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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문학 수록작품(전체)

19호/특집Ⅱ 봄, 시의 에너지/박일/봄이 오면


봄이 오면


박일



  1.
  계절은 우리 주위에서 바람과 함께 순환한다. 절기마다 투명한 공기가 되어 물 흐르듯 내면과 외면을 통해 몸속으로 들어와 개개인의 삶을 파고들며 돈다. 그래서 절기마다 기후의 특성은 인간 본성에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네 인간의 삶은 그래서 계절의 향기에 젖어 있다. 늘 신경은 관찰과 사유를 뚫고 통로를 개척하여 내면에 서 있다. 때로 흐르는 신경은 물질적인 환경과 맞닿아 있어 옷과 음식과 집 근처에 서성거리며, 불행을 피해다니려 애쓰며 행복을 위해 뛰어다닌다. 우리의 신경은 세상을 돌고 돌며 길흉화복을 거치면서 조그만 샘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흘러간다.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거쳐 가는 과정처럼. 신경을 쓰며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을 계절처럼 따지며 산다. 이것이 일상적인 삶이다.
 
  2.
  우리 고전소설의 주제를 살펴보면 대강 우리 선조의 삶이 무엇이었는가는 짐작이 간다. 부귀공명을 누리고 권선징악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아니 식자층의 행복의 목표였다. 뒤집어보면 그만큼 불행이 많았기에 그것을 소망하였으리라. 비극보다는 ‘해피엔딩’을 갈구하던 우리 선조들. 그만큼 그렇게 살기가 어려워서였겠지. 현대인들이 ‘부’의 대물림을 위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들은 그래서 더 절실했는지 모른다. 한쪽에서는 안빈낙도를 부르짖었건만 격동하는 세상은 늘 ‘가진 자’의 몫이기에 이기고 보는, 먼저 많이 가져야 하는 ‘물욕의 신격화’를 이룬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현대인은 사람에 대한 욕심, 재물에 대한 욕심이 변화무쌍한 복과 화를 불러 오건만, ‘남을 무시하고 자기 편한 대로 휘두르는 권력’의 맛에 푹 빠져 산다. 그러나 권세는 십년을 못 넘기고, 꽃은 열흘 넘게 피기가 쉽지 않다고 선인先人들은 이야기했었다. 그래서인지 시조와 가사에서는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지향적인 내용이 많이 등장했었다. 혹 세상과의 단절 또는 유배와 관련성이 있기는 하지만.


  3.
  요새 세상이 뒤숭숭하다. 자기의 권력을 내세워 입맛대로 세상을 주무르는 이들이 속속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계政界뿐 아니라 문학 판에서도 무소불위의 추악성을 보이던 이들이 회자되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실력 있는 이를 약자로 만들고, 바보로 만드는 세상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돈으로 권세나 명예를 팔고 사는 행위, 실력은 무시하고 입맛이 맞는 부류끼리 서로 밀고 끄는 그런 몰상식한 세상 만들기는 이제 사라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자기는 깨끗하고 순수하다고 주장하며 전시대前時代를 탈탈 털어내는 그 모습. 그 먼지 속에 자신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인간들. 권력의 위세로 탄력을 받으 며 스스로 무소불위의 신이 되어 빛나는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는 잔치는 없어져야 한다. 당파싸움을 벌이며 스스로의 자정自淨이 없는 사화士禍를 보이는 그런 행태들은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탐관오리들이기에 그러는 게 아닌지.


  4.
  모 대학에서 창작 강의를 듣고 등단한 시인 왈 “시 공부를 합니다.” “시인으로 등단하신 분이 시를 공부해서 써요?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하시기에…….” “상을 탄 시집들을 사다가 열심히 읽어보고 공부해요. 그거 습작하고 잘 만들어지면 발표해요.” “그런 습작이라면 그 시의 아류가 되는 거 아닌가요?” “시가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뼈를 남기고 살은 제거 새로 채색된 언어의 살을 바르는 것을 창작이라고 한다니. 새로운 창작의 세계는 ‘모방 이론’을 능가하는, 새로운 ‘복사 이론’인가 보다. ‘모방하는 기쁨과 모방되어지는 것에 대한 기쁨’을 맛보는 게 아니라, 그대로 뼈대를 베끼고 또 다른 시인의 시에서 시어를 가져와 살로 붙이는 스킬skill이 있는 숙련공이 되는 ‘시창작’이라니, 대단히 훌륭한 스승의 수업법이었나 보다. 창작의 기쁨을 맛보기보다는 과제처럼 끊임없이 써서 발표하고 사유 없는 영혼의 시를 만드는 기술자를 문인으로 칭하는 이 세상은 위대한 세상인가 보다. 남의 시 속에서 시구를 베어내 외과수술 식으로 시의 테두리에 채워 넣은 게 과연 혼이 있는 시가 될까 의구심이 든다. 자기네들끼리는 훌륭한 시로 여겨지겠지만.  
  오늘도 인터넷 상의 여기저기에 수많은 시들이 떠돈다. 훌륭한 기술자들이 그것을 수집해서 손재주로 꿰매며 또 다른 세상을 만든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라. 인간의 욕심이 문학에서도 본질을 손상시키고 있다. 상이란 상은 다 타보겠다고 있는 잡지, 없는 잡지 모두에 투고하고 수상했노라 자랑하는 이들. 과연 그 작품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여기에도 은밀한 재물의 욕망이 손을 뻗치고 있는 건 아닌지. 그 심사평을 쓴 사람의 정신성도 그 욕망에 부화뇌동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여겨진다. 하지만 어쩌랴. 늘 욕망은 없는 것처럼 보이며 고상하게 권력의 탈을 쓰고 존재한다.

  5.
  봄이다. 새로운 탄생을 위하여 이 세상의 겨울과도 같은 죽음의 긴 동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종교에서 말하는 악마들의 소굴 같은 동굴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시는 인간이 아니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은 인간이다. 시인은 말을 가지고 시를 창작한다. 당연히 말은 자기 고유의 개성적인 성질의 말이다. 그 언어는 뼈를 가지고 있고 의미의 살도 지니고 있다. 시는 시인의 정신세계이며 절제된 욕망의 결정체이다. 그 속에는 감성과 이성이 혼융된 살아 있는 생명의 숲이 있다. 하나의 생명이 보여주는 길이 있다. 상승과 하강,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응시, 사물의 현상을 꿰뚫어 내는 힘, 그 모든 것을 살펴보는  사유의 힘들이 있다. 이 봄에는 사유의 근육을 늘려야겠다. 활력이 없는 피부는 죽음의 동굴에 던져두고 내면의 견고한 힘을 길러야겠다.


  언제부터인지 생명력이 없는 시들이 시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 휘날린다. 선진국이 되는 경제적 수치만큼 문화를 위한 시인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갑자기 많아진 세상이다. 취미생활로 시를 쓰며, 노후의 여가를 위해 시인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많고 읽을 만한 공감의 시는 적은 시대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그렇게 되었다 해도 시인이라면 시다운 시를 써야 한다. 이 봄에는 시인이라면 자존심이 있는 향기를 시로 만들어야 한다. 시작에서 끝에 이르기까지의 그 순환, 늘 반복되는 회로를 거쳐 죽음에 이르는 계절이라는 순환의 내면을 꿰뚫어보며 과연 우리의 삶은 무엇일지를 생각하며 시를 써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의 힘이 꼿꼿하게 일어서서 꽃을 피우는 시를 써야 한다. 죽음의 동굴이 오히려 삶의 희망을 던져 주기에. 세상을 초월하는 신경이 온몸에 소름끼치도록 돋게 해주기에.


주먹을 쥐고 그 소리가 아니라 해도
늘 소리가 귓가에 남아 있다
소리 속에 숨어 있는 내 그림자 속에도
소리가 남아
없애야 할 소리의 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귀만 더 커진다
아니 손만 더 커진다


  부정은 부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긍정을 위한 죽음이다. 뒤집어보기 그 자체가 새로운 힘을 얻듯이 우리들의 가치도 그 외면과 내면을 바꾸어 보면 ‘진정한 가치’에 근접할 수 있다. 그것이 올바른 가치의 힘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힘이야말로 시의 원동력이다. 봄에 뿌려진 씨앗에서 새싹이 돋아 키를 키우며 자라날 때 시인의 눈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물도 위로 흐르는’ 것을 본다. 그리고 시인은 ‘흐름’을 본 그 힘으로 신경망을 일으켜 세워 시를 쓴다.





*박일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사랑에게』, 『바람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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