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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유순덕·수상작

달의 계곡에서 보낸 한 철 외 1편



등 뒤의 날개를 펴고 날아가고 싶어요
 
달의 계곡에 앉은 당신이 저 먼 목성이 행여 병이 날까 그 이마에 어여쁜 띠를 감아줄 때 나는 당신 계절이 틔운 연두빛 잎싹 아래 도란도란 이슬로 피어날 거예요 당신 어깨에 앉아 우린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속삭일 거예요
 
그러면 당신의 별은 여름 한철 비를 보내 작은 목소리로 당신 소식을 궁금해 하겠죠? 우리 함께 여름 숲에서 빗방울을 연주하는 모습을 떠올려 봐요 땅에서 잎으로 나무에서 둥지로 날아다니는 모습을요
 
지팡이를 들고 빙그르르 공중을 돌며 하늘 향해 주문을 외면, 우리 날개에 점점이 별빛은 일어 슬프게 반짝거리는 모습을요 그럼 목발에서 휠체어로 병상에서 또 어딘가를 향해 가는 내 몸은 꽃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되는 거예요
 
오늘 밤에도 달의 연못에는 슬픈 눈을 한 노루가 다녀가네요
고개를 숙여 목을 축이며 그곳에 잠시 세든 하늘에게 몇 번이고 소원을 묻고 가네요 하지만 허리 어디쯤이 아픈 내 몸은 더는 당신과 함께 날 수 있는 날개를 달라고 빌지는 않을 거예요
 
달의 처마 아래서 잠시 비를 피하던 당신이 여름 한철 비를 맞는 내 간절함이 맘에 든다 말해 준다면 기쁠 테니까요 잠에서 깨어 엎드려 울던 개똥벌레가 활짝! 날개를 펴듯 나는 어디든 하염없이 날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구덩이 속에 묻은 얘기



움집 근처 비탈에서 깊이 패인 구덩이를 보았습니다 숨 쉴 만큼의 공기만 저장된 얼음 속 같기도 하고 블랙홀 속 같기도 한 그곳에서, 난 층층이 얼어붙은 칠흑을 벗겨낸 적 있습니다


화산암과 퇴적암이 맞붙은 그곳에서 며칠 아니 몇 만 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칠흑을 뚫고 날아온 실금 같은 소리가 구원을 노래하는 것만 같아, 두려움에 물기를 적신 나는 장님처럼 더듬거렸습니다 


한때는 푸른 수목으로 눈이 부셨을 그곳에 흰 옷 입은 당신이 있었습니다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슬피 우는 당신 사연을 궁리하다 나는 그만, 당신 목덜미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거울로 나를 비추는 당신 울음에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던 내 모습을 들키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난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곁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내 몸은 붉고 푸른 별들을 산란하며 풍화와 마멸을 거듭하면서도 실금 같은 햇살을 찾아 수없이 구덩이 밖을 들락거렸습니다


더 깊고 어두운 지층 속으로 빨려가면서도 아, 나는 아직 어린 내 아이들을 구덩이 밖에 두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유순덕 2013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201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집 『구부러진 햇살을 보다』.




신작

흑백 필름



재개발 구역에 사는 김씨 눈에서 거미줄이 흘러내린다 목젖을 젖게 하던 푸른 파장들이 흑백 필름으로 펼쳐진다 창문 없는 지하방 김씨네 가족을 찾은 주인은 어제도 당장 방을 비우라고 호령하며 줄 몇 개를 찢어놓고 갔다

김씨는 집을 깁다 말고 찢긴 줄을 붙잡고 놀고 있는 철없는 자식들을 바라본다 새근거리며 잠든 네 아이 손발을 하나씩 쓰다듬다 뜨겁게 붙들고 버텨온 잠상을 늘인다 건물 옥상에 서 아우성치듯 번쩍이는 밤의 불빛들이 제 몸에서 뽑아 올린 실핏줄 같다고 중얼거린다

녹색의 외줄을 끊고야 말겠다고 힘을 준 단도에서 자식들 울음소리가 흘러나온다 밤의 그물을 튕겨보던 바람이 잠시 들이친 것인지 철렁, 바닥을 치는 쇳소리 요란하다 거미줄에 걸린 멋잇감처럼 도시의 불빛에 말려 정적처럼 서 있던 김씨, 늘였던 줄을 천천히 걷으며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끼 긴 시멘트 벽에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들이 새벽바람에 너덜거린다 그 속에서 해맑은 자식들 웃음소리가 아침 햇살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선정평

《열린시학》에서는 제4회 계간지우수작품상을 선정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했다. 열린시학회 회원 중에서 고를 것, 작품성과 미학성이 뛰어날 것, 단 한 편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우수한 작품을 창작할 것 등이다. 선별 작업을 하고 보니 두 번째 조건까지 갖춘 시인은 많았지만 세 번째 조건까지 갖춘 시인은 드물었다. 유순덕 시인과 구애영 시인이 최종 논의 대상으로 남았다. 두 시인 모두 화법의 다양성과 시상을 능수능란하게 펼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상에 대한 탐구정신으로 감각과 깊이의 조화를 이루기까지 했다. 우리는 고심 끝에 유순덕 시인을 수상자로 결정했다. 다양성 측면에서 「달의 계곡에서 보낸 한 철이 눈에 띄게 새로웠다. 「달의 계곡에서 보낸 한 철」은 ‘환상’을 바탕으로 한 우리 시단에서 보기 드문 작품이다. ‘환상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환상’ 속에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일인데, 이 작품은 ‘환상적 리얼리즘’의 시적 논리를 획득함과 동시에, 감성적 울림까지 가지고 있어서 든든했다. ‘환상’ 후에 다가오는 아련한 감동. 이것이 이 작품이 가진 최고의 매력이다./이지엽, 하린



수상소감

어둠 속 터널에서도 새 살은 돋고



7월의 끝자락 월요일 아침입니다. 첫 기차를 타고 김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중입니다. 구불구불 멀었던 거리가 참으로 가까운 거리가 되었습니다. 살다보면 세상과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이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언젠가 제가 서 있는 지층이 끊겨 세상 밖으로 밀려가 버렸다고 느낀 적 있습니다. 지극히 짧았던 그  시간의 간극을 메우느라 십 년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기차는 길고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습니다. 이 깜깜한 터널을 지나면 강과 들을 지나고, 벌판을 달리면 또다시 어두운 터널을 만나겠지요. 이렇게 몇 개의 역을 보내면 종착지에 도착하겠지요. 그 변화무쌍한 차창 밖 풍경같은 시간들이 있어 어쩌면 우리 삶이 더 풍요로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또 가을 단풍도 들겠습니다. 한여름 폭염과 장마로 쓰러졌던 들판과 숲의 통증들에도 새살이 돋겠습니다. 차창 밖을 날고 있는 잠자리들이 잘 익은 가을 햇살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저도 창밖을 날고 있는 잠자리 떼 뒤를 따라 가만 맴을 돌아봅니다.
이제 막 군 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이등병 아들과 정 많은 예쁜 내 딸, 항상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남편에게 사랑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부족한 작품을 계간지 작품상으로 선정해 주신 열린시학 관계자 선생님들과 존경하는 이지엽 교수님, 그리고 하린 부주간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유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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