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2012년 가을호/아트 아티스트

by 백탄 posted Mar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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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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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전남 고흥에서 출생. 서라벌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75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山門에 기대어」 외 4편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 山門에 기대어(문학사상사), 꿈꾸는 섬(문학과지성사), 아도(啞陶)(창작과비평사), 수저통에 비치는 저녁노을(시와 시학사), 10시집파천무 등이 있으며, 시선집 지리산 뻐꾹새(미래사), 들꽃세상(토속꽃)(혜화당), 여승(모아드림), 육필시선집 초록의 감옥(찾을모), 산문집 만다라의 바다, 태산풍류와 섬진강, 남도기행 등. 음식문화 기행집 남도의 맛과 멋, 시인 송수권의 풍류맛기행(고요아침) 등.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영랑시문학상, 김달진 문학상, 서라벌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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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에 기대어

 

 

누이야

가을 산 그리메에 빠진 눈썹 두어 낱을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정정淨淨한 눈물 돌로 눌러 죽이고

그 눈물 끝을 따라가면

즈믄 밤의 강이 일어서던 것을

그 강물 깊이깊이 가라앉은 고뇌의 말씀들

돌로 살아서 반짝여 오던 것을

더러는 물 속에서 튀는 물고기같이

살아오던 것을

그리고 산다화山多花 한 가지 꺾어 스스럼없이

건네이던 것을

 

누이야 지금도 살아서 보는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그 눈썹 두어 낱을 기러기가

강물에 부리고 가는 것을

내 한 잔은 마시고 한 잔은 비워 두고

더러는 잎새에 살아서 튀는 물방울같이

그렇게 만나는 것을

 

누이야 아는가

가을 산 그리메에 빠져 떠돌던

눈썹 두어 낱이

지금 이 못물 속에 비쳐 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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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의 사랑

 

 

누이야 너는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가

오월의 저 밝은 산색이 청자를 만들고 백자를 만들고

저 나직한 능선들이 그 항아리의 부드러운 선들을 만들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누이야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네 사는 마을 저 떠도는 흰구름들과 앞산을 깨우는

신록들의 연한 빛과 밝은 빛 하나로 넘쳐흐르는 강물을

너 또한 사랑하지 않을 것인가

푸른 새매 한 마리가 하늘 속을 곤두박질하며 지우는

이 소리 없는 선들을, 환한 대낮의 정적 속에

물밀듯 터져오는 이 화녕끼 같은 사랑을

그러한 날 누이야, 수틀 속에 헛발을 딛어

치맛말을 풀어 흘린 춘향이의 열두 시름 간장이

우리네 산에 들에 언덕에 있음직한 그 풀꽃 같은 사랑 이야기가

절로는 신들린 가락으로 넘쳐흐르지 않겠는가

저 월매의 기와집 네 추녀끝이 허공에 나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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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이라는 말, 그 순결한 비수

 

시인의 그늘은 섬뜩한 눈빛이다. 그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비밀한 그의 뒤태를 본 적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한 문장 속에서도 도무지 갈 수 없는 경계 밖의 소리 들리고. 손가락 마디 하나 움직일 때 마다 알 수 없는 위태로움이 따라다니기도 한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는 느린 걸음은 이미 삶과 죽음의 강을 건넜다. 조금은 어눌하고 그러나 단 한 번도 허리 굽히지 않는, 그의 남도 기질은 확실히 그늘 깊은 지리산을 닮았다. 말 없는 산 속에 미물들의 먹이가 무진장 숨겨져 있듯, 그는 아무것도 잊지 않고 무엇이든 간직한다. 아주 오래전에 나누었던 말 한 마디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해서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시인은 언제나 오늘을 산다. 앞자리에서나 뒷자리에서나 꼿꼿한 눈빛. 그는 섬진강의 길고 긴 소리처럼 그늘이 깊다. 오래 전 아내가 병석에 누워있을 때, 아득하게 풀렸던 그의 먼먼 눈빛을 기억한다. 그의 곁님 연엽은 안녕하실까! 소식 드리지 못한 세월이 벌써 십년이다.손현숙 시인(촬영, 글 손현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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