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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65호-68호)
2019.02.18 16:46

68호/|권순긍 교수의 고전 읽기, 세상 읽기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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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긍 교수의 고전 읽기, 세상 읽기 ⑤|

“이 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 하는구나”―『흥부전興夫傳』



흥부냐, 놀부냐 혹은 ‘놀부주식회사’


요즘 잘 나가는 정치인이나 사장 등 소위 ‘금수저’들의 ‘갑질’이 유난히 언론에 많이 오르내린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보는 교육부 고위관료부터 이 나라를 통째로 좌지우지 했던 최순실과 국정농단의 주역들까지, 재벌의 행태는 또 어떤가? 막말에 폭행에 성추행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분노를 넘어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 정도다. 어디서부터 이런 일들이 시작됐을까? 무엇보다도 자기 위주의  이기심과 자만심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이리라. 그 시원을 찾아가다 보면 우리는 『흥부전』의 놀부를 만나게 된다.
우리에게 ‘흥부’와 ‘놀부’는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아주 익숙한 캐릭터이다. 그 시절 전래동화책을 통하여 접했을 법한 『흥부와 놀부』는 아마도 착한 동생 흥부는 부러진 제비다리를 치료해줘 ‘보은박’에서 보물이 나와 부자가 되고, 심술쟁이 형 놀부는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복수박’에서 도깨비들이 나와 혼내주는 그런 이야기였으리라. 실제로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말하기·듣기』 교재에는 이런 형태의 4칸 삽화가 실려 있다.
말하자면 「흥부놀부 이야기」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보은담’ 혹은 ‘복수담’인 것이다. 신소설 작가였던 이해조李海朝(1869~1927)도 『흥부전』을 ‘제비 다리’라는 의미의 「연燕의 각脚」이라고 제목을 달아 펴내기도 했으니 제비다리를 치료해줘 복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이처럼 『흥부전』은 선과 악의 대립, 동일한 행위의 반복, 보은과 복수 등 민담적 특징을 온전히 지니고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얘기되고 전래됐던 것이다.
하지만 고전소설 『흥부전』은 이런 단순한 민담의 구조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디테일을 통해 조선후기의 경제적 실상을 반영한다. 즉 조선후기를 살았던 인물들을 등장시켜 당시의 세태를 정확히 반영했을 뿐만 아니라 ‘가난’이라고 하는 당시의 경제적 고민을 작품 속에 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흥부전』은 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무관하지 않게 다가온다.
이야기를 좀 바꿔보자. 여러분은 흥부와 놀부 중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에 전래동화를 읽었을 어린이들은 착한 흥부를 지지할 것이다. 그런데 세상물정을 어느 정도 체득한 청소년 혹은 청년들은 놀부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 『흥부전』 수업시간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 놀부를 지지한다고 대답한다. 이유인즉, 놀부는 적극적이고 부자인데 비해, 흥부는 대책 없이 착하기만 한 가난뱅이라는 것이다. 이 물신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세상은 분명 놀부 편이다. 착한 가난뱅이와 심술궂은 부자 중에 여러분은 과연 누구를 택하겠는가?
그래서인지 놀랍게도 ‘놀부주식회사’가 있다. 1987년 신림동에서 ‘놀부 보쌈’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놀부 부대찌개·놀부 항아리갈비·놀부 솥뚜껑삼겹살·놀부 유황오리진흙구이 등 총 7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거대한 프랜차이즈 외식업체다. 1년의 매출은 본사가 685억 원, 가맹점이 총 5,000여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중앙일보〉, 2006. 9. 19.) 그 회사의 대표이사인 김순진은 현재 한국 프랜차이즈협회 부회장과 21세기 여성 CEO 회장을 겸임하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놀부’인가? 신문기사에 의하면 “옛 이야기 속에 놀부는 인색함과 심술의 상징이지만, 사실 놀부는 적극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인물이어서 ‘놀부’라고 지었다.”한다. 혐오스런 인물을 적극적인 이미지로 바꾼 역발상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더욱이 ‘놀부 장학금’도 지급하고, 장애인과 불우이웃을 위한 사회봉사활동도 현재까지 하고 있다고 하니 (주)놀부의 실상을 보면 인색하고 탐욕스러운 놀부의 이미지와는 너무 이질적이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교에서 ‘비교문화론’ 시간에 『흥부전』을 가지고 강의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에 1년간 유학했던 사사끼佐佐木라는 학생이 “놀부가 나쁜 인물인데 왜 한국엔 ‘놀부 부대찌개’가 있냐?”고 질문을 해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에 젖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방인이 이를 지적해서 흥미로웠다.(그 학생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나라 자본주의 발전과정과 일제 식민지 침탈을 길게 얘기했고, 논란은 뒤풀이 자리까지 이어져 제법 장황했는데 여기서는 생략한다.)
고전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캐릭터로 상호를 삼은 것은 아마 (주)놀부가 유일한 것 같다. ‘변학도 학원’이나 ‘옹고집 마트’나 ‘팥쥐 식당’, 혹은 ‘뺑덕어미 결혼정보회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왜 놀부는 가능할까? 아마도 적극적이고(사실은 탐욕스럽고) 부자이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돈만 많으면 무엇이든지 다 용서되는 이 타락한 세상의 논리가 한몫을 한 것이리라.


흥부와 놀부, 그 부적절한 관계


자, 이제 『흥부전』의 주요 인물인 놀부란 놈을 살펴보자. 농사를 지었다지만 대단한 부농으로 묘사되어있다. 복수박에서 나온 수많은 사람들에게 3만 냥(지금 시세로 환산하면 5~6억 내외)이 넘는 거액의 현찰을 빼앗기는 것을 보면 그가 농촌사회에서 제법 풍족하게 살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부자가 됐을까? 우선 부모의 유산을 송두리째 차지한데다가 ‘심술대목’에 등장하는 ‘빚값에 계집 뺏기’로 보아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리라 보여 진다. 우리가 흔히 사채업자로 여기는 고리대금을 통해 재산을 모았던 것이다. 돈이 급한 가난한 농민들에게 높은 이자로 돈을 꾸어 주고 가을 추수 때에 돈이나 현물로 받는 방식을 통해 많은 재산을 일굴 수 있었다. 분명한 사실은 놀부가 극단적으로 탐욕스러운 인물이라는 점이다. 놀부의 캐릭터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탐욕’이다.
부모의 제사에도 돈을 쓰기 싫어서 돈을 대신 놓는 대전代錢으로 상을 차리고, 배고파 우는 자식들을 먹이기 위해 구걸하러 온 동생 흥부를 몽둥이로 두들겨 내쫓을 정도다. 게다가 “네 복을 누굴 주고 나를 이리 보채느냐? 쌀이 많이 있다 한들 너 주자고 노적을 헐며, 벼가 많이 있다고 한들 너 주자고 섬을 헐랴…”고 으름장을 놓는다. 정말 놀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며, 그토록 착한 흥부의 형일까 의심스럽다. 사실 오늘날에도 돈 앞에 부모형제도 없는 비정한 상황들을 목도하지 않는가?
그러기에 놀부의 욕심은 이기적이고 반윤리적이다. 놀부에게는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부에 대한 이기적인 탐욕만이 존재한다. 심지어는 흥부가 부자가 되자 재산을 뺏을 요량으로 “네 것이 내 것이고, 내 것이 네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부가 위력을 갖게 된 시대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놀부의 이익추구는 이기적이고 반윤리적이어서 지탄을 받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왜 유난히 놀부를 미워하는가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인한 부의 증대는 낡은 봉건체제를 무너뜨리는 역할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모든 인간관계에서 적나라한 이기심과 냉혹한 배금풍조拜金風潮를 찌꺼기로 남겨 놓았다. 역사발전의 측면에서 이윤추구의 긍정적인 모습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의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의 엄행수를 통해 알 수 있거니와, 그 부정적 형태를 놀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연암은 서울의 똥을 수거하여 채원업자에게 공급하는 엄행수를 가르켜 열심히 똥을 긁어모아도 누구하나 염치없다고 하지 않으며, 이익을 독점해도 의롭지 못하다거나, 아무리 많은 것을 탐해도 양보할 줄 모른다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다. 건실한 생활 자세와 합리적인 경제활동에 입각한 이윤추구를 긍정하기 때문이다. 막스 베버Max Webber(1864~1920)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의하면 바로 이런 놀부의 형태는 ‘천민자본주의’이며, 엄행수의 형태가 근대적 자본주의, 곧 합리적인 ‘시민 자본주의’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면 흥부는 어떤가? 놀부에게 내몰려 빈손으로 집에서 쫓겨날 때도 동네사람들에게 시끄러울까봐 순순히 물러날 정도로 착한 심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착한 심성은 놀부의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여지없이 짓밟힌다. 식량을 구걸하러 놀부에게 갔다 매만 맞고 나오면서 오죽 원통하면 “애고 형님 이것이 우엔 일이요. 방약무인 도척盜跖이도 이에서 성인이요, 무지불측 관숙管淑이도 이에서 군자로다. 우리 형제 어찌하여 이다지 극악한고.”라고 울부짖었겠는가. 이런 모진 수난을 당하고서도 집에 와서는 “형님이 서울 가서 안 계시기로 그냥 왔네.”라고 둘러 댄다. 놀부의 악행을 자신이 감수하고 두둔한 것이다.
흥부의 착한 심성이 이렇게 수난을 당하는 까닭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가난 때문이다. 흥부의 가난이 타고난 것이라거나 게으르고 소극적이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는 주장은 다시 생각해 봐야한다. 바로 사회의 구조적 모순 때문이다. 놀부는 온갖 못된 짓을 하더라도 잘 사는 반면, 흥부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경제적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막말 욕설이나 ‘땅콩회항’ 등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재벌 2세의 ‘갑질’ 행태를 보면 이런 사정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흥부를 부정적으로 보는 데는 분명 게으르고 소극적이기에 가난하다는 논리가 숨어있다. 1960년대 급속도로 경제개발이 진행되면서 흥부를 부정하고 놀부를 옹호하는 논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놀부옹호론의 핵심은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 흥부보다 놀부야말로 억척스럽게 돈을 버는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1960년대는 그런 억척스러움이 미덕이기도 했다. 아무튼 흥부는 형인 놀부에게 맨손으로 쫓겨나 냉혹한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채 지독한 ‘가난’이라는 참상을 견뎌내야 했다. 수숫대 반 짐으로 집을 짓고 기가 막혀 대성통곡하는 흥부아내의 거동을 보자.

애고 답답 서러운지고. 어떤 사람은 팔자 좋아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삼정승·육판서로 태어나서 고대광실 좋은 집에 부귀공명 누리면서 호의호식 지내는가. 내 팔자는 무슨 일로 말斗만한 오두막잡에 별빛이 빈 뜰에 가득하니 지붕 아래 별이 뵈고, 맑은 하늘, 찬구름에 가랑비 올 때 비가 많이 오는 데가 방안이다. 문 밖에 가랑비 오면 방 안에 큰 비오고, 헤어진 자리와 허름한 베옷, 찬 방안 헌 자리에 벼룩 빈대 등이 피를 빨고, 앞문에는 살만 남고 뒷벽에는 외椳만 남아 동지섣달 찬바람이 살 쏘듯이 들어오고, 어린 자식 젖 달라고 자란 자식 밥 달라니 차마 설워 못 살겠네.(경판본 「흥부전」)

흥부네는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총체적 상황에서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처음엔 짚신을 삼아 생계를 이어가려 하지만 여의치 않게 되자 다음엔 부부가 같이 품팔이로 나선다. 농사일은 물론이고 ‘더운 날에 보리치기’, ‘삯길 가기’, ‘똥재 치기’, ‘술 만 먹고 말짐 싣기’, ‘매주가의 술 거르기’, ‘신사神祀 집에 떡 만들기’, ‘언 손 불며 오줌치기’ 등 더럽고 궂은 일에 품을 판다. 하지만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다.  
결국 마지막에는 죽을 각오까지 해서라도 호구지책을 마련하고자 죄진 사람을 대신해 매를 맞아주는 매품을 팔았지만, 이 마지막 수단마저도 나라에서 사면령이 내려 어이없이 끝나고 만다. 흥부가 매품을 팔아 미리 30냥을 받고 좋아라며 <돈타령>을 부르는 장면은 그 절박한 처지를 잘 보여준다. “얼씨구나 좋을씨고, 얼씨구나 좋을씨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얼씨구 좋을씨고, 돈 봐라, 돈 봐라, 얼씨구나 돈 봐라. 잘난 사람은 더 잘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생살지권을 가진 돈, 부귀 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를 갔다가 이제 오느냐?”며 사람을 살고 죽이는 힘을 가진 돈이라 한다.
매품을 못 팔아 그 귀한 돈을 돌려주게 되어 낙심하고 집에 들어온 흥부에게 아내는 대뜸 매를 맞았냐고 묻는다. 안 맞았다고 하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몸을 보존하게 됐으니 좋아라고 하지만 흥부는 돈을 못 받게 됐다고 한숨을 쉰다. 이처럼 흥부는 살아가려고 발버둥질을 쳤지만 가난의 굴레는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럴진대 과연 흥부가 게으르고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선 후기의 빈부 갈등


흥부에게 보이는 가난의 문제는 곧 농촌의 계층분화 과정에서 발생한 빈농의 처지를 대변한다. 18~9세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한 조선후기의 경제적 현실은 자본의 축적에 따른 도시와 농촌의 변모는 물론이거니와 각 구성원들 간의 계급·계층적 분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공업의 생산증대에 따른 도시의 변모에 이어 농촌사회 역시 이와 무관할 수 없었다. 농업자체의 생산력 증대를 통한 자본의 축적이 있었고, 상업의 발달에 기인한 농촌 상공업 또한 소득증대에 기여했다. 게다가 고리대금을 통한 자본의 수탈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농촌의 계층분화가 이루어진다. 이윤추구를 극대화한 농업경영과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한 놀부와 같은 서민부농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토지를 상실하고 품팔이꾼으로 전락한 빈농이 다수 발생하게 되었다. 자본의 힘에 의해 농촌이 해체되고, 돈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놀부가 부농이라면, 흥부는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농을 대변한다. 『흥부전』은 바로 이 부농과 빈농을 등장시켜 조선후기의 ‘빈부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흥부 같이 착한 사람은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굶주려야 하는 반면 놀부 같이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놈’은 부자로 잘 살고 있는 경제구조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에서도 “초상집에 춤추기, 불난 집에 부채질하기, 해산한 데 개잡기, 장에 가선 억매흥정, 늙은 영감 덜미잡기, 아이 밴 여자 배차기, 우는 아이 똥 먹이기, 오려논에 물 터놓기, 우물에 똥 누기, 익은 곡식 이삭 자르기” 등 끔찍한 놀부의 심술을 열거한 다음 “이놈의 심술은 이러하되, 집은 부자라 호의호식하는구나.”라고 비아냥거리고 있다. 갑질 중에서도 상갑질인데 집이 부자가 잘 먹고 잘 산다고 한다. 약간의 과장은 있지만 하는 짓을 보면 오늘날 ‘금수저’들의 갑질과 다른 게 무엇인가? 이는 단순히 광대 개인의 의견이라기보다 당시의 여론을 대변하는 것이다.
실상 경판본 『흥부전』을 보면 착한 흥부에 대한 동정이나 지지보다 탐욕스런 놀부에 대한 분노와 공격이 더 심함을 알 수 있다. 흥부는 단지 4통의 박을 타서 부자가 되는데(마지막 한 통은 양귀비가 나와 흥부를 기쁘게 해주나, 경제적 보상과는 무관하니 사실 3통으로 부자가 된 셈이다.), 놀부는 무려 13통의 박을 타면서 망해간다. 작품의 반 이상을 놀부 박타는 대목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놀부나 놀부 같은 인간들에 대한 공분公賁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놀부는 말하자면 당시 사람들에게 ‘공공의 적’인 셈이다. 그러기 때문에 『흥부전』은 흥부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 놀부가 어떻게 망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읽힌다.
놀부의 복수박에서 나온 것들을 경판본 『흥부전』을 참고하여 열거하자면 ①악사들, ②시주승, ③상제들, ④팔도 무당들, ⑤짐꾼들, ⑥초란이패, ⑦양반들, ⑧사당거사들, ⑨왈자曰者들, ⑩소경들, ⑪장비張飛, ⑫아무 것도 없음, ⑬똥 무더기 등이다. 대부분 조선후기의 천민군상들로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양반들의 경우가 예외인데 이는 놀부가 삼대에 걸쳐 종이었다고 속량贖良을 받으러 온 것이다. 이로 보아 놀부는 천민 신분의 부자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인물들이 바로 왈자 패거리들이다. 요즘 같으면 깡패나 조폭들로 이름들도 모두 난장몽둥이, 쥐어부딪치기, 아귀쇠, 악착이 등으로 박타는 대목 중에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며 놀부를 두들겨 패고 혼내준다. 그리고 12번 째 박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다가 마지막 박에서 똥 무더기가 쏟아져 놀부네 집을 완전히 덮어 버린다. 놀부가 “이럴 줄 알았으면 동냥할 바가지라도 하나 가지고 나올 걸 그랬다”고 할 정도로 그야말로 완벽한 마무리고, 확인사살이다. 못된 놀부에게는 아무 것도 건질 것이 없는 완전한 패망이다. 못된 놈이 망하는 것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놀부가 망해가는 과정이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탐욕스런 이익추구 때문이라는 설정도 흥미롭다. 몇 통을 타보다 금이 나오지 않으면 아닌가보다 하고 그만두어야 하는데, 놀부는 탐욕에 눈이 멀어 끝까지 가본다. 작품에서도 “성즉성成則成 패극패敗則敗”라 하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면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더욱이 박에서 나온 여러 부류의 천민군상들이 단지 놀부를 혼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금이나 땅문서, 집문서 등 실질적인 재산을 강제로 빼앗아가는 것도 기막힌 발상이다. 아주 못된 놈을 단죄하는데, 박에서 도깨비가 나와 혼내주고 재산은 그대로 지켜진다면(갑질하는 재벌들이나 정치인들처럼), 그게 어디 망한 것인가? 모든 것을 다 뺏겨 쫄딱 망해야 정말로 단죄가 된다. 어쩌면 자본의 성장과정에 따르는 윤리의식 혹은 ‘돈의 철학’의 문제가 놀부를 통해 제기된 셈이다. 더욱이 빈부갈등을 통해 다음시기에 도래할 자본주의의 계급적 모순을 날카롭게 예견하고 있어 흥미롭다.


돈과 윤리의 문제


자본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 『흥부전』을 통해 돈과 윤리의 문제를 얘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힘든 일이다. 이렇게 단순화시켜보자. “가난하지만 바르게 살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지탄을 받더라고 부유하게 살 것인가?”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현실은 분명 놀부 편이다. 착하지만 대책 없이 가난한 흥부보다 이기적이고 탐욕스럽지만 돈이 많은 놀부가 이 타락한 황금만능의 세상을 살아가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모두가 동의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외식업체 주식회사의 이름이 ‘놀부’였겠는가. “개 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이 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정승처럼 대접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탐욕과 악행의 시궁창 위에 ‘황금탑’을 쌓으면 모든 것이 정당화 되는 것이 오늘의 문제다.
더욱이 이런 타락의 시대를 살면서 그 황금탑의 면죄부가 세상의 이치를 배우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무섭게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래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우며 반사회적인 놀부에게서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어떤 학생은 “심정적으로는 흥부에게 끌리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놀부 쪽으로 기우는 것이 나의 솔질한 고백”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이런 타락한 현실 속에서 『흥부전』의 문제를 온전히 제기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돈’과 ‘윤리’의 문제로 단순화 시켜볼 수 있는데,. 이 사회에서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가 아니라 거기에는 마땅히 ‘돈의 철학’이라고 하는 윤리의 문제가 개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돈을 벌었나?”나 또 “어떻게 돈을 써야만 하는가?”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그토록 철저하게 놀부를 증오하고 패망케 한 것도 그가 반사회적이고 반윤리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흥부전』은 긍정적 형상을 통한 대안 마련보다 부정적 형상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돈을 벌고 쓰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알려준 셈이다.
막스 베버가 얘기한 ‘합리적인 자본주의 정신’이 우리에겐 필요한 것이다. 흔히 얘기하듯이 서구 자본주의는 300~400년이 걸려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러기에 돈의 철학, 곧 자본의 윤리가 형성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다.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가 가능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작 30~0년 만에 그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게다가 일제에 의해 이식된 자본주의이기에 정상적인 방법으로 발전할 수가 없었다. 채만식의 풍자소설 『태평천하』에 등장하는 현대판 놀부인, 윤직원이 일제의 헌병과 경찰이 재산을 지켜주니 태평천하라며 “우리만 빼놓고 모두 다 망해라”했듯이 그것이 우리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이었다.
분명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흥부의 방식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냉혹함과 속도감이 있다. 게다가 흥부의 착한 심성을 감싼 외피 중에는 분명 주저하고 머뭇거리는 답답한 구석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질적 가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외형이 아닌 따스한 인간성을 인간의 본질로 여길 때 흥부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 있다. 제비 새끼를 잡아먹는 뱀을 퇴치해주고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제비 새끼까지 치료해주는 흥부의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정말 본받아야 할 인간성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확실히 많이 변했다. 자본의 위력은 갈수록 맹위를 떨치고 있다. 상위 10%의 소득은 전체의 반가량(48.5%) 되는데, 하위 10%의 소득은 그것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이른바 ‘경제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금수저’들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국가의 공통된 생각이 된 것이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나눔을 중시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돈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든 시대가 된 것일까? 아니면 돈이 주는 그 달콤한 안락을(아파트나 자동차 광고처럼) 쉽게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일까? 이 타락한 시대에 진정 흥부의 ‘박씨’는 불가능한 것일까?



권순긍_ 세명대학교 미디어문화학부 교수. 저서 『활자본 고소설의 편폭과 지향』, 『고전소설의 풍자와 미학』,『고전소설의 교육과 매체』, 『고전, 그 새로운 이야기』, 『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2011, 공저), 『한국문학과 로컬리티』등. 평론집 『역사와 문학적 진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화홍련전』, 『배비장전』, 『채봉감별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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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8 제18권(69호-72호) 69호/권두칼럼/장종권/불완전한 사회, 시는 무엇을 해야 하나 백탄 2019.02.18 244
» 제17권(65호-68호) 68호/|권순긍 교수의 고전 읽기, 세상 읽기 ⑤| 백탄 2019.02.18 266
3246 제17권(65호-68호) 68호/책크리틱/안성덕/‘진단 혹은 처방’―천선자 시집 『파놉타콘』, 양진기 시집 『신전의 몰락』 백탄 2019.02.18 216
3245 제17권(65호-68호) 68호/책크리틱/김왕노/서정의 극치― 이재무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 백탄 2019.02.18 257
3244 제17권(65호-68호) 68호/신인상/고종만/화려한 오독 외 4편 백탄 2019.02.18 241
3243 제17권(65호-68호) 68호/신작단편/장시진/독의 유혹 백탄 2019.02.18 234
3242 제17권(65호-68호) 68호/신작단편/유시연/야간 산행 백탄 2019.02.18 239
3241 제17권(65호-68호) 68호/미미서사/김혜정/바퀴 굴리는 여자 백탄 2019.02.18 215
3240 제17권(65호-68호) 68호/미미서사/박금산/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방법 백탄 2019.02.18 200
3239 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열린시학|유순덕·수상작 백탄 2019.02.18 363
3238 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시와정신|현택훈·수상작 백탄 2019.02.18 224
3237 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시와사람|류재만·수상작 백탄 2019.02.18 183
3236 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미네르바|김경성·수상작 백탄 2019.02.18 162
3235 제17권(65호-68호) 제3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문예연구|김인숙·수상작 백탄 2019.02.18 171
3234 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다층|임재정·수상작 백탄 2019.02.18 195
3233 제17권(65호-68호) 68호/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리토피아|이외현·수상작 백탄 2019.02.18 183
3232 제17권(65호-68호) 68호/기획 시노래/나유성/노랫말과 서정시― 이가림 시인의 시 석류 백탄 2019.02.18 180
3231 제17권(65호-68호) 68호/기획 3행시/김영진/하늬바람 외 1편 백탄 2019.02.18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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