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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8호/시집속의 시/양진기/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
― 나석중의 『외로움에게 미안하다』중에서


양진기



들꽃 찾아가는 한적한 길
숲 그늘에 목관 하나 걸려 있다
섬뜩했으나 그것은 빈 고치일 뿐
오랜 죽음에서 깨어나
새 날개를 얻어서 날아간 이는 누군지
이제는 내가 빈 고치 안에 들어가 눕는다
바람이 뚜껑을 덮고 텅텅 못질을 한다
죽은 다음에야 죽음을 알겠지만
이대로 영원히 잠에 든다면 관 밖
기억을 사로잡는 세상의 그립고 낯익은 것들
과연 망각의 두려움을 잊을 수 있을까
웅크리고 파들던 유년의 아랫목 같아
사람의 끝이 무섭지는 않다


―나석중, 「우화羽化」전문


  생명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생명체의 숙명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들은 죽음보다는 살기를 원하여 목숨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분투한다. 미물인 곤충이나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인간이나 생존본능은 다를 바 없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죽는 과정에서의 고통뿐만 아니라 세상과의 단절로 영원히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진다는 데 있다.  


  시인은 아마도 들판에서 곤충의 유충이 남긴 빈 고치를 보고 관을 떠올렸을 것이다. 완전변태 곤충이 유충에서 날개를 가진 성충이 되려면 번데기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번데기 상태에서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움직일 수도 없는 죽음과도 같은 시간이 일정 기간 지속된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고치가 그대로 관이 될 수도 있고 내적으로 숙성된 과정을 거치면 고치를 찢고 나와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지게 된다. “오랜 죽음에서 깨어나/새 날개를 얻어서 날아”갔다는 것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과정을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랜 죽음”은 현실에서의 삶일 수 있고, 이러한 현실에서의 삶을 견디며 숙성되면 마침내 날개가 달린 다른 존재가 되어 번데기 상태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공중이라는 세계가 펼쳐진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훌쩍 세상을 버리고 홀몸이 되어 날개를 달고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고 노래한 우화등선은 현실 세계를 버리고 피안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므로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지는 죽음일 수도 있고, 현실 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나 한 차원 높은 신선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의미 할 수도 있다. “이제는 내가 빈 고치 안에 들어가 눕는다”면서 시인은 죽음을 공포로 느끼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웅크리고 파고들던 유년의 아랫목”처럼 포근하고 따뜻하게, 무섭지 않게 받아들인다.


  나석중 시인이 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주변의 사물을 깊게 관찰하여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데 능숙하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이 있다. 그의 여섯 번째 시집 『외로움에게 미안하다』에 수록된 시들을 읽으면서 내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어느 시편 하나 빠지는 게 없다. 육십이 훨씬 넘는 나이에 등단하여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렇게 맹렬하게 시를 짓고 이만한 시적 성취를 보여준 이는 무척 드물다. ‘외로움과 슬픔에게 미안해하지’ 마시고 하루 세 끼 꼭 챙겨 드셔서 좋은 시편들을 계속해서 남겨주시기를….





*양진기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신전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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