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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호/미미서사/박금산/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방법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술을 많이 마신 사람의 이야기이다. 망각이 기억을 흡수해 버려서 전화기의 행방을 놓친 다음 다시 찾지 못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삼십 대 후반의 직장인이었는데 그는 술버릇이 얌전하고 타인으로부터 관찰을 당하면 민망함과 창피함을 동시에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의 망각은 퇴근 이후의 기억을 모두 흡수해서 어딘가로 데려가 버렸다. 그래서 이튿날 아침 퇴근 이후의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변기를 부여잡고 토를 하다가 전화기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토를 멈추고 거실로 나갔다. 유선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그는 배터리가 남아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집안에서 발견되면 다행인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전화를 받은 누군가에게 사례를 한 후 돌려받으면 되는 것이니 번거로우나 매우 불행한 일은 아닌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다섯 번 돌려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번에는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불안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통화기록을 보아야 누구에게 연락을 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전화기가 없으니 기억을 복구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역시 전화기 속에 있는 카드 결제 내역을 확인해야 의문이 풀릴 것이고, 어떤 택시를 타고 집에 왔는지도 전화기를 열어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술에 취해 누구에게 쌍욕을 해댄 것은 아닌지 전화기 속의 메신저를 살펴야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전화기가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출근이 두려웠다. 직장 근처 술집에서 전화기를 옆에 놓고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느라 의식을 잃을 때까지 급하게 술을 마신 것 같다고 느꼈다. 기억이 없었기에 그런 것 같다고 느낄 뿐이었다.
설마 계수나무? 그는 계수나무 밑으로 달려갔다. 그는 주차장에 있는 계수나무를 의지하면서 아파트에서 살았다. 괜히 믿음이 가고 좋았다. 하트 모양의 잎, 요거트 냄새 같은 향기, 어느 아파트에나 있지는 않은 희소성,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위치, 등등이 그를 정서적으로 고정시켜주는 압정 역할을 했다. 계수나무 아래에는 경비원들이 낙엽을 모아 쌓아두는 구덩이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낙엽을 덥고 노숙한다면 참 멋있을 것 같다고 수백 번 생각했다. 그는 낙엽을 헤집었다. 전화기는 없었다. 자기 몸 대신 전화기를 던져 놓고 노숙을 시켰을 것이라는 짐작은 터무니없는 착각이었다.

그는 데스크톱 컴퓨터로 구글맵에 접속했다. 전화기의 위치를 추적했다. 추적 결과가 나타났다. 화살표 끝이 가리키는 곳은 아파트 주차장이었다. 경비실이 있는 자리였다. 그는 경비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는 경비원에게 물었다.
“전화기 발견하신 것 있으시죠?”
경비원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없습니다.”
그가 다시 말했다.
“정말요? 확인 한번만 더 해 주세요.”
경비원이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없습니다.”
그리고 경비원은 그에게 전화번호를 물어서 전화를 걸었다. 경비실 안에 전화기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 것이었다. 벨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누구와 함께 술을 마셨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시작은 혼자였는데 누군가를 불러 함께 마셨던 것 같고, 누군가에게 연락을 했는데 오지 않는다고 해서 전화기를 집어던진 것 같기도 했다. 오리무중이었다. 아무래도 계수나무 아래가 맞을 것 같았다. 그는 틈틈이 구글맵에서 위치를 새롭게 추적했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전화기는 어느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손에 넣었다면 미세하게나마 이동한 흔적이 나타났을 것이다.
심심풀이 삼아 취중에 전화기를 숨겨보기로 마음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 손으로 자기의 전화기를 쓰레기통에 넣었다가 아니다 싶어 냄새 나는 쓰레기 속에서 전화기를 꺼내는 장면, 어디에다 숨기면 좋을지 고르던 중 계수나무 아래의 낙엽 더미를 보고 쾌재를 불렀던 기억, 완벽하게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전화기 숨긴 자리를 확인하려고 발로 낙엽을 꾹꾹 누르는 장면이 떠올랐다. 사실적이었다. 그는 하룻밤 동안만 전화기를 숨겨놓고 싶었던 것이었다. 꿈속의 일이었는지, 취중의 일이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쨌든 자신의 행동이 사실적으로 복기되었고, 구글맵에서는 전화기의 위치를 주차장으로 표시하고 있었다.
그는 구글맵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침과 다른 점은 배터리 잔량이 6%로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 0%로 바뀌면 위치 확인도 불가능해질 것이고, 원격으로 전화기를 잠그는 것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그는 배터리가 남아 있는 동안에만 전화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퇴를 신청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아파트로 갔다. 전화기를 숨기기로 했던 취중의 치기를 떠올리면서 계수나무 아래로 갔다. 그는 아침에 했던 일을 반복했다. 낙엽을 헤쳤다. 전화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구글맵 출력물을 펼쳤다. 정밀 좌표를 확인했다. 왜 이제야 눈에 들어온 것인가. 좌표는 계수나무가 서 있는 곳이 아니었다. 경비실도 아니었다. 그는 짐작으로 계수나무가 아니면 경비실일 것이라고 좌표를 정한 것이었다. 실제의 좌표가 가리키는 곳은 주차장 한가운데였다. 그는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 기분이 풀렸다. 자신을 책망하면서 좌표대로 걸어갔다. 그러나 지도의 좌표에 서는 순간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그곳은 전화기가 있었다면 눈길이 피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눈에 거슬릴 것 하나 없는, 벽돌조각 하나 없이 깨끗한 주차장 바닥이었다.
그는 경비실로 갔다. 경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위치 추적이 여기로 나오는데, 이상합니다. 전화기가 안 보여요.”
경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비원은 전화기를 내밀면서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다. 그는 경비원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갔다. 그러나 전화벨 소리는 주차장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경비원과 함께 주차장 구석구석을 뒤졌다.
찾을 가망이 없어 보였다.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그는 지도의 좌표가 가리키는 곳에 가서 섰다. 왜 없는 것일까. 분명히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그는 집으로 올라가서 컴퓨터로 위치를 새로 추적했다. 추적 결과가 나타났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배터리 잔량만 2%로 떨어져 있었다. 좌표가 가리키는 곳은 바람에 날려 온 낙엽조차 없이 단단하고 맨질맨질한 바닥이었다. 너 어디로 간 것이냐! 그는 주차장 바닥을 곡괭이로 내리치고 싶었다. 포장을 걷어내서 땅 속으로 들어간다면 전화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틀림없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데 눈에 보여야 할 그것이 도무지 찾아지지 않으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현관 앞에 구급차가 서 있었다. 그는 구급차를 향해 걸었다. 구급차에는 사람이 없었다. 엔진은 켜져 있는데 사이렌 소리가 없고, 경광등도 잠잠했다. 위급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출동한 것은 아닌가 보았다. 그는 구급차 앞에서 대원을 기다렸다. 대원들은 직업상 수색에 능할 테니 전화기를 찾는 방법을 따로 가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연습했다. ‘구글맵에서 위치 추적이 이렇게 나오는데, 여기에 그 전화기가 없어요. 이런 경우에는 어디를 살펴야 찾을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만, 좀 도와주세요. 전화기를 잃어버렸어요.’ 그는 애교를 섞는 어조와 화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구급대원들은 대개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전화기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은 황당한 짓이므로, 애교를 섞어서 요령껏 말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구급대원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주차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허리를 숙여서 주차된 차들이 가린 바닥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수나무 아래에서 낙엽을 뒤적였다.
이십여 분이 흘렀을 것이다. 구급대원이 중앙 현관에서 나왔다. 그는 계수나무를 등지고 구급차를 향해 뛰었다.

그는 뛰다가 우뚝 멈춰 섰다. 무언가를 본 이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굉장한 장면이 두 눈 속으로 들어왔다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방금 보았던 사람의 얼굴을 눈앞에 그대로 두고, 구급대원이 조심조심 침대의 바퀴를 굴리는 모습을 오버랩시켰다. 침대에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마도 구십 세 쯤 되었을까? 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이 투명 비닐에 덮여 있었다. 얼굴 아래의 몸은 하얀 천에 덮여 있었다. 입과 코를 덮은 비닐에 입김이 서리지 않는다는 것, 얇은 비닐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숨결의 움직임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등을 통해서 그는 구급대원이 장시간 아파트에서 무엇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연사가 분명해 보이는 얼굴은 평안했다. 그는 시체를 보는 것이 처음이었다.
그는 전화기 생각을 잊어버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기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는 속으로 말했다. 가시는 길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몇 호에 사시던 누구신지 모르는 분. 그는 죽은 사람의 모습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 구급대원이 묵묵히 침대를 구급차에 밀어 넣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는 다리가 접히면서 차 안으로 들어갔다. 전화기처럼 작아 보였다. 그는 계수나무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잠시 후 구급차는 떠났다. 사이렌 소리 없이, 경광등 잠잠한 채로 주차장을 벗어났다. 그는 구급차의 꽁무니를 바라보다가 방전된 로봇처럼 고개를 툭 떨구었다. 2017년 11월 1일. 가을이었다. 그는 별 수 없이 새 전화기를 사야한다고 생각했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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