이 쏘아 올려 지기도 하고 불시로 주민들을 검문하기도 했단다.
  서검도에 가기 위해서는 우선 외포리에서 석모도까지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석모도 석포리에서 하리까지 가서 하리에서 하루에 두 번 왕복운행 되는 작은 페리호를 타야만 도착하는 곳, 그 곳이 서검도다.
  눈 내린 논둑길엔 눈꽃이 피어있고 한 겨울에는 꽁꽁 얼었던 얼음들이 깨어져 뒤엉켜 바다로 밀려오는 곳, 외줄에 묶인 여객선은 얼음들에 의해 발길이 묶인다. 육지로 향하는 발들이 선착장에 묶이고 인적 끊긴 매표소에는 떠나지 못한 발들이 있다. 보따리를 끌어안은 여인의 마음이 얼음 밑으로 가라앉는다. 겨울은 바다를 휩쓸며 발목을 붙든다. 밀고 밀리는 유빙들의 춤에도 섬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섬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그 길 위에 천 년의 그리움이 눈꽃을 피운다. 육지를 향해 떠났던 발들이지만 가슴속 우물에 숨겨 둔 그리움이 눈꽃을 피우는 것이다. 바다로 인해 갇히기도 하고 열리기도 하는 섬의 바다에서 떠나려한 마음이나 돌아서려는 마음들이 출렁이는 바다의 얼음에 밀리고 밀려서 그리움을 씻어 내며 꽃으로 피어 있으리라.


출렁거리며 들어오는 바다의 춤은 간절함이다.
집어삼킬 듯 다가오는 바다에게 섬은 꽃이다.


툭툭 털어지는 살비듬은 세월의 양식이고,
무수한 꽃들의 반란이고, 꽃들의 속삭임이다.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가두려는
바다는 배밀이를 멈추지 않고 끝없이 떠난다.


두 손 모아 담아보려는 바다는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나간다.


섬의 바다는 남기는 것을 잊었다.
시간이 멈춘 섬은 미륵이 된다.


바다는 배밀이로 슬금슬금 밀고 들어와
섬을 철석철석 때린다.


―「섬, 그리고 바다」


  꽃으로 피어 바다를 끌어들이고 떠나보내는 섬은 세월의 양식이고 툭툭 털어지는 살비듬이다. 출렁거리며 들어오는 바다에게 섬은 꽃이고, 무수한 반란이고, 속삭임이다. 그 모든 것을 두고 떠나는 섬의 바다는 남기는 것을 잊으며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나간다.  
  떠나는 바다를 붙잡기 위해 젖 먹던 힘까지 끌어 가두어 보지만 바다는 여지없이 떠나고 만다. 그리고 다시 배밀이로 슬금슬금 밀고 들와 섬을 철석철석 때리는 것이다. 섬은 또 다시 꽃으로 피고 바다를 끌어들인다. 무수히 반복되는 세월에 시간이 멈춘 섬은 모든 걸 비우고 미륵이 된다. 섬사람들의 마음이리라. 만선을 위해 떠났거나 꿈을 향해 떠났거나 떠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지만 슬금슬금 밀고 들어와 철석철석 섬을 때리는 바다처럼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잡으려 하면 떠나버리는 바다를 젖 먹던 힘까지 끌어내어 가두어도 떠나버리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섬은 꽃으로 피어 다시 바다를 유혹하고 있다. 바다를 끌어 들이고 있다. 여전히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리움의 달을 따면서,


그녀는 밤마다 달을 딴다.
딴 달을 가마솥 뚜껑 위에 올려놓는다.


그녀는 낮에도 달을 딴다.
불 꺼진 방에 옮겨 놓기도 하고
고향을 향해 널어놓기도 한다.
바닷가에 떠있는 뱃머리 위에 걸어 놓기도 한다.


어머이, 글쎄 고향에서 본 달이 여기에도 있더이다.
달이 꼭 닮아 있더이다.


그녀의 섬에 달이 뜬다.
고향의 달이 그녀의 섬에도 뜬다.


―「그녀의 달」


  그리움에 지친 그녀는 밤마다 달을 딴다. 딴 달을 가마솥 뚜껑 위에도 놓고 불 꺼진 방에도 놓아두고 고향을 향해 널어 두기도 한다. 바닷가에 떠있는 뱃머리에 걸어 놓기도 한

다.
  고향에서 본 달과 꼭 닮은 달을 따서 그녀의 섬에다 걸어둔다. 고향 우물 속에 숨어 있던 달이 그녀의 섬에도 뜬다. 고향의 달이, 잠깐 잠든 사이 하늘에서 외출증을 받은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섬에 뜬다. 달은 그녀의 고향인 서검도다. 그녀의 섬에만 뜨는 달이고, 어머니다. 옥탑 뜰 채반에 널어놓은 생선이다. 어머니가 남겨놓은 푸짐한 밥상이다. 그녀의 마음 밭에 피는 꽃이요 여유요 그리움이다. 그녀는 밤마다 달을 따다 걸어놓고 꽃을 피워 바다를 안는다.





*정치산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바람난 치악산』. 강원문학 작가상,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원주문학상 수상.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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