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리/2012년 겨울호/아트 아티스트

by 백탄 posted Mar 2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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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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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충북 청원 출생. 1964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 1969년 시집 <투망도投網圖>로 작품활동 시작. 사단법인 <우리詩진흥회> 이사장 역임. 현재 한운야학閑雲野鶴으로 살고 있음. 시집 <투망도投網圖>(1969), <화사기花史記>(1975), <무교동武橋洞>(1976), <우리들의 말>(1977), <바람 센 날의 기억을 위하여>(1980), <대추꽃 초록빛>(1987), <청별淸別>(1989), <은자의 북>(1992), <난초밭 일궈 놓고>(1994), <투명한 슬픔>(1996), <애란愛蘭>(1998), <봄, 벼락치다>(2006), <푸른 느낌표!>(2006), <황금감옥>(2008), <비밀>(2010), <독종毒種>(2012), 시선집 <洪海里 詩選>(1983), <비타민 詩>(2008), <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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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벼락치다/대표시

 

 

천길 낭떠러지다, 봄은.

 

어디 불이라도 났는지

흔들리는 산자락마다 연분홍 파르티잔들

역병이 창궐하듯

여북했으면 저리들일까.

 

나무들은 소신공양을 하고 바위마다 향 피워 예불 드리는데

겨우내 다독였던 몸뚱어리 문 열고 나오는게 춘향이 여부없다

아련한 봄날 산것들 분통 챙겨 이리저리 연을 엮고

햇빛이 너무 맑아 내가 날 부르는 소리,

 

우주란 본시 한 채의 집이거늘 살피가 어디 있다고

새 날개 위에도 꽃가지에도 한자리 하지 못하고 잠행하는

바람처럼 마음의 삭도를 끼고 멍이 드는 윤이월 스무이틀

이마가 서늘한 북한산 기슭으로 도지는 화병,

 

벼락치고 있다, 소소명명!

-시집 <봄, 벼락치다>

 

 

가을 들녘에 서서/대표시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다 주어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시집 <푸른 느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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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광에 맨살을 데다, 홍해리!

 

그는 서쪽에서 온 태양의 아들. 하늘 한 가운데 한 점 눈빛으로 서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어서 그는 언제나 혼자다. 등짝에 배낭 하나 달랑 매고 오늘은 또 어디로 길 떠나시려나. 뒷모습으로 가는 그의 그림자 해아래 길쭉하다. 누군가를 오래 기다려 본 사람은 안다. 하늘 저 안쪽에 사는 꽃, 그늘은 손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는 말이 없다. 남을 통제하지도 자신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기의 방식을 덤덤하게 고수한다. 그렇게 오래, 그는 여기 우이동에서 살았다. 해마다 청매 피는 시절에는 꽃그늘 아래 대지의 바람이나 바라보는 일. 매일 새벽 새것으로 돌아오는 황도광에 맨살이나 데이면서 시야, 놀자! 백지 위에 하루를 받아 적는 일. 오늘도 그는 구름이비를 품듯, 깊고 푸른 속내 쪽으로 꽃 한 송이 끌어 들인다. 뜨겁지만 구애 없는 그의 열정, 다만 시로써 자유하다.

-2012. 10. 13. 손현숙(시인,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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