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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권(53호-56호)
2015.07.09 15:52

56호/신작시/김호준/사막의 피수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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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김호준

사막의 파수  


종종 바다로 밀려나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나는 
파수꾼임을 자처해왔다   

모래알을 움켜쥐던 바닷물이 다 말라버리고 나면 
가늘고 투명하게 번지는 양막이 살색 협곡을 에워싼다 
하얀색 외투는 내 몸에 꼭 맞으니 
성급하게 메운 실루엣이 분명하다     
소매의 공백을 축내온 태양이 겨우 저물었다 
소금보다 여려서 방랑자인 모래 알갱이들이 
굴곡진 낙타 잔등에 달라붙어 별자리처럼 타오른다   
내막의 면을 매만지며 우그러지는 빗방울에서    
한 모금씩 물비린내가 묻어나온다 
가지런히 흘러내리는 점적點滴들마다 
시퍼렇게 설익은 혈관 가지들이 뻗쳐있다 
메마른 천둥소리는 모래바람에 묻혀 허우적대는 사막의 오랜 풍습이다 
양막은 과연 누군가의 탄생을 숨기려 드는가  
손이 귀한 대지는 잡음으로 운다, 파도가 되어  
뭍으로 돌아오지 못한 태아의 비명悲鳴은 
양피지 수면 아래 감춰진 파동의 골이 등고선을 찢고 나온 징후이다 

오래 잠들었던 양수가 쏟아져 나오니, 이제는 나의   
새물, 퍼덕이는 진전震顫에서 
비늘 떼 지은 연푸른 화생化生*이 몰려올 시각이다        
                                    
*형태와 기능을 바꾸는 세포재생의 수단은 개체의 생존에 이로운 경우가 많다. 





관棺 


철창살 아래 맞물린 빈소에는 흰 옷 입은 여인이 주저앉아 눈 흘기고 있다 그녀의 빛바랜 조문이 쌓여가는 길을 나는 걷기로 하였다 벽이라는 언저리에 파묻힌 구획을 들여다보았다 우리에 갇힌 구멍들이 듬성듬성 매달려 있다 땅거미를 타고 올랐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비로소 겸손해지는 체열의 생리生理처럼 매일, 굴러 떨어지고 마는 구멍이었다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깔려죽은 세대世帶가 제법 많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장례식 다음에 찾아오는 일상이란 언제나 잔망스러운 것뿐이어서 기도를 구겨 넣은 어귀에는 허기진 밥알들만 퉁퉁 불은 채 고름같이 맺혀 있다 그늘도 지나치면 뼈와 살이 될 수 있을 거라 배웠는데 구멍 안을 쫙 벌려보니 야윈 표정들만 여럿 누워있구나 살아남기 위해 깊어진 주름을 옹이라 한다면 살점으로 도배한 우리의 입구는 차츰 건조해지리라 반들거리던 멍 자국은 뿌리를 내리리라 헛장의 말간 살갗을 몇 번이고 쓰다듬던 나는, 건실하게 뜬 살얼음 한 삽으로 새하얗게 질린 손바닥, 검은 돌처럼 반짝이는 눈망울과 마주칠 때마다 상을 뒤엎어버리곤 하였다 그러니 나의 하얀 등줄기에 수놓인 검은 줄무늬는 나를 무능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위장술이다 어석거리며 숨 쉬는 가늑골假肋骨이다 빛을 딛고 선 혼잣말의 늘어지는 그림자가 나를 염하려든다 진정 어두운 틈새가 안락함을 기르는 우리였다면 나에게로 왔던 첫날밤, 상여喪輿안에서 그토록 고역을 치러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냐 입구가 생기기도 전에 열리는 구멍이 있다 가만 생각해보니 애당초 묻지 못할 질료가 있다       
     

*김호준 : 2014년『시와사상』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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