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2016년 여름호 제62호)

by 백탄 posted Feb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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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종기 시인

 

1959년 현대문학 등단.

 

1961년 제1연세문학상’, 1976년 한국문학작가상, 1989년 미주문학상, 1997이산문학상, 1997년 편운문학상, 2003동서문학상, 2009년 현대문학상, 2011년 박두진 문학상.

 

시집/ 조용한 개선, 두 번째 겨울, .평균율1(공동시집),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마종기 시전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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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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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양

 

 

거친 들판에 흐린 하늘 몇 개만 떠 있었어.

내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해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만은 믿어보라고 했지?

그래도 굶주린 콘도르는 칼바람같이

살이 있는 양들의 눈을 빼먹고, 나는

장님이 된 양을 통채로 구워 며칠째 먹었다.

어금니 두 개뿐, 양들은 아예 윗니가 없다.

열 살이 넘으면 아랫니마저 차츰 닳아 없어지고

가시보다 드센 파타고니아 들풀을 먹을 수 없어

잇몸으로 피 흘리다 먹기를 포기하고 죽는 양들.

사랑이 어딘가 존재할 것이라고 믿으면, 혹시

파타고니아의 하늘은 하루쯤 환한 몸을 열어줄까?

짐승 타는 냄새로 추운 벌판은 침묵보다 살벌해지고

올려다볼 별 하나 없이 아픈 상처만 덧나고 있다.

남미의 남쪽 변경에서 만난 양들은 계속 죽기만 해서

나는 아직도 숨겨온 내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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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나도 사랑, 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다. 선생을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봄이었을까, 바람이 낮게 무릎 아래로 흘러갔던 기억이다. 난생 처음 선생을 만나는 자리가 어색해서 오색의 도시락을 싸서 들고 나갔다. 카메라 한 대 어깨에 메고, 도시락을 든 채 악수할 손이 마땅찮았다. 고개만 주억거리고 도시락을 활짝 펼쳐놓았었다. 그리고 함께 먹었던 밥! 그 한 끼의 식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주고받은 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많은 이야기가 오고간 것 같았다. 모국어, 라는 낯선 단어에 목이 메기도 하고. 아내, 라는 익숙한 단어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낯설지 않음의 낯설음에 내심 혼자 당황스러웠다. 시가 뭐냐고 물었을 때, 고국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울컥, 하면서 카메라의 파인더 속으로 선생을 훔쳤던 것 같다. 선생은 고요하고, 단정하고,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예각의 눈빛이 아름다웠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뭐랄까, 거침없이 따라 걷는 시인의 보폭이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또 시간이 훌쩍 지나 오늘, 문득 선생의 안부가 궁금하다. , 그만큼에서 빛나시길!/손현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