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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모래구덩이 속인가 혹은 개미집인가 

최금진, 김안 시집

1. 사랑없는 사랑의 역설 : 최금진 시집,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 창비, 2014.8 )

최금진 시인은 세계의 바깥 언저리와 그 곳의 비참함에 대해 말한다. 어둡고 불행하기만 한 풍경 속에 놓인 주인공들은 과거의 시들이 보여준 어떠한 총체성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전혀 전형적이지도 않다. 시인이 그려내는 삶의 현실들은 잔혹하며 기괴한 풍경을 만든다. 그러한 삶의 조건은 가계로부터 유전되어 온 것이다. 자신의 유전성과 관련된 일련의 시들과 맥락을 같이 하는 다음의 시를 보자.

서로 사랑을 하자고 강변하던 날들이 가고 정말 사랑이 왔다
라면발처럼 쪼그라든 뇌 사진은 우리 엄마 것이고
코를 킁킁거리는 틱 장애는 큰아이의 것이고
나는 동굴벽화에 나오는 고대인처럼 뭔가를 사냥할 기세로
파리채를 들고 다니며 엄포를 놓는다. 제발 서로 사랑을 하자
비염과 축농증이 유전 때문만은 아니듯, 불행은
나주 남평 출신의 사나운 처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틈과 틈을 메꾸는 건축술에서 벽이란 얼마나 울음에 취약한가
절망의 하찮음을 앓고 난 뒤에도 여전히 변함없는
이 무표정은 우리 가문의 쾌거일까
칠십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내성적인 엄마의 담배와 
막내의 착하디착한 혼잣말을 종일 발굴해내는
내 귓속의 동굴에 오류투성이 메아리들이 섞여 울린다
사랑으로 가족의 사랑을 강제할 수 있는 날들은
가고 없다, 대신
밤이면 새로 돋는 손톱을 만지작거리며 방들이 뒤척인다
퍼렇게 인광을 흘리며 거실에서 혼자 물을 마시고 있는 엄마와
가방에 교회 전단지 뭉치를 넣고 다니는 처를 본다
조용하고 지루한 광기가 고층에 사는 우리를 주시한다
하루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절실함에 대해 누구보다 박식한
나는 왜 서로 사랑을 하지 않느냐고 식구들 멱살을 잡고
드라이버로 닫힌 방문들을 뚫고
세 번, 네 번, 열 번이라도 사랑을 연설한다
아무도 아프지 않은데
다들 어딘가 조금씩은 아픈, 말도 안되는 사랑이 온 것이다
(「우리 집 사랑의 내력」, 전문)

이 시 속의 사랑은 시의 마지막 행에서 시인이 ‘어딘가 조금씩은 아픈, 말도 안 되는 사랑’이라고 시인이 적고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는 다른 형태의 ‘사랑’이다. 애초에 이 가족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었으므로 ‘서로 사랑하자고 강변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을 희망을 말 할 수 없는 ‘절망의 하찮음을 앓고 난 뒤’에도 가족은 흩어지지 못한 채 닫힌 방문 속에서 각자 자신의 일에 몰두한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없어 보인다. 
‘하루라도 사랑이 없으면 안 되는 절실함에 대해 누구보다 박식한/나는 왜 서로 사랑을 하지 않느냐고 식구들 멱살을 잡고/드라이버로 닫힌 방문들을 뚫고/세 번, 네 번, 열 번이라도 사랑을 연설한다’고 시적 화자 ‘나’는 무언가 해보자고 노력하는 듯 보인다. 그렇지만 이 가족에게 ‘사랑으로 가족의 사랑을 강제할 수 있는 날들은/가고 없다’라고 노래하듯이 앞으로의 희망은 전혀 없어보인다. 슬프게도 이런 장면을 우리는 이미 쉽게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는 더 이상 달콤한 결말이나 희망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해피엔딩이 없다는 것쯤을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금진 시인은 자기기만 없이 삶의 진실과 고독하지만 당당하게 마주 서고 있다. 그것만이 이 세상을 제대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진정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귀화해서 여길 뜨고 싶다는 내 말을 식구들은 비웃는다
갈 테면 가세요, 아이들은 다 커버렸다
나는 선풍기처럼 여름을 기다려왔으나 여름은 갔다
자연치유법을 믿지 않는다, 의료보험도 필요없다
뗏목이 필요하다

안녕, 잘했어요, 내일 봐요,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없이
나는 매일 나와 헤어진다
모래구덩이에 산다
쥐처럼, 여우처럼,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겁이 많다

스티로폼으로도 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기쁘다
바가지를 타고도 다섯뼘 정도는 나아갈 수 있으리라
정신 차려요, 당신은 성인이에요, 정말로 나는 어른일까
내 속에서 두려워 떠는 코흘리개 물고기들
발가락만 남았다

노아는 말세를 위해 사십년 동안 배를 만들었단다
우린 오래전부터 가족이라고요, 하하하
아이들이 어쩌면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을까

안녕, 잘했어요, 내일 봐요, 나는 누구와 인사하는가
유치원 숙제로 종이배를 접는 막내에게
성실함을 가르치기 싫다

맥주를 마신다, 나는 불법체류자, 나는 범죄자
나는 왜소하게 내 말을 따라한다
안녕, 잘했어요, 내일 봐요

나는 늘 마네킹이나 기관사가 되고 싶었다
(「밤 인사」 전문)


2014년 봄, 국가라는 시스템이 얼마나 기댈 수 없는 지 구체적인 사건 속에서 가시화되었다. 최금진 시인은 이미 전작 시집들 속에서 국가를 희화화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밤 인사」에서 화자 ‘나’는 국가시스템에 대해 절대적인 비판적 태도를 드러내며 나라를 떠나고 싶어한다. ‘나’는 자기가 발디디고 있는 곳을 ‘모래구덩이’로 표현한다. 이는 시집의 제목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이라는 구절이 등장하는 시 「개미귀신」과 연결해서 볼 때 의미가 더욱 선명해진다.


사랑도 없이 귀신이 되어가는 세월
시를 쓰기엔 인생이 너무 짧은 건 아닐까
변명을 횃불처럼 들고 찾아가는 산 82-5번지 모래 사원
염주를 주렁주렁 목에 걸고 있는 개미귀신이란 놈은 
시체애호증이 있어서
길 가까운 곳에 마른 미육을 쌓아놓는다
침침한 눈으로 머리카락을 골라내듯 언어를 골라내기엔
너무 늦은 저녁, 신경쇠약으로 잔뜩 찡그린 얼굴로
어제 먹다 남은 말을 마저 먹는다, 아득바득
시를 쓰기엔 인생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수도복을 입은 개미귀신들이 미사라도 보는 걸까
모래 속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울고 있다
부스스, 내 손에서 사라지는 고운 모래의 언어를 만져본다
시를 쓰기엔 너무 캄캄한 모래 구덩이에서
죽은 비유들을 해골처럼 주렁주렁 꿰어 목에 걸고
그중 입맛에 맞을 것 같은 시 한줄을 맛보다가
퉤, 하고 뱉어내는, 당최 입맛이 없는 개미귀신 한 마리
폐업신고라도 해야 할까

「개미귀신」 전문

비참한 삶의 현실을 당당하게 마주하고 있는 시인도 현실이 모래수렁처럼 빠져나올 출구를 찾기 힘들어 답답하긴 한 듯하다. ‘너무 캄캄한 모래구덩이’ 속에 갇힌 듯 답답하기만 한 현실에 ‘폐업신고’라도 해야겠다고 적고 있지만 그것이 반어적 표현일 뿐이다. 최금진 시인의 시는 아나키즘 적으로 읽히는데 이는 지배의 구조를 드러내고 폭로하는 데 그친다. 
앞선 시대의 시가 세계의 비참을 드러낼 때 그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힘으로 옮겨가야 했다. 그 당시 시는 시적 현실이 아니라 시의 바깥현실에 몰두하였으므로 희망, 진실, 민중, 공동체와 같은 정서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최금진의 시에서는 헛된 희망이나 대안을 찾아 볼 수 없다. 아나키즘 적이긴 하지만 아니면 지극히 아나키즘 적이어서인지 연대나 공동체성을 말하지 않는다. 시인은 고백적이고 내포적인 서정시의 일반적 틀을 가져오면서도 서정시 바깥 현실세계에 대해 비판의 발언도 같이 하고 있다. 최금진의 시는 비참한 세계를 드러내고 그것에 대해 고백한다. 그의 현실비판은 세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리얼리즘 시의 총체성이나 전형성과는 거리가 있다. 자기 현실에 대해 말하되 그것을 전복하려 하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지
어디 한번 덤벼보라는 얘기지
그깟 논리나 법 조항 갖고는 말하지 말라는 거지
학벌로, 돈으로, 백으로 말하는 놈들이 있으니까
씨도 안 먹히는 말로 깐죽거리는 놈들이 있으니까
폭탄으로, 식칼로, 주먹으로, 깡으로
모든 간섭과 월권으로부터 나를 지키겠다는 거지
엘리트 민주주의자, 강남좌파, 리무진 리버럴
오케이, 해볼 테면 해보라는 거지
나와서 알몸으로 한판 떠보자는 거지
네가 터지든 내가 터지든 한번 해보자는 거지
조용하며 예의 바른 웃음, 살뜰한 표준어
다 먼지로 만들어줄 테니까
뜨거운 속을 바깥으로 까뒤집으며
나는 반정부군, 나는 동학당, 나는 폭탄과 먼지의 벌레
어디 한번 해보자는 거지
올 테면 와보라는 거지 
「폭탄먼지벌레」 전문


최금진의 시에서 타자들에 대한 관심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시인이 타자를 말할 때 거기에는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나 역시 타자이기 때문에 타자에 대해 말할 때 계몽적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 비판은 현실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일면 스스로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를 타자로 만들고 드러내기는 절대적인 부정으로 가능태가 된다. 아도르노적으로 말할 때 자기기만이 아닌 자기부정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다. 


2. 참회의 형식에 은폐한 반전 : 김안 시집, 『미제레레』, ( 중앙북스 , 2014.7 )

어릴 적
죽은 제 식구를 자르고 갈라 이고 가는
개미를 본 적 있습니다.
개미의 머리를 이고 가던 개미는 울고 있었습니까
땅을 파보니 여전히 개미는 쏟아지는데,
그런데 왜 여기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시시때때로 떠야 하고 져야 하는 태양은
이 역겨운 놀이를 언제쯤 끝낼까요.
태양을 피해
불에 타 무너지고 갈라진 건물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개미떼는
나처럼 영영 나오지 않을 심산인가 봅니다.
그들에게도
낮은 감옥이고 밤은 불법인가요.
하지만 이 말은 순례자의 비겁한 욕망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서울이라는 거대한 개미집에는 문이 없으니
차라리
서로의 얼굴을 잊기 위해 불을 끄는 못생긴 연인처럼,
그들이 나누는 전희처럼, 섹스처럼
내 눈을 먹어주십시오.
서로 다른 진실이 기획되어 우리의 기억을 잡아먹듯, 
기억이 밥이 되어 엉덩이로 쏟아지듯,
나는 모든 진실을 향해 눈을 감고 코를 막을 뿐입니다.
마침내 그들처럼 함정에나 걸리면 되려 좋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 밤
행간이 죽은 자들이 되돌아오는 길이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잠든 애인의 
벌거벗은 등 위를 기어오르는 개미를 눌러 죽이는 이 밤은
왜 이리 친절합니까.
애인의 친밀한 등을 파고들어갑니다.
함정입니까 그 속은,
밤은 거대한 개미 머리들입니다.
「개미집」 전문

앞 서 본 최금진 시 속 현실은 ‘모래구덩이’로 표현되는데, 김안 시인의 시 속 현실은 ‘개미집’으로 나타난다. 개미라는 최소공배수가 있긴 하지만 모래구덩이와 개미집은 그 간극이 커 보인다. 시인은 사물을 관조하거나 그 외관을 묘사할 때 그 안으로 자기를 투사하기도 하고 그 안에서 자기를 발견하기도 한다.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내면과 사물의 세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제시하는데 두 시인이 공히 시 속 현실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살과 살
우리는 서로에게 쏟아지며
완성된 감옥이라면,
어제의 말, 오늘의 말, 우리의 눈동자를 깨뜨리며 닥쳐올 말이
이 모든 말의 합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끔찍한 말의 기적들이
가을 들판에 일렁거리는 붉은 꽃, 그 붉은 꽃의 사납고 부드러운 이빨, 그 이빨을 뜯어 먹는 시간의 붉은 아가리라면,
들리지 않는 말, 들려오는 말, 기억되지 않는 말이
이 모든 말; 우리가 내는 모든 소리들이 합이,
그 소리가 만드는 액체들이
기억에 갇힌 채 귀를 막고 가라앉는 사랑이라면,
살과 살
그것은 온통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
서로의 감옥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모든 말이 없어질 때까지
서로의 입을 찢는,
찢긴 입 속으로 익사하며
기어코
기억이기를 단념하는, 

「서정」 전문
이 시의 화자는 시간의 흐름에 예민하다. ‘어제의 말, 오늘의 말, 닥쳐올 말’이나 ‘들리지 않는 말, 들려오는 말, 기억되지 않는 말’로 같은 말이지만 어느 순간에 존재하냐에 따라 다르다는 인식을 표현한다. 기표와 기의로서의 언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인의 인식이 드러난다. 서정이라는 제목으로 언어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언어의 표현불가성으로 보이는 그로테스크한 장면으로 귀결되는 이 작품 또한 김안 시가 보여주는 반전의 재미가 들어 있다.  

내 모든 삶이 만약이라면,
이 세계가,
매일 내가 먹어야 하는 알약의 개수를 헤아리는 이 저녁의 세계가
집 앞 놀이터 시소가 밤마다 저 혼자 움직이는 것처럼
반딧불이인 양 외진 골목마다 피어나는 담뱃불,
한껏 나빠지고 싶던 시절 담뱃불을 손목 위에 지지며 다짐하던 헛된 약속들처럼
만약이라면
어떤 혐의들로부터도 패악들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허물어진 얼굴을 양손에 받쳐 들고 서서
오, 아무 인생이 없는 기쁨이여
세상의 모든 중심을 향해 흩어졌던 나의 신들이 결국 길을 잃었구나
애도할 수 있을까
오늘 밤은 머리 위로 펼쳐진 속죄의 목록들이 무척이나 아름답구나
존재하지 않는 짐승과
사라져버린 사물과
죽은 영웅의 세계가 창백하게 얼어붙어 있구나
똑, 똑,
손가락을 분질러 밤의 입술을 칠해주면
옛날의 전쟁들이 다시 시작될까
옛날의 죄가 다시 반복될까
밤에 휘파람을 불면 머리맡에 뱀이 똬리를 틀다 나를 물어가고
밤에 손톱을 깎아 창밖으로 내던지면 나를 닮은 짐승이 나 대신 눕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그저 눈을 가리고서 밤을 헤매는
선량하고 헛된 낮의 내면들 중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누구의 내면이 나의 입으로 당신에게 고백할까
여보, 고백하는 입마다 빛나는 알약이 쏟아져요
이 알약을 당신의 입술로 받아주세요
빛나는 어둠이 몰려와 이 작은 창을 가리는구나
그런데 밤새도록 내 고백의 시체를 뜯어 먹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
오늘 밤엔 속죄의 시간이 부족하구나
창밖에
저렇게 빛나는 약들을 헤치며
피로와 계절과 어제 죽인 벌레와 화초들이 떠가는구나
「미제레레」 전문


‘미제레레’<Miserere>는 해마다 성주간 동안 시스티나성당에서 ‘5부 아카펠라 합창단’이 부르는 성가로 유명하며 다윗의 참회시인 시편 51편에 곡을 붙인 성가곡인데 김안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자 시인 「미제레레」는 거기에서 제목을 가져왔다. 이 시는 다윗이 자신의 부하인 밧세바의 아내를 취한 후에 선지자 나단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죄과를 간절히 참회하며 지은 것인데, 전통적으로 고난주간 수요일에 낭송되거나 노래로 불렀다. '테네브레'라는 이름의 이 예배는 촛불을 하나씩 꺼 나가다가 '미제레레 메이'의 신비로운 합창 속에 마지막 촛불이 꺼지며 완전한 어둠 속에서 마무리 된다.
한 점 얼룩도 없어야할 천상의 음악인데 다윗이 바세바와 통정한 뒤 참회하는 속세의 죄악을 줄거리로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도 수도사 윌리엄이 교황청에서 이 노래가 불리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는 장면이 나온다.  
김안 시인은 종교음악 형식을 차용하여 참회와 고백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속죄의 목록이 무척이나 아름답다’라고 하는 구절에서 참회하고 있지 않은 화자의 내면과 만날 수 있다. 시 속 화자는 결코 죄를 지었다고 참회하는 것이 아니다. 참회하는 척을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에 지은 죄의 목록을 다시 재현하고 싶은 욕망이 숨겨진 채 드러난다. 반전과 역설이 매력적인 시이다.
김안 시인은 음악, 미술 등과 같은 문화 텍스트에 감흥을 받아서 시를 쓰곤 한다. 「미제레레」 역시 <미제레레>라는 곡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시인이 참회와 고백의 형식으로 말하고  거기에 반전과 역설을 담았다고 발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 시는 음악의 배경에 대해 알고 음악을 듣고서 시를 다시 읽으면 좀 더 많은 부분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이해의 폭이 완전히 달라진다. 「미제레레」는 평범한 서정시의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면서 구조적 반전을 감추고 있다. 반전이야말로 김안 시인을 대표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한명섭 : 소설가, 2009년 계간 『서시』로 등단, 현재 가천대, 동덕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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