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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9호/특집 오늘의시인/최영규/바람이 되어 그 소리가 되어 외 2편


바람이 되어 그 소리가 되어 외 2편
―안데스·29


최영규



  새벽까지도 바람은 텐트를 잡아 흔든다. 정신에 섬뜩 불이 켜지고, 밤새 어둠을 밟고 온 새벽은 칼날처럼 선연하다.


  고요한 함성, 명치 끝 어디쯤에 뭉쳐있던 불꽃인가. 저기, 라마제*때 걸은 불경佛經 빼곡히 적은 깃발들의 끝자락에 매달려 바람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렇게 온몸을 뒤척이던 바람은 나를 흔들어 세우고 낭파라를, 갸브락빙하를, 끝없는 티벳의 설원을 간다. 내가 딛고 서있는 여기 이 땅의 끝인 초오유*의 정상 너머로까지 뜨거운 갈기를 세운다.


  아, 거대한 빙하와 속을 알 수 없는 높고 거친 설산들. 그들 앞에 팽개쳐진 듯 나는 혼자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러나 가고 싶은 그곳으로 바람이 되어, 그 바람의 소리가 되어.

  

 *라마제lama祭는 일반적으로 원정대들이 등반의 성공과 무사귀환을 산신에게 기원하는 전통적인 티베트의 불교의식이다.
   *초오유Cho Oyu(8,201m)는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중 6번째의 높이를 갖고 있는 봉우리로 에베레스트Everest(8,848m)로부터 북서쪽으로 28Km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초Cho는‘신성 또는 정령’이란 뜻이고, 오O는 여성의 어미語尾로,‘초오’는‘女神’이란 뜻이 되며, 유Yu는 터키옥玉 즉 보석을 뜻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초오유를 ‘터키옥의 여신’을 뜻한다고 말하지만,‘신의 머리’, ‘강력한(큰)머리’, ‘강한 통치자’, ‘큰 산’등으로 해석되기도 하나, 서티벳 지역의 라마승들은 ‘거대한 머리’를 뜻한다고 얘기한다.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호 발표>





나는 카주라호 역에서 눈동자 없는 사내를 만났다
―안데스·30



1.
파열이 만든 깊은 간극
피켈로 얼은 눈을 찍어 저만치 던져본다
깊은 메아리로 답을 하는 크레바스, 되돌아온
두려운 눈빛의 시간
돌아오지 못한 향기의 시간


장딴지를 툭 건드리는 장님의 작대기
백년은 넘었을 침목들이 버티고 있는 카주라호Khajuraho역*
건너편 플랫홈


그곳에 그을린 석상처럼 서서
다시는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열차, 창에는
세상에, 감옥처럼 창살이 있다
그 안쪽 컴컴한 틈새로 빠졌던 시선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말았다


눈동자가 없는 눈
그와 나는 불편한 자리로 마주섰다, 크레바스,


당신은 나를 볼 수 없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


2.
우리는 지금을“이때였어!”라고 하자
시간은 눈빛이거나 소리였을까
생각의 흔적마저 지워가는 것


냄새로 돌아오지 않는 향기
아름다움은 처음부터 사내 것이 아니었다.


3.
푸른 구름이 떠내려와 해를 가린다
기온이 뚝 떨어진다
춥다
누가, 검은 눈동자를 건너는 것일까


지도에도 없는 크레바스
살아서는 건널 수 없는
누구나 죽어서야 다시 살아나는, 살아난다.


   *크레바스crevasse는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위험한 틈을 말한다.
   *카주라호역Khajuraho Railway Station은 뉴델리에서 남동쪽으로 620km 정도 떨어진 인도 중부의 유서 깊은 도시의 철도역.


<웹진 《공정한 시인의 사회》 2017년 7월호 발표>





<신작시>


이제 겨우 이틀째 외 2편
―안데스·33


1.
끌어안을 듯
산자락을 뻗쳐 벌리고 있는 능선


셀파 텐징
나와 묶여진, 수數로 적을 수 없는
무한정의 인연들 중에
이런 인연이 있었을까
마치, 나의 목숨 떠받치듯
내 뒤를 밀고 온다
쇳소리 같은
날선 숨결 사이에 두려움을 숨기고 있는
내 호흡을 흉내 내어
자신이 뒤에 있음을 알린다.


2.
텐트 바닥이 얼어 올라오는 새벽, 꿈속이었다
삼신三神이라 불리는 할머니
집채만 한
명패命牌 보따리를 이고 와서는
산사태, 너덜을 쏟아내리 듯 내 앞에 쏟았다

파묻혀 죽을 듯 놀라
허공을 움켜잡고 버둥거렸는데


나와 이어 묶을 명패는 없었다


이 무한정의 명패들
순간, 수 만 송이의 붉은 꽃송이가 되며
보따리는 터져나가고
그 차가운 꽃송이들이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 이제 겨우 이틀째.





길게, 길게
―안데스·34



종일 바람이 불었다
잠시 쉬던 바람, 석양빛이 스치자
움키듯 베이스캠프 흙바닥을 긁어
황토기둥으로 솟구쳐 올랐다
바람에 놀란 하늘
붉은 먼지로 가득 찼다


하얗게 얼어붙은 텐트를 긁어대며
밤새 사각거렸던 생각들
먼지기둥에 빨려 들어가
팔이라도 잡아챈 듯 구겨진 표정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다부체* 쪽으로 끌려갔다


키 보다 낮아진 석양


철수하는 셀파와 대원들의 발걸음
태우듯 차갑게 비추고
어둠을 섞어
길게, 길게 발자국을 그리는 그림자
대원들과 함께 귀환하고 있다.


   *다부체(6,495m)―네팔 동부 쿰부히말 지역에 있는 봉우리로 아마다블람(6,856m)의 서쪽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는 봉우리. 다부체란 ‘말 앞의 발자국’이란 뜻임. 





처음, 그것이
―안데스·35


높아질수록 거칠어질수록
대화가, 마주보던 대원들의 표정이
돌부리에 채이며 쓰러질 뻔한 숨소리가
있지도 않았던 일처럼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침묵은 두려움으로부터 오는 어둠일까
눈뜰 수 없는 설원의 밝음일까


겹겹이 껴입었지만
불편하도록 두꺼운 장갑과
삼중화를 스미고 들어오는
바라보는 눈빛을, 소리를,
만용과 깍지꼈던 자신감까지 얼려버리는
저 비탈의 정리되지 않은 높이의 힘


처참한 사고의 상상
걸을수록 그만큼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 안 깊숙한 곳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덜그럭거리고 있는
새파랗게 질려서,
투명한 알몸처럼 감춰지지 않는


그러나 있지도 않았던 일 같았던
없을 곳에 대한 사라지지 못한 끌림이
없던 소리가, 없어진 소리가,
오르기로 오르겠다고 결정했던 처음 그것이
걸음이 되어 걸음이 되어
여기를 오르고 있다.





<시론>


‘그’를 만나야만 하는


  1.
  詩라는 것이 우리의 정신이 주관하는 삶의 기록이라고 본다면, 스무 명이 넘어선 회사 식구들과 살아내는 복잡함 그 안에도 ‘시가 잔뜩 남겨져 있을 것.’ 가끔 이런 생각에 마음이 닿을 땐, 이런 저런 일 줄이고 정리하여 조금 더 ‘민감’해질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결심하지만, 일상은 그것을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곧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라고 마음을 다잡지만 그것이 결코 편한 마음일 수 는 없었다.
  이렇게 시를 읽고 쓰는 시간을 좀 늘려보려는 결심은 줄곧 좌절로 반복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그’를 만나기도 하고, 뒤흔들린 마음 진정시킬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것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며 나를 비우지 못했다면 받을 수 없었을 선물이었을 것. 이렇게 시는 내게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알려주는 기도 같은 것이었다.

 

  2.
  ‘민감’한 시간에 끌려 나를 노려보던 몇몇 날들을 아예 지워버리는 사건을을 저질렀다. 고산으로 떠난 것. 그곳 어디쯤엔가 있을 ‘그’를 만나러. 고산을 오른다는 건 하늘 가까운 그곳으로 한 호흡에 딱, 한 발짝씩 걸어서 올라야 하는, 한 치 앞의 상황을 가늠할 수 없는 절박한 순간들의 연속인, 절대로 오만함을 금하는 행위이다. 삶과 죽음의 간발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어내야 하는 고산등반. 그것은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박또박 살아내야 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고 있는 오늘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을 신들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인간, 사람의 의지와 뜻이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곳. 인간이 결코 앞장설 수 없는 땅.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발 딛고 싶어 하는 끌림. 그 부근 어디쯤에 나의 시가 있는 것 같다. 다만 그 미지의 땅을 향해 한 줄, 한 줄 써 나아가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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