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자 시인(2011년 가을호, 제43호)

by 백탄 posted Dec 1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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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자 시인

1938년 8월 31일 경남 함양 출생/숙명여대 대학원 졸업/1962년 <현대문학>지에 박목월 선생 추천으로“도정연가” “연가 3수” “사모곡”으로 등단/시집 <가슴엔 듯 눈엔 듯> <친전><어여쁨이야 어찌 꽃뿐이랴> <저 빈 들판을 걸어가면><기타를 치는 집시 의 노래> <조용한 슬픔> <목마른 꿈으로써> <은의 무게만큼><얼음과 불꽃>외 다수/시조집; <소멸의 기쁨>/산문집; <한 송이 꽃도 당신 뜻으로> <허영자 선수필집>외 다수/한국시인협회상, 월탄문학상, 편운문학상, 민족문학상, 펜문학상, 목월문학상 등 수상/성신여자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등 역임/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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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무제無題



돌틈에서 솟아나는

싸늘한 샘물처럼

눈밭에 고개드는

새파란 팟종처럼

그렇게

맑게

또한 그렇게

매웁게.






휘발유



휘발유 같은

여자이고 싶다

무게를 느끼지 않게

가벼운 영혼

뜨겁고도 위험한

가연성(可燃性)의 가슴

한 올 찌꺼기 남지 않는

순연한 휘발

정년 그런

액체 같은

여자이고 싶다.





심장에 붉은 화살을 꽂고


건드리지 마라. 흔들리지 않는 눈빛. 심장에 붉은 화살을 꽂고 오래 걸어온 그의 내력은 단단하다. 가지런한 어깨선과 조용한 뒤태. 바람도 공손하게 그의 그림자를 따르는 오늘, 지상에 발을 묻은 꽃들도 그를 향해 수굿이 고개 숙인다. 깊고도 깊어서 슬픈 詩여, 나는 왜 내 온몸을 던져서 저 속에서 목 놓아 울어보고 싶은 걸까. 비상처럼 떨리고 핵처럼 붉은 그의 詩. 나는 내 더러워진 맨발을 저 속에서 수도 없이 씻었다. 세월은 많이 흘러 이제 그는 백발이다. 태풍의 눈처럼 희고 고요한 그에게서 태양의 냄새가 난다. 맨주먹으로 시작해서 맨주먹으로 중심이 된 그의 걸음. 나는 안다. 누구도 상처 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저 스스로 울음을 견디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의 시 속에서는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다. 저 스스로 일어서서 저 스스로 걸어가는 법을 그는 내게 오래도록 일러주었던 것이다.

- 2011. 7. 30. 리토피아 가을호 / 손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