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진/2012년 여름호/아트 아티스트

by 백탄 posted Mar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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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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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희진은 1931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했다. 보성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55년 ≪문학예술≫ 추천으로 등단했다. 1975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창작계획 과정을 수료했다. 1979년 4월부터 지금까지 ‘공간시낭독회’ 상임시인이다. 월탄문학상. 한국시협상. 팬클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1999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현재 예술원 회원이다. 시집으로 <실내악>. <빛과 어둠의 사이>, <아이오와에서 꿈에>, <박희진 세계기행 시집>, <사행시 사백수>, <1행시 960수와 17자시 730수>가 있다. 기타 저서로 <꿈꾸는 탐라선>, <박희진 전집>, <내사랑 소나무>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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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의 대표시

잎이 시들면 떨어지듯이

 

 

잎이 시들면 떨어지듯이

우리도 자라면 처음의 자리에서 까마득하게

떨어진다는 것을 예전엔 몰랐어요.

내 어린 수정의 눈동자가 맑기만 해서

뭇 형상이 그 안에 도사릴 티가 없었을 때

또 이 손이 고사리처럼 귀여웠을 땐.

 

시간은 없었지요. 연지빛 노을 속을

뜨는 해, 지는 해가 낮과 밤을 번갈아 불러

들였을 따름. 울긋불긋한 세상은 언제나

조금은 무서웠고 조금은 덩달아 즐거웠지요.

 

그런데 나의 잔뼈가 굵어진 먼 여로에서

돌아온 어느 날, 나는 보았어요 산천은 어이없이

바뀌었다는 것을. 내 거기 벗들과 멍석딸기를

따기도 하고 뛰놀던 숲이 겨우 다복솔 몇 그루

뿐인 것을. 또 사철 가슴의 높이까지 흐르던

냇물의 신비는 사라지고 바닥이 드러나서 송사리

한 마리 없다는 것을. 내 기억 속에 그 빛바랜

이름만 남겨 놓고 지금은 그림자도 없는 벗들.

 

나는 알았지요 우리도 이젠 떨어졌다는 것을,

가없는 사막 위에 촉각을 잃은 개아미처럼

헤매는 우리, 이제 다시는 그 천상의 보석 방석 같은

처음의 자리에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그동안 함부로 눈물을 탕진해서 흐려진 눈동자와

그동안 지은 죄로 더럽힌 이 손을 가지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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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는 이제

 

 

가장 깊숙한 영혼의 밑바닥에 보이지 않는

언어의 절에까지 꿰뚫고 들어가야

비로소 만날 빛샘물 고요, 무궁의 고요,

고요는 이제 시의 핵심에서나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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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그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오랫동안 소식 여쭙지 못했습니다. 삼각산이 서쪽 창으로 다녀가던 우이동 집에서 햇살 환한 남향집으로 이사 하셨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요즘도 소나무에 대한 사색은 여전하시겠지요. 언제나 먼먼 눈빛으로 사람의 저 너머, 한참 뒤를 바라보시는 선생님의 시선은 가없고 깊어서 늘 가슴이 서늘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시와는 바꾸지 않겠노라 말씀하시던 그 눈빛도 제 안에서는 여전히 살아서 시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시의 리듬과 이미지와 선생님의 깊고도 고독한 사색이 어우러져서 한 편의 시가 완성될 때, 그 미소. ‘수월관음도’에서 잠깐 뵈었던 그분의 미소를 닮은 듯도 하고요. 순례자가 순례의 길을 걸어가듯 오래도록 한 길을 고집하셨던 예술가의 고단한 삶도 선생님의 뒷모습에서는 너무나 선명해서 차라리 서럽습니다. 한 편의 시가 한세상이라는 말씀. 한 편의 시가 우주 전체를 이야기 하고도 남는 법이라시던 단호함. 제게는 벼락처럼 다녀가기도 했었지요. 한평생 한 호흡도 늦추지 않고 시를 써 오셨던 선생님, 시란 진정 무엇입니까? 꽃들도 미쳐서 모두 한꺼번에 왔다가는 요즘 선생님, 박희진의 ‘내 사랑 소나무’는 제 위안이자 성서입니다./촬영, 글 손현숙 시인

- 2012. 4. 23. 리토피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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